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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광주지방법원 301호 형사대법정 피고인석에 앉은 사람은 전 목포해양경찰(해양안전본부) 김경일 123정 정장과 그의 변호인, 단 둘뿐이었다. 같은 날 한 층 아래에 있는 똑같은 규모의 법정 피고인석에 이준석 선장 등 세월호 선원 15명과 그들의 변호인, 교정공무원 등 약 30명이 앉은 것과 묘한 대조를 이뤘다.

이날 광주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임정엽)는 김경일 정장의 업무상 과실치사혐의 등을 두고 심리를 시작했다. 김 정장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기울어진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경비정의 지휘 책임자였다. 광주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대진 부장검사)은 그가 퇴선명령 등 승객 구호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는 바람에 많은 희생자가 생겼다며 지난해 10월 6일 김 정장을 기소했다.

그는 참사 당일 무너졌던 국가의 재난대응시스템을 두고 책임을 문책당하는 유일한 공무원이다. 검찰은 수사 결과 현장 지휘권한을 가진 김 정장이 구조작업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상황조차 제대로 보고하지 않는 바람에 구조체계에 구멍이 생겼다고 봤다. 법정에서는 그가 구조활동의 기본인 교신조차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구조체계에 구멍 낸 '현장 지휘권자'

지난 2014년 4월 16일 오전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오른 안산 단원고 학생을 비롯한 459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014년 4월 16일 오전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오른 안산 단원고 학생을 비롯한 459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 해양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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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당일 123정이 출동 명령을 받고 현장에 도착하기까지는 약 30분이 걸렸다. 김 정장이 세월호에 연락해 상황을 파악하고 승객 구호조치를 준비하라고 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김 정장은 세월호를 호출하지 않았다. 비록 연결되진 않았지만, 123정은 4월 16일 오전 9시 2~3분에 걸쳐 세월호를 세 번 불렀다. 통신담당이 알아서 한 행동이었다. 김 정장은 현장 지휘권한을 갖게 된 9시 16분 이후에도 전혀 세월호와 교신하지 않았고, 교신 여부를 묻는 상황실에도 제대로 답하지 않았다.

그가 승객들의 퇴선을 제대로 유도하지 않았다는 점 역시 뜨거운 쟁점이었다. 검찰은 김 정장이 123정 승조원들이나 헬기를 타고 온 항공구조사들에게 선내 진입을 지시하거나 퇴선방송을 하는 등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승객들을 배 밖으로 나오게 할 책임이 있었다고 했다. 해경 교신 녹취록에는 선내 진입 시도 여부를 묻는 서해해경상황실을 향해 '경사가 너무 심해 못 들어가고 있다'는 그의 답이 나온다. 검찰은 이 대목을 두고 "선내 진입을 지휘한 사실이 없다"며 "거짓말로 확인했다"고 했다.

김 정장이 책임을 모면하려 했던 정황도 상세히 드러났다. 세월호 참사 당일 쓰인 해경 전보에는 123정 해경들이 세월호 안으로 들어갔다거나 퇴선방송을 했다는 내용이 없었다. 그런데 이후 해경의 부실 구조를 비판하는 여론이 거세지자 김 정장은 4월 27일 '퇴선방송을 했다'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국회 답변서 등 여러 보고서에 경사 2명에게 조타실 진입을 지시했지만 로프 등이 없어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고 썼다. 또 감사원 감사 등에 대비해 부하직원들에게 시나리오를 주면서 허위진술을 지시하기도 했다.

김 정장의 변호인은 그가 퇴선방송 등을 제대로 하지 못하긴 했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구하기 급급했다고 반박했다. 또 방송을 했더라도 승객들이 전부 빠져나왔을지, 당시 헬기 소음 때문에 방송이 잘 들렸을지 의문인데다 김 정장은 선내 대기방송이 있었는지 자체를 몰랐다고 했다. 그의 대처가 미흡하긴 했지만, 희생자들의 피해와 직접 연관이 있는지는 불분명하다는 뜻이었다.

304명의 죽음... 국가 책임은 한 사람에게만?

재판을 방청하러 온 세월호 희생자와 그 가족들은 결국 분노를 참지 못했다.

화물기사 생존자 윤길옥씨는 "해경만 보면 혈압이 오른다, 방송을 했으면 학생들이 많이 나왔을 것"이라며 "살인죄나 다름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가 김 정장이 퇴선방송을 했더라도 세월호 안의 승객들이 듣지 못했다면 그의 과실로 사람들이 다치거나 숨졌다고 보기 어렵다며 법리를 설명하자 유족들은 다시 동요했다. 이들은 퇴장하는 판사들을 향해 "국가가 죽여 놓고 뭐하는 거냐, 이게 재판이냐" "상황과 조건? 우리 애들이 다 죽었다!"고 소리쳤다. 몇몇 어머니는 힘없이 의자에 몸을 기댔다.

이들은 피고인이 딱 한 사람이라는 점도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오후 1시 법원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생존학생 아버지 장동원씨는 "123정장만 모든 잘못을 저질렀냐?"고 말했다. 그는 "해경 지휘체계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참사 책임자는 누구인지 따져봐야 한다"며 "법정에 서는 사람은 김경일 정장 한 사람만일 수 없다"고 했다. 법률지원단의 김종보 변호사 역시 "우리 아이들과 승객들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대한민국이 오로지 김경일 정장 한 명에게만 책임을 지우려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며 "도마뱀 꼬리 자르듯 자르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한편 재판부는 김 정장이 과연 퇴선방송을 했다면 선내의 승객들을 탈출시킬 수 있었는지를 따져보기 위해 1월 26일 123정 현장검증을 실시한다. 참사 당시 상황을 완벽하게 재연할 수 없다. 하지만 재판부는 123정 방송 소리 크기나 헬기 소음 영향 정도, 세월호가 기울어진 상황 등을 최대한 비슷하게 할 수 있도록 다음 공판에서 여러 조건들을 정하기로 했다. 김경일 정장의 2차 공판은 21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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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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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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