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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함마드 풍자 만화.
 무함마드 풍자 만화.
ⓒ 샤를리 에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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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 운운하는 얘기가 아직도 나오는 것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처음 <샤를리 에브도> 문제가 터졌을 때,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결론을 내렸던 필자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심지어 표현의 자유 범위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지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상하다.

비판의 불가침 영역은 없지만 수위의 적절성은 고려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누구든지 침범 불가능한, 말 그대로 '불가침'의 비판 영역이란 것은 없어야 한다. 또한 모든 비판과 간섭으로부터 벽을 쌓지 않을 때 대상과 집단은 올바른 방향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샤를리 에브도>의 풍자만화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불가침의 영역이 존재하는 것과 그 풍자와 비판이 적절한 수위였는지에 대한 판단은 다르다. 필자의 경우, <샤를리 에브도>의 풍자가 적절한 것인지 판단해보기 위해서 극단적인 방법을 떠올려보았다. '나체 무함마드' 만화나 '무함마드 항문 위치에 별을 그린 풍자' 등에 예수의 얼굴이 그려진 만화를 상상해 본 것이다.

벌써부터 예수와 저질을 합성한다고 혈압 오를 분들이 많다 생각된다. 자, 바로 그 감정을 지니고 다시 무함마드 풍자를 바라보자. 풍자와 비판의 대상에는 성역이 없지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은 분류를 명확하게 하지 못한 문제로부터 출발한다.

사실 <샤를리 에브도>는 어느 정도 일관성이 있는 잡지였다. 풍자의 대상은 무함마드뿐만이 아니었다. 가톨릭의 이름으로 동성애를 더럽다고 이야기하던 이들이 존재할 때, 그들을 조롱하며 심기를 건드릴만한 일러스트를 그린 것도 <샤를리 에브도>였다.

 가톨릭의 이름으로 동성애를 더럽다고 이야기하던 이들을 조롱하는 일러스트.
 가톨릭의 이름으로 동성애를 더럽다고 이야기하던 이들을 조롱하는 일러스트.
ⓒ 샤를리 에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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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리 에브도>는 누군가 신성시하는 것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을 분류하지 못했다. 필자는 무신론자다. 예수든 무함마드든 두 신성 대상이 발가벗고 성기를 노출하건 엉덩이를 드러내건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 다만, 내가 신성시하지 않는다고 해서 타인의 신성화까지 비난의 대상으로 삼을 생각은 없다.

허나 신성화의 이름을 빌려 반인륜적인 사건을 일으키는 당사자들이나 사건 자체를 비판과 풍자의 대상으로 삼을 생각은 있다. 그러니까 그 대상과 분류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에 의한 반인륜적 행위는 조롱할 수 있지만...

나는 UFO를 칭송하고 신성시할 수도 있다. 침대 머리맡에 세워둔 레고 블록을 신성시할 수도 있고 심지어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우주에 떠다닐 것 같은 스파게티 괴물을 신성시 할 수도 있다. 이것은 사회에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또한 개인의 가치관이거나 단순한 취향일 수도 있다.

내가 신성시하고 아끼는 것을 누군가 가차 없이 비난하고 조롱한다 생각하면 무함마드 풍자를 봤을 때 분노하던 무슬림의 기분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신성시 한다고 해서 부정적 사건을 저질러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스파게티 괴물 법전에 '스파게티를 먹지 않는 자, 처단하라'라는 계명이 써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반인륜적인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스파게티를 먹지 않는 사람을 처단하는 극단주의자가 등장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스파게티 괴물은 칭송하지만 누군가를 처단하는 것을 반대하는 나 같은 사람도 존재할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문화의 존중이다.

제3자의 입장, 즉 스파게티 종교 테두리 밖에서 그것을 비판과 풍자의 대상으로 삼으려 했다면 필자는 스파게티 괴물을 건드리지 않고 사건을 일으킨 대상과 사건 자체를 풍자했을 것이다. 허나 <샤를리 에브도>는 '신성시하면서 반인류적 사건을 일으키지 않는 대상들의 문화'까지 침범했다.

이슬람 혐오를 비판한 커버 스토리 그들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만 풍자한 것이 아니다. 그 반대쪽의 불관용과 도그마도 똑같이 풍자했다.
▲ 이슬람 혐오를 비판한 커버 스토리 그들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만 풍자한 것이 아니다. 그 반대쪽의 불관용과 도그마도 똑같이 풍자했다.
ⓒ 샤를리 에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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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얘기한 신성시와 사건의 분류가 바로 이것이다. 비판과 풍자의 대상을 명확하게 하지 못했으며, 비판과 풍자 불가침의 영역이 없는 것은 언론 또한 마찬가지다. 필자는 언론을 법으로 옥죄고 싶은 생각도 없고 테러로 저지할 생각도 없다. 언론의 비판과 풍자에는 역시나 비판과 풍자로 맞서며 공론화하고 논의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다만, <샤를리 에브도>가 어떤 대상을 풍자했듯이 그들 역시 풍자나 비판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필자는 그들이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러하더라도 표현을 제한하는 것과 제한하지 않되 비판 대상으로서 열려있는 것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내 주변 개신교도들 중에는 올바르고 도덕적인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많다. 만일 그들이 예수의 풍자를 보고 기분 나빠 하는 것을 보았다면 필자 역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공감했을 것이다.

나는 누군가의 종교 문화를 존중한다. 그 신성을 사건과 따로 떼어놓고, 대상 비판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샤를리 에브도>였으면 무함마드를 처참한 대상으로 변환하지 않으면서 사건과 대상 풍자에 집중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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