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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입양 어때?"

3년 전 친구가 우연히 던진 말이었다. 이 질문이 1개월 후 내 인생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 지 그때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당시 친구에게 들은 사연은 대략 이랬다. 유기동물보호소에 결막염이 심하고 등에 깊은 상처까지 난 고양이가 들어왔는데, 건강 상태도 좋지 않고 입양자도 나타나지 않아 안락사 될 위기에 처했다는 것. 이 사실을 알게 된 친구의 지인이 안타까운 마음에 일단 고양이를 입양했는데 사정이 생겨 급히 다른 입양처를 알아보는 중이라는 거였다.

고양이를 입양하려고 시도했던 경험도 있어 일단 안타까운 마음에 사진을 받아보기로 했다. 그러나 입양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더구나 치료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은근히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인연은 정말 따로 있는 걸까. 컴퓨터 모니터에 고양이 사진이 뜨는 순간, 나는 이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서둘러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한시바삐 고양이를 데리고 있는 사람에게 내가 입양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해 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그렇게 한 마리 고양이와 나는 가족이 되었다.

고양이 한 마리 입양했는데, 졸지에 여섯 마리를 떠안다

입양 후 3일 째 되던 이온. 탐색을 끝낸 후 자신의 영역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다.
▲ 엄마 고양이 이온 입양 후 3일 째 되던 이온. 탐색을 끝낸 후 자신의 영역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다.
ⓒ 채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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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동물병원에 데려갔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양이가 임신 중인 것이었다. 더구나 새끼 고양이들이 세상에 나올 날짜가 거의 임박해 있었다. 세상에. 초음파 결과 고양이의 배에는 무려 5마리의 작은 새끼들이 자라고 있었다. 나는 고양이 한 마리를 인연으로 생각하고 가족으로 맞아들였는데, 졸지에 여섯 마리를 떠안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전 보호자도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 파양을 원한다면 다시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하지만 고양이는 이미 내 집에 와서 탐색을 끝내고 자기 영역을 만들고 편안히 쉬고 있었다. 나는 파양하지 않고 일단 고양이가 새끼를 낳도록 도와주기로 결심했다. 나는 고양이에게 이온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임신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이온이와 함께 사는 재미에 푹 빠져 어느덧 3주가 지났다. 그러던 어느 화창한 휴일. 고양이 화장실에 들어간 이온이로부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추룹~~찹찹찹찹'. 고양이 화장실 쪽으로 살금살금 다가가 화장실 문을 조금 열어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온이는 고양이 화장실 모래 위에 새까맣게 젖어 있는 무언가를 핥고 있었다. 얼핏 보니 쥐새끼 같기도 한 그것은 바로 이온이의 첫 번째 새끼였다.

새끼 다섯마리 중 세 마리는 다른 가정으로 입양 가고 두 마리는 지금도 나와 함께 살고 있다.
▲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이온 새끼 다섯마리 중 세 마리는 다른 가정으로 입양 가고 두 마리는 지금도 나와 함께 살고 있다.
ⓒ 채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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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새끼는 저체온증에 걸려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재빨리 장갑을 끼고 새끼 고양이를 미리 준비해 둔 출산용 집으로 이동시켰다. 이온이도 새끼를 옮긴 쪽으로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첫째를 시작으로 이온이는 2시간마다 한 마리씩 새끼를 낳기 시작했다. 출산은 밤 12시까지 이어졌다. 다섯 번째 새끼까지 모두 낳은 후 그 사이 조금 나이가 든 것 같은 모습으로 이온이가 출산용 집에서 나왔다. 나는 특별히 준비한 영양식과 북엇국을 이온이 앞에 내밀었다.

이온이는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잠시 쉬었다. 그리고 다섯 마리의 아기 고양이들이 있는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아기들에게 돌아가기 전 내 손에 얼굴을 부비대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누가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이온이는 새끼들의 젖을 먹이고, 몸을 핥아주고, 배변을 처리하고, 주변을 살뜰히 청소했다. 나는 이온이에게 최상의 먹거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새끼 고양이 돌보기에 동참했다.

내가 베푼 것보다 더 큰 행복 가져다준 고양이들

새끼들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자랐다. 눈도 못 뜨던 고양이들이 3주 만에 출산용 집 문턱을 넘어서기 시작했고 4주째에는 집 안팎을 마음껏 드나들었다. 어느 날엔 자기네집 지붕에 올라가기 시작했고 어느 날엔 온 집안을 뛰어 다녔다.

세워 놓은 매트리스 위에도 고양이들은 놀이터 미끄럼틀 타듯 오르락 내리락 거렸다. 나는 새끼 고양이가 처음 문턱을 넘을 때부터 고양이들과 바리케이드 대결을 벌였으나 나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다. 오히려 고양이들의 웃음거리만 되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사람이 고양이를 이길 수는 없다'였다.

새끼 고양이들이 못 가는 곳은 집안 어디에도 없다.
▲ 반니와 삐삐의 어릴 적 모습 새끼 고양이들이 못 가는 곳은 집안 어디에도 없다.
ⓒ 채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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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갈 수 없는 곳은 없다. 냉장고 아래 틈새부터 에어컨 위, 싱크대, 욕실 곳곳에 고양이는 들락거렸다. 의외로 집안은 점점 깨끗해져 갔다. 왜냐하면 고양이가 가는 곳이 지저분하지 않도록 청소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저분하고 정리가 안 되었던 집은 고양이와 살게 되면서 아이러니 하게도 점점 사람 사는 집이 되어 갔다.

새끼 고양이들은 엄마 젖을 먹고 무럭무럭 자랐다. 새끼 다섯 마리 중 세 마리는 다른 좋은 가정에 입양을 갔고 나머지 두 마리인 삐삐, 반니는 엄마 고양이 이온이 그리고 나와 함께 살고 있다.

고양이들은 많이 먹고 많이 놀고 많이 잔다. 누군가에게 이런 행복을 선물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린 적이 있는가.
▲ 신나게 놀고 난 후 잠든 새끼 고양이들 고양이들은 많이 먹고 많이 놀고 많이 잔다. 누군가에게 이런 행복을 선물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린 적이 있는가.
ⓒ 채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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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한 고양이를 입양한 후 겪었던 정신 쏙 빠지도록 당황스러웠던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대신 고양이들이 남겨 준 따뜻한 추억은 그대로 남아 아직도 진행중이다.

"미양~미양~미양~"

이온이가 나의 가족이 된 2주부터 3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가 퇴근해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때 마다 하는 인사다. 매일 저녁, 이렇게 세 번 나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자기가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 내가 잠깐 외출할 때는 인사를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가족을 맞이하는 인사가 분명한 것 같다.

지금도 배를 긁어 달라 어리광을 부리며 내 곁에서 잠드는 반니. 자기 얼굴을 내 얼굴에 부비며 나에게 고양이 말로 수다를 떠는 삐삐. 모두 나와 평범한 일상을 공유하는 소중한 가족이다. 이것이 반려동물을 입양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이며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리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채희경은 동물자유연대 간사입니다.



태그:#동물자유연대, #고양이, #동물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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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자유연대는 동물학대 예방 및 구조, 올바른 반려동물문화 정착, 농장동물, 실험동물, 오락동물의 처우 개선을 위한 대중인식 확산과 연구 조사, 동물복지 정책 협력 등의 활동을 하는 동물보호단체이다. 홈페이지: www.animal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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