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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자가 되고자 희망하는 28살의 청년이다. 내가 '오체투지' 현장에 갔었던 이유는 그들의 이야기를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기사 포트폴리오에 추가할 기사 한 편 더 써보기 위함도 없지 않아 있었음을 고백한다. '해고 노동자'와 그 빈자리를 다시 채워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의자놀이.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빙자하고 의자놀이의 한 주역으로 참여하는 청년 사진·글쟁이인 나. 염치없지만 내가 본 이야기를 써보고자 한다... 기자말

오후 12시 32분 세종대로 사거리에서의 아비규환
▲ 2차 아비규환 오후 12시 32분 세종대로 사거리에서의 아비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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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3시 23분. 이날 세종대로 사거리를 건너는데만 3시간을 넘겼다.
▲ 2차 아비규환 11일 오후 3시 23분. 이날 세종대로 사거리를 건너는데만 3시간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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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의 해고 노동자들과 함께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하는 6일의 오체투지 행진 중에 지난 11일과 12일 이틀간 그들의 행진을 따라갔다.

나는 11일 오전 10시경 서울 대한문에 도착했다. 본래는 오체투지 행진을 시작했어야 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4일 연속 한파 속에서 오체투지 행진을 해서일까. 1시간 정도 늦어진 오전 11시경에야 행진 북소리가 울렸다. 두 줄로 흰 의복을 입고 세 걸음씩 떨어진 행렬. 선두에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김득중씨가, 그 뒤로 쌍용자동차 해고 동지들, 기륭전자, 콜트-콜텍, 스타케미칼 해고 노동자들 그리고 시민단체들이 함께 했다.

오체투지,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한 절박한 기도

삼보일배의 행렬은 아주 느릿느릿, 그렇지만 매우 묵직하고 정중하게 한 칸씩 전진해 갔다. 횡단보도와 신호등을 만나서도, 경찰의 저지를 만나서도, 오체투지 행진은 다음 날 오후까지 계속되었다.

이날 본래 목적은 오후 2시까지 청운동사무소에 다다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한문 앞 횡단보도에서 경찰로부터 1차 저지를 당했다. 광화문 세종로 4거리에서 2차 저지를 당했고 정부종합청사 앞 세종로공원 앞에서 3차 저지를 당하며, 결국 그 앞에서 땅에 온 몸과 이마를 붙인 채 행진은 멈추었다. 하지만 오체투지는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쌍용차 지부장 김득중씨는 "버텨온 시간이 벌써 5년이 지났다. 이대로 그냥 돌아간다면, 고인이 된 이들에게도, 굴뚝 노동자들에게도 면목이 없다. 너무나 절박해 굴뚝에 올라선 그들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안겨주기 위해서 반드시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오후 3시 19분. 세월호 천막을 지나 오체투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의 오체투지 오후 3시 19분. 세월호 천막을 지나 오체투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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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들의 저지 속에서도 나아가려는 오체투지 진행자들의 처절함은 보는 이의 마음을 애달프게 했다. 경찰들은 두 줄로, 세 줄로 서로 꽁꽁 팔짱을 끼고 거리를 막아섰다. 그러자 오체투지 행진자들은 머리를 경찰들의 다리 사이에 박았다. 그 틈을 비집고서라도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다.

차가 달려드는 횡단보도 앞에서도 오체투지 행진을 멈추지 아니했다. 우르르 몰려드는 경찰들에 의해 짐짝처럼 들려나가 패대기쳐져 몸이 상해도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을 막아서는 경찰도, 이를 뚫고 오체투지를 계속하려는 노동자들도 물과 기름처럼 서로를 밀어내었지만 그들의 표정만큼은 어딘가 닮아 있었다.

그 절절한 사투는 아비규환에 가까웠다. 경찰들에게 들려나가는 그들은 발버둥쳤고 그 과정에서 오체투지 행진자들이 다칠까 염려한 주위사람들의 격앙된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다. 그것을 취재하고자 하는 기자들은 듣기가 무섭도록 달음박질하며 플래시를 터트렸다. 거리가 막혀 진입하지 못하던 관광버스는 심하게 경적을 울어댔다.

그 아비규환 속에서 행진은 누군가에겐 그저 질서를 교란 시키는 혼란으로, 또 누군가에겐 매우 천천히 하지만 온몸이 쩌릿쩌릿하게 엄습해 오는 경고의 메시지로, 또 누군가에게는 한발 한발 나아가는 희망과 절망의 행진으로 기억에 남을 것이었다.

우리 어릴 적 하던 의자놀이

11일 오후 저녁 7시 23분.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세종로공원 앞에서.
▲ 밤이 깊어만 가는 두 패의 노동자들 11일 오후 저녁 7시 23분.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세종로공원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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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의 한국사회는 제대로 된 사회 안전망도 없이 기업의 정리해고를 인정해 왔다. 기업은 이를 이용해 경영상의 이유로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았고, 정규직 노동자들이 쫓겨난 자리는 다시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채워갔다.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은 갑작스럽고 부당한 해고통지에 반박하고 투쟁해 기업과 맞서 싸웠지만 번번이 깨져왔다.

지난해 11월 13일, 대법원은 쌍용자동차 생산직 노동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해고무효확인 소송에 대해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준 원심 판결을 깨고, "당시 회사에 정리해고를 할 수밖에 없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었고, 해고회피 노력을 다하지 않은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며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노동자들이 패배한 것이다.

진정 기업과 노동자, 사회의 삼각관계는 서로를 위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수 없을까. 언제까지 소수의 이익을 위해 전체 사회가 두 패로 갈려 서로를 증오해야만 하는 걸까. 처음에는 친일과 민족으로 갈리고 두 번째는 남북이 갈리더니, 이제는 남남갈등에 이어 노동자와 기업으로, 노동자와 권력으로 갈라져야만 하는가.

그 아비규환의 풍경을 흘겨보며 지나가던 한 여인. 어린 아이의 손을 붙잡은 그녀는 그들의 귓전에 대고 "어휴~저렇게들 살고 싶나~? 열심히 살지 않아서 그런 거야~"라며 비꼬는 말을 툭하고 던지고 지나간다.

그 옆에서 지켜보던 모 회사의 정규직 직원이라는 젊은 여성이 이 얘기를 듣고, 그 '어머니'라는 분을 쫓아가 이야기 했다. "저렇게 살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어요!?" 굳이 왜 쫓아가서 그런 이야기를 했냐는 나의 물음에, 눈물을 삼키며. "이 현실에 눈감고 싶지가 않아서, 너무 답답하고 그냥 지켜보기에는 너무 힘들어서…"라고 말한다.

내가 의자놀이를 하던 때가 생각난다. 학교 수업시간에 왜 선생님이 이 놀이를 우리들에게 추천했는지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으나, 지금은 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 놀이를 해야만 하는가. 난 오늘도 의자놀이에서 엉덩방아를 찧고 있다.

9시 11분. 서릿발처럼 올라오는 한기와 칼바람 속에 엎드려 있는 오체투지 행진자. 함께하던 시민들이 세월호 유가족들이 보내 온 모포를 덮어주었다.
▲ 늦은 밤 오체투지 9시 11분. 서릿발처럼 올라오는 한기와 칼바람 속에 엎드려 있는 오체투지 행진자. 함께하던 시민들이 세월호 유가족들이 보내 온 모포를 덮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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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오체투지, #해고 노동자, #쌍용자동차, #의자놀이,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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