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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어져가는 지붕 너머로 이미 이곳이 재개발지구로 지정되기 전에 반듯하게 지어진 아파트가 보인다. 아마도 재개발지구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에 저렇게 지어져가는 욕망의 꿈을 꾸었는지도 모르겠다.
▲ 거여동재개발지구 허물어져가는 지붕 너머로 이미 이곳이 재개발지구로 지정되기 전에 반듯하게 지어진 아파트가 보인다. 아마도 재개발지구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에 저렇게 지어져가는 욕망의 꿈을 꾸었는지도 모르겠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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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광주대단지 사건 이후 거마지구(거여동, 마천동 일대)는 새마을동네, 개미마을 등으로 나뉘어져 급격하게 성장했다. 지금의 마천시장 앞쪽에 있던 버스정류장은 이미 출발부터 만원버스였고 아침마다 버스를 타려는 행렬은 장사진을 이뤘다.

장마철이면 "마누리 없인 살아도 장화없인 살지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환경은 열악했다. 그러나 새벽이면 길동과 천호동을 거쳐 왕십리와 동대문으로 이어지는 '수도교통'이 있어 일감이 제법 많은 평화시장이나 수도권 중심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곳이었다. 그야말로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성서의 말씀이 실현될 수 있는 곳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개미마을로 불리던 지역은 2005년 재개발지구로 선정이 되었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리고 재개발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복부인들이 휘젓고 다녔다. 일사천리로 진행되지 않는 개발의 뒷켠에서는 사람들의 은근한 욕망들이 소용돌이 쳤다. 조합원들은 급격하게 늘어났고, 그러는 사이 재개발사업은 지지부진했다. 부동산경기가 쇠락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10년이 지난 지금, 거의 완벽하게 슬럼화되어 버렸다.

2005년 재개발지구로 선정될 당시만 해도 3만 5천 명 정도의 주민이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지만, 지금은 거반 떠나고 슬럼화되었다.
▲ 거여동재개발지구 2005년 재개발지구로 선정될 당시만 해도 3만 5천 명 정도의 주민이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지만, 지금은 거반 떠나고 슬럼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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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3만5천명에 이르던 주민들은 거반 떠났으며, 재개발이 완료된들 그때 살던 그들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더군다나 언제 재개발의 첫 삽을 뜰 수 있을지조차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올해 말이나 내년에는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긴 하지만, 사실 그런 기대는 늘 있어왔기에 여전히 미심쩍다. 한 해가 다르게 거여동재개발지구는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이미 엉성하게 지었졌던 집들의 벽면은 이제 그 속내를 드러냈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집들이 부지기수다.

더는 이렇게 방치해서는 안 될 상황이다. 서울시는 재개발지구로 선정된 이후 슬럼화되어 버린 곳들을 속히 정비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있기까지 인간의 욕망이 자리하고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어느 한쪽 잘못만이 아니라, 돈을 벌 것이라는 환상을 불어넣거나 행여라도 한몫 챙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꿈을 꾸었던 모두의 잘못이다.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낸 슬럼화, 그래서 벗어나기가 더 어려울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해보다도 떠난 이들이 더 많아진 탓에 골몰길을 접어드니 지난해와 비교해 보일러의 온기도 적고, 매쾌한 연탄가스 냄새도 적어진 듯하다. 그대신 무너진 집들은 더 많아졌다. 사람 사는 곳이 이래서 되겠는가 싶은 마음에 이렇게 방치하는 서울시나 국가가 얄궂게 느껴진다.

그래도 그곳에 휘날리는 새마을운동 깃발과 태극기, 그 간격을 보며 적막이 흐르는 재개발지구 골목을 뒤돌아 나오는 길은 쓸쓸하기만 하다.

재개발지구 높다란 장대 위에서 펄럭이는 새마을운동 깃발, 이념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풍경이다.
▲ 새마을운동 깃발 재개발지구 높다란 장대 위에서 펄럭이는 새마을운동 깃발, 이념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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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에 의지에 이동하는 어르신, 이곳에 살던 이들이 자생적으로 개발이 끝난 뒤 정착할 수 있을까?
▲ 거여동재개발지구 유모차에 의지에 이동하는 어르신, 이곳에 살던 이들이 자생적으로 개발이 끝난 뒤 정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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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는 태극기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곧 애국의 척도였으며, <국제시장>에서 재현되었듯이 국기하강식이 시작되면 온 국민이 국기를 향해 경례를 해야만 했다. 여전히 태극기는 애국심의 상징이다. 대한민국으로부터 소외당하고 버림받은 그곳에서도 여전히 애국심은 드높다.
▲ 태극기 1970년대는 태극기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곧 애국의 척도였으며, <국제시장>에서 재현되었듯이 국기하강식이 시작되면 온 국민이 국기를 향해 경례를 해야만 했다. 여전히 태극기는 애국심의 상징이다. 대한민국으로부터 소외당하고 버림받은 그곳에서도 여전히 애국심은 드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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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풍경이 을씨년 스러운 가운데, 흐린 날씨에 태양이 낯달처럼 재개발지구 위를 지나고 있다. 공급할 전기가 적어진 전봇대와 전기선은 한결 가벼운 듯하다.
▲ 거여동재개발지구 모든 풍경이 을씨년 스러운 가운데, 흐린 날씨에 태양이 낯달처럼 재개발지구 위를 지나고 있다. 공급할 전기가 적어진 전봇대와 전기선은 한결 가벼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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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대부분 이사들을 갔지만 아직도 그곳에 남아있는 이들은 이제 구경거리가 된듯하여 외지인들의 방문도 반갑지가 않다. 경계의 눈빛과 거절하는 분위기가 골목마다 가득하다.
▲ 거여동재개발지구 이제 대부분 이사들을 갔지만 아직도 그곳에 남아있는 이들은 이제 구경거리가 된듯하여 외지인들의 방문도 반갑지가 않다. 경계의 눈빛과 거절하는 분위기가 골목마다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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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성서의 말씀은 이뤄진 것일까? 오히려, 철거촌으로 밀려들어오며 꾸었던 창대한 꿈이 미약하게 끝나 버린 현실은 아닌가?
▲ 재개발지구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성서의 말씀은 이뤄진 것일까? 오히려, 철거촌으로 밀려들어오며 꾸었던 창대한 꿈이 미약하게 끝나 버린 현실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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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다. 슬럼화되면서 그들의 천국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머지않아 그들은 또 그곳에서 쫓겨나갈 것이다. 욕망의 덫이라는 것은 이렇게 인간이고 그와 곁에서 살아가던 이들 모두에게 아픔이라는 결말로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싶다.
▲ 검은고양이 길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다. 슬럼화되면서 그들의 천국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머지않아 그들은 또 그곳에서 쫓겨나갈 것이다. 욕망의 덫이라는 것은 이렇게 인간이고 그와 곁에서 살아가던 이들 모두에게 아픔이라는 결말로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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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불조심이 최고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화마가 순식간에 모두의 터전을 앗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빈 집들도 그런 위험성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 재개발지구 무엇보다도 불조심이 최고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화마가 순식간에 모두의 터전을 앗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빈 집들도 그런 위험성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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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5년 1월 9일(금) 담은 사진들입니다.



태그:#거여동재개발지구, #불조심, #길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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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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