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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서울 중구를 가로지르는 도로의 이름이다. 또 '을(乙)을 지키는 길'이라는 의미의 새정치연합 특별위원회의 이름이기도 하다. 을지로위원회는 지난 2013년 5월 구성된 뒤로 영세 자영업자, 중소상공인, 비정규직 노동자, 외국인노동자 등 우리 사회의 수많은 '을'의 옆을 지켰다. 새정치연합의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들의 성과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당의 '간판'이 된 을지로위원회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그 방향을 살펴봤다. [편집자말]
씨앤앰 협력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 승계 함의로 50일째 고공농성을 벌인 임정균, 강성덕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비정규직지부 조합원이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 전광판 위에서 농성을 끝낸 뒤, 우원식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위원장과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이남신 천주교 신부의 부축을 받으며 크레인을 타고 땅으로 내려오고 있다.
▲ 지지와 연대 보여준 동료들에게 손 흔드는 고공농성자들 씨앤앰 협력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 승계 함의로 50일째 고공농성을 벌인 임정균, 강성덕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비정규직지부 조합원이 지난해 12월 31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 전광판 위에서 농성을 끝낸 뒤, 우원식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위원장과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이남신 천주교 신부의 부축을 받으며 크레인을 타고 땅으로 내려오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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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중앙일보>는 ''을' 보호한다며 완장 찬 '갑' 행세... 길 잃은 을지로위원회'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가 활동 과정에서 국정감사와 특별근로감독을 거론하며 대기업들을 상대로 오히려 '갑질'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불공정거래로 문제가 됐던 아모레퍼시픽 특약점주의 말을 빌려 "을지로위원회가 개입했다가 손을 떼면서 협상이 더 어려워지고, 이후에는 새누리당의 도움을 받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며칠 후 <중앙>은 보도 내용을 정정해야만 했다. 기사에 등장했던 아모레퍼시픽 특약점주가 "을지로위 측에서 새누리당에도 협조를 구하는 게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권유해 여당 의원을 찾아간 것"이라며 "도와준 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고, 여당 도움을 받는 중에도 을지로위 모임에 계속 참석했다"라고 보도 내용을 반박했기 때문이다. 잘못된 보도에 사과는 없었지만 막무가내로 흠집내려고 했던 <중앙>는 무안해 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기득권층은 을지로위원회를 좋게만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동안 을지로위원회는 대리점과 가맹점을 비롯한 유통업계 전반의 불공정거래, 대기업 인터넷 업체들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 중소영세 상공인 생존권 문제, 등 사회 전반에서 발생한 '갑과 을'의 갈등에 개입했다. 그리고 전체 사례 112건 가운데 49건의 타결을 봤다. 실질적인 갈등조정 권한은 정부에 있지만, 정부가 하지 못하는 것을 을지로위원회가 대신한 것이다.

상설위원회로 승격... "활동 더욱 탄력 받을 것"

을지로위원회는 지난 2013년 5월 구성됐다. 정당차원으로 구성되는 수많은 '위원회' 가운데 하나였다. 각 정당은 사회적인 큰 사건이 터졌을 때마다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대응한다. 최근 어린이집 아동 학대 사건이 발생하자 각 정당들은 저마다 '어린이집 대책특위'를 구성했다. 을지로위원회 역시 '물량 밀어내기'와 본사 직원의 욕설로 논란이 된 '남양유업 사태' 때 구성됐다. 사회적으로 '을'문제가 본격화된 시점이다.

대부분 위원회들이 해당 사안에 사회적 관심이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활동이 줄거나 사라지는 것과 달리 을지로위원회는 현재까지 1년 8개월 동안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주고 있다. 위원장인 우원식 의원과 소속 의원들은 지난해 연말과 올해 초 각종 노동현안 현장을 방문했다. 사회적으로 끊임없이 '갑질 논란'이 계속 되고, '을'이 처한 현실이 나아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구성원들의 의지 없이 이렇게 장기간 활동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의회 권력의 또 다른 '갑질''이라는 비난까지 물리친 을지로위원회의 활동은 이제, 당차원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오는 2·8전당대회에서 당헌·당규를 개정해 을지로위원회를 특별위원회에서 상설위원회로 격상할 예정이다. 그 과정에서 '을지로위원회'라는 명칭을 계속 사용할지 논란이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을'을 지키는 민생실천위원회'라는 명칭에 약자는 이전 명칭을 계속 사용하는 것으로 결론났다.

새정치연합 을지로위원회 소속 우원식 위원장을 비롯한 김기준, 유기홍, 민병두, 은수미, 홍종학 의원이 지난 2013년 5월 15일 오후 서울 중구 남양유업 본사를 방문해 취재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남양유업 사태에 항의 방문한 민주당 의원 새정치연합 을지로위원회 소속 우원식 위원장을 비롯한 김기준, 유기홍, 민병두, 은수미, 홍종학 의원이 지난 2013년 5월 15일 오후 서울 중구 남양유업 본사를 방문해 취재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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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연합에는 현재 청년위원회, 노년위원회, 여성위원회, 노동위원회 등 13개의 연령별, 계층별, 기능별 상설위원회가 있다. 을지로위원회의 상설화는 '을'이라는 포괄적 개념 속에 사회적 약자 전반을 설정하고, 이들을 위한 정책활동 기구가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상설위원회는 일정한 인력과 예산을 배당받게 돼 있어 현재보다 더욱 안정된 상태에서 활동할 수 있다. 그동안 성과들이 꾸준히 축척되고, 당 안팎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결과다.

차기 당 대표 후보들도 모두 을지로위원회에 힘을 싣고 있다. 이인영 후보는 "을지로위원회의 위상을 강화해 당을 '을지로 당'으로 만들겠다"라고 말했고, 박지원 후보는 "우리당의 정체성을 지키는 건 을지로위원회"라고 추켜세웠다. 문재인 후보 역시 이전부터 직접 활동에 참여하며, 을지로위원회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현직 의원이 46명이나 참여하고 있는 을지로위원회가 전당대회 이후 더욱 성장할 기회를 앞두고 있는 것이다.

을지로위원회 소속 의원 은수미 의원은 "상설위원회가 되면서 그동안 의원 개인과 보좌진이 맡아왔던 부분에 인력과 예산을 쓸 수 있게 됐다"라며 "또 지역위원회에도 을지로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현재 중앙에만 있는 조직이 전국에 풀뿌리로 확산되면서 활동에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을지로위원회가 상설화된다고 해서 그 전의 활동방식과 달라지진 않을 것"이라며 "더욱 현장과 밀착된 활동을 해나가겠다"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당의 움직임에 불편함을 내비친 의원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 의원조차도 을지로위원회 활동 자체에는 지지의 뜻을 나타냈다. 새정치연합 한 재선 의원은 "을지로위원회 상설화는 기존 다른 위원회와 역할이 겹치는 부분이 있어 신중히 판단했어야 할 문제"라며 "또 당이 좌클릭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어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을지로위원회의 활동 자체는 우리 당이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개별 사안이 아닌 구조적 문제 해결에 더욱 노력해야"

을지로위원회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도 후한 평가가 주를 이룬다. 실질적인 도움을 받은 '을'들뿐만 아니라 어쩌면 눈엣가시처럼 느껴졌을 기업들도 박하지 않았다. 을지로위원회는 남양유업과 편의점 CU, 아모레퍼시픽 특약점 등 다양한 가맹점, 대리점 업계에서 점주와 업체 사이의 상생협약을 이끌어 냈다. 특히 편의점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롯데와는 그룹차원으로 직접 상생협약을 맺었다. 기업과 정치권 사이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이종현 롯데그룹 커뮤니케이션실 홍보팀장은 "을지로위원회와 1년 반 정도 계속 협의하고 있고, 꽤 많은 진전이 이루어졌다"라며  "그 당시에 있었던 갈등을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풀어나가는 지혜를 마련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무리해 보이는 요구도 있었지만, 기업의 이야기도 듣고 협의해 문제점을 해소하는 과정을 거쳤다"라며 "이제는 을지로위원회와 얘기한 것을 제도화해서 안착시키는 일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노사문제로 을지로위원회가 개입했던 한 기업의 관계자는 "우리가 관리해야 할 또 하나의 리스크이자, 협력의 대상"이라고 을지로위원회를 정의했다. 그는 "을지로위원회가 노동조합의 과도한 요구를 걸러주는 역할을 하고 갈등 조정의 기능을 하는 건 긍정적"이라면서도 "다만 회사는 법에 따라서 갈 수밖에 없다, 기업 처지에서는 법적으로 문제없는 부분까지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갑갑함이 있다"라고 말했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을지로위원회의 활동에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한계점도 지적했다. 약자를 위한 활동으로서 의미가 있지만, 개별 사안에 집중하면서 보여주기식 '정치 퍼포먼스'에 그치는 것을 우려하는 모습이었다. 을지로위원회 활동이 당 전반 활동으로 확대되고 개별 사안보다는 구조적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주문이 이어졌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새정치연합이 '을지로당'이 되기 위해서 극복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박상훈 정치학 박사는 "을지로위원회는 의원이 가진 영향력을 가지고 개별 사안을 다루는 것"이라며 "그 사건은 타결될 수 있어도, 그것에 비례해 사회가 나아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나빠지는 결과가 나온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개별적 사안이 아닌 전체 구조의 문제를 풀어야 불합리성이 해결될 수 있다"라며 "개별 사안을 해결하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본인들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맞을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잘한 활동이라고 판단하지만, 당의 중심사업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라며 "중재자의 역할로 그칠 게 아니라 그 문제를 발생시킨 구조적 원인을 해결하는 방식의 활동이 잘 이뤄지지 못했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현장에서 보여주기에 치중한 측면이 있다"라며 "민생정당으로 가려면 전면적으로 사업을 배치하고 진보정당과 함께 야권 전반에 을지로위원회를 확대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을지로위원회가 당의 노선 돼야 한다"

삼성바로잡기운동본부와 을지로위원회가 지난해 3월19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에 대한 탄압 사례를 공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삼성의 노조파괴 진상을 말한다' 삼성바로잡기운동본부와 을지로위원회가 지난해 3월19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에 대한 탄압 사례를 공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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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위원회를 정치적 관점으로 바라보면 분명 '진보'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기득권에 의한 약자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평등'과 '분배'를 강조하는 '좌파적 가치'의 비중이 높다. 이러한 활동은 과거 진보정당의 역할이었지만, 이들이 분열로 약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제1야당의 '좌파블록'의 몫으로 넘어간 모습이다. 진보정당들 역시 을지로위원회의 활동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당 전반의 노선으로 확대되지 못한 점을 지적했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은 "과거 진보정당이 해왔던 역할을 훨씬 규모가 큰 정당에서 하니까 성과가 나오는 것"이라며 "이념적 수준의 진보가 아니라 현장으로 가서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하는 활동은 정당의 경계를 넘어 칭찬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당의 중심적인 정체성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라며 "정치를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는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을지로위원회가 일관성 있게 가려면 당의 중심 노선이 돼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나경채 노동당 대표는 "을지로위원회가 갑을관계를 사회 중대한 문제로 끌어내는 데 일조했다"라면서도 "그러나 제1야당으로서 정책적 대안을 모색하고 당 전반이 이를 위해 움직였다고는 할 수 없다"라며 "또 갑을문제는 사회 시스템 상에서 발생한 게 많은데, 새정치연합은 과거 집권 시기에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책임지려는 의식과 반성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래야 당 전반이 의식을 가지고 약자의 편에 설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을지로위원회는 이러한 당내외의 평가 속에 2·8전당대회에서 꾸려지는 새로운 대표체제에서 사실상 새로운 출발점에 서게 된다. 을지로위원회는 그동안 당 안팎으로부터 좋게 평가받아왔다. 하지만 그것이 계속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건 사후 관리다. 여론의 주목을 받을 때만 행해지는 '정치 퍼포먼스'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동안 자신들의 성과라고 내세웠던 것들이 얼마나 잘 이행되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성이 인정받고 더 큰 조직으로, 더 많은 사회적 갈등을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태그:#을지로위원회, #새정치연합, #은수미, #롯데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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