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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너 나와"
"이병! 전병호!"

군기 바짝 든 신병은 목이 터져라 관등성명을 댔다. 앞으로 나가니 다시 명령이 하달된다.

"앞차기 한다! 실시!"

기합을 넣으며 나름 최선을 다해 앞차기를 했다. 돌아오는 소리가 험악하다.

"이거 생긴 거는 촌스럽게 생겨서 딱 수색대인데 발차기는 맹구일세"

그때 나는 확실하게 알았다. 나는 누가 봐도 촌스럽게 생겼고, 촌스러운 외모는 군대에서 선호하는 스타일이라는 것을. 군대 갔다 온 사람은 알겠지만 군대 생활이라는 것이 대부분 시골에서 하는 일들의 연장이다. '삽질하기' '제초작업' '제설작업' 등등 촌에서 자란 병사들이 잘할 수 있는 일들이다. 이런 이유로 서울출신 병사는 '뺀질이'라는 별명을 얻기 십상이다.

미용실이다. 멋을 위해 가는 미용실이 참 소박하고 촌스럽다
▲ 어디일까요? 미용실이다. 멋을 위해 가는 미용실이 참 소박하고 촌스럽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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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스럽다'는 '어울린 맛과 세련됨이 없이 어수룩한 데가 있는 것'을 의미한단다. 다시 말해 꾸밈없이 투박하고 뭔가 조금은 부족해 보이는 상태를 말한다. 지나간 과거 사진 속 모습을 보면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참 촌스럽다'라는 생각일 것이다. 그 당시는 최고의 멋을 부린 모습이었겠지만 지나고 보면 모두 촌스러워 보인다.

미얀마 양곤국제공항에 첫 발을 디뎠을 때 떠오른 첫 단어가 바로 '촌스럽다'였다. 1970~1980년대 흑백 사진 속 투박하고 촌스러운 모습이 현재 미얀마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시장은 가장 오래된 정보교류의 공간이다. 시장 속에는 그 곳 사람들의 의식주가 모두 들어 있다. 따라서 사람 사는 모습을 날 것 그대로 들여다보려면 시장에 가면 된다. 나는 이런 시장이 참 좋다. 촌놈이라 그런지 어디를 가든 그곳 시장을 들러보려 한다. 미얀마 여행에서도 시장은 가는 곳마다 필수코스가 되었다. 곳곳 시장을 둘러보면서 나는 미얀마의 '촌스러움'에 점점 빠지게 되었다.

거대 도시 양곤의 시장, 정전은 일상다반사

한때 수도였던 5백만 도시의 촌스러운 가로수와 최신 자동차의 조합이 이채롭다.
▲ 양곤 시내 한때 수도였던 5백만 도시의 촌스러운 가로수와 최신 자동차의 조합이 이채롭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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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곤은 인구 500만 명이 넘는 거대도시다. 이곳에서는 현대화된 재래시장인 유자나 플라자 시장, 보족 아웅산 마켓과 양곤 근교 타욱짜 재래시장을 둘러봤다.

유자나 플라자는 우리나라로 치면 동대문 시장 같은 곳이다. 각종 물품을 도소매하는 곳으로 거대한 현대식 건물(우리 기준의 깨끗한 건물은 상상하지 말자)로 되어 있었다. 이런 현대식 큰 건물도 구경하는 동안 정전이 3~4번 일어나서 미얀마 전기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몸으로 직접 체험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다 갑자기 정전이 되었는데 관광객들은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했지만 대부분 미얀마 사람들은 덤덤한 표정으로 기다렸다. 이곳에서는 각종 공산품부터 의류, 보석류, 최신 스마트폰까지 다양한 물품들을 팔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이곳에서 미얀마 전통의상 론지(Longyi-롱지라고도 발음한다)를 사서 입었다.

미얀마 시장에서 흥정은 기본이다.
▲ 흥정 미얀마 시장에서 흥정은 기본이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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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6000짯 달라는 것을 3500짯으로 깎아서 샀다. 그들과 섞여 '하하호호' 떠들다 보니 우리나라 시골장터 아낙들을 보는 것 같았다. 미얀마 사람들은 확실히 우리처럼 정이 있고 인심이 있었다.

양곤 근교 타욱짜 시장은 전통 재래시장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인상적인 것은 산처럼 쌓아 놓고 팔던 '꽁야'(관련 기사 : "거리 곳곳 핏자국... 이 사람들은 왜 즐길까") 재료들이었다. 미얀마 거리 곳곳에 꽁야 파는 가게가 많다는 것은 알았지만 재료 도매상들을 보니 정말 엄청났다. 미얀마 거리가 온통 붉게 변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확실하게 깨닫게 해준 곳이기도 하다.

양곤의 명소로 대부분 관광객은 한번쯤 들르는 곳이다. 시장 구석에서 맛본 모힝가 맛이 끝내줬다.
▲ 보족 아웅산 마켓 양곤의 명소로 대부분 관광객은 한번쯤 들르는 곳이다. 시장 구석에서 맛본 모힝가 맛이 끝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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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곤에서 제일 유명한 시장은 바로 보족 아웅산 마켓이다. 보족(Bogyoke)은 미얀마 말로 장군이라는 뜻이니 아웅산 장군 시장이다. 미얀마 사람들이 아웅산 장군을 얼마나 가슴 깊이 존경하는지 알 수 있는 이름이다. 이곳은 관광객들의 필수코스일 정도로 많이 알려져 있다. 둘러보니 너무 인위적으로 현대화 시켜 놓아서 사람 사는 시장 맛은 덜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시장 한구석에서 팔던 300짯짜리 미얀마 전통국수 '모힝가'의 맛이다. 그때까지 먹어본 모힝가 중에는 약간 비린 맛이 나는 것도 있었데 이곳 모힝가는 담백한 맛이 입에 착 붙었다. 혹시 보족 아웅산 마켓을 방문하는 여행자가 있다면 시장 어디쯤 모힝가 파는 곳에서 한 그릇 해보시라. 국물이 정말 끝내 준다.

재활용의 달인들이 모인 만달레이 째조 시장

만달레이 째조 마켓은 미얀마 최대 재래시장이라고 한다. 눈길을 끌었던 것은 폐타이어로 만든 생활용품들이었다. 시장에는 정말 없는 게 없었다.
▲ 째조 마켓 만달레이 째조 마켓은 미얀마 최대 재래시장이라고 한다. 눈길을 끌었던 것은 폐타이어로 만든 생활용품들이었다. 시장에는 정말 없는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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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조 마켓(Zeigyo Market)은 만달레이의 중심이자 미얀마 북부의 물류 중심 시장이다. 크기도 어마어마하게 크고 그곳에는 정말 없는 게 없었다. 미얀마 최대 재래시장이라는 말답게 반나절 넘게 구경했는데도 일부 밖에 볼 수 없었다.

째조 시장을 돌다가 본 폐타이어를 재활용하여 만든 쪼리(샌들)와 기타 살림도구들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버려지는 물건을 재활용하는 '리사이클링'도 있고 한 단계 너머 새로운 디자인으로 재탄생 시키는 '업사이클링'이라는 말도 있다. 폐타이어 재활용 상품들을 보니 미얀마 사람들이 진정한 환경운동가들이자 '업사이클링'의 선수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련된 맛은 없지만 투박하고 촌스러움 속에 왠지 사람 냄새가 묻어 있는 것 같아 정겨웠다. 분리수거하러 갈 때마다 멀쩡한데 버려진 수많은 물건들이 떠올라 미안하기도 하고 그 동안 물질적 풍요 속에 살면서 너무 고마움을 모르고 산 것 같아 살짝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보석(제이드) 가공을 하는 소년을 보면서 1970년대 청계천에서 일했던 선배들이 떠올랐다.
▲ 제이드 시장 보석(제이드) 가공을 하는 소년을 보면서 1970년대 청계천에서 일했던 선배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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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달레이에는 이곳 말고도 미얀마 최고의 보석으로 일컬어지는 제이드(옥)를 가공하는 짜와이 제이드 마켓(Jade Market)이 있다. 이곳에는 미얀마 각지에서 모여든 보석 상인들로 열기가 엄청났다. 외국인 관광객은 1달러 입장료를 내야 한다. 우리 일행은 그것을 모르고 들어갔다가 뒤늦게 쫓아온 경비에게 엄청 잔소리를 들으며 시달린 기억이 있다.

그곳 수많은 보석 가공공장의 뽀얀 돌먼지를 뒤집어쓰고 일하는 어린 소년들을 보면서 우리의 1970~1980년대 선배들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짠했다.

개비 담배의 발견에 씁쓸해진 이유, 따웅지 시장

따웅지에서는 전통복장을 한 빠오족을 많이 만날 수 있었으며 더운 나라지만 저녁에는 추워 모포를 많이 팔고 있었다.
▲ 따웅지 시장 따웅지에서는 전통복장을 한 빠오족을 많이 만날 수 있었으며 더운 나라지만 저녁에는 추워 모포를 많이 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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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웅지는 도시 전체가 시장 같았다. 인레 호수에서 북동쪽으로 약 30km 떨어진 따웅지는  해발 1400m의 고원에 위치하고 있다. 미얀마 말로 '따웅'은 산이고 '지'는 크다는 의미이니 '큰 산'이라는 뜻의 고산도시다.

큰길을 따라 올드 마켓과 뉴 마켓인 묘마 마켓(Myoma)으로 이루어졌는데 각종 채소와 과일 등 이곳에도 없는 게 없는 것처럼 보였다. 배고파 찾아 들어간 시장 건물 2층 식당에서 정말 엄청 싼 가격에 푸짐한 음식을 먹으면서 미얀마 현지인 물가를 체험했다.

현지 식당에서 개비 담배를 팔고 있었다. 우리나라 1970~1980년대 수준이라는 미얀마 개비 담배는 이해가 가지만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다시 개비 담배가 유행이라니 복고라고 해야 하나 시대 역행이라고 해야 하나?
▲ 개비 담배 현지 식당에서 개비 담배를 팔고 있었다. 우리나라 1970~1980년대 수준이라는 미얀마 개비 담배는 이해가 가지만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다시 개비 담배가 유행이라니 복고라고 해야 하나 시대 역행이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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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이 음식 다섯 종류를 시켰는데(이름 모를 튀김류는 서비스) 3500짯을 냈다. 그 식당에서 흘러간 추억을 하나 발견하였다. 1980년대 학원가에서 흔히 보았던 개비 담배였다. 그 뒤로 자취를 감췄는데 그곳에서 만나니 반갑기도 하고 잠시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최근 담뱃값 인상으로 흡연자들 사이에 유행처럼 다시 떠오르고 있다니 이것을 복고라고 해야 하는지 시대의 역행이라고 해야 하는지 씁쓸하긴 하다.

따웅지는 샨주의 주도다. 주로 샨족이 모여 살고 있을 터인데 복장으로 봐서는 여느 미얀마 사람들과 비슷해서 샨족은 잘 모르겠고 복장이 특이한 빠오족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냥우 재래시장에서 소녀 장사꾼의 호객에 넘어가다

바간의 냥우시장. 시장에 가면 사람 사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
▲ 미얀마 재래시장 바간의 냥우시장. 시장에 가면 사람 사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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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시장은 모두 비슷비슷하지만 가는 곳마다 그 지역 사람들의 특징이 조금씩 묻어나 흥미로웠다. 미얀마 재래시장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호객행위를 잘하지 않는다. 시장 사람들도 눈이 마주치면 부끄러워하면서 살짝 미소를 지어 줄뿐 사람을 직접 끌어 들이려고 하지는 않는다. 장사꾼 입장에서 보면 참 어수룩한 장사꾼이겠지만 나는 그런 모습이 아직 때가 묻지 않아서 좋았다.

그런데 바간의 냥우시장 상인들은 조금 달랐다. 다는 아니지만 시장 모퉁이 모퉁이를 돌 때마다 앞을 막아서며 호객행위 하는 상인들이 많았다. 바간이 워낙 유명한 곳이라 관광객이 많다 보니 이들도 점점 상술을 터득한 것 같다.

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나오다 구석에서 어느 소녀의 적극적인 대시(?)를 받게 되었다. 미얀마 전통 의상(냉장고 바지와 비슷한 치마바지)와 론지, 티셔츠를 파는 가게였는데 소녀의 적극적인 호객에 얼떨결에 6000짯을 주고 두 개나 샀다. 충동구매의 최후는 비참했다. 그들은 오자마자 아내의 구박을 받고 여태껏 장롱 속에 잠자고 있다.

미얀마의 투박한 촌스러움, 나는 좋다

목각에 볼트와 너트로 병따개를 만들었다.
▲ 소박한 조각 제품 목각에 볼트와 너트로 병따개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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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는 아직 경제적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라다. 숫자상으로 봐도 국민소득은 아직 세계 최빈국 수준이다. 실제 미얀마 곳곳을 여행해보면 '참 못사는 나라구나'라는 느낌이 바로 전해온다. 인구 500만 명이 넘는 거대도시 양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도시 전체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30~40년 전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함께 간 몇몇 동료는 이런 촌스러움 때문에 불편하고 빨리 떠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미얀마의 이러한 촌스러움이 좋다.

"세련되고 멋스러운 것만 좋은 게 아니여. 투박하지만 된장 맛처럼 구수하고 푹 익은 맛이 있어야 진짜 우리 멋이지."

중요무형문화재 임실필봉농악 예능보유자셨던 돌아가신 양순용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말이다. 학창시절 풍물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방학이면 남원까지 내려가 합숙하며 배웠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 당시는 잘 몰랐으나 지나고 나니 어떤 의미인지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촌스러운 미얀마 속에 투박하지만 사람 사는 정이 들어 있고 느림과 여유가 들어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목수였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먹고 살기 위해 젊은 시절 배운 기술이 목수질이었다. 그런 아버지는 가끔 작은 손달구지(요즘 아이들 타는 장남감 자동차)를 만들어 주시기도 하고, 겨울에는 썰매도 후딱 만들어 주었다. 공부 잘하라며 작은 책상도 뚝딱뚝딱 만들어 주었다.

아직도 고향집 사랑방에 놓여 있는 그때 책상을 바라보면 추억이 새롭다. 지금 보니 참 투박하고 촌스럽다. 하지만 나는 세련된 물건들보다 정이 가고 훨씬 맘이 간다. 미얀마 냥우 시장을 돌며 발견한 나무를 깎아 만든 투박하고 촌스러운 병따개를 보면서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촌스러운 게 다 버려야 할 것은 아니다.

나의 고향은 충청도 청양이다. 하지만 생활권은 부여권이었다. 백제의 고도 부여에는 5일마다 큰 장이 열린다. 규모는 줄었지만 지금도 5일장은 계속 열린다고 한다. 지금도 부여장에 가면 투박하고 촌스럽지만 사람 사는 정이 듬뿍 느낄 수 있다.

갑자기 부여장에 가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 미얀마어 표기는 현지 발음 중심으로 표기하였고 일부는 통상적인 표기법에 따랐습니다.



태그:#미얀마, #미얀마 재래시장, #양곤, #만달레이, #따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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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공작소장, 에세이스트, 춤꾼, 어제 보다 나은 오늘,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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