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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시간>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북한이 사실을 왜곡했다'며 2011년 남북 비밀회담 내용을 공개해 논란이 되고 있다. 당시 이를 보도한 <동아일보> 2011년 6월 2일자 1면
▲ 재연되는 진실논란... 진실은 무엇인가 <대통령의 시간>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북한이 사실을 왜곡했다'며 2011년 남북 비밀회담 내용을 공개해 논란이 되고 있다. 당시 이를 보도한 <동아일보> 2011년 6월 2일자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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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청와대 고위급 인사를 베이징으로 보내 천안함 폭침에 대해 북한이 제3자적 입장에서 유감을 표시해서는 안 되며, 북한이란 주체가 드러날 만한 문구여야 한다는 입장을 전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5월 양측의 고위급 실무자들이 중국에서 만나 천안함과 연평도 도발에 대한 북한의 사과 수준과 표현 문제를 논의했다. 우리 측의 요구에 대해 북측은 더 논의해보겠다며 평양으로 돌아갔다. - <대통령의 시간> p.357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 기록된 위 내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1년 5월 9일부터 김태효 당시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 등과 북한 인사들이 '비밀접촉'을 가졌다. 위 내용은 바로 그 당시에 대한 기술이다. 비밀접촉을 가진 20여 일 후, 북한에 의해 충격적인 폭로가 나왔다. 이 대목 역시 <대통령의 시간>에 기술돼 있다.

원자바오와 김정일이 만난 후 일주일 뒤 북한은 남북 간에 진행됐던 베이징 비공개 회담의 내용을 왜곡하여 발표했다. 남한이 정상회담을 구걸하며 돈 봉투를 건넸다고 억지를 썼다. 또한 천안함과 연평도 관련 사과를 애걸했다고 주장했다. 비공개 회담을 폭로하는 것은 국제관례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더구나 사실과 전혀 다른 왜곡이었다. - <대통령의 시간> p.360

2011년 6월 1일 오후 2시 55분 <조선중앙통신>에 북한 국방위원회 대변인이 출연해 '베이징 비밀회담' 내용을 폭로했다. 여기에서 북한은 두 가지를 주장했다. 먼저,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과 관련해 '제발 북측에서 볼 때는 사과가 아니고 남측에서 볼 때는 사과처럼 보이는 절충안이라도 만들어 세상에 내놓자. 제발 좀 양보 해달라'고 남측이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남측 협상단이 '애걸'했다고 표현했다.

2011년 5월 베이징 비밀접촉 당시 남측에서 돈봉투를 건넸고 이를 북측 인사가 던졌다고 북한이 2011년 6월 9일 폭로했다. 이를 보도한 <한겨레> 2011년 6월 10일자 6면
▲ "김태효 얼굴이 벌게졌다" 2011년 5월 베이징 비밀접촉 당시 남측에서 돈봉투를 건넸고 이를 북측 인사가 던졌다고 북한이 2011년 6월 9일 폭로했다. 이를 보도한 <한겨레> 2011년 6월 10일자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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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하나는 그 유명한 '돈 봉투' 폭로이다. 비밀협상이 결렬되는 시점에 남측에서 '돈 봉투'를 꺼내 북측 대표단에게 전달하려 했다고 폭로한 것이다. 위 두 내용을 북한에서 폭로하자 대북 전문가들은 'MB 임기 중 정상회담은 물 건너갔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비밀회담의 내밀한 부분까지 모두 공개한 배경에는 미래의 비밀회담 여지를 스스로 제거한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폭로를 접한 이명박 정부의 대응이 놀랍다. '애걸', '돈봉투' 등 정권의 도덕성을 정면 공격하는 발언이 나왔지만 청와대는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일방적인 폭로가 나온 지 3시간 동안 공식 입장을 내놓지 못한 것이다. '공식 반응'이 나온 것은 3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청와대는 '통일부에서 모든 것을 대응할 것'이란 입장을 내놓았다.

당일 국회에 출석한 현인택 통일부장관은 "비공개 접촉은 사실"이라고 시인했으나 만난 이유에 대해서는 "천안함·연평도 도발에 대해 북한으로부터 분명한 시인·사과·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려는 것"이라고 밝혀, '무슨 사과를 비밀접촉을 통해서 협의하는가'는 비판을 받았다. '돈 봉투' 주장이나 '정부가 애걸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현 장관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명박 정부의 '돈 봉투' 부인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서는 '거마비 혹은 정상회담 대가용'의 의혹을 제기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은 '1만 달러 제공 의혹'을 주장하기도 했다. 한 차례의 '폭로와 강한 부정'이 있고 난 일주일 후, 북한의 2차 폭로가 이어졌다. 이번에는 주장의 신빙성을 높이려는 듯 '6하 원칙'에 입각해 폭로했다. '녹음 기록'을 공개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등 공격의 수위를 높였다.

2011년 6월 1일 북한이 베이징 비밀회담 내용을 폭로하자 당시 청와대는 '대응 안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 2011년 6월 2일 2면
▲ 북 '돈봉투' 폭로 당시 이명박 정부... '대응 안해' 2011년 6월 1일 북한이 베이징 비밀회담 내용을 폭로하자 당시 청와대는 '대응 안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 2011년 6월 2일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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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당시 이명박 정부는 '제3국 관점'을 유지했다. 남의 나라 사이에 벌어진 일인 것처럼 "남북 관계를 고려해 청와대에서 대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북한의 추가 폭로나 녹음 기록 공개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2011년 6월, 북한에 의해 폭로된 '5월 비밀접촉 사건'은 묻혀가는 듯했다.

폭로 당시엔 '무대응'... 4년 만에 '공세'로 전환

북한이 '돈봉투' 구걸외교의 주역으로 실명 거론하면 비판했던 김태효 전 대외전략비서관이 <대통령의 시간> 출판 관련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정한 건 북측"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를 보도한 <중앙선데이> 2015년 2월 1일자 5면
▲ "비밀접촉 당시 사정한 건 북한" 북한이 '돈봉투' 구걸외교의 주역으로 실명 거론하면 비판했던 김태효 전 대외전략비서관이 <대통령의 시간> 출판 관련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정한 건 북측"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를 보도한 <중앙선데이> 2015년 2월 1일자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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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고록에선 2011년 북측 폭로가 전면 부정돼 있는데.
"폭로 당시 자기들이 한 행동을 기술했다고 느꼈다. 우리한테 와서 그렇게 사정을 해놓고, 참 웃겼다. 회고록 이상은 밝힐 수 없지만 그들은 굉장히 눈치를 보면서 '어떻게 하면 문안의 수위를 낮출 수 있겠는가' '잘 봐달라'는 사정조였다. 만나자고 한 것도 그쪽이었다." - <중앙선데이> 2월 1일자 김태효 전 대외전략비서관 인터뷰 중

대북 정보독점 등 막강한 권한을 보유하고 있던 재임 중에는 '남북 관계를 고려해 대응하지 않겠다'던 이명박 전 대통령측은 그러나 4년여의 시간이 흘러 발간한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는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퇴임 후 남북관계'는 자신과 상관 없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그 당시 공개할 수 없었던 물증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밝힐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인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보여주고 있는 그 당시와 다른 입장이 이상하다. '주장'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입증할 내용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왜 입장을 바꿨는가. <대통령의 시간>에서 이 전 대통령은 "(북한이 폭로한 내용은) 사실과 전혀 다른 왜곡이었다"고 주장했다.

베이징 비밀회담 주역인 김태효 전 대외전략비서관 역시 <중앙선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자기들이 한 행동을 (남측이 한 것처럼) 기술했다고 느꼈다"고 주장했다. 왜 이런 주장이 2011년 6월 1일(북한의 1차 폭로)과 6월 9일(2차 폭로)에 나오지 않았는지 의문이나, 뒷받침되는 내용은 없고 주장뿐인 내용을 4년이 지난 시점에 내놓는 것은 그 의도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세종시' 관련해서는 청와대에서 강하게 반박하고 나섰다. '쇠고기 협상' 관련해서는 노무현 정부 측에서 '이면합의 없었다'면서 강하게 반박하고 나섰다. 두 정부에서 협상에 나섰던 김종훈 현 새누리당 의원 역시 "(이면합의 주장은) 너무 많이 나갔다"고 말했다. 남북 비밀접촉과 관련된 북한 측의 2011년 두 차례에 걸친 폭로에 대해서는 당시에는 별 대응 없이 지나가다가 이제 와서 강하게 부인하는 모습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재임 중 보낸 '대통령의 시간'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회고록 진실성 여부에 대해서는 반대 세력뿐 아니라 보수언론에서 조차도 의구심을 노골적으로 표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앙선데이>는 2월 1일자 사설을 통해서 회고록을 지칭하며 '집단 창작'이라는 의견을 소개했다. 전직 대통령, 그것도 퇴임한 지 2년된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이 창작, 즉 소설 아니냐는 비판 의견을 소개한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한 언론에서는 사설을 통해서 "일각에서는 집단창작이라는 야유가 나올 정도다"고 소개했다. <중앙선데이> 2월 1일자 사설
▲ 전직 대통령의 '집단창작'?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한 언론에서는 사설을 통해서 "일각에서는 집단창작이라는 야유가 나올 정도다"고 소개했다. <중앙선데이> 2월 1일자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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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의 반응 역시 우호적이지 않다. 회고록이 이 전 대통령과 핵심 측근들의 '집단 기억'이라는 주장에 일각에선 '집단 창작'이라는 야유가 나올 정도다.  - <중앙선데이> 2월 1일자 사설 중

회고록 내용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이동관, 김두우, 김태효 등 이명박 정부의 참모들이 적극적으로 언론에 나서서 반박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들의 등장으로 더욱 소란스럽게 되자 '관련 발언 자제'를 지시했다.

그 차원으로 해결될 상황이 아닌 듯싶다. 이 정도 진실성에 대한 논란이 인다면 출판 자체를 재고해야 할 순간이다.


태그:#비밀회담, #돈 봉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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