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미생> 스틸컷

tvN <미생>에 출연한 가수 겸 배우 임시완 ⓒ CJ E&M


|오마이스타 ■취재/이미나 기자| 푹 눌러 쓴 모자, 칭칭 감은 목도리, 여기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부랴부랴 들어온 임시완은 "공항에서 막 왔다"며 인사를 건넸다. 직전까지 매달렸던 tvN 금토드라마 <미생>을 마치고, 출연진과 스태프가 함께 필리핀 세부로 포상 휴가를 다녀온 참이었다.

지난 26일 서울 마포의 한 식당에서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만난 임시완은 4박 5일간의 휴가 일정을 두고 극 중 등장했던 보들레르의 시 '취하라'를 인용했다. 농담 섞어 "그 시의 내용을 철저하게 지켰다. 술을 마시면서 '취하라, 항상 취해 있어야 한다. 술이나…술이라든지…술과…술에…취해 있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고 전한 임시완은 확연히 홀가분해 보였다. 과거 기자간담회에서 "<미생>이 끝나는 순간 장그래를 벗어던지겠다"고도 말했던 그는 "이젠 (취재진의) 타이핑 소리가 익숙하다"며 활짝 웃었다.

"연예계 데뷔할 때의 나, '장그래'와 같았다"

- <미생> 현장공개 당시 '자신감이 떨어져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지금은 어떤가.
"그때보다는 많이 편해졌다. 그땐…뭔가 내가 있으면 안될 것 같은 자리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회사원을 데려다 놓고 플래시가 터지니까 부담스러웠는데, 이젠 이 타이핑 소리가 익숙하다. (웃음)"

- 그만큼 장그래에게 몰입했던 것 같다. 임시완에게 장그래란 어떤 존재였나.
"처음 나는 내가 완전한 장그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극중에서) 내가 행동하는 것에 내 생각보다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시청자가 생기더라. 내가 장그래라 공감을 이끌어냈던 게 아니라, 이걸 보는 절대다수의 시청자가 장그래였기 때문에 공감을 얻었던 거다. 그래서 이젠 감히 '내가 장그래다'라는 말을 드리기가…실제 장그래인 모든 분들께 죄송한 마음이다. 나보다는 이 드라마를 보고 공감하셨던 모든 시청자가 장그래였지 않았나 싶다."

- '처음엔 내가 완전한 장그래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어떤 점이 닮았다고 생각했나.
"제작발표회 때 말했던 건데 처음 프로의 세계(연예계)에 입문했을 땐 바둑으로 치면 필요하지 않은 돌,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사람이라는 걸 많이 느꼈다. '내가 있어도 되는 건가'라는 의문을 가졌던 적도 있고. 그런 점이 장그래와 나의 흡사한 지점 같더라. '이 경험을 십분 살려 장그래에 공감하면 되겠다'는 생각이었고, 그 기억들이 꽤나 (장그래의 과거와) 맞닿아 있어서 공감하기 쉬울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나보단 시청자의 공감대가 더 강하다는 걸 깨달았다."

 tvN <미생>에 출연한 가수 겸 배우 임시완

""제작발표회 때 말했던 건데 처음 프로의 세계(연예계)에 입문했을 땐 바둑으로 치면 필요하지 않은 돌,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사람이라는 걸 많이 느꼈다. '내가 있어도 되는 건가'라는 의문을 가졌던 적도 있고. 그런 점이 장그래와 나의 흡사한 지점 같더라." ⓒ CJ E&M


- 그런 점에서 스스로가 생각하는 장그래와의 싱크로율을 점수로 매겨 본다면.
"처음엔 싱크로율이 100%에 가깝다 생각했는데 이젠 감히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근 4개월을, 프리퀄을 포함하면 5개월을 장그래로 살아왔던 만큼 거기에 후한 점수를 주자면…(< 슈퍼스타K > 속 심사위원의 말투를 따라하며) '제 점수는요', 그래도 80점 정도는 주고 싶다. (웃음)"

- 그러고 보니 <미생 프리퀄>에서도 장그래였고, <미생>에서도 장그래였다. 이렇게 장그래 역할에 애착을 갖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스스로 장그래의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미생> 시놉시스를 받았을 때 '하고 싶다'는 생각보다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의무감이랄까, 안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거다. 작품의 성공의 척도가 시청률이나 관객수만은 아니겠지만, 그런 부분에서도 좋은 결과가 나와 다행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시청률이 잘 안 나오고, 성공하지 못했다 해도 장그래를 표현했다는 것에 있어서 만족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 캐스팅 당시 오상식 역을 맡게 된 배우 이성민은 '장그래는 착한 배우가 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왜 장그래 역을 맡을 배우는 착한 사람이어야 했을까.
"'착해야 한다'는 기준에 적합한 사람이 나였다는 이성민 선배님의 말씀에는 '감사하다'는 말밖엔 드릴 게 없다. 실력이나 외적인 부분을 다 떠나, 적어도 인성적인 부분으로 선배님께 인정받았다는 부분에 감사드리고 싶다. <미생>은 철저히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그러려면 (배우도) 사람다워야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착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신 것 같다. 사람 냄새 나는 배우를 원하시지 않았나 생각한다."

- 본인이 사람 냄새 나는 사람이라 생각하나. 극중에서도 평범한 계약직 신입사원이라 보기엔 비현실적으로…예…예뻐 보일 때가 있었지 않나. (웃음)
"(웃음) 그건 나랑 술을 안 마셔봐서 하는 이야기다. 나를 실제로 보고 느끼는 많은 분들은 (나를) 연예인으로 생각 안하는 부분이 많다. 그래도 사람 같지 않아 보이는 부분이 있다면…그건 앞으로 노력하겠다. (웃음)"

"직장인 친구들, '내가 오 차장이다'라는 상사 때문에 힘들다고"

 tvN <미생> 스틸컷

ⓒ CJ E&M


 tvN <미생> 스틸컷

"아버지나 친구들이 직장인이지만, 실제로 그걸 눈으로 확인할 기회는 없었다. 그러니 어렴풋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미생>을 통해 그 애환들이 가시화되고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되면서 '정말 쉽지 않은 삶을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 CJ E&M


- 직장 생활을 해보지는 않았겠지만, <미생> 속 원인터내셔널의 에피소드를 촬영하며 새롭게 느낀 것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연습생 때 장그래처럼 '죽을 만큼 열심히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여느 사회생활이 그렇듯 열심히만 해서 되는 게 아니더라. 때로는 정의를 외면하고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었고, 눈치를 봐 가며 일해야 할 때도 있었고…. <미생> 속 직장 생활도 그런 모습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예전엔 '만약 전공을 살려 직장으로 돌아가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자신이 없다. 지금 주어진 이 상황에 감사하고 열심히 살아야지. (웃음)"

- 그러면서 실제 '미생'들의 삶에도 공감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아버지나 친구들이 직장인이지만, 실제로 그걸 눈으로 확인할 기회는 없었다. 그러니 어렴풋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미생>을 통해 그 애환들이 가시화되고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되면서 '정말 쉽지 않은 삶을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그 부분도 감히 공감할 수 있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 

- 임시완에게 장그래의 오 차장 같은 분은 없었나.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오 차장의 존재 자체가 판타지다'라는. (웃음) 휴대폰 메신저에 친구들과의 단체 대화방이 있는데, <미생> 때문에 가장 힘든 건 상사들이 다 스스로 '내가 오 차장 같은 사람이다'라고 말한다는 점이라더라.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게 너무 힘들단다. (웃음) 사실 오 차장은 실재하기 힘든 존재 같다. 하지만 나에게 그런 분이 있다면 이성민 선배님이나 김원석 PD님, 그리고 <변호인> 감독님이나 송강호 선배님 같은 분들이지 않나 싶다. 이 분들이 지금 내 인생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분들인 것도 사실이고."

 tvN <미생> 스틸컷

"나에게 오 차장 같은 분이 있다면 이성민 선배님이나 김원석 PD님, 그리고 <변호인> 감독님이나 송강호 선배님 같은 분들이지 않나 싶다. 이 분들이 지금 내 인생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분들인 것도 사실이고." ⓒ CJ E&M


- 포상휴가 이야길 안 할 뻔했다. 현장에서 가장 크게 웃은 순간은 언제였나.
"나에겐 포상휴가라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고, 다른 분들도 포상휴가를 여러 번 다녀왔다는 분이 없어서 그런지 가는 것 자체로 기분이 들떠 있었다. 단체로 스케줄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놀러간다는 것 자체로도 기분이 좋았다.

가서는 보들레르의 '취하라'는 시의 내용을 철저하게 지켰다. (다 같이) 술을 마실 때 '취하라, 항상 취해 있어야 한다. 술이나…술이라든지…술과…술에…취해 있어야 한다'면서 많이 마셨다. (웃음) 그 시에 가장 감명 받은 분은 '하짱' 전석호 선배님(하대리 역)이 아니었나 싶다. 그 시를 굉장히 감명 깊게 읽으신 것 같더라. (웃음) 또 선배님이 분위기 메이커였다. 여자 스태프에게도 인기가 많았고, 잘 노셨다. 보헤미안 같은 분이다. 가장 먼저 현지화될 정도로 적응력이 있었다. 덕분에 많이 웃었다."

- 확실히 <미생> 배우들 사이에 끈끈한 느낌이 있는 것 같다. 신입 4인방도 그렇고. 따로 대화하는 창구가 있나.
"일단 하늘이(장백기 역)랑 요한이 형(한석율 역)은 서로 장난을 치는데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재밌다. 그러면서도 그 사람들이 가볍게 느껴지지만은 않는 이유가, 연기적인 부분으로 얘기를 많이 해서다. 개그를 칠 때도…나는 그쪽(연기) 지식이 없어 잘 따라가지 못하는데, '이럴 때 이 배우와 비슷하지 않나'라며 그걸 따라하고 있더라. '이 사람들이 평상시에도 이렇게 연기에 대해 고민하기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기를 잘할 수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휴대폰 메신저에 신입들의 단체 대화방도 있다. 그런데 막 그렇게 원활하진 않다. 오프라인으로 만나는 경우가 많지. 실제로 촬영하면서도 잠시라도 만나 이야기하고, 그렇게 자주 만났다. 영업 3팀의 경우…이성민 선배님이 그 메신저를 안 쓰신다. 그래서 자연히 영업 3팀만의 단체 대화방은 없었다. 다만 문자와 전화가 많았고, 같이 지내는 시간도 많았다."

===화제의 드라마 <미생> 임시완 인터뷰 관련 기사===

[인터뷰 ①]'미생' 임시완 "장그래 연기 점수요? 80점 정도"
[인터뷰 ②]'미생' 임시완 "'밉상'된 장그래, 미련이나 아쉬움 없어요"
[인터뷰 ③]'미생' 임시완 "나는 아직도 '필요한 바둑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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