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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겉그림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겉그림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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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슬프기로는 둘째 가라면 섭섭할 책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는 덴마크 사회를 탐구해 쓴 취재일기다. 일터, 교육, 종교생활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면서 행복지수 1위 국가의 비밀을 풀어내려고 애를 썼다. 그 비밀이라는 것은 결국 책에 인용된 한 덴마크인의 다음 발언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덴마크에는 '누구도 특별하지 않고 누구나 소중하다'는 의식이 문화적으로 자리잡혀 있습니다."

누구도 특별하지 않고 누구나 소중하다니, 말이야 참 맞는 말이다. 그러나 어디 사람사는 세상이 그런가. 생각해보니 마침 지인이 6년째 덴마크에 살고 있다. 물어봤더니만 냉큼 "정말 좀 그런것 같"단다.

내심 '책이라서 그렇지'라든가 '그걸 믿냐? 믿어?' 따위의 대답을 기대했는데. 덴마크 사람들은 자기가 특별하지 않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서 부담스러울 정도라고. (약간 힘이 빠진 채로) '내가 뭐라고 남을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겠어...' 식의 겸손한(?) 마음가짐이 어찌보면 역설적으로 덴마크 사람들이 남 신경 덜 쓰고 자기 인생을 설계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정부의 역할

이런 사회적 심성이 만들어진 배경에 덴마크 정부가 있다. 강력한 사회보장제도를 바탕으로 육아, 교육, 의료를 비롯한 먹고사니즘에 관한 문제를 상당부분 해소해준다. '무항산무항심'이라고, '저놈' 제치지 않으면 살길이 막막한데 마냥 '소중해요, 사랑해요' 하기는 참 어렵다. 사회보장제도를 받치고 있는 높은 세율은 정부와 제도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 신뢰는 다시, 나만 특별해지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소중한 평등 지향의 사회가 옳다고 믿는 덴마크인들의 공감대 위에서 자란다. 선순환도 이런 선순환이 없다.

물론 덴마크에도 문제가 많을 것이다. 현세가 마냥 천국같을 수 있겠나. 저자도 모르지 않는다. 덴마크인들에게 행복하냐고 물으면, 온갖 언론에 보도되는 행복지수 1위 국가의 시민 입장에서 '아니'라고 대답하기가 다소간 부담스러운 면도 있다고 한다. 이 책이 표지부터 내용까지 모조리 핑크빛인 것 이면에 혹시 다른 이야기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은 아마도 합리적인 의심일 것이다.

그러나 덴마크가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부러워할만한 점이 많은 나라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전반적인 사회의 지향점이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 또한 사실인 것 같다. 책을 읽다보면 도대체 얘네들은 뭘 어쨌길래 이런 사회를 만들고 사나 하는 궁금증이 인다. 대체 어쩌다가?

행복사회의 기원

덴마크가 태곳적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란다. 오늘날 덴마크 사회의 건설은 19세기 후반기에 시작됐다. 공부 잘하는 애, 운동 잘하는 애, 말썽 잘 부리는 애 골고루 칭찬해준다는 덴마크 교육철학의 기초는 1844년 그룬트비라는 인물에 의해 처음 다져졌고 이후 수십년간 차차 뿌리를 내렸다. 사회연대의 최소단위가 되는 협동조합은 1882년 낙농조합에서 출발했다. 회사는 언제든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고(!) 노조 대표가 경영에 참여하며 정부는 실업급여와 직업훈련을 지원함으로써 균형을 이루는 노사정 대타협안은 1899년, 100일이 넘는 총파업 끝에 마련됐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시도들이 이 나라가 역사상 유례없는 시련을 겪은 시점에 등장했다는 점이다. 19세기가 오기 전까지 덴마크는 대국이었다. 노르웨이와 독일 북부가 모두 덴마크 왕의 지배 아래 있었다. 그러나 1814년, 1864년 두번에 걸쳐 덴마크는 국토와 인구의 상당 부분을 빼앗긴다. 나폴레옹 3세의 프랑스에게 볼기맞고 비스마르크의 프로이센에게 뺨도 맞는 날들이 이어졌다. 바이킹의 후예라는 표현이 1864년 패배 이후 만들어졌다는 게 통설이라는데, 그 이유가 하도 나라 꼴이 비참하니 '우리도 한때 힘이 있었다'는 걸 과시하기 위해서였단다.

한번만 더 전쟁에서 졌다가는 정말로 뼈도 못추릴 것 같아서 이후 줄기차게 중립을 선언할 수 밖에 없었다던 덴마크는 그러나 가장 어두운 밤에 새벽을 준비하는 저력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힘은 왕이나 귀족이 아니라 연대하는 시민으로부터 왔다. 그 결과로 어쩌면 덴마크 역사에서 지우고 싶었을 19세기는 외려 행복사회 건설의 원년이 됐다. 저자인 오연호가 멋지게 표현한 것처럼 "상실의 아픔 속에서 덴마크는 가장 건설적인 새 시대를 일구기 시작했다."

삶에 적용하기

이런 종류의 책은 '아아 부럽다 부러워 부럽다고' 하다가 끝나기 십상이다. '여행 한번 못가본 나라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니... 뭐 그래 좋은 이야기구나, 표지 참 예쁘네' 하고 책을 덮은 뒤 다시 우승열패의 경쟁사회로 돌아가는 거다.

그러나 내용을 소화해보려고 조금만 애를 쓰면, 남의 나라 다른 사회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기웃거리는 것의 효용은 분명하다. 첫째는 뭔가 잡스럽게 아는 게 많아진다는 것이겠고... 둘째는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가 전부는 아니구나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책도 말미에 시사점 내지는 생각해볼 거리들을 정리해뒀다. 삶에 적용해보자는 것이다. 읽고 박수치고 '어이구 좋겠다'로 끝내지말고. 사실 뾰족한 수는 없을지 모르겠다. 전 국민이 이 책을 읽는다 해도 온 나라가 갑자기 각성해서 2016년부터 한국이 한마크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꼭 덴마크처럼 되어야 한다는 법도 없겠다.

그러나 독자의 시민의식을 고양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책의 결론에 쓰인대로 "다른 길도 있다는 것", "개인의 자존감은 '우리'라는 연대의식이 함께 있을 때 제대로 갖춰진다"는 것, 변화는 거창한 게 아니라 일상과 주변을 돌보는 나의 작은 관심 따위에서 비롯된다는 것, 이런 것들을 이해하도록 돕는 거다. 어디 좀 적용해볼 만한 곳 없나 찾고 혹시 있으면 한번 해보고 하는 것이 결국 시민의식 계발의 과정이고 변화의 출발이다.

내 주변의 작은 공동체 만들기

한 개인의 입장에서 이런 것들은 결국은 작은 공동체에서부터 시작해야 되는 게 아닌가 싶다. 가족, 친구 모임, 일터의 최소 단위. 하루 아침에 사회가 '쨘' 바뀌기를 기대하기 어렵다면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면 어떨까. 부모라면 애들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회사원이라면 동료 선후배들과의 관계를 맺는 방식을 바꿔볼 수 있을 것이다. 누구도 특별하지 않고 누구나 소중하다는 말이 좀 추상적으로 들리긴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의외로 반성하고 적용할 구석들이 많다.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더 어렵지만 효과가 더 있을 것 같다.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운동을 한다거나 독서모임을 한다거나 여행을 다닌다거나 하는 식으로. 소속감을 자꾸 확장해가는 거다. 연대가 별건가. 속한 곳이라고는 동창회하고 직장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좀 우울하지 않나. 새로 만든 모임인 만큼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을 더 해야겠지만 그만큼 모임의 '정신'을 색다르게 가져가기 쉽다. 구성원들이 자존감을 느낄 수 있는 형태로 합의해 갈 수 있다.

새 공동체 꾸리기의 최고봉은 아마도 마을을 만들어 짓고 사는 것일 텐데, 서울의 주거환경 내지는 부동산 시장의 형편을 봤을 때는 참 이게 쉽지 않지 싶다. 인구 이천 만의 거대한 서울-수도권역에 살면서 모두의 이익을 맞추어서 한 동네에 모여 군락을 이루고 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되기만 하면 참 좋을 것 같다. 사는 게 더 재밌을 것 같다. 주중 일터에서의 사회생활과 주말 집에서의 가정생활로 양분되던 삶이 뒤섞일 것이다. '사회'가 삶 깊숙히 들어올 것이다.

거창하게 마을을 만들든, 소소하게 무슨 무슨 모임을 만들어서 만나든 개개인이 주인이 되는 작은 공동체가 늘어나면 거기서부터 진짜 변화가 일어나는 게 아닐까 싶다. 뻔한 술자리에 모여서 정치인이 어떻고 하는 것보다, 각자 알아서 '살짝 닭살스러운' 활동들을 한두 개쯤 해나가는 것이 더 '정치적'이다.

삶을 풍요롭게 하고 사회를 활기차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애 키우고 일하는 것 말고 이야기할 소재가 생긴다. 마음맞는 사람들을 모아두었으니 뭔가 작당하기도 쉽다. 자발적으로 모의하고 실행하는 것, 작당하는 인간이야 말로 행복하다. 행복한 내가 모여 행복한 사회가 될 테니, 그때가 되면 우리는 저자의 질문에 자신있게 '당연하지' 대답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 행복지수 1위 덴마크에서 새로운 길을 찾다

오연호 지음, 오마이북(2014)


태그:#독서공방, #지상현, #정대훈,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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