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카운트 케리는 아일랜드 남서쪽에 위치하는 곳이며 케리 순환도로는 이베라 반도 안의 182km 순환도로를 일컫는다. 이베라 반도 위에 튀어나와 있는 곳이 딩글반도이다.
 카운트 케리는 아일랜드 남서쪽에 위치하는 곳이며 케리 순환도로는 이베라 반도 안의 182km 순환도로를 일컫는다. 이베라 반도 위에 튀어나와 있는 곳이 딩글반도이다.
ⓒ 구글 지도 캡쳐

관련사진보기


아이리시들에게 아일랜드에서 가장 멋진 여행지를 하나만 추천해 달라고 하면 공통으로 말하는 곳이 있다. 바로 링 오브 케리(Ring of Kerry, 아래 케리 순환도로)다. 이 곳은 케리 지역의 남서쪽 해안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이베라 반도 안의 182km의 순환 도로로, 케리 지역의 윗부분인 딩글 반도와 함께 아일랜드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일컬어지는 곳이다.

아일랜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

일반적으로 케리 순환도로 드라이브 코스는 케리 지역에서 가장 큰 마을인 킬라니(Killarney)에서 시작해 다시 킬라니로 돌아오는 코스를 말한다. 케리 순환도로를 운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베라 반도 주변에있는 켄메어(Kenmare), 스님(Sneem), 워터빌(Waterville), 카헬시빈(Cahersiveen), 글렌베이(Glenbeigh), 킬로글린(Killorglin) 등의 마을을 지나며 작지만 각각의 특색을 지닌 마을을 경험하게 된다.

케리 순환도로 전체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절대적인 시간은 2시간 50분 정도이지만 '상대적인' 시간은 하루가 될지, 이틀이 될지 알 수가 없다. 그만큼 도로 주변의 경관이 뛰어나 사진에 담고 싶은 멋진 풍경이 많아 출발을 하기 전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출발해야 한다.

실제로 케리 순환도로를 돌아보니 그곳은 한마디로 아일랜드 자연의 종합선물 세트와 같은 곳이었다. 182km 상의 이베리아반도 안에는 아일랜드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자연의 요소들이 다 갖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호수, 강, 바다, 구릉, 산, 목축지, 평지, 절벽 등등. 이곳만 제대로 감상한다면 다른 곳은 가지 않아도 될 만큼 지금까지 아일랜드에서 보았던 모든 풍경이 그곳에 있었다. 짧은 시간에 다양한 경치를 구경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사람들에게 분명히 환영받을 수 있는 여행지임에 틀림 없다.

카라그 호수에서 만난 뜻밖의 아름다움

카라그 호수(Caragh Lake)의 평온한 모습
 카라그 호수(Caragh Lake)의 평온한 모습
ⓒ 김현지

관련사진보기


"자기, 숙소 근처에 있는 카라그 호수(Caragh Lake)는 특별히 차를 세우지 말고 천천히 호수를 지나면서 다음 장소로 이동하자."

일반적으로 킬라니(Killarney)에서 출발하는 여행 코스와 반대로 우리는 숙소가 있는 킬로글린(Killorglin)에서 출발해 반대편으로 도는 코스로 케리 순환도로를 여행했다. 카라그 호수는 숙소 근처에 있던 호수였는데, 킬로글린(Killorglin)과 글렌베이(Glenbeigh) 사이에 있는 호수로, 여행지 지도에도 호수만 표기돼 있을 뿐 특별히 유명한 장소는 따로 표시돼 있지 않았다. 당일 치기로 케리 순환도로를 다 지나갈 예정이었던 우리는 이 호수에 특별한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동차 안에서 호수를 천천히 구경하면서 다음 장소인 글렌베이(Glenbeigh)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여행지에서는 항상 뜻밖의 일들을 경험하기 마련이다. 유난히 좋은 날씨 탓이었을까? 도로 옆의 나무와 풀, 숲 뒤로 보일 듯 말 듯하는 호수의 반짝이는 아름다움은 우리를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우리 부부는 무언의 동의하에 케리 순환도로를 벗어나 호수가 있는 곳을 향해 가고 있었다.

아일랜드의 봄에 만난 호수는 짙은 푸른 물결 사이로 평온함과 잔잔함을 뿜어내고 있었다. 뒤로 보이는 낮은 구릉은 아직 푸른 옷을 다 입지 못한 채 짙은 갈색의 모습으로 우뚝 서 있었다. 호수 한가운데 떠있는 작은 배 한 척은 그 호수 전경에서 2% 부족할 수 있는 여운을 달래주고 있었고, 호수 어귀에 무심히 방치된 배들은 사진 작가를 위한 최고의 풍경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한참 동안 고요한 호수를 바라봤다. 눈을 감고 내 주변의 걱정, 근심들을 잠시 내려놓았다. 평온하고 감사하다. 이런 곳을 지나치지 않고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더 감사했다.

자동차로 가면 휘리릭 5분이면 충분했던 그곳에서 우리는 두 시간 이상의 시간을 보냈다. 계획에 없던 시간이었지만, 그랬기 때문에 더 값졌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어자치 인생이라는 것이 정해진 레시피대로 요리를 해도 항상 맛이 달라지는 음식과도 같은 것. 레시피 없이 내 마음대로 요리해서 더 멋진 결과물을 만든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으랴?

예상했던 대로 케리 순환도로는 우리의 발길을 붙잡는 곳이 많았다. 순환도로 중간 중간 방문했던 마을보다 자동차로 지나가면서 발견하게 되는 뜻밖의 장소가 우리의 여행을 한층 더 흥미롭게 만들어 주었다. 때로는 길을 잘못 들어 일차선 도로에서 반대편에서 오는 자동차와 충돌할 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지만, 이 또한 스릴 넘치고 즐거운 순간이었다.

(위) 양이 많은 나라답게 시골길 어딘가에선 항상 양들을 만날 수 있다.
(아래) 1차선으로 보이는 도로이지만 신기하리만큼 반대편의 차가 와도 위험하지 않게 운전을 할 수 있었다.
 (위) 양이 많은 나라답게 시골길 어딘가에선 항상 양들을 만날 수 있다. (아래) 1차선으로 보이는 도로이지만 신기하리만큼 반대편의 차가 와도 위험하지 않게 운전을 할 수 있었다.
ⓒ 김현지

관련사진보기


한참을 달리다가 우연히 창문 너머로 보이는 시원한 하늘, 하늘과 경계가 불분명한 바다, 그 아래 봄의 색을 띠고 있는 드넓은 들판은 나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자칫 메마른 풍경만 보게 될 뻔한 장소에서는 부드러운 음악이 조미료 역할을 톡톡히 해줬다.

우연히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마치 내 취향을 알기라도 하듯 내가 좋아하는 음악만 틀어주는 신기함도 경험했다. 여행은 그렇게 나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작은 팁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예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을 때 당황할 것이 아니라, 즐겨야 한다는 것을, 뜻밖의 인생의 길이 나를 더 즐겁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워터빌에서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

워터빌(Watervill) 마을 어귀에 세워져 있는 찰리 채플린의 동상
 워터빌(Watervill) 마을 어귀에 세워져 있는 찰리 채플린의 동상
ⓒ 김현지

관련사진보기


카라그 호수, 글렌베이, 카헬시븐을 지나 워터빌(Waterville)에 도착했다. 계획대로였다면 1시간 30분 후 워터빌에 있어야 했던 우리는 4시간이 지나서야 그곳에 갈 수 있었다. 원래 워터빌의 아이리시 이름은 '초승달'의 뜻을 가진 '코이렌(Coirean)'이다. 그런데 18세기 후반 무렵 부유한 버틀러 가문(Butler Family)이 이곳에 집을 지으며 집의 이름을 '워터빌'이라고 지은 이후 19세기 중반부터 그 마을의 공식 이름도 워터빌로 바뀌었다고 한다.

우리가 워터빌에 도착했을 때는 점심 시간이 훨씬 지난 시간이었지만, 관광 버스로 케리 순환도로를 돌고 있는 다수의 관광객이 주차장 근처에서 각자의 점심을 해결하고 있었다. 특별히 앉을 곳이 없어 아무렇게나 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지만, 깨끗한 바다에서 먹는 그들의 점심은 그 어떤 음식보다도 맛있지 않았을까?

워터빌은 찰리 채플린과 그 가족의 마을로도 유명한데, 1959년 찰리 채플린은 가족과 함께 워터빌에 방문했다가 마을의 아름다움에 빠져 그 이후 매년 워터빌을 방문했다고 한다. 이곳에서도 찰리 채플린을 기념해서 그의 동상을 세워줬고, 2011년부터는 찰리 채플린 코미디 영화 축제도 개최하고 있다.

"자기, 우리 그냥 여기 바닷가에서 좀 놀다가 가요."

눈부시게 빛났던 워터빌의 해안가
 눈부시게 빛났던 워터빌의 해안가
ⓒ 김현지

관련사진보기


워터빌이 아닌 다른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했던 우리의 계획은 또 바뀔 수밖에 없었다. 언제 구름이 몰려올지 모르는 아일랜드 날씨. 이렇게 맑고 화창한 순간을 그냥 놓칠 수는 없다. 아들은 워터빌에 도착한 뒤 자동차 트렁크에서 본인의 '모래 놀이' 장난감을 꺼내기 시작한다. 남편도 이번 여행에서 해보고 싶었던 '연 날리기' 도구를 꺼낸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각자가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면서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그 하늘과 바다를 우리의 마음에 새겼다.

여행을 그다지 즐겨 하지 않는 내가 케리 순환도로를 여행하면서 여행의 묘미를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아 알 수 없는 희열감을 느꼈다. 케리 순환도로는 우리에게 최대한의 즐거움을 선사해줬다. 산과 바다를 적절히 섞어서 산을 보여주다가 또 바다가 드넓게 펼쳐진다. 어떨 때는 산과 바다를 동시에 보여주기도 한다. 사람들이 이곳을 그토록 찬양하는지 그제야 조금씩 감이 오기 시작했다.

그날의 날씨에 따라 무작정 휴가를 떠날 수 있는 나라 아일랜드. 무작정 떠나는 여행의 무모함이 때로는 철저한 계획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될 때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지나치게 계획적이었던 나는 아일랜드에 살면서 아일랜드의 날씨 덕분에 먼 훗날의 '언젠가'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을 감사하고 즐겨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태그:#아일랜드, #카운트 케리, #링오브케리, #케리순환도로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