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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나 사랑을 변치말자
▲ [당신에게 실크로드 11] 언제까지나 사랑을 변치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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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무치에서 폭탄이 터졌대. 너 정말 거기 갈 거니?"

란저우에 있는데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2014년 4월 30일, 우루무치 기차역에서 폭탄이 터져 세 명이 숨지고 79명이 다쳤다. 10년을 베이징에서 산 미국 친구는 코웃음을 쳤다.

"얼마나 죽고 다쳤는지는 아무도 몰라. 중국 언론 발표는 믿을 수 없거든."

테러가 발생한 지 2주 후, 우루무치에 도착했다. 한족과 위구르족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는 이 도시. 하지만 겉보기에는 그저 중국의 대도시라는 느낌만 든다. 도심에는 높은 빌딩과 아파트가 있고, 쾌속 버스인 BRT로 편리하게 연결돼 있다. 시내 중심의 인민공원에선 해가 질 때쯤 중국인들이 모여 탁구를 치거나, 단체로 춤을 추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정말 테러가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인민공원 근처 백화점 앞에서 특이한 걸 발견했다. 하얀 장갑차다. 번화한 도시 한가운데 장갑차가 있었다. 신기한 마음에 카메라를 들이대자 공안이 소리를 빽 지른다. 찔끔해서 도망갔다.

그 후에도 자주 장갑차를 봤다. 기차역 앞에도, 이도교 시장에도,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는 어김없이 장갑차와 총을 든 공안들이 있었다. 총을 든 공안 앞에서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대화하고, 물건을 사는 등 일상을 살고 있다. 상상했던 것처럼 데모를 하거나 싸움이 벌어지지는 않았고, 한족과 위구르족은 서로 부딪히지 않고 물과 기름처럼 떠다니기만 했다.

"한족인 줄 알고..."

위구르족 최대 시장인 이도교 시장
▲ 이도교 시장 위구르족 최대 시장인 이도교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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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보이지 않는 미묘한 긴장감은 있었다. 위구르인들의 재래시장인 이도교 시장에서 구경을 마치고 기차표를 사러 이동하기로 했다. 아무리 버스 노선도를 들여다봐도 답이 안 나온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위구르 아주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아무리 불러도 고개를 숙이고 내 눈길을 피했다. 눈앞까지 가이드북을 들이대고 기차역을 물어봐도 끝까지 대답이 없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이번엔 옆에 있는 할아버지한테 부탁했다. 그도 대답이 없다가 한글이 적혀진 내 가이드북을 보더니 내게 물어봤다. "너 한국인이야?" 반가운 마음에 격한 반응으로 대답하자, 할아버지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아까 대답이 없던 아주머니도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일단 기차역에 가는 법을 듣고 헤어졌는데, 할아버지가 따라나왔다.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 주겠단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짧은 시간 동안 그는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나를 가리키며 "한국인"이라고 소개하며 뿌듯하게 웃어 보였다.

번화가에는 어김없이 장갑차가 있고, 색깔은 하얀색과 검은색이다.
▲ 장갑차 번화가에는 어김없이 장갑차가 있고, 색깔은 하얀색과 검은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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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와 우루무치 한인 민박집 사장님께 아까 있었던 일을 물어봤다. "아마 한족인 줄 알고 말을 안 했을 거예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족이랑 위구르족은 서로 말을 안 하나요?"
"우리 일제 강점기 때 생각해보세요. 조선 사람이 일본 사람이랑 말을 섞었겠어요? 똑같은 거예요."

그 후로도 여러 번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면 가방에 단 태극기를 보이며 위구르어로 먼저 말했다. "한국인입니다! (맨코리엘릭!)" 그러면 금방 경계는 호의로 바뀌었다. 위구르 여인들은 내 스카프를 고쳐 씌어주거나, 덤으로 건포도를 한 줌 더 주거나 했다. 내겐 다행이었지만, 어쩐지 서글픈 상황이었다. 이렇게 쉽게 남을 좋아하는 사람들인데, 날을 세우고 살아가야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언제까지나 변치 말자"

얼마전 테러가 있었던 기차역.
▲ 기차역앞 공안들 얼마전 테러가 있었던 기차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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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맞았다. 인민공원에서 만나 함께 신장 위구르 자치구 박물관에 가기로 했는데 친구 녀석이 안 나타난다. 태극권 아줌마의 24식을 다 봤다고 생각될 무렵, 전화가 왔다. "미안, 미안... 내가 말한 건 신장 타임이야" 이 넓은 중국의 모든 지역은 베이징을 기준으로 한 단일 시간제다. 하지만 신장에서는 학교나 관공서를 제외, 별도로 2시간 느린 신장 타임을 쓰고 있다.

결국 혼자 박물관으로 향했다. 이곳은 고시(古屍) 진열실의 미라로 유명하다. 사막의 건조한 기후에 부패하지 않고 바싹 말라버린 미라들이다. 붉은 수염과 머리가 생생한 매부리코의 키가 큰 족장도 있고, 꼭 감은 눈에 납작한 돌이 얹혀 있는 어린 아기의 미라도 있다.

사실은 도저히 미라를 혼자 볼 엄두가 나지 않아 친구와 함께 오려고 했다. 미라이긴 하지만 시신을 보는 게 처음이다. 족장의 옷은 아직도 생생한 붉은색이다. 어린아이는 소포 꾸러미처럼 둘둘 말려 있었다. 3000년도 전에 죽은 이들인데 마치 어제 죽은 이 같다.

미라 '누란의 미녀'로 유명한 박물관
▲ 신장 위구르 자치구 박물관 미라 '누란의 미녀'로 유명한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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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가장 유명한 미라는 '누란의 미녀'다. 그녀는 3800년 전 사망했다. 사망 당시 나이 40세, 신장 155cm였다. DNA 분석을 통해 그녀는 금발에 푸른 눈의 백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풍성한 갈색 머리에 섬세한 긴 속눈썹, 그리고 살짝 벌린 입 사이로 보이는 작고 귀여운 치아를 가지고 있다.

그녀가 안고 있던 붉은 비단 자락에는 "언제까지나 변치 말자(千世不變)"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묘하다. 세월은 이렇게 많이 지났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보낼 수 없었던 마음은 아직 남아 있었다.

누란을 알게 된 것은 윤후명 작가의 소설 <둔황의 사랑>에서였다. '로울란의 사랑'이라는 단편에 김춘수 시인의 시가 인용되어 있었다.

명사산 저쪽에는 십 년에 한번 비가 오고, 비가 오면 돌밭 여기저기 양파의 하얀 꽃이 핀다.
언제 시들지 모르는 양파의 하얀 꽃과 같은 나라 누란
- 김춘수 <누란> 중에서

소수민족 중 카자흐스탄 민족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다
▲ 남산목장 소수민족 중 카자흐스탄 민족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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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누란은 언제 시들지 모르는 양파꽃 같은 나라였다. 지리적으로는 타클라마칸 사막의 동쪽 끝, 로프노르 호수 주변에 번성했던 오아시스 왕국이다. 실크로드의 요충지로 7세기까지 번영했으나 어느 날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고 만다.

운은 없지만 업적은 뛰어났던 스웨덴의 탐험가 스벤헤딘
▲ 스벤헤딘 운은 없지만 업적은 뛰어났던 스웨덴의 탐험가 스벤헤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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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천 년 넘게 모래에 묻혀 전설로만 남아 있던 이곳을 탐험가 스벤헤딘이 발견했다. 스웨덴의 탐험가 스벤 헤딘, 실크로드의 개척자로 불린다.

파미르 고원과 타클라마칸 사막을 넘으며 탐사했고, 그 과정에서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그가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물이 없어 낙타와 부하, 충직한 개까지 잃은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흥미진진하다.

고된 탐험 길에 그의 고용인은 자주 죽거나, 동상으로 두 다리를 절단하거나 했고 개, 말, 낙타들은 데리고 가는 족족 죽었다. 하지만 이 특이한 열정의 소유자는 중앙 아시아 탐험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사막에 파묻힌 누란을 발견했고, 로프노르 호수로 향하는 물줄기가 1600년 주기로 이동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누란은 호수가 사라지며 양파꽃처럼 시들어 버린 것이다.

소수 민족,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남산목장에서 만난 카자흐스탄 소수민족 아이
▲ 남산목장 남산목장에서 만난 카자흐스탄 소수민족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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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 진열실을 나와 소수 민족 전시관으로 갔다. 이곳에서 알게 된 친구들은 카자흐족과 타지크족, 러시아족 등 소수 민족이다. 신장엔 한족과 위구르족 뿐 아니라 후이, 몽골, 둥간, 러시아 등 13개 민족이 산다.

소수 민족 전시관 앞의 소개 글을 읽어봤다. 중국 공산당 아래 소수 민족의 소중한 문화 유산이 보호를 받고 있으며, 발전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서부 지역의 발전으로 조화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다양한 민족들이 더욱 합심하고 있다고도 적혀 있었다.

하지만 중국 소수 민족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점점 극심해지고 있다. 중국 사람들은 소수 민족이 우대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소수 민족은 자신들이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남산 목장 가는 길에 만난 카자흐족 청년은 중국을 떠나 카자흐스탄으로 떠나겠다고 했다. 영어가 유창한 그는 취업 스트레스로 탈모가 왔다고 한다. 그는 중국의 발전에 대해선 의심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딱 잘라 정리했다.

"한족을 위한 발전이지 우리들을 위한 발전은 아니거든."

우루무치 인민공원 옆 유흥가(?)에서 만난 화보촬영
▲ 대륙의 화보촬영 우루무치 인민공원 옆 유흥가(?)에서 만난 화보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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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를 듣고 혼란스럽던 머리가 정리되는 것 같았다. 한때 식민 지배를 받았던 민족의 눈으로 다시 우루무치를 바라봤다. 백화점과 BRT가 있는 풍요로운 도시 우루무치. 실크로드 부활 정책을 펼치고 있는 중국 정부에게 우루무치는 유라시아로 향하는 거점 도시다.

하지만 급격한 도시화로 터전을 잃은 위구르 사람들은 점점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다. 간판엔 당당하게 중국어 간체가 적혀 있고, 그 밑에 작게 위구르어가 적혀 있을 뿐이다. 서점에 들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90%가 한족의 책이고, 소수 민족을 위한 책은 전체 서점 규모의 10%도 되지 않았다. 이곳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주도지만, 한족의 도시다. 공원에서 한족은 운동을 하거나 낚시를 즐겼고, 위구르족은 관광객처럼 공원을 둘러보기만 했다.

우루무치 대형서점에서 발견한 한국대통령에 관한 책
▲ 음? 우루무치 대형서점에서 발견한 한국대통령에 관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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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중국 정부는 소수 민족 포용 정책을 펼치면서 한편으로는 대테러작전을 개시해 분리·독립 운동을 다스리고 있다. 사실 간단하게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고 말하긴 미묘한 문제긴 하다. 중국 또한 과거 속에서 이들 소수 민족의 지배를 받기도 한 만큼 이들의 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하지만 지금 중국 정부의 강압적인 소수 민족 정책은 소수 민족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슬람교가 운영하는 학교를 폐쇄하거나, 학생들이나 공무원들에게 이슬람의 단식 성월인 라마단 참여를 금지하고 있다. 또한 18세 미만의 학생들은 사원에 예배를 보러 가지 못한다.

우루무치를 떠난 지 일주일 후인 지난 2014년 5월 22일, 다시 테러가 발생해 31명이 죽었다. 이후 우리 정부는 신장 위구르 지역에 특별 여행 주의보를 발령했다. '일대일로'(一帶一路 : 육상과 해상을 포함한 실크로드)의 원대한 꿈을 꾸고 있는 중국의 현재 모습이다. 하지만 약자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는 강자는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 우루무치는 언제 시들지 모르는 양파꽃처럼 애잔한 느낌이었다.

우루무치의 야경
▲ 홍산 우루무치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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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무치 여행 정보
[우루무치에서 때밀기]

우루무치에 찜질방이 있다. 원하는 서비스의 금액을 내고 들어가면 전신 때밀이부터 마사지 등 다양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휴게실, 오락실, 찜질방, 뷔페 등의 서비스를 즐길 수 있다. 여성 기본 때밀이와 마사지 45분 코스에 169 RMB부터 시작하고, 남성은 관심이 없어서 유심히 안 봤다.

상호 : 大商洗浴 Dashang Bathing
주소: Youhao South Road Shayibak, Urumqi, Xinjiang, China
연락처: +86 991 429 1223

[우루무치에서 원두커피 마시기]

실크로드를 여행하면서 가장 시달렸던 것은 음식이 아니고 커피였다. 서쪽으로 가면 갈수록 믹스 커피나 홍차만 있고 원두 커피를 찾기 힘들다. 다행히 우루무치에 있는 한국 선교사님들이 하시는 카페에서 양질의 커피와 드립퍼까지 구할 수 있있다. 우루무치에서 거의 유일하게 마실 수 있는 원두커피와 아기자기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곳이다. 자세한 정보는 우루무치 살렘민박집에 문의하면 된다.

덧붙이는 글 | 2014년 4월부터 10월까지의 여행 중, 실크로드- 경주, 중국,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터키, 로마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동쪽과 서쪽을 잇는 실크로드의 과거 이야기와 현재 진행형 이야기입니다. 더블어 히스테리가 극에 달한 노처녀의 한풀이이기도 합니다. 실크로드에서 건져낸 이야기를 점과 점으로 이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에 또 하나의 실크로드가 그려졌으면 합니다.



태그:#실크로드, #우르무치, #신장위구르 자치구 , #위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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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여행작가. 저서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찾아 산티아고>, 사진집 <다큐멘터리 新 실크로드 Ⅰ,Ⅱ> "달라도 괜찮아요. 서로의 마음만 이해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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