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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똥만이> 책표지
 <똥만이> 책표지
ⓒ 웃는돌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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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27일 낮 12시 2분]

폭설이 쏟아지는 밤이었다. 중학교 3학년인 큰애와 여섯 살 꽃차남은 큰애 방 침대에 엎드려서 책 구경을 하고 있었다. 사이좋게 들여다보는 책은 박상규 작가가 쓴 <똥만이>. 청소년 소설이라지만 책에 나온 그림과 '똥'이 들어가는 책 제목은 꽃차남을 사로잡았다. 큰애가 동생에게 소리 내서 읽어주기 시작했다.

동만이 동생 '동미'는 새끼 열 마리를 낳았다. 동만이는 봉당으로 내려가서 마루 밑에 있는 강아지 새끼들을 봤다. 원래 동미는 주인 잃고 어슬렁거리던 똥개. <오작교>라는 보신탕집을 하는 동만이 아버지는 "된장 바르지, 뭐" 하면서 밤나무에 개를 매달았다. 동만이는 울며불며 아버지한테 매달렸다. 가까스로 살아난 똥개는 동만이 동생 동미가 되었다. 

사람들은 동만이를 '똥만이'라고 불렀다. 우리 꽃차남은 동만이 이름이 나올 때마다 웃었다. 큰애가 "똥미는 똥개야"라고 애드리브를 해주자 자지러지게 웃었다. 읽어주는 큰애도 웃음이 터졌다. 지켜보던 나도 킥킥거렸다. 큰 애는 두 번째 챕터의 제목 '참 좋았던 시절'까지만 읽고는 꽃차남에게 말했다. 

"썬(꽃차남 애칭), 고만 읽어도 돼? 이거는 썬이 보는 책이랑 완전 달라. 글자가 아주 많다고. 끝까지 소리 내서 못 읽어."
"힝~ 형형(꽃차남은 형아를 이렇게 부름), '똥' 글자 나오는 데만 읽어 줘라."
"그럼, 끝까지 읽어야 된다고. 주인공 이름이 똥만이야. 다 똥이 들어간다고!"

두 아들과 함께 읽은 소설 <똥만이>

이 세상에 온 지 5년 7개월 된 꽃차남, 알 건 안다. 여기서 더 조르면, 한 대 맞는다는 것을. 눈 오는 밤, 형아한테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깨박살 나고 싶은 아이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겠나? 꽃차남은 거실로 가 버렸다. 나는 꽃차남을 따라가서 "엄마가 밤에 잘 때, 형형보다 더 재미있게 <똥만이>읽어줄게"라고 달랬다.  

 <똥만이> 책을 읽던 밤, 폭설이 내렸다.
 <똥만이> 책을 읽던 밤, 폭설이 내렸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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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밖에는 눈이 내렸다. 여전히 큰애는 제 방에서 <똥만이>를 읽었다. 나는 꽃차남을 재우면서 <똥만이> 이야기를 해 줬다. 동만이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욕을 하거나, 밥상을 뒤엎으면서 폭력을 휘두른 건 건너뛰었다. 동만이가 '용감하게' 혼자 버스를 타고 창신여인숙에 따로 사는 엄마를 만나러 간 거랑 받아쓰기 못한 거를 얘기했다.   

"엄마, 똥만이도 <도라에몽>을 좋아하나 봐. 그러니까 공부를 못 하지. 나도 학교 다니면, 진구(도라에몽 절친)처럼 빵점 맞을 거야. 그래서 암기 빵 먹고 똑똑해질 거야."
"암기 빵 안 먹어도, 똑똑해질 수 있어. 동만이는 나중에 자라서 한 글자도 안 틀리고 쓸 수 있는 사람이 됐거든."

꽃차남이 잠들었다. 고른 숨소리가 났다. 막 퇴근한 남편이 "밖에 진짜 눈 많이 와. 나가자" 라고 했다. 큰애에게는 "아빠랑 엄마, 지구 한 바퀴 돌고 올 거야. 꽃차남 깨나 잘 보고 있어"라고 했다. 우리 부부는 차도, 사람도 없는, 텅 빈 거리를 걸었다. 동네 호프집으로 갔다. 큰애 주려고 프라이드 치킨을 시키고는 맥주를 마셨다.

집에 오니까 밤 12시가 넘었다. 남편은 씻자마자 누웠다. 2초 뒤에 코 고는 소리가 났다. 나는 튀긴 닭을 먹는 큰애에게 "책 재밌었어?" 물었다. 제 또래 아이들이 나오는, <시간을 파는 상점><어쨌든 밸런타인>같은 책을 좋아하는 큰애는, 동만이 아버지가 1937년생이라는 부분에서 "재미없을 것 같아요" 하며 책을 덮었다. 그리고는 다시 읽었다.  

"엄마! 똥만이 엄마 유프로는 목욕탕에서 때 밀어도 멋져요. 다리 불편한 남영이 누나랑, 술집에서 일하는 소영이 누나랑도 친하고요. 근데 똥만이 아빠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요."
"어떤 게?"

"1980년대라서 이런 아빠가 있는 거예요? 나는 그 시대를 안 살아봐서 진짜 모르겠다. 고스톱 치러 갈라고 밤에 애기를 버리고 가는 아빠가 어디 있어요? 솔직히 똥만이 아빠, 너무 아니죠?"

"제굴아(큰애 애칭), 엄마는 똥만이 아빠가 하나도 안 낯설어. 배형환 할아버지(친정아빠)는 똥만이네 아버지처럼 배도 안 나오고, 빤스만 입고 돌아다닌 적도 없고, 조금자 할머니(친정엄마)한테 욕한 적도 없는데 닮았어. 동만이 아버지랑 싱크로율 90%. 그래서 엄마는 책 읽다가 울었어."

동만이 아버지랑 싱크로율 90%, 내 아버지를 떠올리다

우리 엄마는 외할아버지가 "그 놈만은 안 된다이" 하며 앓아누웠어도 아빠랑 혼인했다. 고생 구덩이에 스스로 몸을 던졌다. 엄마는 장정처럼 일하면서도, 자식들 도시락을 멋부려서 쌌다. 엄마는 '금쪽같은 내 새끼들'이 중고등학생이 되자 서울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이모한테 갔다. 그때 우리 4남매는 아빠를 기다렸다. 아버지를 기다리는 동만이처럼, 기나긴 밤들을.    

가을 밤, 아버지가 노름하려고 동만이를 버린 그 밤. 어린 것은 울면서 창신여인숙으로 갔다. 목욕탕 비누 냄새가 나는 엄마 방으로. 동만이 엄마는 남영이, 소영이 누나랑 같이 살 집도 구했다. 평온은 짧았다. 동만이 엄마 유프로와 동만이 새엄마 고씨를 떠나보낸, '하늘이 내린 보신탕집 사장'은 동만이를 자신의 오토바이에 태워서 데려갔다.

"엄마, 나는 <똥만이> 결말이 맘에 안 들어요."
"왜? 만약에, 아빠랑 엄마랑 헤어지면 너는 누구랑 살 건데?"
"(뜸들이고는) 엄마요. 아빠는 음식도 잘 하고, 청소도 잘 해서 걱정 안 돼요. 엄마는 밥도 못 하고, 혼자서는 먹지도 않잖아요. 저라도 있어야죠."
"동만이도 그래서 아버지 따라 갔을 거야. 아버지가 더 안 됐으니까."
"그래도 이해 안 돼요. 가짜 같아요. 아버지라고 잘해 준 게 없잖아요."

잘해 준 게 없는 아버지, 우리 아빠다. 우리 할아버지 배희근씨다. 할아버지는 스물두 살에 '빨갱이'로 몰려 학살당했다. 아내 뱃속에 든 첫아기를 끝내 안아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우리 아빠는 '아버지 없는 자식'으로 자랐다. 처자식 건사하기 위해 부서져라 일하던, 그 시대 아버지들을 몰랐다.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의 "오메, 짠한 내 새끼"로만 양육됐다.

우리 큰애 일곱 살 때, 나는 무심코 아빠 핸드폰을 보았다. 당신을 키워준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 사진이 들어있었다. 아버지 얼굴도 모른 채로 '송정떡(송정댁) 손주'로만 살아온 인생. 내가 아빠를 이해할 수 있겠나. 다만, 있는 그대로 봐 주고 싶었다. 나이 예순 넘어서도, 엄마한테 기대 살면서 '신상 자켓'을 좋아하는 아빠. 그런 아빠가 있어서 나도 세상에 왔다.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 편인 큰애는 <똥만이> 책은 더 읽지 않았다. 나는 왜 그런지 물었다. 받아쓰기 못하는 동만이가 선생님한테 "도대체 '예'와 '얘'가 왜 달라요!"라고 따질 때에 완전 공감되는 게 싫었단다. 엄마도, (그림만 보고서) 꽃차남도 웃는 그 장면에서, 초등학교 1학년 때 받아쓰기 못해서 받은 고통이 되살아났단다. 그래서 나한테 따졌다.

"엄마, 저 학교 들어갈 때까지 왜 한글 안 가르쳤어요?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요? 진짜 너무 힘들었어요. 꽃차남은 한글 가르쳐요. 대충 읽을 줄 안다고 그냥 두면 안 돼요. 펑펑 놀리지 말라고요. 쟤도 내년에는 일곱 살이에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는 꽃차남이 떠듬떠듬 읽는 한글 실력에 만족한다. 동만이 아버지도 노름을 끊었을 리 없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밤에 집으로 돌아간 아버지와 동만이가 하하호호 살았을 리 없다. 그래도 <똥만이> 책은 비극적이지 않다. 외롭고 슬픈 일을 많이 겪은 동만이는 외롭고 슬픈 뻥튀기 아저씨나 남영이 누나, 소영이 누나 덕분에 컸다. <똥만이> 책을 쓴 작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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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독립청춘>, <소년의 레시피>, <서울을 떠나는 삶을 권하다>를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