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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관람객이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전시장을 들어서며 전시장 입구에 걸려있는 대형 초상화를 바라보고 있다.
▲ 대형초상화 앞에 선 관람객 한 관람객이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전시장을 들어서며 전시장 입구에 걸려있는 대형 초상화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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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전면에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탄신' 현수막이 설치 되어있다.
▲ '탄신 '현수막 걸어 놓은 박정희기념도서관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전면에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탄신' 현수막이 설치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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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겁니까? 어떻게 들어왔어요? 기자라는 사실은 밝혔어요? 일단 나가세요, 나가서 얘기합시다."

짙은 회색 옷을 입은 경비원 2명이 경계의 눈초리로 다가와 다급하게 소리쳤다. 기자가 인터뷰를 하던 3명의 노인 관람객들도 경비원들의 기세에 눌려 말문을 닫고는 다른 전시관으로 쫓기듯 가버렸다.

"(여기에 오니) 저절로 애국자가 된 기분"이라며 기자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애정을 말하던 중이었다. 지난달 29일 오후 4시 30분경,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 제3관람실 앞에서 벌어진 일이다.

'기념관 전시라도 마저 보겠다'고 버텼지만 소용이 없었다. 몇 분간의 실랑이 끝에 결국 기자는 건물 밖으로 쫓겨났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은 어떤 곳이기에 기자의 방문에 이토록 예민하게 반응했을까.

기념관 앞 현수막 '조국 근대화의 영웅 박정희 탄신 98주년의 해'

"천천히 둘러보고 사진도 마음껏 찍어도 된다."

기자가 기념관에서 처음 만났던 직원은 기자에게 책자를 건네며 친절하게 안내했다. 그가 건넨 책자 첫 장에는 '혼신을 다해 근대화를 이끌고, 조국 근대화에 일생을 바친 위대한 지도자를 위한 전시'라는 설명이 담겨 있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 도서관 앞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중앙 기둥 사이에 붙은 4장의 대형 현수막이다. 가장 왼편에 걸린 현수막엔 한 손을 상공에 뻗은 자세를 하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의 대형 상반신 사진이 새겨져 있다. 다른 현수막에는 "우리도 할 수 있다! We Can Do", "'안 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영원히 못 하는 사람입니다. '될 수 있다! 할 수 있다!" 등의 구호가 적혀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생전 국민들에게 강조했다는 말이다.

중앙 돌계단을 통해 2층 현관 앞으로 올라가면 이보다 더 큰 현수막을 볼 수 있다. 그 현수막에도 박 전 대통령의 대형 사진과 함께 이렇게 적혀 있다.

"조국근대화의 영웅, 2015년은 박정희 대통령 탄신 98주년의 해!"

박 전 대통령의 사진과 어록을 새긴 대형 현수막이 기념관 건물 외벽에 내걸린 것은 최근의 일이다. 기념관의 한 관계자는 "(기념관 건물) 외부에서 보면 어떤 건물인지 잘 모르니, 관람객이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편의를 위해 설치했다"고 말했다.

2층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약 4m 높이의 박 전 대통령 대형 초상화가 다시 관람객을 맞이한다. 고개를 최대한 치켜들거나 멀리서 봐야만 전체가 한눈에 들어올 정도의 크기다. 이 초상화는 '테러(?)'의 대상이 될 뻔했다. 지난 2012년 10월 한 60대 재미교포가 이 초상화에 '헌법 파괴자'라고 페인트칠을 하려다가 경비원들의 제지로 실패했다. 이미 건물 외벽에 '헌법 파괴자'라는 붉은색 글씨가 새겨진 뒤였다.

제1전시실의 제목은 '아! 박정희 대통령관'이다. 박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인 18년 6개월간의 '업적'을 정리했다. 특히 시각적, 청각적 효과를 극대화했다. 박 전 대통령의 과거 영상은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해서 작동하는 센서에 의해 자동으로 흘러나왔다. 하얀 벽면에는 종종 그의 얼굴이 클로즈업된 얼굴이 보였다. '
박정희 대통령은~'으로 시작하는 해설은 쉬지 않고 2층 전시관 전체에 울려 퍼졌다.

오른쪽으로 발길을 돌리자 '5·16 혁명은 민족 중흥과 근대화 혁명'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책자에도 '역사의 전환점이 된 5·16 혁명'이라고 명시돼 있다. 이를 두고 지난 2012년 2월 개관 당시부터 정치권과 역사학자 일부는 "5·16 쿠데타를 근대화 혁명으로 선전해 학생들에게 큰 혼돈을 준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1층에 있는 제2전시실의 주제는 '근대화 과정을 따라가는 시간여행'이다. 새마을운동 이후 초가에서 파란색 슬레이트 지붕으로 변화한 농촌, 재봉질하는 여공 등 추억을 소환하는 모형 앞에서는 노인 관람객들의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경제개발 과정의 '공'(功)만 부각했을 뿐 '과'(過)는 어디에도 없었다.

"절로 애국자 된 기분"... "보수적이고 현실적이지 않아"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내부에 전시 된 사진과 문구들.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내부에 전시 된 사진과 문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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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기념관을 둘러본 1시간 반 동안 10명 내외의 관람객과 마주쳤다. 이들 대부분 주변 사람에게 얘기를 듣거나, 기념관 소개 기사를 읽고 알음알음 찾아왔다고 했다. 기념관에는 하루 평균 100여 명의 관람객이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념관을 방문하는 관람객 수가 많지 않아 개장 초기만 해도 오후 6시까지 문을 열었지만, 지금은 1시간 앞당겨 5시에 문을 닫는다. 결국 지난해 11월 마포구 주민 일부가 나서서 홍보 목적의 '기념 도서관 홍보 위원회'를 결성했다.

이날 기자가 마주친 관람객 대부분은 60대 이상 노인이었다. 한 노인은 들뜬 표정으로 기자에게 "여기 오니깐 절로 애국자가 된 기분"라고 말했다. 친구와 함께 온 남기백(65)씨는 "박정희 대통령만큼은 한국 사람들의 정신을 만든 위대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굳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어느 한 쪽에 쏠리지 않는다"고 강조하며 말을 이어갔다.

"사실 박 전 대통령의 독재는 우리 같은 일반 국민한테 한 게 아니라 지식인이나 언론인 같은 일부한테 한 것이지. 아니 지금처럼 자유가 보장된 나라가 세계 어디에 있어? 박근혜 대통령만 해도 '문고리 권력'이라면서 언론이 말을 지어내서 욕하는데, 부모님 돌아가시고 아무도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기를 10여 년 동안 따른 사람을 어떻게 배척하나. 박 대통령이 (비서관들을) 10년이나 봤는데, 인품을 모르겠어?"

반면 두 아이와 함께 온 김아무개씨(47)에게 기념관은 '구시대적 이미지'였다. 김씨는 "굳이 기관을 지어야 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그는 기념관 건물 외벽에 걸린 박 전 대통령의 어록을 두고 "요즘 같은 세상에 너무 보수적이고 지금 현실과 맞지 않는 단어들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여기는 참 잘 만들었어요."

전시장 구석구석 빼놓지 않고 사진을 찍던 박태성(63)씨는 시니어 리포터로 일하고 있다. 그가 이번에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는 포스팅 주제는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이다. 그는 "구미 생가도 가봤는데, 거긴 오래돼서 그런지 전시의 의미는 아니었다"고 했다.

"이 기념관은 보는 사람마다 관점이 다를 겁니다. 그래도 여기는 정치적으로 몰아갈 문제가 아니죠. 박정희라는 개인의 기념관 아닙니까. 그래도 여기만 홍보하면 말이 많을 테니, 다른 전직 대통령의 기념관도 방문해야 겠어요."

전직 대통령 기념관에 대한 논란은 줄곧 있어 왔다. 찬성 쪽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의 사업이며 정치적 문제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반대 쪽은 '정부 예산이 투입됐고,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점에서 시기상조'라고 반박했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의 경우, 1999년 5월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적극적인 예산 지원을 약속하면서 본격적인 논란이 시작됐다. 당시 4·19혁명 관련 단체들은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은 군사 쿠데타를 정당화하고 장기 집권과 민권 탄압을 미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며 지원 계획의 철회를 촉구했다.

"<오마이뉴스>라고? 솔직히 오마이랑은 좋지도 않고..."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전면에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전 발언과 사진 대형 현수막이 설치 되어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전면에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전 발언과 사진 대형 현수막이 설치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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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에 대한 논란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 논란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실제 지난해 5월 '청년좌파' 회원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에 올라가 기습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됐다. 그들이 기념관에 내건 현수막에는 '가만히 있으면 경제는 살지만 우리는 못살아', '사람 잡는 경제 성장, 박근혜 정부 퇴진하라', '신자유주의가 죽었다. 박근혜정권 퇴진하라' 등의 구호가 적혀 있었다.

이들은 "우리가 모독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 박정희가 아니라 경제 성장이라는 우상 박정희"라며 "생명보다 이윤을 교리로 하는 국교에 대해 신전을 모독하고 역사에 침을 뱉겠다"고 밝혔다.

나중에 기자의 취재를 막고 건물 밖으로 쫓아낸 기념관 직원들은 그 이유를 끝내 설명하지 않았다. 책임자라는 홍보팀 A씨는 기자에게 "말도 없이 인터뷰 하면 우리 입장이 곤란하다"는 의미 없는 말만 반복했다. "누구나 입장 가능한 공공 시설물에서 관계자가 아닌 일반 관람객과 인터뷰한 것도 문제가 되냐"고 묻자, "인터뷰 자체를 막을 순 없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어떤 내용으로 인터뷰해서 어떤 식으로 기사가 나갈지 모르니 곤란하다"고 했다.

"무슨 내용으로 쓰세요? 뭐 얘기 안 하시겠지만... 그런데 오마이뉴스라고 하셨죠? 솔직히 오마이랑은 좋지도 않고... 만약 조선일보 기자가 왔다고 해도 우리는 똑같이 했을 겁니다. 사안에 따라 판단하겠지만 언론과 어떤 인터뷰도 하지 않습니다."

'조국 근대화의 영웅' 박정희 전 대통령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건립한 기념관에서 언론의 취재를 막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증을 뒤로 하고 기념관을 나와야 했다.

덧붙이는 글 | 박다영 기자는 오마이뉴스 21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상암동 기념관, #박정희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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