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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4'에서 출발한 '복고 열풍'이 '무한도전 토토가'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1990년대 문화를 즐겼던 'X세대'가 이제 소비 중심 세대로 성장한 것이죠. <오마이뉴스>도 창간 15주년을 맞아 2000년으로 돌아갑니다. 21세기에 대한 장밋빛 기대와 '밀레니엄 버그(Y2K)' 같은 불안감이 공존하던 시절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즐겼을까요? 지금부터 우리 마음속 서랍 깊숙이 처박아 두었던 오래된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보겠습니다. [편집자말]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신촌 일대를 주름잡던 독수리다방. 스타벅스 등 프랜차이즈 카페에 밀려 2005년 폐업했다가 2013년 다시 문을 열었다. 할머니가 운영하던 독수리다방을 물려받아 다시 문을 연 손영득 사장.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신촌 일대를 주름잡던 독수리다방. 스타벅스 등 프랜차이즈 카페에 밀려 2005년 폐업했다가 2013년 다시 문을 열었다. 할머니가 운영하던 독수리다방을 물려받아 다시 문을 연 손영득 사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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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가 내리던 지난 16일 오후 5시께.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정문 쪽 굴다리 근처 독수리 다방엔 손님들로 북적였다. '다방'이라 불리기 어색할 정도로 내부는 세련됐다. 매장의 상당 부분은 아예 도서관 공간으로 따로 나뉘어 있다.

신유미씨(22, 대학교 3년)는 "프랜차이즈 카페는 가지 않는다"고 고개를 저었다. 흔한 카페보다는 이곳을 더 좋아한다고 했다. 이어 "(독수리 다방은) 우리 아지트 같은 느낌"이라고 웃어 보였다. 조유리씨(27)는 "학교 옛 선배들이 '독수리 다방 아직 있니'라고 물어본다"며 "정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여기서 공부가 잘돼 자꾸 찾게 된다"고 덧붙였다.

독수리 다방이 다시 선보인 지 3년째다. 스타벅스 등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 문화가 자리잡은 틈새에서 나름 선전하고 있는 셈이다. 일부에선 '옛 독수리 다방의 부활'을 조심스레 말하기도 한다.

1971년 독수리다방 오픈 당시 모습. 주변 행인들이 나팔바지를 입은 모습이 눈에 띈다.
 1971년 독수리다방 오픈 당시 모습. 주변 행인들이 나팔바지를 입은 모습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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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독수리다방의 모습.
 1980년대 독수리다방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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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1990년대 신촌 대학 문화의 상징, 독수리 다방

독수리 다방이 첫 선을 보인 것은 1971년. 1950년 신촌 장사 토박이 김정희(86)씨가 문을 열었다. 김씨의 손주인 손영득(34)씨는 "콩나물 장사로 시작해 50여 년간 신촌에 계셨다"면서 그동안 만화방, 노래방, 빵집, 오락실까지 안 해 본 장사가 없으셨다"고 설명했다. 손씨는 지난 2013년 지금의 독수리 다방을 새롭게 오픈한 주인공이다.

그는 "할머니가 요즘 몸이 안 좋으셔서 주로 병원에 계신다"면서 "지금도 예전 장사했던 때를 자주 떠올리며 말씀하신다"고 덧붙였다.

김씨의 독수리 다방은 한때 신촌 문화의 상징이었다. 특히 1980~1990년대 연세대를 비롯해 이화여대, 서강대 등 신촌 대학가에서 독수리 다방은 독보적이었다. 이곳은 단순히 음료를 마시는 공간 이상이었다. 남녀 학생들 간의 추억 속 미팅뿐 아니라 각박한 현실을 고민하고, 소통하는 장이기도 했다. 다음은 손씨의 말이다.

"할머니 이야기로는 1970~1980년대 연세대 농구부, 야구부 등 운동부들이 많이 다방에 왔대요. 그때는 음료 한 잔을 시키면 찐빵을 줬어요. 근데 학생들이 배고프다고 더 달라고 하면 그냥 퍼주셨대요."

손씨는 이어 "학교 축제가 있는 날은 장사 접는 날이었다"면서 "당시 다방에서 술을 안 팔았는데 학생들이 연고전 끝나고 맥주 사 들고 다방으로 들어오면 그냥 학생들과 어울리며 즐겼다고 한다"고 전했다.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 문화에 밀려 폐업, 그리고 재도전

독수리 다방은 그렇게 신촌 문화를 이끌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들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한국식 다방 문화에 서양의 에스프레소 커피 문화를 접목한 새로운 형태의 카페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스타벅스였다. 미국의 대표적인 커피 체인점인 스타벅스가 1999년 신촌 이대점에 1호점을 열었다(박스 기사 참조).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신촌 일대를 주름잡던 독수리다방. 스타벅스 등 프랜차이즈 카페에 밀려 2005년 폐업했다가 2013년 다시 문을 열었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신촌 일대를 주름잡던 독수리다방. 스타벅스 등 프랜차이즈 카페에 밀려 2005년 폐업했다가 2013년 다시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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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스타벅스로 대표되는 새로운 형태의 카페 문화가 퍼지자, 독수리 다방도 급격히 위축됐다. 손씨는 "2000년 들어서면서 에스프레소를 비롯한 원두 커피와 서양식 카페 문화가 대세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면서 "독수리 다방은 커피 맛부터 내부 인테리어 등에서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결국 독수리 다방은 지난 2005년 자진 폐업하고 만다. 1971년 개업한 지 33년 만이었다. 그리고 8년 만인 지난 2013년 다시 독수리 다방 간판이 내걸렸다. 김씨의 손자인 손씨가 직접 나섰다. 미국에서 대학까지 마친 그는 속칭 '금융맨'이었다. 그는 "2011년 금융 쪽에서 나와 개인 사업하다 연이어 실패했다"면서 "예전부터 카페 경영에 관심 있기도 했지만, 당시 절박한 심정으로 독수리 다방 리오픈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독수리 다방은 분명 과거와 달랐다. 매장 내부 일부를 아예 도서관으로 꾸몄다. 세련된 느낌의 가구를 배치했고, 조용하고 편안한 공간을 제공했다. 신촌 일대 커피 전문점 가운데 이런 공간이 있는 곳은 거의 드물다.

2015년 독수리 다방이 우리에게 건네는 것

마치 도서관에 온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독수리 다방.
 마치 도서관에 온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독수리 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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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다방의 자그마한 방에는 단골이었던 고 최동원 선수 사진이 손 사장 할머니 사진과 함께 걸려 있다.
 독수리다방의 자그마한 방에는 단골이었던 고 최동원 선수 사진이 손 사장 할머니 사진과 함께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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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옛것을 버리지도 않았다. 손씨는 "할머니가 유행을 따라가지 못했다"고 했지만, 독수리 다방엔 여전히 김씨의 자취가 남아있다. '블랙 커피'라는 이름의 메뉴부터 독수리 다방 스타일의 '딸기 주스'도 그대로다. 손씨는 "예전에 할머니가 새벽 4시에 시장에 나와 딸기를 직접 사서 손에 빨간 물이 들 때까지 꼭지를 땄다고 한다"면서 "당시 할머니는 물 대신 우유를 넣은 딸기 주스를 80원에 팔았는데, 당시 히트 상품이었다"고 소개했다.

손씨의 독수리 다방에선 옛날 딸기 주스를 그대로 팔고 있다. 커피 역시 블랙 커피를 고수하고 있다. 그렇다고 커피값이 싸진 않다. 독수리 다방의 블랙 커피는 5000원이다. 인근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가 4100원인 것을 감안하면 900원이나 비싸다. 하지만 주문한 모든 음료에 원할 경우 아메리카노 커피를 한 잔 더 제공한다.

손씨는 "스타벅스보다 비싸지만, 우리는 리필(Refill) 커피를 주고 있다"면서 "실제로 따지고 보면 그쪽보다 더 싸게 커피를 팔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곳을 이용하는 학생들은 대개 3~4시간은 기본이라고 한다. 길게는 8시간 이상 앉아서 책을 보다가 가는 학생도 많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그는 "단기적으로 보면 커피 한 잔 시키고 있는 고객을 보면 매출에선 손해가 날 수 있다"면서 "하지만 우리 다방은 다른 곳보다 다시 찾는 손님 비율이 월등히 높다"고 전했다.

손씨의 독수리 다방은 3년째 여전하다. 신촌 일대 커피를 파는 가게만 수백여 곳. 그는 그렇게 느리게 천천히 가고 있었다. 정직원 3명과 아르바이트 학생 등을 고용하면서도 아직 큰 적자를 보지 않고 있다. 손자의 사업에 처음엔 반대했던 김씨도 "굶지는 않는구나"라며 그의 경영을 인정해주고 있다고 한다. 옛 1980년대 신촌 문화를 이끌었던 독수리 다방. 이곳이 새로운 문화 코드로 다시 설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1980년대 기존의 건물을 증축한 뒤 독수리다방 모습.
 1980년대 기존의 건물을 증축한 뒤 독수리다방 모습.
ⓒ 독수리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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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만 8곳... "카페 연다고 하면 말린다"
커피 전쟁 벌어진 신촌역 일대... 대규모 카페도 허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신촌 일대를 주름잡던 독수리다방은 스타벅스 등 프랜차이즈 카페에 밀려 2005년 폐업했다가 2013년 다시 문을 열었다. 사진은 프렌차이즈 카페가 즐비한 신촌 거리.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신촌 일대를 주름잡던 독수리다방은 스타벅스 등 프랜차이즈 카페에 밀려 2005년 폐업했다가 2013년 다시 문을 열었다. 사진은 프렌차이즈 카페가 즐비한 신촌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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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연세대 정문 앞에서 지하철 2호선 신촌역까지 500m에 이르는 걷고 싶은 거리에는 대기업 간 커피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스타벅스의 경우 1999년 이대점 1호점 개장 이후 한국 시장에서 영역을 넓혀갔다.

지난 2011년에 방한한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은 당시 "한국 스타벅스 점포 수를 5년 내 2배 700개로 확대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그의 말처럼, 현재 스타벅스 본사는 전국 60여 개 도시에서 730여 개 모든 매장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는 본사에 비해 힘이 약한 가맹점주들의 영업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대표 프랜차이즈 업종에 대해 가맹점 간 거리 제한을 발표한 바 있다. 커피 전문점은 500m내 신규 가맹점을 내지 못하게 한 것. 이러한 거리 제한은 지난해 폐지됐지만, 스타벅스, 커피빈 등은 직영점으로 운영돼 애초부터 제한조차 받지 않았다. 브레이크 없이 매장수를 늘릴 수 있었던 셈이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지난해 스타벅스를 포함한 대기업 커피 업계 8개사와 휴게음식업중앙회가 상생 자율 협약을 체결했다"며 "민간을 중심으로 한 자율 협약의 최초 사례로 커피 전문점의 상생과 동반 성장을 위한 발전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휴게음식업중앙회는 가맹점이 아닌 단독 점포에서 커피, 아이스크림, 피자 등을 판매하는 전국 4만여 명의 자영업자들로 이뤄졌다. 회원의 45∼50%가 커피를 취급하고 있다.

또 "스타벅스 매장은 지역 골목 상권이 아닌 유동 인구가 많은 접근성과 편의성이 높은 대형 상권을 중심으로 위치해 있다"며 골목 상권 침해가 아님을 강조했다. 이어 "일부 스타벅스 매장을 중심으로 주변 상권이 동반적으로 활성화되기도 한다"며 "새로운 유동 인구와 소비층 유입을 이끌어내는 장기적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실상은 어떨까.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점으로 도배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촌역을 둘러보면 스타벅스 매장만 8개에 달한다. 이뿐 아니라 '걷고 싶은 거리' 대로변에는 엔제리너스커피, 투썸플레이스, 탐앤탐스, 파스쿠찌 등 대형 커피 전문점이 경합을 벌이고 있다. 국내·외 내로라하는 커피 브랜드는 대부분 출점한 셈이다.

신촌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 A씨는 "소규모로 신촌에서 카페를 차린다고 하면 나서서 말린다"며 "신촌의 경우 건물 2~3층을 통째로 사용하는 대형 브랜드 카페가 많아서 경쟁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귀띔했다.



태그:#독수리다방, #스타벅스, #김정희,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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