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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처음 발견한 왕은점표범나비는 멸종위기동식물2급종으로 법적보호를 받고 있다(2007.7.3 파주 근교)
 저자가 처음 발견한 왕은점표범나비는 멸종위기동식물2급종으로 법적보호를 받고 있다(2007.7.3 파주 근교)
ⓒ 김계성·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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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민통선 백연리의 여름날이다. '톡!' 쑥 잎 위로 나타난 분홍빛 메뚜기를 발견했다. 녹색, 갈색의 일반적인 메뚜기와 달리 분홍빛의 특이한 색깔을 지니고 있었다. 더운 날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고생이 많다고 비무장지대의 자연이 선물로 보여준 것일까. 매우 희귀한 발견임에 틀림없었다. 그로부터 5년 뒤, 영국에서 동종의 분홍빛 메뚜기가 발견되어 큰 화제를 모았으며, 이어 일본에서도 발견되었다. 그들보다도 한 발 앞서 자연 생태의 보고인 이곳 비무장지대에서 발견한 것이다. -<비무장지대, 곤충>'분홍빛메뚜기'편에서

책 <비무장지대, 곤충>의 저자가 국내에서 처음 발견한 분홍빛 메뚜기에 관해 설명한 글의 일부다. 20mm 크기의 분홍빛 메뚜기는 세계적인 미기록종으로 2014년 현재 별다른 연구 결과가 없는 상태. 아쉽게도 2006년 이후 비무장지대에서 이 메뚜기는 더 이상 관찰되지 않았단다. 저자는 그 이유를 "분홍빛의 튀는 색깔이 다른 메뚜기들에 비해 천적들에게 쉽게 노출되기 때문 아닐까?"라고 추측했다.

<비무장지대, 곤충>은 정전 60년 만에 처음으로 비무장지대에 서식하는 곤충들을 탐구, 기록한 책이다. '얼마나 많은 곤충들을 담았는가?'를 떠올리기 앞서 정전 후 60년 만에 처음으로 비무장지대 곳곳의 곤충을 기록했다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와 가치가 남다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책이 좀 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아 비무장지대의 생태계와 더불어 자연 환경에 바람직한 애정을 갖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래는 책의 저자인 김계성, 김경희 부부와 지난 24일 전화와 이메일로 나눈 책 <비무장지대, 곤충>에 관한 이야기다.

비무장지대에 살고 있는 곤충들, 뭐가 있을까

<비무장지대, 곤충> 책표지.
 <비무장지대, 곤충> 책표지.
ⓒ 세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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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 생태를 탐구하게 된 계기는?
"2004년에 참담한 일을 겪었다. 마음을 추슬러야 해서 뚜렷한 목적이나 이유 없이 산이나 들로 나가는 날이 많아졌는데, 형편이 좋을 때는 보이지 않던 야생화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당시 아내가 2년 전부터 '푸른파주21실천협의회'(기자 주: 파주 지역 생태관련 단체) 활동을 하던 중이어서 야생화나 자연 생태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 아내를 따라 다니며 사진을 찍다 보니 좀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고, 관심둔 만큼 마음에 들어왔다.

우리 부부는 10년 전부터 '민간생태연구소'와 '푸른파주21실천협의회'에 적을 두고 비무장지대와 접경지 일원에 대한 생태 조사를 해오고 있다. 비무장지대를 찾는 사람들을 상대로 현장 강의도 하고, 생태 해설 안내자 양성 교육도 하고 있다. 그러던 중 비무장지대의 동ˑ식물들은 한해가 다르게 사라져 가는데 정전 60년이 가까워지도록 어떤 기록도 없다는 것이 아쉬운 한편 씁쓸했다. 그래서 이제라도, 우리가 '어떤 동식물들이 살고 있는지'만이라도 기록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을 느꼈다."

- 분홍메뚜기와 꼬마잠자리, 왕은점표범나비와의 비무장지대에서의 만남이 기억에 남는다.
"그 3종은 정말 자랑 많이 하고 싶은 결과물이다. 일반 메뚜기라면 원래 녹색 혹은 갈색이다. 전문가들은 유전자 이상 등에 따른 변이로 추측하는데, 다른 나라에서도 발견됐다는 점에서 희귀종일 가능성도 있어 또 다른 발견과 연구 결과가 기대되기도 한다. 멸종위기2급종인 꼬마잠자리, 왕은점표범나비도 발품에 따른 필자만의 성과라고 자부한다.  

서부 비무장지대를 흐르는 자연 하천 중 하나인 초리천(세월천) 중류에 쥐방울덩굴이 서식하는데, 이를 애벌레의 먹이 식물로 삼는 꼬리명주나비가 계속 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또 둠벙에 자생하는 수많은 수서 곤충과 창포, 흑삼릉 등 특산 식물들에게도 비무장지대만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아직도 찾아내야 할 물장군과 긴꼬리투구새우 등이 늘 머릿속에 맴돌고 있다."

미기록종 분홍빛메뚜기의 몸길이는 20mm가량이다(2006.6.17. 백연리)
 미기록종 분홍빛메뚜기의 몸길이는 20mm가량이다(2006.6.17. 백연리)
ⓒ 김계성·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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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기가 작은 곤충은 탐사는 물론 촬영도 쉽지 않은 것으로 안다. 게다가 기초 자료도 부족한 것으로 안다. 책을 쓰면서 특히 신경 쓴 것이 있다면?
"최근 현장을 답사해 그 결과물을 담은 책들이 늘고 있어서 반갑다. 그런데 현장을 도외시한 도감식 책이나, 기존의 설명을 적당히 짜깁기한 책도 여전히 나오고 있어 아쉽기도 하다. 책을 저술하면서 기존의 설명들은 참고만 할 뿐 의존하지 않았다. 가급적 직접 본 것을 토대로 하고자 현장 탐사는 기본으로 진행했다. 최대한 여러 차례 관찰한 결과를 담았다.

총 19목 116과 407종의 곤충을 책에 담았다. 친숙하면서도 학술적 가치가 있는 개체를 우선 담았다. 그간 한반도 서식 곤충 관련 책들은 관심 있는 사람이 참고할 수 있을 정도로 나오긴 했으나, 비무장지대에 서식하는 곤충을 기록한 책은 나오지 않았다. 이 책이 그 시작이 될 것이다.

훗날 비무장지대 특정 지역의 환경 변화로 서식하는 곤충에 변화가 생기거나, 차후 비무장지대 곤충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탐사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발견한 장소와 일자까지 모두 기록했다. 그리고 책 한 권에 가급적 많은 종류의 곤충을 담고자 소개하는 곤충의 핵심적인 내용을 설명으로 넣고자 했다."

멸종위기동식물2급종인 꼬마잠자리는 국내 서식 잠자리 중 제일 작다. 몸길이 11mm~13mm다(2007.6.28. 문산 근교)
 멸종위기동식물2급종인 꼬마잠자리는 국내 서식 잠자리 중 제일 작다. 몸길이 11mm~13mm다(2007.6.28. 문산 근교)
ⓒ 김계성·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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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무장지대에 어떤 곤충들이 사는지 알아야 하는 주요 이유는?
"2013년을 기준으로 정전 60년이 지났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옛말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 산천은 급격하게 변했다. 이에 따라 멸종했거나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들이 많다. 비무장지대는 한반도에서 거의 유일하게 개발을 비켜간 곳이다. 덕분에 다른 지역에선 볼 수 없는 동식물들이 많다. 아이러니하게도 수많은 사람을 죽인 전쟁의 상처가 생태계에는 적잖은 혜택이 된 것이다.

또, 임진강물의 염도가 높아 농업 용수로 부적절해 옛날부터 둠벙을 파 농업 용수로 많이 썼던 터라 현재도 둠벙이 산재한다. 이 둠벙 주변에 곤충들이 많이 서식한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은 곤충들이 살고 있다. 비무장지대 서부 지역이 한반도 곤충을 관찰하는 데 아주 중요한 지역인 것이다. 근래 정부가 비무장지대에 세계생태평화공원을 조성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는데, 솔직히 4대강 사업의 전철을 밟으면 어쩌나하고 우려된다."

"비무장 지대 곤충 서식지 파악, 보호 중요해"

책을 펼친 모습
 책을 펼친 모습
ⓒ 세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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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곤충이 중요한 자원이 된다는 말도 있던데?
"그렇다. 지구에 살고 있는 전체 생물종의 4/5를 차지하는 곤충들이 다음 세대를 움직일 성장 동력으로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곤충은 먼 장래가 아닌 짧게는 수년 후 길게는 10~20년 후 지구촌의 미래 식량자원으로 급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말했던 것처럼 비무장지대에 가장 많은 종류의 곤충들이 서식하는 것으로 안다. 때문에 미래를 위해서라도 비무장지대 곤충들의 서식지 파악과 보호는 매우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다."

- 이 책이 나오기까지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다.
"새로 발견했거나 전에 보지 못한 종은 현장에서 사진을 촬영한 뒤 집에 돌아와 동정을 하는데, 필요한 기존 지침서가 절대적으로 부족함을 느꼈다. 국가 기관의 자료 또한 미비하거나 없는 경우가 많았다. 또, 관련 학자들이 어느 한 분야만 연구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필요로 하지 않는 자료까지 많기 일쑤였다. 때문에 꼭 필요한 내용만 압축해 쓰기가 어려웠다. 이런지라 한 종의 동정으로 몇날 며칠을 보내기도 했고, 애매한 한 종 때문에 관련 도서가 있어도 또 다른 관련 도서를 구입하기도 했다. 이런 점이 힘들었다면 힘들었다. 그럼에도 여태까지도 동정을 못해 남아있는 사진들이 부지기수다."

<비무장지대, 곤충>공저자.
 <비무장지대, 곤충>공저자.
ⓒ 김계성·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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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곳도 아닌 비무장지대 생태를 탐사해 의미나 보람도 남다를 것 같다.
"비무장지대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다행히 비무장지대의 생태를 기록해야 한다는 우리의 소명이 받아들여져 관할 부대의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비무장지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살기 때문에 필요할 때마다 오가며 오염되지 않은 비무장지대의 아름다운 풍경을 많이 보고, 느끼고, 마음껏 탐사할 수 있었다. 큰 혜택이라고 생각한다. 짐승들에게 놀라고, 넘어져 다치던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나, 고라니를 사냥하는 개 무리 등을 보는 등 귀한 장면을 많이 봤다. 그래서 애착과 희망이 많다."

- 비무장지대 생태와 관련해 다른 책을 계획하고 있다면?
"<비무장지대, 들꽃>에 이어 <비무장지대, 곤충>을 출간했으나, 생태계의 또 다른 아우성이 들리는 듯하여 <비무장지대, 철새>(가제)를 구상 중에 있다. 철새 이후엔 포유류를 계획하고 있다.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전 60년이 지난 비무장지대에 서식하는 동·식물들을 누군가라도 체계적으로 기록 정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게다가 점점 더 훼손되고 있어 마음이 급하다. 이런 사명감을 앞세워 도전할 생각이고, 꼭 해낼 것이다."

비무장지대 서부지역엔 농용용수로 활용한 둠벙이 산재, 상대적으로 많은 곤충들이 서식한다고.
 비무장지대 서부지역엔 농용용수로 활용한 둠벙이 산재, 상대적으로 많은 곤충들이 서식한다고.
ⓒ 김계성·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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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비무장지대, 곤충>(김계성·김경희) / 세리프 / 2014-12-01 / 1만 3800원



비무장지대, 곤충

김계성.김경희 지음, 세리프(2014)


태그:#비무장지대(DMZ), #분홍빛메뚜기, #곤충, #꼬마잠자리, #왕은점표범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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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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