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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 '명품 조연'이란 말이 자주 등장했다. 사람들은 조연 연기자가 지금의 위치에 오기까지 거친 여러 어려움에 귀 기울였다. '명품 조연'은 연기 외길 인생 속에서 마침내 빛을 본 장인같은 존재로 여겨졌다.

지나가는 행인, 계산하는 점원, 청소부 등 드라마와 영화의 자연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한 모든 요소에 그들이 있다. 이들의 역할은 소중하다. 단역배우 이야기를 풀어본다. 배우 성현미씨를 지난 11월 21일부터 총 세 차례 만났다.

 배우 성현미씨.
 배우 성현미씨.
ⓒ 김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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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 첫 만남 그리고 걸어온 길

배우 성현미(47)씨는 올해로 20년째 배우의 길을 걷고 있다. 현재도 서울 대학로에서 활동 중이다. '단역배우'로 활동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그녀는 인터뷰 요청은 그리 달갑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내 얘기를 들려준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죠. 스스로 특별함 없이 살아온 사람이라고 여겼어요. 막상 인터뷰 요청을 받고 내가 남들과 다른 특별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니, '아, 내 삶도 헛되진 않았구나' 싶었어요."

Scene #1 - 어린 시절을 회상하다

그녀는 대구에서 2남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가부장적 집안에서 엄격하게 자랐다. 그녀는 내성적인 편이었고, 튀지도 않았다.

"밤 9시만 넘으면 어른들이 '목소리가 크면 안 되고, 소근소근 얘기하라'고 할 정도로 보수적이었어요. 저도 남 앞에 나서는 걸 두려워 했으니, 제가 연기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죠."

이런 그녀가 바뀐 계기는 대학교 입학 이후.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생활을 즐기면서 그녀의 성격도 외향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강변가요제를 부모님 몰래 나갔어요. 당시에 그런 곳을 나가는 걸 부모님이 좋지 않게 보셨죠. 비록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저에게는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무엇보다 남들 앞에 서서 무엇을 보여준다는 것이 즐거웠어요."

대학교 때의 경험은 그녀가 무대를 동경하게 만들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느낀 색다른 즐거움, 그녀는 그 느낌을 잊지 못했다. 구인광고지를 통해 배우 오디션을 봤고, 그녀의 배우 인생이 시작되었다.

Scene #2 - "때리 치아라!" 타박에도 즐거웠던 극단 생활

"때리 치아라!"

연극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해 밖으로 '싸돌아' 다닐 때, 그녀의 아버지는 강하게 반대했다. 그녀는 평소에도 없던 고집을 부렸다. 그 정도로 연극은 그녀가 처음으로 욕심낸 일이었다.

대구의 한 작은 극단에서 시작한 극단생활은 고됐다. 아침에는 아동극을 올리고 저녁에는 성인극을 올렸다. 남는 시간엔 시내에 나가 포스터를 붙이고 팸플릿, 할인권 등을 돌렸다. 부모님께 타박 받고, 고생의 연속이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그때는 별 보며 나가서, 별 보며 들어오는 생활을 반복했어요.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는데도 마냥 재미있었어요."

그렇게 몇 년을 하다 고민에 빠졌다. 연기 고민을 할 새도 없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뭔가 채워지지 않는 게 느껴졌다.

"언제부터인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기 힘들었어요. 이런저런 역할을 번갈아 맡다 보니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걸까' 의문도 들었어요. 감정에 몰입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보니 공연 후에 여운도 크게 남더라고요. 공연 하나 끝나면 한동안은 아무 연락도 안 받고 몇 달간 혼자 숨어 지낼 정도였어요."

배우로서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고심 끝에 더 큰 무대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그녀의 나이 40. 주위의 만류에도 그녀는 무작정 서울로 떠났다.

Scene #3 – 늦은 상경, 고시원에서 밤새 울었네

서울은 친인척 하나 없는 낯선 땅이었다. 성신여대 주변 고시원에 자리를 잡았다. 고시원은 너무 좁고 답답했다. 처음 보름 동안은 울면서 뜬 눈으로 밤을 보냈다. 자신이 선택한 삶,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나이 마흔에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할 때는 문을 활짝 열고 지냈어요. 화장실 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쳐다보고 가는 게 무섭기도 했지만, 왠지 그 문을 닫을 수가 없었어요."

외로움만큼이나 큰 문제는 돈이었다. 고정적인 일자리를 유지하기 힘든 조건, 직장을 구하기엔 늦은 나이 등이 그녀를 더욱 지치게 만들었다. 그렇게 5년을 산 고시원. 이마저도 재건축을 이유로 나가야 했다.

"정말 많이 서러운 시기였어요. 제 상황에서 대출이나 아는 지인에게 돈을 빌릴 엄두도 못 냈죠. 눈앞이 캄캄했어요. 어쩔 수 없이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부모님도 우시고, 저도 덩달아 울었어요."

 그녀의 첫 서울 생활 터전이었던 고시원 외부 모습.
 그녀의 첫 서울 생활 터전이었던 고시원 외부 모습.
ⓒ 김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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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을 통해 가까스로 원룸을 얻을 수 있었지만, 지금까지도 돈 문제는 그녀의 생활을 옥죄는 커다란 숙제로 남아 있다.

[DAY 2] '단역배우' 그리고 '배우 성현미'

Scene #4 – 생각지도 못한 단역배우, 그 첫 길에 서다

"서울 대학로를 TV 드라마로 가는 디딤돌로 삼는 사람들이 싫고 미웠어요."

대구에서 올라올 때 그녀는 자신이 드라마 연기를 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TV를 통해 성공하려는 사람들이 대학로에 넘쳤어요. 연극을 그저 성공을 위한 중간 단계로 여기는 사람이 많았아요. 연극을 대하는 진지함과 열정이 무시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죠. 저마저 그러고 싶진 않았어요."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한 분야만 고집하기도 힘들었다. 매년 쏟아지는 연극학과 출신 졸업생들 사이에서도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배우 공급이 많으니 출연 기회 얻기도 힘들었다. 그녀에게 이런 변화는 가혹했다. 급격한 변화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던 그 때, 우연찮은 계기로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제 프로필을 방송국이나 여러 단체에 몇 번 보내본 적은 있었어요. 그때만 해도 큰 기대는 없었는데, 연극협회에 있는 제 프로필을 보고 드라마 관계자 분께서 연락을 주셨더라고요."

작은 역할이었지만, 처음으로 TV에 출연한 당시를 그녀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침 일일 드라마 출연 제안을 받고 서울에서 수원까지 갔다. 대본 연습을 마치고 한참을 기다려 촬영했다.

"아침 일찍 왔는데 점심 먹고 나서야 첫 촬영을 했어요. 그나마 겨우 제 역할이 끝났는데도 주인공과 겹치는 신을 추가로 찍고 싶다고 좀 더 기다려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녀는 좌불안석이었다. 당시 대학로에서 <만화방 미숙이>라는 공연에 매일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 오후 4시에 도착한다던 주인공은 오후 6시에 도착했다. 오후 8시 공연을 해야 하는 그녀였기에 초조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수원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 사람들이 보거나 말거나 울면서 '미숙이' 분장을 했어요. '나 하나 때문에 연극이 펑크 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뿐이었어요. 다행히 연극은 올렸지만 참 서러웠죠."

호되게 아픈 첫 촬영이었지만, 이날 이후 그녀는 몇 번의 TV 출연 기회를 더 얻었다. 당시 촬영한 감독이 미안함에 그녀를 또 캐스팅한 것이다. 본격적인 '단역배우'의 길에 들었다. 그리고 <괜찮아 사랑이야>, <피노키오>, <미스코리아> 등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Scene #5 - 연극 무대 미련을 버리지 못하다

몇 번의 TV출연 등으로 단역배우 길에 들어섰지만, 그녀의 마음 속에는 항상 연극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다. 연극은 그녀가 열정을 가질 수 있던 소중한 공간이었다. 그녀가 주로 활동한 대학로 주변은 아직도 그녀만큼이나 열정적인 배우들이 많다.

"생활에 여유만 있다면, 아직도 다시 무대에 서고 싶은 마음이 커요. 나라는 사람을 온전히 캐릭터에 녹아낼 수 있다는 매력이 있거든요."

우리는 그녀가 자주 공연한 소극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집과 그리 멀리 않지만, 그녀에게는 정말 오랜만에 가보는 길이었다. <만화방 미숙이>라는 작품을 올렸던 장소이자 그녀의 인생에도 큰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돈이 너무 없던 시절, 현실과 타협하고 어느 홈쇼핑 정직원으로 취직을 했어요. 그 무렵 <만화방 미숙이>의 캐스팅이 들어왔죠. 정말 많은 고민을 했는데, 결국 정직원 자리를 때려치고 나왔죠. 그만큼 <만화방 미숙이>의 캐릭터에 욕심이 났으니까요."

 ‘만화방 미숙이’ 초연을 함께한 소극장 앞에서.
 ‘만화방 미숙이’ 초연을 함께한 소극장 앞에서.
ⓒ 김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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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6 - 연기자, 그녀가 꾸는 목표

그녀는 여느 배우와 다름없이 연기자로서 자신만이 가고 싶은 길이 확고하다.

"김혜옥 선배님같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몇 년의 공백기가 있으셨지만, 어느새 자신만의 컬러를 자연스럽게 녹아내시는 모습이 참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허나 아직은 그녀 스스로 많이 부족함을 느낀다.

"작은 배역의 틀 속에서는 사실 특별한 무언가를 보여준다거나 내적 표현에 대한 고민을 할 기회가 없죠. 연기 실력도 그만큼 늘 기회가 줄어들기 마련이에요." 

단역 배우들에게는 주어진 기회 속에서 자신만이 가진 강점을 보여주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그녀는 연기 실력 부족보다도 주어진 기회를 잡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도 느낀다.

"한 드라마에서 비교적 고정적인 배역을 맡은 적이 있어요. 저에겐 큰 기회였는데, 정작 대본에 시키는 대로만 표현하는 데에만 급급했어요. '좀 더 색다른 표현을 해볼까' '사투리를 써볼까' '살을 찌워 볼까' 같은 고민을 더 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어요. 나만이 가진 색깔을 잘 살렸다면 좀 더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하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고 있지만 생각보다 더디게 가니, 고민이 많다. 

[DAY 3] 현재에서 미래를 희망하다

Scene #7 – 단역배우 캐스팅, 순탄치만 않은 길

단역배우로서의 생활을 물어봤다. 반응은 간단했다.

"누군가 한다면 말리고 싶어요. 남들은 TV에 나온다고 잘 나간다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단역배우가 되는 과정도 복잡하고 험난하다. 단역배우가 출연할 수 있는 작품 수에 비해 공급되는 배우의 수는 많다. 결국 자신들의 얼굴을 알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만 한다.

"방송사 돌아다니면서 프로필을 돌리는 수고는 기본으로 필요해요. 나를 알리는 것과 동시에 사람들에게 눈도장을 찍어야 '나'라는 사람을 오래 기억할 수 있거든요. 인맥을 만드는 거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제작자와 연기자 사이에서 다리를 놓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캐스팅 디렉터'가 바로 그들이다. 단역배우는 극중 비중이 적기 때문에 제작자들이 일일이 섭외하기보다는 캐스팅 디렉터를 통해 섭외하는 경우가 많다. 단역배우들에게 캐스팅 디렉터의 존재는 그들의 출연을 위해선 중요하지만, 부담이 되기도 한다. 출연료의 상당수를 수수료로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정적인 출연이 아니다 보니 수수료 부담이 커요. 교통비나 기타 부가적으로 드는 비용도 순전히 배우가 부담해야 하니, 정작 손에 쥐는 수입은 더 적어지죠."

Scene #8 – 단역배우, 그들이 겪는 불합리한 수익구조

단역배우 신분 유지도 힘든 일이다. 우리나라 드라마는 주로 대본을 매주 급하게 만드는 이른바 '쪽대본'을 통해 제작된다. 어떤 배역은 갑작스럽게 섭외되기도 한다. 이를 대비해야 하기에 고정적인 다른 직업을 갖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다.

일할 기회가 조금이라도 생기면 가리지 않고 했지만, 지금은 작은 일자리를 구하기도 힘들다. 그녀의 나이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마트 아르바이트나 연기 수업 특강도 해봤고, 의상디자인을 전공한 경험을 살려서 무대 의상 제작 아르바이트도 했어요. 그럼에도 수입이 일정치 않으니 카드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죠. 고향 친구에게 돈을 빌려서 쓰기도 했어요. 지금까지도 마음의 빚이죠."

문제의 한 원인에 단역배우 수익구조도 있다. 예전에는 한 드라마에서 단역배우 역할이 많았다. 여러 드라마에 출연한다면 어느 정도 생활을 유지할 정도는 벌 수 있었다. 지금은 상황이 열악하다. 한정된 제작비에 비해 주인공의 몸값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자, 드라마 내의 단역은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회당 출연료도 크게 떨어졌다. 적어진 기회와 줄어든 출연료 등으로 단역배우들의 상당수는 생활고를 겪는다.

"배우들은 1~12까지의 등급에 따라 몸값이 정해져요. 저는 올 초에 기회가 닿아 등급을 받는 배우가 되었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은 수익 자체도 일정치 못한데다가 그 수준도 낮아요. 등급을 받는다 하더라도 제작비 절감을 위해 (섭외를) 기피하기도 하죠."

Scene #9 – 국가 복지, 그들에겐 단비 같은 제도

올해 처음으로 '예술인 긴급복지지원' 제도가 도입됐다. 생활이 어려운 예술인들을 선정하여 매달 100만 원씩 최대 8개월간 지원하는 제도다. 반응은 굉장히 뜨거웠다. 이미 편성된 예산이 올 초에 모두 소진이 되었을 만큼 대상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당장 내년 예산 편성안은 전년 대비 5억 원(2.7%) 증액에 그쳤다. 최저 임금 상승률 7.1%에 대비하면 턱 없는 수준이다. 그나마도 생계 지원 비용이 늘었으니, 창작 지원 비용을 대폭 삭감하여 '돌려막기' 정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그러나 이마저도 그녀에겐 단비와 같다. 그녀 또한 이 제도의 혜택을 받은 1600여 명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제도가 좀 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방향으로 흘려가길 원했다.

"100만 원 남짓 되는 돈이 저에겐 굉장히 소중해요. 제가 가야 할 길에 집중할 수는 여유가 생겼으니까요. 이 지원이 단지 보여주기 식이 아닌, 좀 더 장기적인 정책으로 자리잡으면 좋겠어요. 적어도 일정한 수입을 얻을 수 있을 때까지만이라도 뒷받침해 주길 바라죠. 돈 고민 없이 내가 꿈꾸는 미래에만 모든 노력을 쏟아 부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아요."

대선배들의 뒤를 잇는 '국민 엄마'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그녀. 5년 뒤, 혹은 10년 뒤 그녀는 어떤 타이틀을 단 배우가 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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