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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한국어를 배우는 중국학생들과 함께
 내게 한국어를 배우는 중국학생들과 함께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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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솔직히 너 부럽다. 나도 너처럼 살고 싶다."

친구의 이야기에 내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너도나도 비슷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너는 복 받았어. 우리 몫까지 신나게 공부하고 즐겁게 놀아."

친구 만숙이의 결혼식 뒤풀이에 모인 죽마고우들은 하나같이 부럽다는 이야기를 쏟아냈다. 불과 몇 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반응이었다.

"너, 중국이 어떤 줄 알고 가려고 해? 얘가 미쳤어. 시집은 언제 가고? 새 직장이나 찾아. 정신 차려! 거기 인신매매도 많고 무서운 곳이래. 뭘 믿고 그런 데를 가려고 그래?"

서른둘의 늦깎이 유학생 그래도 나아간다

베이징 기차역 앞에서
 베이징 기차역 앞에서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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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의 삶이 평탄하다고 하기엔 좀 어정쩡하다. 32살에 유학 중인 나는 모든 공부가 끝나고 나서도 불안하다. 하나둘씩 짝을 찾아 떠나가는 친구들을 보며 이따금 초조함을 느끼기도 하는 결혼 적령기의 여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사이에 많은 것이 바뀌었다. 28살 다소 늦은 나이에 시작한 중국 유학. 그사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사랑의 결실을 낳은 친구들. 하지만 신혼의 단꿈에서 깨어난 친구들은 그렇게 탈출하고 싶어하던 솔로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 듯했다.

중국 초등학생들의 아침체조 장면, 중국인들은 집단생활을 중시한다.
 중국 초등학생들의 아침체조 장면, 중국인들은 집단생활을 중시한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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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은 어쩌면 나를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불안정하지만 자유로운 삶, 하지만 시간을 되돌려도 그들이 나와 같은 길을 선택하지 않으리란 것 또한 알고 있다. 결과가 불확실한 모험이기 때문이다.

무모할 수도 있었지만, 속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인생의 베팅. 지금까지 결과만 보면 아직 내 선택에 만족한다. 더 넓은 세상과 색다른 경험이 나를 성장 시켰다. 또 이미 만 3년 이상을 지나왔다.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온 것이다. 밑도 끝도 없는 긍정이긴 하지만 미래의 나에게 기대와 희망을 걸어본다.

때로는 이해 못할 중국인의 자부심과 자존심

중국 시골에서 만난 개, 주인은 짱하오라고 하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중국 시골에서 만난 개, 주인은 짱하오라고 하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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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떠난 중국에서의 삶은 기 싸움의 연속이다. 모든 것은 중국이 중심인 그들의 사상에서 비롯된다. 일명 중화사상. 이것은 몇 가지 예만 봐도 단박에 이해할 수 있다.

택시 기사들은 내가 외국인임을 아는 순간 질문들을 쏟아냈다. 시작은 평범하다. "어디서 왔니?", "중국에는 공부하러 왔니?", "음식은 입에 맞니?" 등등 하지만 여기서 열에 아홉은 이렇게 이어진다.

"음식이 맛있다"고 대답하면 "역시 중국 음식은 세계 최고지. 풍부한 식재료와 다양한 중국음식은 세계 어디에도 비할 수 없다"며 자랑을 늘어놓는다. 나 역시 중국 음식을 좋아하는 터라 호응해 주었다.

하지만 여기서 한국과의 비교가 들어간다. "한국 음식이 좋아? 중국 음식이 좋아?"라는 질문에는 '어때, 당연히 지구상에서 중국 음식이 최고지?'라는 기대가 들어있다. 시쳇말로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면 돼)'다.

물론 중국 음식 문화는 다양하다. 하지만 난 한국의 음식과 거기에 깃든 문화를 무엇보다 사랑한다. 나에게는 최고의 음식이니 중국 음식과는 비교 불가인 것이다. 그래서 단박에 "한국 음식이 훨씬 좋아요"라고 말하면 그들은 기대를 깨버렸다는 표정을 짓는다.

중국 마트에서의 망고, 중국은 과일시세가 저렴하다.
 중국 마트에서의 망고, 중국은 과일시세가 저렴하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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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가도 마찬가지다. 과일을 파는 아주머니가 내 말투를 듣고, "어디 사람이냐"고 물어본다. 한국인이라 대답하면 또 질문이 이어진다.

"한국은 과일이 어마어마하게 비싸다며? 거기선 과일이 비싸서 못 먹지? 중국 과일은 싸고 맛있으니까 많이 사 먹어."

여기서 나는 미간에 힘이 들어간다.

"중국보다 비싸긴 하지만, 버는 돈은 중국의 몇 배라서 괜찮아요. 너무 비싸서 못 사 먹을 정도는 아니에요."

이뿐이 아니다. 중국인의 자부심과 자존심은 우주 최강이다. 내가 중국어를 배운다 하고 하니 "한국어는 쉬운데 중국어는 어려워. 그래서 중국어가 보다 우수한 언어야"라는 이상한 자부심을 보이는 이도 있다. 언젠가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한국인이라고? 그래 한국이 좋으냐, 중국이 좋으냐?"라고 물어오기도 했다. 도대체, 이것을 질문이라고 하는 건가? 이건 어디서 나오는 자부심인가.

나는 원래 애국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개인주의 성향이 짙은 사람이었는데 외국에 나와 살다 보니 이런 발언에 기가 막히고 때때로 피가 거꾸로 솟기도 한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너무도 태연하다. 그게 일상이다.

하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그렇게 배웠으니 그리 생각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사실 저렇게 말하는 중국인은 경제적으로 약자들이 많다. 경험보다는 남에게 들은 이야기만으로 지식을 쌓고 그것을 사실로 여기고 경솔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겪어보지 못하고 인신매매가 횡행하고 끔찍한 일들이 벌어진다는 친구들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 나는 아직 중국에서 위험을 느껴 본 적이 없고, 오히려 매우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 현지인들은 착하고 친절하다. 오히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기념촬영까지 해달라는 이들이 많다.

내가 있는 곳, 랴오닝성(중국 만주 동남부에 있는 성) 진저우시는 320만의 많은 인구가 살지만 중국에선 중소 도시다. 이곳에 사는 이들에게 외국인과 만나서 얘기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만난 이들 모두가 순박했다. 다만 그들의 자부심이 때로 예의에 어긋나는 것을 모르는 것뿐이다.

나를 돌아보게 하는 그들의 자존심

진저우시 베이푸투어산에 위치한 사찰에서
 진저우시 베이푸투어산에 위치한 사찰에서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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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나 자신을 돌아본다. 혹시 내 생각 속에도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못 사는 곳이라는 선입견이 자리 잡고 있기에 발끈하지 않았을까.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길 일에 과하게 신경 쓰고 곤두서 있지 않았을까. 중국인의 자존심이 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또한 외국인으로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부분일지도 모른다.

내가 다니는 대학이 속한 랴오닝 성에서 곧 '발해만 해저터널' 공사에 착수한다고 한다. 총연장 123㎞로 랴오닝성 다롄과 산동성 옌타이를 연결하는 대공사다. 공사비만 47조 원의 천문학적 액수다. 중국의 물량과 규모는 무엇이든 상상 그 이상을 초월한다. 그들의 자존심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엿볼 수 있다.

다시 한국의 친구들을 떠올린다. 한 친구는 "유학을 극력 반대한 건 한편 부러운 마음이 컸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솔직함에 고마울 따름이다. 그래서 마음을 나누는 친구다. 사람의 관계처럼 나라와 민족도 같지 않을까. 타민족의 장점을 일부러 깔아뭉개거나 얕보는 것은 국제 관계에서 하등 도움될 것이 없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것이 그리 어려운 일일까. 하긴 이런 고민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한국에 있었으면 겪지 못했을 일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자존심이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나 역시 긍정적인 쪽으로 마음을 돌려야겠다.

대단한 건 아니라도 친구들이 겪지 못하는 내 삶을 치열하게 살고 때때로 주변과 친구들에게 그 소식을 밝게 전하는 것이 나만의 자존심이다. 다시 한 번 솔직하게 "부럽다"고 말해준 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태그:#중국, #중국유학, #진저우, #보하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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