'신인왕 양보 없다' 25일 고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고양 오리온스와 서울 삼성 경기. 고양 이승현이 삼성 김준일과 골밑 몸싸움을 하고 있다.

▲ '신인왕 양보 없다' 25일 고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고양 오리온스와 서울 삼성 경기. 고양 이승현이 삼성 김준일과 골밑 몸싸움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25일,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2014-2015 KCC 프로농구 고양 오리온스와 서울 삼성 썬더스의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가 열렸다. 이미 플레이오프행 여부가 결정된 두 팀 간의 승부보다,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꼽히는 이승현(오리온스)와 김준일(삼성)의 슈퍼 루키 대결로 더 관심을 모은 승부였다.

결과는 이승현의 판정승이었다. 개인 기록에서 이승현은 16득점 4리바운드로, 김준일은 14득점 8리바운드로 두 선수 모두 준수했다. 하지만 팀 대결에서는 이승현이 버틴 오리온스의 압승이었다. 오리온스는 이날 20개의 3점 슛을 시도하여 무려 15개나 림을 가르는 신들린 적중률(75%)을 과시했다. 결국 삼성을 무려 33점차(102-69)로 완파했다.

시즌 상대전적에서도 오리온스는 삼성을 상대로 5승 1패의 우위를 이어갔다. 삼성은 시즌 40패(11승)고지에 오르며 전주 KCC(11승 39패)에 반 게임 차 뒤진 단독 꼴찌로 다시 떨어졌다.

대학 시절 라이벌... 프로 입문 후에도 이어진 대결

이승현-김준일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오랜 세월 라이벌 구도를 형성해왔다. 대학에서도 고려대(이승현)와 연세대(김준일)를 대표하는 스타로 명성을 떨쳤고, 지난해 신인 드래프트에서 나란히 1·2순위로 프로에 입성하며 끈끈한 인연을 이어왔다. 하지만 대체로 이승현이 항상 한발 앞서있는 형국이었다.

프로무대에서도 초반 먼저 치고 나온 쪽은 이승현이었다. 오리온스가 1라운드 개막 8연승의 돌풍을 일으키면서 이승현은 올해 데뷔한 신인 중 가장 먼저 주전 자리를 꿰차며 팀의 상승세에 기여했다. 신인답지 않은 원숙한 플레이, 빅 맨임에도 외곽 슛과 어시스트 능력까지 갖춘 다재다능한 면모는, 한동안 이승현에게 '제2의 현주엽'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줬다.

하지만 이승현이 중반 들어 다소 주춤하는 가운데, 후발주자로 김준일이 서서히 치고 올라오면서 경쟁구도가 만들어졌다. 김준일은 특출한 스타가 없는 삼성에서 주전 센터 자리를 꿰차며 팀 리빌딩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올스타전 휴식기를 전후하여 에이스였던 리오 라이온스마저 공교롭게도 이승현의 소속팀 오리온스로 트레이드됐다. 김승현은 외국인 선수들을 커버하며 득점과 리바운드 등 많은 역할을 소화하는 '소년 가장'으로 거듭났다.

정규시즌이 어느덧 막바지에 이른 지금 신인왕 판도는 '팀 공헌도의 이승현' 대 '기록의 김준일'이라는 구도로 요약된다. 이승현은 현재 51경기에 나서서 평균 33분 10초를 소화하며 10.6점, 4.9리바운드, 2.0 어시스트, 야투율 49.4%를 기록 중이다. 김준일은 48경기에 출전하여 평균 29분 48초를 소화하며 14점, 4.4리바운드. 1.8어시스트, 야투율 51.5%를 기록했다.

김준일은 득점에서 국내 선수 2위, 전체 11위에 올라있지만 삼성은 올 시즌 프로농구 최하위에 처져있어서 다소 빛이 바랜다. 반면 이승현은 소속팀 오리온스를 4위에 올려놓으며 3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로 이끈 일등공신이다. 역대 신인왕 경쟁에서는 개인기록보다는 팀 공헌도에 가산점을 주는 경우가 더 많았다. 농구는 역시 팀 스포츠라는 정서가 반영된 대목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1998~1999 시즌 신인왕을 차지한 신기성(TG 삼보)이다. 당시 개인성적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는 SK의 서장훈(평균 25.4점 14리바운드)과 현주엽(23.9점, 6.4리바운드)이었지만, 당시 SK는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다. 신기성은 평균 12.9점. 4.1어시스트로 개인기록에서는 서장훈-현주엽에 크게 못 미쳤지만 주전 가드로서 소속팀 TG를 4위로 플레이오프에 이끈 공로를 인정받았다.

역대 프로농구 사상 개인기록과 팀 공헌도의 간극이 크게 두드러진 신인왕 구도로 평가된다. 지금 보면 엄청난 이변처럼 보이지만, 당시 분위기는 신기성의 수상에 큰 위화감이 없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당시는 프로 초창기에다가 외국인 선수 2인 출전으로 시즌 평균 득점이 80~90점대를 오르내릴 만큼 기록이 대체로 높았던 시기이다.

서장훈과 현주엽을 함께 보유했던 SK는 기록상으로는 화려했지만 정작 팀 공헌도는 낮았다. 서장훈과 현주엽은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며 기록 쌓기에 열중했지만, 시너지 효과는 기대보다 나오지 않았다.

팀 공헌도 위주로 평가하지만 예외도 있다

물론 예외도 있다. 양동근(모비스. 04~05시즌)과 방성윤(은퇴. 05~06시즌), 박성진(전자랜드, 09~10시즌), 박찬희(KGC, 10~11시즌) 등은 또 다른 경우다. 이들은 역대 프로농구가 배출한 17명의 신인왕 중 드물게 소속팀이 플레이오프에 탈락하고도 신인왕을 차지한 경우다.

양동근(11.5점, 6.1어시스트)과 방성윤(17.8점)은 데뷔 시즌부터 압도적인 기록을 올린 데다 마땅한 경쟁자가 없었다는 것도 한몫을 담당했다. 박성진의 경우는 당시 소속팀 전자랜드가 9위(15승 39패)에 그쳤지만, 경쟁자가 같은 승률의 꼴찌팀이었던 오리온스 허일영이었고 개인성적도 둘 다 고만고만했다. 운이 대단히 좋았던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박찬희는 그 해 유일한 신인왕 경쟁자가 같은 팀 동료인 이정현이었다는 점에서 팀 성적이 큰 변수가 되지 못했다.

지금의 이승현-김준일과 비슷한 경쟁구도로는 2007~2008 시즌의 김태술(KCC, 당시는 SK 소속)과 함지훈(모비스), 2013~2014 시즌의 김종규(LG)-김민구(KCC) 정도를 꼽을 수 있다. 개인성적에서는 함지훈과 김민구가 득점 등 주요기록에서 근소하게 앞섰지만 소속팀이 플레이오프에 탈락했고, 김태술과 김종규는 플레이오프진출에 성공하며 팀 성적에서 앞섰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해 신인왕은 결국 김태술과 김종규가 차지했다. 물론 이들의 기록도 신인으로서 결코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압도적인 차이가 아닌 이상은, 팀 성적 프리미엄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전례들을 살펴봤을 때, 올해 신인왕 역시 이변이 없는 한 이승현의 우세가 유력하다. 김준일은 이번 시즌 신인 최다인 한 경기 37점(2월 18일 SK전)을 넣는 등 몇몇 경기에서 강한 임팩트를 남겼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선수구성이 약한 삼성에서 김준일에게 집중되는 의존도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반면 이승현은 오리온스 팀 내에 길렌워터-라이온스 등 득점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많은데다 토종 슈터 자원도 풍부하여 굳이 자신이 많은 득점을 올릴 필요가 없다. 이승현은 득점을 제외한 팀 공헌도에서는 김준일에 비하여 밀리는 부분이 전혀 없다. 두 선수의 맞대결에서도 힘들이지 않고 동료들을 활용하는 이승현과 혼자 해결해야하는 부담이 많은 김준일의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났다.

분명한 사실은 이승현과 김준일 모두 앞으로 10년 이상 한국농구를 이끌어갈 재목이라는 점이다. 이승현이 현재의 위상에서는 다소 앞서고 있지만, 이는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이다. 오히려 김준일이 올 시즌 예상을 뛰어넘은 활약을 보여주며 재발견됐다. 일부 전문가들은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은 김준일이 이승현을 능가할 수도 있다고 지목한다. 앞으로 수년의 세월이 더 흐른 뒤에는 신인왕이 아니라 MVP 타이틀을 놓고 경쟁하는 이승현과 김준일의 모습을 볼 수 있을 테다. 이는 불가능한 상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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