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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훔볼트 도서관 앞에서 여유를 즐기는 학생들의 모습
 베를린 훔볼트 도서관 앞에서 여유를 즐기는 학생들의 모습
ⓒ 신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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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소개할 장소는 베를린의 한 도서관이다. 일반적으로 인터넷에 소개되는 세계의 도서관은 화려한 장식과 그림이 그려진 오래된 도서관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도서관은 완공되고 공공에 개방된 지 고작 10년도 채 안 되었다. 그렇지만 많은 학생들이 사랑하는 도서관이자 명물이 된 건축물이다. 덕분에 많은 관광객이 찾아와 이용하는 학생들이 다소 불편을 느끼기도 한다.

베를린 관광과 쇼핑의 중심지인 프리드리히 거리(Friedrich Straße)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아주 평범한 독일의 거리. 베를린 동물원역-중앙역-알렉산더 광장역 등을 연결하는 고가철로를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 교육, 업무, 관광 시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그 중에서도 최근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도서관이 있다. 바로 2009년 10월 새롭게 문을 연 그림 형제 센터(Jacob-und-Wilhelm-Grimm-Zentrum)라는 이름의 베를린 훔볼트 대학의 중앙도서관(아래 훔볼트 도서관)이다.

베를린의 새로운 대학 도서관, 훔볼트 도서관

베를린 훔볼트 도서관 남쪽 입면의 모습.
 베를린 훔볼트 도서관 남쪽 입면의 모습.
ⓒ 신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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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좌측은 동측 입면의 모습이고, 사진 우측은 서측 입면의 모습이다. 두 방향에서 바라본 도서관 건축물은 면해있는 건물과 거의 유사한 높이로 지어져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좌측은 동측 입면의 모습이고, 사진 우측은 서측 입면의 모습이다. 두 방향에서 바라본 도서관 건축물은 면해있는 건물과 거의 유사한 높이로 지어져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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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볼트 도서관이 문을 열기 전후로 주요 독일 언론들은 '기념비적인', '열광한 방문객들', '최상급의 도서관', '독일의 가장 근대적인 도서관' 등으로 개관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그러나 이 도서관을 밖에서 보았을 때는 그리 인상적인 외관은 아니다. 최근에 지어진 여느 유럽 건축물과 비슷한 외관을 지녔기 때문이다. 남쪽 철로변을 향해 10층 규모로 지어진 이 도서관은 전형적인 유럽의 박스 형태의 건물이다.

창문 또한 사각형 형태의 반복이다. 훔볼트 도서관을 이루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은 사각형이다. 그 반복을 통해 이 거대한 도서관이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이 책장을 완성하듯 말이다.

하지만 내부에 들어서면 사람들은 의외의 모습에 놀란다. 사각형의 반복이 만들어낸 테라스형 열람실(Lesesaal)을 보면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기 터. 단조로운 듯한 공간을 깨뜨려버리기는 하지만, 그 사각형의 질서에 전혀 위배되지 않는 공간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공간이기에 사진 촬영 역시 조심스러운 행동이다. 열람실의 공간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이 사진보다는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이 그 감동이 더 하다. 도서관을 더 자세히 둘러볼 수 있는 가이드 투어도 제공 된다.
▲ 훔볼트 도서관 열람실(Lesesaal) 학생들이 공부하는 공간이기에 사진 촬영 역시 조심스러운 행동이다. 열람실의 공간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이 사진보다는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이 그 감동이 더 하다. 도서관을 더 자세히 둘러볼 수 있는 가이드 투어도 제공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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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훔볼트 대학은 오랫동안 본관 옆에 위치한 베를린 시립 도서관의 일부를 대학 도서관으로 활용했다. 2005년 시립 도서관의 보수 공사로 훔볼트 대학은 새로운 중앙 도서관을 지어야 했다. 약 1년간의 부지 선정을 거쳐, 2004년 3월 훔볼트 대학 현상설계 공모전을 개최했다. 부지는 당연히 현재 훔볼트 도서관이 지어진 게슈뷔스터 숄 거리 3번지(Geschwister-Scholl-Straße 3) 일대다. 약 1138곳의 건축사무소가 참가 신청을 했고, 당해 7월 초 작품 접수일까지 총 279개의 사무소가 작품을 제출했다.

도착한 작품은 기초적인 등록 작업과 작품의 훼손 상태 등이 조사되었다. 접수 마감일 이후부터 약 3주간(7월 중순~8월 초) 공모전 규정에 따라 1차 예비심사가 먼저 이루어졌다. 이 심사에서는 공모전 공고문에 명시된 사항에 대한 준수 사항(건폐율, 용적률, 용도별 면적 등)에 대한 준수 유무와 공모전 평가 항목(고가 철로변으로부터 8m 이격, 도시설계적 맥락에 합당한 콘셉트, 건축적 아이디어, 건축물 구조 콘셉트, 내부 공간 콘셉트 등)을 평가하고 정리했다.

1차 예비심사의 평가를 바탕으로 더 많은 항목의 2차 예비심사가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279개의 작품 중 255개의 작품이 탈락, 22개의 작품이 선정되었다. 나머지 2개 작품은 2차 심사 자격미달 작품으로 심사도 하기 전에 탈락했다. 건설 비용 분석과 최종 심사를 통해 독일 건축가 막스 두들러(Max Dudler)와 윈터 엔지니어(Winter Ingenieure)의 작품이 1등으로 선정되었다.

훔볼트 대학이 국립 대학이고 공공 공모전의 형태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 공모전 심사 과정과 결과(Ergebnisprotokoll)는 264쪽에 달하는 PDF 문서로 베를린시 홈페이지에서 게시 되어 있다(이번 기사 내용도 이 자료를 참고한 것).

사진 6.  공모전 심사 기록의 일부로 1차 예비 심사를 거친 평가 내역과 기초적인 수치가 정리된 모습을 볼 수 있다. 1등 당선안인 막스 두들러의 작품이 1122번 작품이다.
 사진 6. 공모전 심사 기록의 일부로 1차 예비 심사를 거친 평가 내역과 기초적인 수치가 정리된 모습을 볼 수 있다. 1등 당선안인 막스 두들러의 작품이 1122번 작품이다.
ⓒ Berli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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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베를린과 기타 여러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공공 건축, 도시, 조경 설계에 대한 공모전 요강, 과정, 결과, 심사 등은 시 홈페이지를 통해 누구나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간략하게 소개된 공모 과정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려면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는 심사결과 보고서를 확인하면 된다.

많은 국책 사업과 공모전이 마치 비밀리에 진행되듯 관련 정보를 찾기 어려운 한국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논란이 많았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과 서울 신시청사에 대한 비평도 단순히 형태에 관한 비난 혹은 비평 일색이었지, 공모 과정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베를린의 경우처럼 애초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관련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 디자인재단에 따르면 DDP를 건설하기 위한 공모전의 시작은 다음과 같았다.

"국내 건축·도시·조경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을 통해 국내·외 저명 건축가(조성룡, 최문규, 승효상, 유걸, 자하하디드, 스티븐 홀, FOA) 총 8명을 선정하여 '국제지명초청현상설계경기'가 진행되었다." - 왜 자하 하디드인가

한 도시의 공공 건축 사업을 위한 공모전에 설계 스타일이 확실한 유명 건축가들만 지명 초청하여 진행했던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국제 공모전. 애초에 건축의 공공성을 건축적으로 발현시키려는 주최 측의 의지보다 입맛에 맞는 화려한 건축물을 갖고 싶은 주최 측의 욕망이 더 컸던 것은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지명초청이라는 방식 자체가 문제라는 건 아니다. 그 또한 정상적인 공모 방식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다만 무려 2300억 원에 달하는 세금이 들어가는 건축물을 설계하기 위한 건축가를, 어떤 전문가들이 어떠한 이유로 지명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초적인 설명도 없는 것은 문제이지 않을까?

게다가 당시 논란이 되었듯 1등으로 선발된 자하 하디드의 설계안이 기존 공사비 예산보다 2배 이상 투입되었다는 점은 큰 문제다. 정상적인 공모전 심사가 진행되었다면, 2배 이상의 공사비가 소모되는 문제는 애초에 비용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도시의 맥락과 역사를 무시했다는 점도 역시 공모전이라는 평가 과정의 문제다. 자하 하디드라는 건축가는 오랜 세월 도시적 맥락과는 무관한 설계를 해온 건축가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영화 <말하는 건축 시티 : 홀>을 통해 공모전과 건설 과정 안팎의 문제점이 조명된 서울시 신시청사 공모전 역시도 대상을 국내 건축가로 한정만 지었을 뿐이지, 근본적으로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공모와 다를 바 없었다.

유명 건축물, 화려한 게 전부가 아니다

막스 두들러의 건축 설계안이 당선되고 실제 건축물로 지어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분명 테라스 형태의 열람실 공간(Lesesaal) 때문이었을 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다른 공간들은 평범한 도서관 마냥 단조로워 보인다.

하지만 그런 단조로운 공간들을 통해 공모전이 요구하는 사항과 필요한 사항들을 지킬 수 있었기에 1개월에 걸친 숱한 평가를 통과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멋진 건축안이어도 1등이 되고 최종 심사에서 심사위원들을 매혹시킬 수 있는 것은 길고 자세한 예비 평가를 통과한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니까.

밤에 본 훔볼트 도서관의 모습
 밤에 본 훔볼트 도서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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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진 이후 도서관 옆을 지나는 열차를 타고 도서관을 바라보는 모습은 낮에 바라보는 모습과는 또 다른다. 안에서 뿜어져나오는 빛이 내부를 훤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단조로워 보이던 입면도 색다르게 느껴진다. 다 똑같아 보였던 창문의 규격도 제각각이다.

그 이유는 각 공간의 용도에 따라 내부로 햇볕이 비춰야 하는 곳이 있고, 또 최대한 햇볕을 막아야 하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겉에서 봐도 내부의 공간이 구분되고 용도를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공모전의 기준을 준수하기 위해 나뉘고 배치된 도서관의 공간들이 창문 크기와 위치라는 요소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밖에서 안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공모전이라는 과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든 것을 일반인들이 다 알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겉에서 보더라도 공모전이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목표를 지니고 있는지는 알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훔볼트 도서관 내부 모습. 이런 모습을 보면 평범한 도서관과 큰 차이를 못 느낄 수도 있다.
 훔볼트 도서관 내부 모습. 이런 모습을 보면 평범한 도서관과 큰 차이를 못 느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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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궁금한 사람들은 내부에 들어가서 더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 지어지고 나서야 시민들의 마음에 안 든다는 볼멘소리도 최대한 줄일 수 있을 것이고, 새로 생길 공공 건축물에 대해 대중들의 관심도 더 많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막스 두들러가 설계한 훔볼트 도서관은 화려해 보이는 건축이 정말 화려한 건축이 아니라는 것을 가장 잘 증명하는 건축물이다. 또한 단순한 반복이 만들어 내는 깊은 공간을 음미할 수 있는 장소다. 하지만 무엇보다 공모전을 통해 구현되는 공공 건축에서 공모전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베를린을 방문하면, 꼭 훔볼트 도서관 열람실을 볼 기회가 있길 바란다.

"유럽 도시의 정수는 도시가 그들의 집단 기억을 표출하는 데 있다. 건축물에 남겨지고 상징화된 기억들은 집단의 인식을 확고히 만들 수 있다. 이런 맥락을 따라, 우리는 우리의 미래 세대가 도서관에서 그들의 역사를 읽을 수 있고, 전통과 기원을 이해하는 장소로 역할을 하고, 그들에 답을 줄 수 있는 장소가 되길 희망한다." - 그림형제 센터 훔볼트 도서관 건축 작품집(Humbolt-Universität zu Berlin Jacobs-und-Wilhelm-Grimm-Zentrum)에 실린 막스 두들러의 글 일부(23쪽)

* 베를린 소개서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했다. 미처 <오마이뉴스>를 통해 미처 다 싣지 못한 베를린의 사진들을 공유하고, 최근 베를린 소식을 공유하는 페이지다.


태그:#독일, #베를린, #공모전, #도서관,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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