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한 전주 KCC 허재 감독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프로농구 전주 KCC 허재 감독.

KCC는 코치이던 추승균 감독 대행 체제로 남은 시즌을 치른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4-2015 KCC 프로농구 서울 삼성과 전주 KCC 경기에서 KCC 허재 감독이 부상한 하승진을 바라보며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 사퇴한 전주 KCC 허재 감독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프로농구 전주 KCC 허재 감독. KCC는 코치이던 추승균 감독 대행 체제로 남은 시즌을 치른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4-2015 KCC 프로농구 서울 삼성과 전주 KCC 경기에서 KCC 허재 감독이 부상한 하승진을 바라보며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9일, 한국 스포츠계 또 한 명의 전설이 무대 뒤로 퇴장했다. 프로농구 전주 KCC의 '농구대통령' 허재 감독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자진사퇴한 것.

올 시즌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던 KCC는 11승 34패로 9위에 머물며 실망스러운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허재 감독은 2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고 올해도 전망이 어두워지자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통감, 구단 측에 먼저 퇴진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최근 1년 사이에 각 종목별로 한국스포츠를 대표하던 최고의 전설들이 잇달아 불명예스럽게 감독직에서 낙마하는 잔혹사가 반복되고 있다. 가장 먼저 축구에서 지난해 7월 홍명보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조별 리그 탈락의 참혹한 결과를 남기고 불명예 하차했다. 이어 지난해 10월에는 선동열 전 KIA 감독이 3년 연속 포스트시즌 탈락 부진에 책임을 지고 역시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국보·캡틴·대통령... 전설들의 안타까운 퇴장

프로야구 KIA 선동열 감독 재계약 엿새 만에 전격 사퇴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의 선동열 감독이 구단과 재계약한 지 불과 엿새 만에 스스로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KIA는 25일 선 감독이 감독직을 사임했다고 발표했다. 선 감독은 앞서 19일 KIA와 2년간 총액 10억 6천만원에 재계약했다. 사진은 지난 3월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개장식을 앞두고 경기장을 찾은 선동열 감독.

▲ 프로야구 KIA 선동열 감독 재계약 엿새 만에 전격 사퇴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의 선동열 감독이 구단과 재계약한 지 불과 엿새 만에 스스로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KIA는 지난 2014년 10월 25일 선 감독이 감독직을 사임했다고 발표했다. 선 감독은 앞서 19일 KIA와 2년간 총액 10억 6천만원에 재계약했다. 사진은 지난 3월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개장식을 앞두고 경기장을 찾은 선동열 감독. ⓒ 연합뉴스


국보(선동열), 영원한 캡틴(홍명보), 농구 대통령(허재) 등 남다른 수식어에서 보듯, 이들은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를 넘어 해당 종목을 대표하는 '한국 스포츠의 아이콘'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선동열 감독은 현역 시절 0점대 평균자책점, 통산 평균자책점 1.20, MVP 3회, 골든글러브 6회, 한국시리즈 우승 6회 등을 기록하며 'KBO 역사상 최고의 투수'로 꼽힌다. 홍명보 감독은 A매치 통산 135경기 출장, 월드컵 4회 연속 본선출전,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와 브론즈슈 수상 등을 통하여 '아시아 최고의 리베로'로 불리는 특급 수비수였다.

허재 감독은 농구대잔치 7회 우승과 MVP 3회 수상, 1997~1998 챔피언결정전 MVP 등을 수상하며 '농구 천재'로 명성을 떨쳤다. 선수 시절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독보적인 위상과 남다른 개성으로 전설 대우를 받았던 이들은, 감독으로서 호된 쓴맛을 봐야 했다.

스포츠계에서 스타 출신 감독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속설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불과 2~3년 전만 해도 이들 3인은 이런 고정관념을 극복하는 스타 출신 감독의 성공 사례로 꼽혔다.

선동열과 허재 감독은 프로무대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차지하는 영광을 맛봤다. 선동열 감독은 삼성 시절이던 2005~2006년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허재 감독도 KCC를 2009년과 2011년 각각 프로농구 정상으로 이끌었다.

홍명보 감독은 프로팀 경력은 없지만 2009년 U-20 월드컵 8강과 20112 런던올림픽 사상 첫 동메달이라는 업적을 수확하며 대표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이는 커리어 전체로 봤을 때 이들이 충분히 지도자로서도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과거의 성공 사례에 안주하여 발전하지 못한 것이 결국 자신의 발목을 잡았다.

선동열 감독은 지난 2011년부터 친정팀 KIA의 지휘봉을 잡았다. 그러나 선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3년간(2012~2014) KIA는 단 한 번도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지 못했다. 3년간 통합 성적은 167승 9무 213패(승률 0.439)로 고 김동엽 감독(82년 13경기 5승 8패)을 제외하면 1년 이상 지휘봉을 잡은 역대 타이거즈 사령탑 중 최악의 성적이었다.

구단 운영과 재활 시스템이 탄탄하던 삼성 시절과 달리, 선동열은 주축 선수들의 부상 공백 속에 거듭되는 투수 육성과 외국인 선수 영입에 실패했다. 여기에 선수단과의 소통 부재라는 약점이 결국 선 감독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홍명보 감독은 '의리축구'에 발목을 잡혔다. 애제자인 박주영을 비롯하여 자신이 잘 아는 올림픽팀 선수들을 중용했다. 2년 전 런던에서는 성과를 거뒀지만,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결정적 패착으로 되돌아왔다. 컨디션이 떨어진 선수들을 무리하게 기용하느라 자신이 정한 원칙까지 무너뜨린 홍 감독은 역풍을 맞고 말았다.

허재 감독은 복불복(福不福)에 울고 웃었다. 현역 시절부터 선수 복이 많아 복장(福將)으로 까지 불렸던 허재 감독이지만, 마지막 3년은 '불운의 아이콘'으로 전락했다.

201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팀의 미래로 주목받았던 김민구가 지난해 국가대표 차출기간 중 음주운전 사고로 이탈한 것이 치명타였다. 6억2000만 원의 몸값을 자랑하는 국가대표 가드 김태술은 심각한 부진에 빠졌다. 군복무를 마치고 합류한 최장신 센터 하승진마저 올 시즌만 벌써 세 번이나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시즌 내내 정상적인 전력을 구성하지 못했다.

성적 부진에 구설수까지... 더 성숙해져서 돌아오기를

축구회관 떠나는 홍명보 홍명보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열린 사퇴 기자회견을 마치고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 축구회관 떠나는 홍명보 홍명보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이 지난 2014년 7월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열린 사퇴 기자회견을 마치고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 이희훈


더구나 단순히 성적 부진만이 아니라 경기 외적인 구설수가 끊이지 않았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선동열 감독과 홍명보 감독은 부진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소속 구단과 협회로부터 재신임을 받으며 팬들의 비난을 샀다.

선동열 감독은 재계약 직후 구단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며 성난 여론을 달래려고 노력했지만 곧바로 터진 '안치홍 임의탈퇴 강요' 파문이 터지며 결국 재계약 엿새 만에 자진사퇴해야 했다.

홍명보 감독 역시 당초 2015 아시안컵까지 유임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으나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월드컵 부실 준비 논란, 토지 매입 사건, 조별리그 탈락 후 회식 파문 등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악화된 여론을 견디지 못하고 하차했다.

그나마 앞선 두 감독에 비하여 허재 감독은 비교적 물러나는 과정만큼은 깔끔했다. 김민구의 음주운전사고나 주축들의 부상은 어쨌든 허 감독의 책임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허 감독 역시 당초 '종신계약설'까지 나올 만큼 KCC 구단 측의 신임이 두터웠지만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 먼저 사퇴의사를 밝히면서 오히려 팬들로부터 동정을 받고 있다.

거듭되는 스타 출신 감독들의 불명예 낙마는 한국스포츠에 있어서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이 선수 시절부터 축적해온 경험과 노하우를 더 이상 활용할 수 없게 되고, 심지어 과거의 업적마저 부정당하는 현실은 안타까움이 크다.

물론 이들의 실패가 스타 출신 감독들의 지도력에 반드시 문제가 있다는 증거는 되지 못한다. 프로야구 삼성의 통합 4연패를 이끈 류중일 감독이나,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금메달과 울산 모비스의 2연패를 견인한 유재학 감독 등도 해당 종목을 대표하는 유명 스타 출신 지도자들이다.

결국 스타 출신이든 아니든, 과거의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하는 지도자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자아가 강한 스타 출신일수록 "나는 예전에 이런 방식으로 성공했다"는 자만심이 '독선'으로 전락할 위험이 높다.

선동열, 홍명보, 허재 감독은 큰 시행착오를 겪으며 잠시 현장을 떠나게 됐지만 어쨌든 한국 스포츠에 큰 족적을 남긴 전설들임에는 변함이 없다. 실패의 경험까지 자양분으로 삼아 언젠가 더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와서 다양한 활동으로 한국 스포츠 발전에 기여해주기를 팬들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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