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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쯤이었을까? 누가 말했는지 알 수 없지만 누군가 음악은 '신의 소리(God Sound)'라고 했다. 왜 그런지 생각해 본 일이 없다. 그러면 그런가보다 한 것이다. 음악이 말이나 행동이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더 효과적으로 전해 주나보다 하고 그 정의에 동의했다고나 할까.

그러다가 정말 음악이 무엇인가 생각해 볼 기회를 가졌다. 대학 1년을 마치고 맞은 겨울 방학이 끝나갈 무렵 실연을 당했기 때문이다. 일단 대학생활을 더 할 동력을 잃은 나는 휴학을 선택했고 군입대 영장을 기다렸다.

<바람부는 날 클래식을 만나다> 표지
 <바람부는 날 클래식을 만나다> 표지
ⓒ 미니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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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여자에게 하는 사랑의 서약

그 시절 할 일 없이 드러누워 있을 때 방 귀퉁이의 턴테이블에서 돌고 있던 판에서 흘러나온 노래는 슈만의 음악이었다. 제목이 <헌정>이었는데 들을 당시에는 누구의 어떤 음악이었는지도 몰랐다. 여러 가곡들을 되는 데로 짜깁기 해 놓은 판이었으니까.

남자의 바리톤이 힘차게 사랑을 외치는 음악, 알아 듣지 못하는 독일어라도 그게 사랑의 서약 비슷한 내용의 노래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녀 앞에서 이런 노래라도 분위기 잡고 한 번 했더라면 결과가 그렇게 처참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듣고 또 들었던 것 같다.

'가수 이적이 결혼할 때 프러포즈로 사용한 노래 <다행이다>는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아는 곡이지만, 전 세계 사람이 아는 가곡 <헌정 Widmung Op.25-1>은 독일 작곡가 슈만이 사랑하는 아내 클라라에게 결혼 전 날 바친 노래다.'(바람이 부는 날 클래식을 만나다 중에서)

스승의 딸에게 첫 눈에 반했지만 가진 것도 없고 벌이도 신통찮았던 로베르트 슈만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는 커녕 클라라 비크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결혼을 반대하던 스승이자 미래의 장인을 상대로 6년에 걸친 소송 전에 돌입한다. 사랑을 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겨울에 듣는 바이올린 소나타

신간, <바람부는 날 클래식을 만나다>의 겉 표지를 열자마자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문학평론가이며 서울과학 종합대학원 교수라는 화려한 타이틀의 소유자 송원진을 만날 수 있다. 책은 저자의 열정적 에너지가 느껴지는 클래식  음악 소개서다.

모스크바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저자는 클래식을 소개하는 이 책에서 바이올린을 중심으로 한 곡들, 6개월 넘게 지속되는 러시아의 혹한의 겨울 속에서 탄생한 곡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곡들을 바람, 소리, 사랑이라는 소주제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슈만의 가곡 <헌정>은 아마도 저자가 아직 미혼이기에 미혼의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던 게다. 자신에게 헌정되는 아름다운 곡을 듣는다면 미혼 여성이 대부분 마음의 문을 열 것으로 추정되므로.

아르헨티나 출신 아스트로 피아졸라는 탱고를 새롭게 재해석 해 크래식의 반열에 올려 놓은 음악가로 소개되고 있는데 그의 곡<망각>이 저자가 즐기는 곡이라고 한다. 피아졸라의 또 다른 곡 <항구의 겨울>이 소개될 때는 비교를 위해 '사계'의 작곡자 비발디가 등장하는데 그는 성직자로서 신부의 길을 걷던 중 연주와 작곡에 열중했다고 한다. 사계는 결국 음악가가 아닌 비발디 신부님이 만든 곡이라는 재미있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내 밀류코바와의 불화와 후견인 폰메크 부인과의 갑작스런 교류 중단으로 실의에 빠진 차이콥스키가 작곡한 <비창>은 저자가 뽑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이다.  또 책 속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흐르는 노래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lson Dorma)'를 새롭게 듣는다. 노래의 마지막 부분에서 왕자가 외치는 '빈체로~ 빈체로'는 공주의 남자가 되느냐 다른 도전자들처럼 죽느냐의 기로에서 공주의 남편이 되어 살아남겠노라며 승리를 다짐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변진섭의 노래 '희망사항'을 작곡한 노영심이 노래 끝에 붙인 오마주였던 곡, 조지 거슈인의 <랩소디 인 블루>도 등장하고, 스페인 출신인 파블로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바이올린 곡이라고 소개되고 있다. '집시의 노래'라는 뜻인 이 곡을 들어보니 오며 가며 겪은 곡이다.

딴따라 따라 따라라라라~ 하고 시작하는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기쁨>은 듣는 순간 기분이 좋아진다. <개그 콘서트>에서 김병만이 하던 코너 '달인'의 인트로로 익숙한 음악이기도 하다. 음악은 당장의 깊은 슬픔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결국은 새로운 에너지로 변신할 것이라는 예언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실연의 아픔도 실은 젊은 시절 누구나 한 번씩은 겪고 지나가는 통과의례라는 사실을 조금만 더 살아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스무살의 실연 후에도 슈만의 <헌정>을 부르는 일은 없었지만 이제는 노래를 들으며 미소지을 수 있는 나이가 됐다. 사실 이젠 그런 노래보다는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셰에라자드>같은 음악이 더 좋다.

덧붙이는 글 | <바람부는 날 클래식을 만나다> 송원진 지음, 2014년 12월 5일 발행, 미니멈



바람 부는 날 클래식을 만나다

송원진 지음, 미니멈(2014)


태그:#송원진, #세진,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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