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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초 뉴스 사이트를 검색하던 안아무개씨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안씨의 딸을 성추행한 죄로 실형까지 살았던 이아무개씨가 운영하는 A농원이 지난해 11월 경기관광공사의 '힐링·교육체험 관광상품'에 지정된 것.

이뿐만 아니라 이씨는 지난 2013년 강제추행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던 도중 한 재단으로부터 모범사례로 선정돼 3000만 원의 상금을 받았다. 안씨는 "(성추행 사건이 발생한 지) 2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내 딸은 '성추행'이라는 단어만 들려도 긴장을 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농원에 실습하러 갔다가 성추행 당한 딸... "마음이 미어졌다"

경기관광공사의 경기관광포털에서 해당 농원이 경기관광인증우수프로그램으로 홍보되고 있다.
 경기관광공사의 경기관광포털에서 해당 농원이 경기관광인증우수프로그램으로 홍보되고 있다.
ⓒ 이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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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씨의 딸 여은(가명, 23)씨는 지난 2010년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이씨가 운영하는 A농원을 처음 찾았다. 농업고등학교에 다니던 딸은 실습을 위해 두 달간 A농원에 머물렀다. 실습에서 돌아온 후 딸은 안씨에게 "A농원 같은 농원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며 진로를 정했다. 이후 여은씨는 농수산대학에 진학하며 농업인의 꿈을 키웠다. 안씨는 "평소 딸이 이씨를 '인생의 멘토'라 부를 만큼 잘 따랐다"고 회상했다.

사건은 여은씨가 대학에 다니던 지난 2013년 3월, A농원으로 실습을 나갔을 때 일어났다. 여은씨는 대학에서 요구하는 10개월간의 실습 장소로 A농원을 택했다. 그러나 약 두 달 후 안씨는 여은씨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여은씨는 두 달여 동안 10여 차례에 걸쳐 이씨로부터 성추행 당했다는 이야기를 안씨에게 전했다. 여은씨는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세 차례에 걸쳐 손목 자해를 하는 등 충격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했다. 안씨는 정신과 치료를 받는 딸을 보며 마음이 미어졌다고 했다.

안씨는 같은 해 7월, A농원 대표인 이씨를 강제추행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2014년 2월 법원은 이씨에게 유죄를 판결했다. 징역 6개월과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선고한 것. 이씨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2심 판결에서 징역 4개월과 40시간 교육 이수를 선고 받았다. 이후 이씨가 항고를 포기하면서 실형이 그대로 확정됐다.

앞서 이씨가 한 재단으로부터 3000만원의 상금을 받은 것은 지난 2013년 12월 5일이다. 그런데 이씨는 2013년 7월부터 11월까지 경찰 조사를 받았고, 검찰은 같은해 11월 28일 이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이씨는 경찰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조사를 받던 기간 중에 수상자 후보로 추천을 받았고, 검찰에 기소된 직후에 상을 수상한 것이다.

경기도청,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트위터에서 해당 농원이 홍보되고 있다.
 경기도청,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트위터에서 해당 농원이 홍보되고 있다.
ⓒ 이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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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상금을 수여한 재단 측은 27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수상자) 심사 당시 주변 평판도 암행으로 조사했으나 이상이 없었기에 의심도 하지 않았다"며 "범죄기록 같은 경우 동사무소 측에서 확인 후 올라오는 게 보통인데, (경찰) 조사 중이라 몰랐던 것 같다. 알았다면 수상을 취소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씨의 농가를 관광 우수 체험 프로그램으로 인증한 경기관광공사 또한 "경찰 외에는 개인 범죄기록을 조회할 권한이 없어 인지하지 못했다"며 "(경기관광공사가) 공공기관이라 해도 소방법 위반, 영업정지 등과 같이 시설과 관련된 행정적 과실의 유무밖에 알 수 없고, (농가의) 프로그램 질과 관련된 부분만을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씨의 정보는 성범죄자를 열람할 수 있는 '성범죄자알림e'에도 올라와 있지 않다. '반성문을 제출하는 등 반성의 기미가 보인다'는 법원의 판결에 따라, 이씨는 신상정보공개명령을 피할 수 있었다.

검찰의 성폭력 기초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3년 한 해 동안 발생한 성폭력 범죄만 총 2만6919건이지만, 2015년 1월 27일 기준 성범죄자알림e에 공개된 성범죄자 수는 4196명으로 약 15.6%에 불과하다.

이씨 "그 일 이후 체험프로그램에 관여 안 해"

A농원 이씨는 28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그 일 이후 나는 체험 프로그램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내 딸들이 맡는다"며 "(내) 죄에 대해서는 죄인의 심정으로 반성하지만 이미 죗값을 치렀고 개인적 문제를 농원으로까지 가져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농원의 대표자는 이씨로 등록되어 있다.

여성인권단체 '여성의전화'의 한 관계자는 "어린이집 등 청소년 관련 시설은 전과경력을 조회하게 돼 있지만, 체험 프로그램의 경우 청소년 시설에 포함이 안 돼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면서 "실형을 살고 나온 성범죄자가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과 계속 마주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씨는 "재발 위험이 큰 성범죄에 대한 대책을 수립해야 할 공공기관이 오히려 이를 우수 관광상품으로 선정한 것은 말도 안 된다, 내 딸(여은)과 같은 피해자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덧붙이는 글 | 이유진 기자는 <오마이뉴스> 21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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