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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병원 가보셔야 될 것 같아요."

지난 2013년 9월, 대학교 4학년 2학기에 재학 중이던 박아무개(28·남)씨는 대기업 입사를 위해 SSAT(삼성직무적성검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다. 시험 3일 전 대장암 2기 최종 판정을 받았다. 박씨는 시험과 취업 준비를 포기하고 치료를 시작했다.

"처음 검사 받았을 때 '이거 암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병원에서는 운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증상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아시고 검사 받았냐고... 바로 휴학하고, 그해 11월에 수술했어요."

수술 후 다행히 암세포 전이는 없었다. 하지만 간 쪽으로 전이될 움직임이 보인다고 해 예방 목적으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그는 "수술할 때도 괜찮았는데 항암치료 소식에 눈물이 났다"고 회고했다. 지난 4월까지 총 10차례의 항암치료를 받았다.

"지금도 손발 저림이 심한데 항암치료를 할 때는 얼굴 쪽도 그랬어요."

지난 17일에 만난 그는 인터뷰 중에도 손을 조금씩 떨었다. 10차 치료에서 항암제를 넣는데 쇼크가 왔다. 다행히 긴급호출 버튼을 눌러 도움을 청했다.

"숨도 안 쉬어지고 얼굴도 시뻘게지고 근육과 뒤통수가 부풀어 오르는 느낌도 났어요. 그 다음엔 정말 죽을 것 같아서 항암치료를 안 받았어요. 예방차원에서 하는 거니까 무리해서 하지는 말아야겠다 싶어 그만 뒀죠. 10차 치료가 끝난 날이 아직도 기억나요. 4월 16일, 세월호 사건 터진 날이었거든요."

"친구들은 열심히 사는데..." 취업 걱정에 고민만 커져

왼쪽부터 박아무개, 정아무개, 남아무개씨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모습.
 왼쪽부터 박아무개, 정아무개, 남아무개씨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모습.
ⓒ 안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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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가 끝난 뒤 가장 걸리는 문제는 취업이었다. 박씨는 "원래 사업을 할 생각이 있어서, 일단 기업에 들어가 자금을 모으려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 일반적인 취업은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면접관이 공백기 동안 무엇을 했느냐고 묻으면 투병했다고 밝히기가 망설여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가 '암 환우 커뮤니티'에서 알게 된 한 친구는 최근 기업 면접에서 투병한 사실을 밝혔더니, 면접관이 "다른 면접에서는 그런 이야기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올 8월에는 토익 학원에 가다가 손 떨리는 증상이 심해져서 한 달 정도 다시 집에서 쉬었어요. 일어나면 따로 할 만한 게 없으니까 일단 컴퓨터를 켜고... 운동 갔다 와서 컴퓨터 좀 하다가 잠드는 생활이 반복됐죠. 또래 친구들은 미래를 위해 열심히 사는데 나는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는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려 한다. 문제는 공무원 시험에도 '결격사유'가 있다는 것이다. 신체검사 결격사유의 첫 항목이 '예후가 좋지 않은 악성 종양'이다. 그는 "시험 다 보고 나서 합격이 취소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불안감을 표시했다.

이에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19일 통화에서 "투병을 했던 이들 개개인의 신체 조건에 따라 업무수행이 가능한지의 여부만 담당의가 판단하는 것"이라며 "의사 개인의 소관이 다소 개입될 수는 있지만, 의학기술의 발달을 감안해 그 판단을 존중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또한 그는 신체검사 과정에서 합격이 취소된 사례가 있는지에 대해 "통계 관리가 되지 않아 알 수 없다"고도 답했다.

지난 12일에 만난 정아무개(26·남)씨도 최근 면접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림프종(임파선암)을 앓은 적이 있다. 군대 가기 전 투병했기에 이력서에는 군 면제 사유로 '투병'이라고 쓸 수밖에 없다.

그는 대기환경과학을 전공했고 대학원 진학 후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나 UN에서 기후변화를 연구하겠다는 꿈도 있었다. 하지만 치료가 끝나고 대학원을 준비하려고 할 때마다 '재발 의심'이라는 검사결과가 발목을 잡았다. '공부 쪽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작년 4월 학원 풀타임 강사 면접을 보았다. 이 자리에서 그는 "치료를 받았는데 할 수 있겠느냐, 좀 더 쉬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르바이트도 마찬가지였다. 정씨는 "아무래도 고용하는 쪽에서는 언제 재발할지 모르고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야하니, 업무를 맡기기 힘들 것이란 점은 이해한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다행히 정씨는 올해 4월부터 한 생활가전 기업의 영업직 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면접 때 "일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정기검사 결과도 좋고 지금은 이상 없다, 하지만 앞으로 정기검사나 건강 문제 때문에 나에게 휴식을 주어야 할 일은 있을 것"이라고 솔직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그는 "다행히 이 업무는 본인이 자율적으로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일이라서 합격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을 시작한 뒤 정기검사 결과가 좋아졌다고 밝혔다.

"직업, 정신 상담 등 필요해"

영화 <50/50>에서 척추암에 걸린 주인공은 항암치료와 함께 심리치료도 받는다.
 영화 <50/50>에서 척추암에 걸린 주인공은 항암치료와 함께 심리치료도 받는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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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진출할 나이에 투병 생활을 한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는 직업 상담 지원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정씨는 치료 이후 항공운항과 관련된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혹시 몰라서 찾아본 관련 책에서 '혈액 질환을 가진 사람은 지원 불가'라는 항목을 발견했다. 그는 "나는 그 항목을 미리 찾아 다행이었지만, 이런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없다"며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치료받은 뒤 직업 관련 질문을 하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아무래도 고민이 많죠.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어느 정도의 업무 강도를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하고요. 직업상담사분들조차도, '특이한 사례이기 때문에 어떻게 조언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해요. 직업상담 지원이 있으면 20대 환자들에게 좋지 않을까 해요."

질환이나 치료 정보의 접근성 문제도 지적했다. 정씨는 "확진을 받고 나서 논문이나 의학서적을 찾아보기도 했다"면서 "정보를 알고 치료를 시작하니 마음이 조금 편했다"고 한다. 치료 과정을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는데, 댓글이 많이 달렸다.

그는 "(독자들이) 치료 과정을 편하게 물어볼 수 있는 곳이 딱히 없으니, 변두리에 있는 내 블로그까지 와서 물어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대들은 인터넷 검색을 활용하지만 한계가 있다. 인터넷 백과사전이나 국립암센터와 같은 사이트에서 정보를 제공하지만, 실제 치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민에 관한 정보는 부족하다. 정씨는 "의사 선생님들도 쉽게 풀어서 이야기하지 않고, 무엇보다도 만날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어떻게 치료하고 뭐가 어려우며, 주변인은 어떻게 환자를 도와야 하는지 등은 백과사전에는 나와 있지 않잖아요. 국가적 차원으로 모든 정보를 제공하는 건 무리겠지만, 그래도 (정보)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건 문제라고 봐요."

상담을 병행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남아무개(29·여)씨는 작년에 림프종 판정을 받고 올해까지 치료를 받았다. 그는 "나는 암환자였고 (취업 등에서) 제약도 많으니 상대적 박탈감이 있었다"며 "몸은 나았지만 아직 마음은 다 낫지 않았다"고 말했다.

남씨는 "내 마음을 '힐링'할 수 있는 치료소가 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다행히 지금은 날 사랑하게 됐어요. 투병 끝난 직후엔 자신감도 없고 남들과 비교하며 항상 모자라다는 생각을 했죠. 그래도 일을 하면서 돈을 버니까 성취감과, 자신감이 생겼어요. 머리도 길었고요(웃음).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오늘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즐겁고 재밌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오늘의 주인공은 나니까, 나를 위해서 뭐든 많이 하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20대 청춘! 기자상 응모글



태그:#20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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