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통합진보당 전 의원들이 지난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진보당 강제해산과 의원직 상실 결정에 항의하는 1인 시위를 시작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재연, 이상규, 오병윤, 김미희 전 의원.
▲ 진보당 전 의원들 "의원직 박탈 무효다" 통합진보당 전 의원들이 지난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진보당 강제해산과 의원직 상실 결정에 항의하는 1인 시위를 시작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재연, 이상규, 오병윤, 김미희 전 의원.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이 시대가 바야흐로 '사상 검증의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목도하고 있다. 진보적 지식인들도 겁을 먹은 것 같다. 신문 지상에 실린 헌재의 결정을 비판하는 글들에서조차 "통합진보당을 옹호하지 않는다"라는 글귀들이 공통적으로 눈에 띈다.

물론 그동안 통합진보당이 비판 받을 행위를 했고, 그러므로 반성 차원에서 그 당을 비판할 수 있다. 또한 이 땅 진보의 발본적 반성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과제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이겨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속에서 이런 글귀들은 그 글의 필자들이 겁을 먹었다는, 혹은 불필요한 오해는 받기 싫다는 의미로 읽힐 수밖에 없다.

실제로도 통합진보당이 지닌 문제점(예컨대 지나친 투쟁성, 경직성 등)이 정당 해산의 '정직한 근거'는 아니었지 않은가. 문제의 핵심은 '지배 권력에 의한 자의적 정당 해산' 그 자체에 있는 것이다. 이는 그 정당에 대한 옹호 여부와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이미 이러한 분위기 조성만으로도 박근혜 정권의 의도는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실제로도 헌재 결정 직후, 마치 이미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알고 있었다는 듯 보수단체는 통합진보당원 전원을 검찰에 고발했고, 검찰은 당장 수사에 착수했다. 이런 살얼음 같은 정국은 일각의 예측대로 2016년 총선 때까지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 그런 만큼 지금 이 땅은 이미 사상 검증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민중이 스스로 불길 속으로 들어가는 형국

지금 이 땅 민중은 침묵하고 있다. 이미 국가, 군대, 학교, 직장에서 '체제에 순응하는 인간형'이 너무 많이 양산되었기 때문이다. 시장만능주의의 시대적 조건 속에서 오직 생존을 위해서만 분투해야 하는 이들로선 그러한 태도를 취하며 침묵으로 응답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민중이 제 스스로 불길 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당장 이런 사상 검증의 시대를 배경으로 이 땅 우파 기득권 네트워크는 민중의 생존 조건을 억압, 수탈, 박탈하여 자신의 배를 채우고 대를 이어 부와 명예와 권력을 누리려 들 것이다.

오늘 청와대가 '정규직 고용유연화'를 내년 국정과제로 꺼내들고 나온 것은 이러한 징조다. 그동안 민중의 변화 열망에 불안을 느끼던 이들은 대대적 이념공세를 통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체제 복종을 강요하며 기존의 사회경제적 불평등 구조를 한층 강화해 나갈 것이다.

일각에서는 그래도 설마 유신시대가 완벽하게 재현이 되겠느냐고 말하기도 한다. 아무리 그래도 역사가 완벽하게 퇴행할 수 있겠느냐는 믿음의 발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역사에는 정해진 법칙성이 없다. 역사에는 변화만이 있을 뿐이다. 단, 그 변화는 '반동적·복고적 변화'가 될 수도 있고, '진보적 변화'가 될 수도 있다는 유동성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그러한 유동성은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인간들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따라서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반동적 변화를 주도하고 그것에 대해 수수방관한다면 당연히 유신시대보다 더한 시대도 현 시대에 도래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지금은 '사법의 정치화'가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정점에 달한 시대다. 혹자는 지금의 현상을 '정치의 사법화'라고도 칭하나 실상은 그 반대다. 현대 정치가 특정 의제에 대한 사회적 협의의 과정을 거치더라도 궁극에는 입법을 통하거나, 이미 존재하는 법에 의해 법치로 귀결되는 것은 필연의 현상이다. 그러므로 '정치의 사법화'가 아니라 실상은 '사법의 정치화'인 것이다.

사법부가 지배 권력에 의해, 혹은 지배 권력의 눈치를 보며, 혹은 스스로 지배 권력이 되어,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정치적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속에서 정의와 양심, 진실과 논리는, 그나마 지금까지는 그것이 부분적으로 법정에서 통하기도 했지만, 더 이상은 통하리라는 기대조차 할 수 없다. '지록위마'는 '올해의 사자성어'를 넘어 '앞으로를 계속 지배하는 사자성어'가 될 것이다.

일제 식민주의에서조차 못 벗어나는 판

한 번 퇴행한 역사를 복원하고, 극복하는 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소요될지는 모르겠다. 사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일제 '식민주의'에서조차 제대로 못 벗어나고 있는 판이 아닌가. 지금 국민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일제 식민지 권력이 식민지 민중을 대하던 태도에서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으며, 아울러 대기업 재벌이 지금 자국민을 식민 지배하고 있다는 비판은 이미 오래 전에 제기되었다.

이처럼 '축적된 역사'가 역사를 만들어냄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의 모습은 그러한 역사에 대한 진지한 고민 자체가 결여된 모습이다. 헌재의 안창호, 조용호 재판관은 진보당의 행위를 "대역행위"라 하였다. 대역(大逆)이라는 말은 조선시대에도 쓰였지만, 우리 역사에서 공식적 역사용어로 채택된 적은 없다.

'대역'이라는 말이 '공식적 역사용어'로 통용되는 경우로는 1910년 일본의 '대역사건(大逆事件)'이 유명하다. 고토쿠 슈스이 등 사회주의자 26명이 명치천황 암살을 계획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되거나 투옥된 이 사건은 '날조된 사건'이었지만, 이후 일본 내에서 반제국주의와 사회주의를 부르짖던 이들은 질식 상태에 빠졌다. 이렇게 자정 능력을 상실한 일본은 뒷날 천황 중심의 군국주의 파시즘 체제를 확립하여 자국민과 아시아 전 생령을 도탄에 빠트렸다.

과연 지금 우리 곁에는 '보이지 않는 천황'이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아직도 우리는 식민지배를 받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단지 지배의 주체가 일본이라는 '이족'에서 '동족'으로 바뀌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시대에 "대역" 운운하며 역사를 파괴한 그들이야말로 역사에 대한 우리 모두의 대역을 주도한 자들로 기록될 것이다.


태그:#헌재, #사상 검증의 시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시민. 사실에 충실하되, 반역적인 글쓰기. 불여세합(不與世合)을 두려워하지 않기. 부단히 읽고 쓰고 생각하기. 내 삶 속에 있는 우리 시대 이야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