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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추천된 세 명의 대법관 후보 구성이 '무늬만 대법관 구성 다양화'로 시대적 요구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법원 내부에서도 공개적으로 나왔다. 신영철 대법관 후임 인선을 둘러싸고 법원 내부에서 또 한 번 '사법 파동'이 일어날지 주목된다.

송승용 수원지방법원 판사(오른쪽 사진)는 지난 14일 오후 11시 13분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이번 대법관 후보 추천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송 판사는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에 대한 법원 내외부의 요구를 충분히 수렴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앞선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추천 직전의 일부 경력을 대법관 구성 다양화의 근거로 삼는 것은 외형적·표면적 다양화에 그치는 것일 뿐 진정한 의미의 실질적인 다양화로 볼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이날 오후 대법원 산하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위원장 김종인 가천대 석좌교수)는 강민구 창원지법원장, 한위수 법무법인 태평양 대표변호사, 박상옥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 등 세 명을 후보자로 추천했다. 이중 한 변호사는 2008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변호사로 개업했고, 박 원장은 2008년 서울북부지방검찰청장을 지낸 경력이 있어 실질적으로 결국 모두 50대 남성 판사·검사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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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조직법은 대법원장이 대통령에게 대법관을 임명제청할 때 추천위원회의 후보 추천 내용을 존중하도록 돼 있다. 송 판사는 이 조항을 언급하면서도 "금번의 대법관 임명제청권을 행사하심에 있어 추천위원회의 추천이라는 틀에 국한되지 않고 다시 한 번 법원 내외부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해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라는 취지가 가장 적극적·우선적 실질적으로 반영되는 대법관 제청을 하실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대법원장에 서면으로도 비판글 제출... "초심으로 돌아가야"

송 판사는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는 우리 사회공동체 내의 소수자,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고 인권, 노동, 환경 등 각종 사회적 갈등요인에 대한 감수성을 가진 분이 대법원의 구성원이 돼 사회의 다양한 가치관을 판결에 담아내는 것을 뜻하는 것"이라며 "근본적으로 소수자, 사회적 약자의 보호라고 하는 사법부의 역할 또는 사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라고 말했다.

송 판사는 지난 2008년 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방법원장 재직할 당시 촛불시위 시민들의 재판을 특정 재판부에 몰아서 배당하고 형량을 높이라고 압력을 넣은 의혹에도 대법관으로 임명된 일도 언급했다. 그는 "금번에 제청되는 대법관이 신영철 대법관의 후임이라는 점에서도 대법원은 제청에 있어 발전적이고 전향적인 입장을 갖고 보다 적극적으로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라는 가치를 구현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송 판사는 이 글을 출력해서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의견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대법원 측은 서면 접수 여부를 묻는 질문에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송 판사가 쓴 글에는 15일 오전 10시 현재 대법관 구성의 실질적 다양화에 호응하는 글들이 달리고 있다.

사법연수원 29기인 송 판사는 사법부 내부의 중요 사안이 발생할 때 종종 의견을 제시해왔다. 지난 2009년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배당 몰아주기 등의 진상규명을 요구했고, 2012년에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저축은행 관련 비리 의혹이 제기된 김병화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제청을 철회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다음은 송 판사가 내부망에 올린 글 전문이다.

신영철 대법원 후임을 둘러싸고 대법원이 다시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서초동 대법원 1층 로비 전경.
 신영철 대법원 후임을 둘러싸고 대법원이 다시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서초동 대법원 1층 로비 전경.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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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임명제청에 관한 의견

저는 수원지방법원 소속 판사로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규칙 제6조 제1항에 의하여 법원행정처장을 통하여 대법원장께 이 게시글을 출력한 서면으로 대법관의 제청에 관한 의견을 제출합니다.

저는 지난해 8월 코트넷 자유게시판에 소위 제4차 사법파동이라고 불리는 2003년 여름 대법관 제청과 관련한 사태의 전말에 대한 글을 게시한 바 있습니다.

당시 대법원장께서 이미 법원행정처 차장이던 권순일 현 대법관을 신임 대법관으로 제청하셨던 때였으므로, 해당 후보자에 대한 불필요한 찬반논란 보다는 향후 대법관 인적 구성의 다양화를 간절히 바라는 심정에서 위 2003년 사태의 전말 및 대법관 인선과 제청의 개선방향에 관한 졸견을 개진하였습니다.

오늘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는 대법원장께 3분의 후보자를 추천하였습니다.

저는 금번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대법관 제청대상 후보자 추천결과를 보고 나서, 이번 추천결과는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에 대한 법원 내외부의 요구를 충분히 수렴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앞섭니다.

먼저 대법원장께서는 지난해 12월 전국법원장회의에서, '올 한 해에도 법원장 여러분이 국민과 소통하기 위한 다양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고 과감하게 실천에 옮겨주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그 노력을 치하합니다.

국민의 신뢰를 존립의 기초로 하는 사법부에서 소통에 종착역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와 같은 정신력이 법원장 여러분의 강력한 지휘 아래 전국의 법원으로 퍼져 나가기를 기대합니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단언컨대, 대법관이 법원장의 지휘력에 대한 보상 또는 대가이어서는 안 될 것임은 자명합니다.

다음으로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는 우리 사회공동체 내의 소수자,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고, 인권, 노동, 환경 등 각종 사회적 갈등요인에 대한 감수성을 가진 분이 대법원의 구성원이 되어 사회의 다양한 가치관을 판결에 담아내는 것을 뜻하는 것인바, 이것은 근본적으로 소수자, 사회적 약자의 보호라고 하는 사법부의 역할 또는 사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따라서 추천 직전의 일부 경력을 대법관 구성 다양화의 근거로 삼는 것은 외형적, 표면적 다양화에 그치는 것일 뿐 진정한 의미의 실질적인 다양화로 볼 수는 없습니다.

이에 저는, 법원조직법 제41조의2 제7항에 의하면, 대법원장은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하는 경우에는 추천위원회의 추천 내용을 존중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장께서 금번의 대법관 임명제청권을 행사하심에 있어, 추천위원회의 추천이라는 틀에 국한되지 않고 다시 한 번 법원 내외부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하여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라는 취지가 가장 적극적, 우선적, 실질적으로 반영되는 대법관 제청을 하실 필요가 있음을 강조합니다.

대법관 구성의 획일성, 편협성을 극복하고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야 말로 판결에 대한 당사자들의 자발적인 승복을 이끌어 내는 핵심적인 수단이자 통로일 것이며, 궁극적으로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첨언하건대, 현재 대법원이 추진하고 있는 상고법원의 설치와 관련하여서도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는 더 이상 부연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대법관 임명제청 이후의 문제 제기는 자칫하면 헌법상 보장된 대법원장의 대법관 임명제청권을 침해하거나 부당하게 영향을 미칠 소지가 있고, 제청된 특정 후보자에 대한 검증과정에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와 대법원 측의 책임 소재에 관해 불필요한 내부 논란을 불러일으킬 위험도 있으므로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청 이전의 광범위한 의견수렴은 법원 내외부와 소통도 강화하고, 대법관 추천 절차의 비밀주의와 폐쇄성을 극복하며, 대법관 제청 절차에서의 민주적 정당성도 확보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혹여 신영철 대법관의 퇴임까지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이번에는 추천된 후보자 중 1인을 제청하고 다음번에 위와 같은 취지를 반영하자고 넘어갈 일은 아닙니다.

모두가 주지하다시피 지난 2009년, 신영철 대법관의 2008년 서울중앙지방법원장 재직 시절의 행위가 중대한 헌법적 가치인 법관의 독립을 침해한 것이 아닌가에 관하여 숱한 논란이 전개되었고, 법원 내부에서도 소장 판사들과 법원 노조까지 신 대법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의견표명이 줄을 이었습니다.

오히려 금번에 제청되는 대법관이 신영철 대법관의 후임이라는 점에서도 대법원은 제청에 있어서 발전적이고 전향적인 입장을 가지고 보다 적극적으로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라는 가치를 구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 현재 사법부를 둘러싼 대외적인 환경도 녹록치 않습니다. 헌법재판소장은 2013. 6. 14. 국회에 제안한 헌법재판소법 개정의견에서 헌법불합치결정 등 변형결정의 법적 근거와 그 기속력을 명시하고, 법원의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청구(소위 재판소원) 금지의 삭제와 보충성원칙의 예외를 명시할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이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하고자 하는 취지입니다).

국회는 2014. 11. 11. 대법관 중 절반을 판사 이외의 법조인으로 임명하자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하였습니다. 국회는 위 개정안의 제안이유에서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를 실현하여 최고법원의 판결에 사회의 다양한 가치관과 건전한 국민 법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대법원 인사혁신이 긴요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의 소속 회원에 대한 여론 조사 결과 설문에 응한 다수는 상고법원의 설치보다는 대법관의 증원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원 내부 구성원의 전폭적인 지지 조차 바탕으로 하지 않는 법원 수뇌부의 일방적인 대법원의 정책법원화 추진만으로는 위와 같은 환경을 극복하기 어렵다고 할 것입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대법원장께서는 2011. 취임사에서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의 권리가 그늘에 묻혀 부당하게 침해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은 사법부에 맡겨진 중요한 사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추천위원회의 추천결과가 위와 같은 취임사의 내용에 부합하는 것인지 냉철한 자성과 반추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끝으로 안도현의 시 한편을 인용합니다.
아래의 시에 나오는 따뜻한 함박눈 같은 대법관이 그립습니다.

<우리가 눈발이라면>

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다 쭈빗쭈빗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 못 든 이의 창문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
새 살이 되자

수원지방법원
판사 송승용 올림


태그:#송승용, #대법관후보, #다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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