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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26일은 '송파 세 모녀'가 마지막 방값과 공과금을 봉투에 넣어둔 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날입니다. 그들의 1주기를 기리며 기초법 시행령 개정안의 문제점에 대해 짚는 연속칼럼을 기고합니다. - 기자 말

설 연휴가 끝났다. 오랜 만에 만난 가족들과 이야기꽃을 피우고 아이들은 세뱃돈도 받았을 것이다. 어릴 적 세뱃돈을 받았는데 어머니께서 당신한테 맡겨 두라는 말을 믿었다가 세뱃돈의 행방이 묘연해진 기억이 여러 번 있다. 물론 다음 달 용돈에 반영되지도 않았다. 어린 맘에 야속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노인들에게도 이와 비슷한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바로 기초연금이다. 지난 해 7월 기초연금이 도입되면서 소득하위 70% 노인들에게 매월 20만 원을 드리고 있다. 하지만 가난한 기초생활수급자 노인들은 예외다. 이 달에 지급한 기초연금을 소득으로 보고 다음 달 생계비에서 그만큼을 차감한다. 줬다가 다시 뺏는다고 해서 '줬다 뺏는 기초연금'이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중학생도 어이없어 하는 기초연금

수급자 노인이 통장을 보며 한숨을 쉬고 있다.
 수급자 노인이 통장을 보며 한숨을 쉬고 있다.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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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노인들의 이런 설명을 듣고는 이웃에 사는 어린 중학생들도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다. 뭔가 한참 잘못됐다. 어머니는 그래도 선의로 용돈을 챙기는 것이지만 줬다 뺏는 기초연금은 정부가 사실상 어르신을 우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후 생활 안정을 위해 도입한 기초연금이 정작 가난한 노인에게는 결국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기초연금이란 말인가? 수급자가 아닌 노인부터 하위 70%까지, 중간 계층 노인들에겐 매달 나오는 기초연금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지난 대선 때만 해도 아무도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모든 어르신께 기초연금 20만 원 지급'하겠다는 공약만 믿었다. 실제 선거 후 실시된 조사에서도 노인 네 명 중 한 명이 '기초연금 공약 때문에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을 찍었다'고 답했다.(관련 기사 http://blog.naver.com/swf1004/130179670771) 선거에서 기초연금 공약이 노인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게 분명하다. 생활이 어려운 수급자 노인들에겐 '기초연금 20만 원'이 더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랬던 대선 공약이 국민연금과 연계해 지급하고, 지급 대상도 '모든 노인'에서 '소득하위 70%'까지 후퇴를 거듭하더니 '줬다 뺏는 기초연금'사태로까지 이어졌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에 사는 한 70대 수급자 노인은 "처음부터 준다는 말이나 말지... 애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이걸 가지고 어떻게 살라고..."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결과적으로 수급자 노인들은 기초연금 때문에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맘에 더 큰 상처만 남았다.

이렇게 수급자 노인의 가난이 깊어지자 일이 터지고 말았다. 지난 해 10월 동대문에서 60대 수급자 노인이 자신의 시신을 거둘 사람들을 위해 국밥 값을 봉투에 남기고 자살했다. 이어 이번 달 9일엔 79세 수급자 노인이 단칸방에서 외로운 죽음을 맞았다. 통장에 남은 돈은 달랑 27원뿐이었다. 이 노인이 정부로부터 받은 지원금은 한 달에 49만 원이었다. 기초연금을 제대로 받았다면 한 달 생활비는 69만 원이 되어야 하지만 다음 달 생계비에서 깎이니 49만 원 그대로였다. 돌아가시기 전 폐결핵 치료비로 30만 원을 썼다고 하니 노인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짐작이 간다.

줬다 뺐는 기초연금, 대통령 결단이면 된다

기초연금 지급을 홍보하는 현수막 아래 줬다 뺏는 기초연금 비판 현수막
 기초연금 지급을 홍보하는 현수막 아래 줬다 뺏는 기초연금 비판 현수막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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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수급자 노인에게도 기초연금을 드리면 생계비에 더해 중복해서 지급되기 때문에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집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정하기 나름으로, 꼭 지켜야 할 불변의 원칙은 아니다. 정부가 한 입으로 두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초연금법 제정에 앞서 보건복지부 설명 자료에는 '기초생활수급자도 기초연금 20만 원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한다고 했었다(기초연금법 제5조 제6항, 2013년 12월 27일). 그런데 실제 지급 할 때가 되자 기초생활보장의 소득인정액에 기초연금이 포함되니 그만큼을 수급비에서 삭감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제라도 잘못된 제도를 고쳐 수급자 노인도 기초연금을 실질적으로 누리도록 해야 한다. 기초연금은 노인이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지급하는 것이고, 최저생계비는 가난하기 때문에 주는 것이다. 두 복지 제도의 성격과 재원 주머니가 서로 다르다. 중복 급여가 아니다.

해법은 간단하다. 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제3조) 한 줄만 바꾸면 된다. 현재 보육료지원금과 양육수당 등이 기초생활보장 '소득의 범위'에서 제외되어 있듯이, 기초연금이 소득인정액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이는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바로 가능한 일이다. 모든 어르신에게 기초연금 20만원을 드리겠다고 약속한 당사자가 바로 대통령이다. 기초연금 '줬다 뺏기'는 지난 해 8월부터 벌써 여덟 달째다. 수급자 노인들의 삶은 갈수록 더 팍팍해지고 있다. 올해는 '줬다 뺏는 기초연금'이란 말이 없어지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상호님은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사무국장입니다.



태그:#빈곤, #노인, #노인빈곤, #기초연금, #기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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