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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결정했다. 2014년 12월 19일은 우리나라 민주화 역사에서 영원히 잊지 못할 날로 기억될 것이다. 지난 1988년, 수많은 국민의 눈물과 희생으로 세워진, 바로 그 민주화운동의 산물로 태어난 헌법재판소가 역설적이게도 이제 우리 민주주의의 걸림돌로 작용한 것이다.

지금 우리 민주주의 역사의 시계는 몇 시인가. 나는 이 시점에서 처연한 심정으로 1987년 6월 항쟁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지금 우리는,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던 '민주사회'를 진정으로 이룩했는가.

정의를 세우지 못한 민주주의는 '가짜'

미국의 수도 위싱턴에 있는 미 연방 정부 법무부 청사 입구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오직 정의만이 사회를 지탱한다."(Justice alone sustains society) 그렇다. 정의를 바로 세우지 못한 민주주의는 태생적으로 허약할 수밖에 없는 숙명이다. 아니 정확히는 이렇게 말해야 하리라.

"정의를 바로 세우지 못한 민주주의는 '가짜'다."

우리 현대사는 독재정권으로 얼룩진 역사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이라는 '절대 군주'의 개인적 몰락을 겪으면서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과거 청산이라는 정의를 사회 전반에 걸쳐 한 번도 제대로 실현하지 못했다. 이는 우리 역사의 '아킬레스건'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그 혹독한 역사의 업보를 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독재정권을 떠받들던 근본 토대를 혁파하지 않고 이룩한 어설픈 형식적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약한 토대 위에 구축된 모래성인지를, 지금 우리는 헌재의 판결로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가깝게는 군부 독재 청산의 실패와, 멀게는 친일파 청산 실패가 우리에게 주는 준엄한 역사적 교훈은 무엇인가? 바로 권력 풍향에 민감한 변절자의 양산이다. 절대권력에 빌붙는 기회주의자들의 창궐이다.

'2014년 12월 19일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죽었습니다'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2년 못살겠다! 다 모여라! 국민촛불' 집회에서 한국청년연대 소속 회원들이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규탄하는 현수막을 들어보이고 있다.
▲ '2014년 12월 19일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죽었습니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2년 못살겠다! 다 모여라! 국민촛불' 집회에서 한국청년연대 소속 회원들이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규탄하는 현수막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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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가정처럼 부질없는 것도 없다지만, 만약 우리가 군부 독재시절의 물적토대를 떠받치던 공안검사들을 일부나마 청산했다면, 오늘날 이런 어처구니없는 헌재의 판결은 애초에 불가능했을 것이다.

유신 헌법 제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자가 아직도 권좌의 핵심에서 칼을 휘두르고 있는 현실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프랑스는 세계 2차 대전 중, 단 3년이라는 짧은 기간 나치 독일의 지배를 받았지만, 그들이 왜 그토록 민족배반자들을 철저히 단죄한 이유를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깨닫는다.

헌재의 판결 전 순진한 나는, 사실 인간의 '일말의 양심'이라는 것을 믿고 싶었다. 그들은 최고의 엘리트가 아닌가. 더구나 법조인이란 얼마나 논리 정연한 사고와 명쾌한 법리를 생명처럼 중시하는 자들인가. 그러나 역사와 인간에 대한 심오한 이해 없이, 부당한 법조문 적용에만 골몰하는 판결이 얼마나 몰상식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분명히 보았다.

그 판단의 준거가 된 법이 어떤 법인가? 국가보안법. 기억하자.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진척될 때마다 폐기가 거론되던 대표적인 악법. 이를 폐기는커녕 개정조차 못 하는 현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더군다나 일제 시대 독립 운동가와 우리 민족을 탄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일제시대의 '치안유지법'이 지금의 국가보안법의 모태가 됐다고 하는 작금의 현실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해방된 민족으로서 문명 국가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평생을 가난한 농부로 살았던 전우익 선생의 질타가 아직도 쟁쟁하다.

"민중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의 편을 들어 왔다. 서울을, 나라를 이렇게 만든 근본적인 책임은 민중이 져야 한다. … 곡식이 자리 잡고 제대로 크면 잡초가 맥을 추지 못한다. 세상도 그런 게 아닌가."

누가 누구를 탓하랴! 수십 년의 독재 정권을 겪고서도, 바로 2년 전, 그날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독재자의 분신을 우리의 지도자로 선택했으니. 어쩌면 그때 이미 역사의 퇴행은 예견된 일인지도 모른다. 말로는 '통일 대박'을 얘기하지만 남북 화해를 주장하면 종북세력이 되고, 통일을 말하면 빨갱이가 되고, 군사주권의 회복을 외치면 친북세력이 되는 이율배반의 현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두 동강 난 민족의 분단을 자양분 삼던 수구세력이 이제는 동서분열의 맹목적 지역감정을 자신의 숙주로 삼아 자신들만의 기득권 수호를 위해 교묘히 이용하는 저열한 작태를 예지의 눈으로 꿰뚫어 보길 바란다. 고 김남주 시인의 시가 지금도 살아서 우리의 가슴을 친다.

양심 세력의 분발을 촉구한다

지금 이 나라에는 보수와 진보가 있는 게 아니어요
우익과 좌익이 있는 게 아니어요
매국노와 애국자가 있을 뿐이어요
그 중간은 없는 거예요 어머니
- 김남주 <어머님께>

이렇게 절규했던 시인도 그 공안 검사들에 의해 10년의 세월을 철창 속에 갇혔다. 예나 지금이나 통일을 말하면 빨갱이가 되고, 용공이 되는 세상은 아직도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하자. 분단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최고의 가치는 분단을 극복하려는 우리의 노력과 몸부림임을. 그리고 그 통일의 여정에서 우리가 당하는 굴욕과 수난임을. 그래서 지금 우리가 겪는 이 고난과 상처가 장래, 통일의 시대에는 자랑스런 역사의 훈장으로 기억되는 날이 결코 오고야 말리라는 것을.

아직 좌절하기에는 이르다. 어느 선승의 게송처럼 "주먹만 한 실패 뒤에는 주먹만 한 성취가 있고, 산 덩어리 만한 실패 뒤엔 산 덩어리만한 성공이 있는 법"이다. 다시 한 번 양심 세력의 분발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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