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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 결정 난 통합진보당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에 대해 사상초유의 정당해산 결정을 내린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 안국역에서 통합진보당원들이 모여 집회를 열고 있다.
▲ 해산 결정 난 통합진보당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에 대해 사상초유의 정당해산 결정을 내린 지난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 안국역에서 통합진보당원들이 모여 집회를 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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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통합진보당에 관한 위헌 정당 심판 청구가 주먹 세계에서나 나올 법한 '8:1'이라는 스코어로 나오는 순간, 나는 직장을 잃어 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헌법재판관 8인에 의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것으로 판결된 통합진보당의 당직자였다. 정당의 차원에서 헌재의 결정은 '정당 해산'이었으나, 당직자인 나의 입장에서는 '직장 폐쇄'였으니 나는 박근혜 정권에 의해 직장을 잃어버린 셈이다.

위헌 정당의 당직자도 생활인이더라

선고 당일 오전만 하더라도 우리(당직자)는 해산 인용 시 6:3, 최악의 경우 7:2를 예상했다. "내기를 하는 건 어떠냐"는 농담도 했으나 이 불경스러움을 저주하듯 우리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헌법재판소 근처의 현대 사옥 맞은편 집회장에서 선거 유세용으로 쓰던 방송차로 당원 500여 명과 함께 생중계를 지켜 보던 우리는 예상치 못한 참담한 결과에 아무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 연신 담배를 피워대는 사람, 괜스레 우왕좌왕하는 사람, 개중에는 멍을 때리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참이나 서로 말이 없었다.

'나의 꿈과 인생이 8:1로 부정 당했다'는 것에 대한 한없는 분노가 켜켜이 쌓이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한편 '이번 달 세금은 어떻게 하나', '지난 지방선거 때 빚진 것 어떻게 갚지', '퇴직금도 못 받겠네'하는 생활인의 고뇌도 몰려왔을 것이다.

한참의 침묵이 지나고 나서야 우린 서로 생활 대책이 있는지 묻기도 했다. 부부가 당직자로 생활하고 있는 한 선배는 "우린 조미료 없이 음식 잘하는데 장사라도 할까"하며 농반진반의 이야기를 던지기도 했다. 나는 편의점 알바를 해서 허니버터칩을 왕창 먹어야겠다고 했는데 역시나 모두 쓴웃음이었다.

이렇듯 평범한 생활인들인 우리. 누군가는 진보당 당원들을 무슨 괴물처럼 묘사하지만, 당직자인 우리부터도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전국의 수백 명의 당직자들, 그리고 10만여 명의 당원들. 우리도 누군가의 부모며 자식이고 아내며 남편이다. 그리고 당신의 이웃이다.

민주노동당에 가슴 뛴 이유는 '폭력 혁명'이 아니었기 때문

"박근혜 정권이 대한민국 민주주의 과거로 회귀시켰다"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2년 못살겠다! 다 모여라! 국민촛불' 집회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와 참석자들이 통합진보당 해산과 소속 의원들의 의원직을 박탈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 "박근혜 정권의 보복정치이며 민주주의 파괴, 독재로 회귀하고 있다"고 규탄하고 있다.
▲ "박근혜 정권이 대한민국 민주주의 과거로 회귀시켰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2년 못살겠다! 다 모여라! 국민촛불' 집회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와 참석자들이 통합진보당 해산과 소속 의원들의 의원직을 박탈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 "박근혜 정권의 보복정치이며 민주주의 파괴, 독재로 회귀하고 있다"고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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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당의 당직자들은 대부분 학생 운동 출신이다. 정치권은 모두 '적'으로만 알고 살았던 사람들이고, 거리에서 뛰어다니다가 '단 한 번 승리'를 꿈으로 삼고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 굳이 정당을 만들고 제도권에 들어온 이유는 무엇일까? 헌재가 주장하듯 폭력적 사회주의 혁명의 숨은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다면 이렇듯 15년간 쏟아 부을 노력을 단 15일간 집중해서 차라리 군사 훈련을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그러나 알다시피 우리는 진보정당을 만들었고, 제도권에 진입하기 위해 다분한 냉소를 마주하며 15년간 뛰어왔다. 그 이유는 이 길이 '폭력혁명'이 아닌 새로운 길이었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은 '우리도 정당을 만들어 국회의원도 배출하고 집권도 할 수 있다'는 상상력의 총아였고, 그 상상력에 가슴이 뛰었던 것이다.

내가 서른 넘어 군대에 다녀오니 민주노동당이었던 당적이 통합진보당이 돼 있었고, 그조차도 분당사태를 거친 이후였다. 함께 학생 운동을 했던 대학 선·후배마저도 누구는 진보당에 남고 누구는 정의당으로 가버려 혼란스러운 나날을 보내야 했으니 나로서는 어리둥절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진보당에 남기로 했다. 아무래도 반골 기질이 작용한 모양이다. 뭐가 그리 문제냐는 생각에 중앙당 당직자에 원서 접수를 했고 대외협력 부서에 배정됐다.

박봉에 주말도 없는 생활, 고단함 감내할 수밖에 없던 이유

내게는 각종 연대단체 회의에 참석하고 당과 소통하는 중간 역할을 하는 임무가 주어졌는데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진보당이라는 이유로 소외 받는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연대단체가 꾸려져도 진보당이 가입 의사를 밝히면 '정당은 전부 참여 불가'라는 결론으로 돌아왔다. 그 덕에 다른 진보 정당들도 참여를 못했다. 심지어 어떤 집회에서는 진보당 지도부만 소개를 안 해주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 감정에 충분히 동의했고, 그래서 더 열심히 뛰었다. 참가 단체가 아님에도 회의 자리에 꼬박꼬박 들어가 앉아 상황을 공유했고, 상황실원을 자임해 실무를 돕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 진보당에 대한 마음이 풀릴 것이라 믿었고, 또 그렇게 돼가기도 했다. 당직자 모두가 그런 마음이었다. 자존심을 앞세우려 하지 않았고, 언제나 조심하고 신중하려 했다. 여러 단체가 모인 대규모 집회에 이정희 대표가 무대에 올라 당원들이 "이정희"를 연호하면 당직자들이 가장 먼저 얼굴이 달아 올랐다.

'2014년 12월 19일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죽었습니다'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2년 못살겠다! 다 모여라! 국민촛불' 집회에서 한국청년연대 소속 회원들이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규탄하는 현수막을 들어보이고 있다.
▲ '2014년 12월 19일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죽었습니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2년 못살겠다! 다 모여라! 국민촛불' 집회에서 한국청년연대 소속 회원들이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규탄하는 현수막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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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유로 우리는 어떤 사안이든 다른 어느 정당이나 단체보다 더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원내정당 중 가장 적은 월급을 받고 생활하는 사람들이었지만, 매달 월급을 공제해서 더 어려운 투쟁 현장을 후원하며 살아왔다. 한 달 월급을 온전히 수령한 달은 거의 없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국정원 대선 개입 문제, 내란음모 사건, 정당해산 심판, 세월호 참사에 이르기까지의 문제들을 겪으며 주말 이틀을 다 쉬어본 적도 없다. 가끔 토요일에 별다른 일정이 없으면 서로 어색할 정도였고, 집안일로 주말에 자리를 비우면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으니 주 6일 근무가 정상이었던 것이다. 나는 토요일 집회가 끝나면 당 깃발을 챙겨 귀가했다가 월요일 출근 때 다시 챙겨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깃발을 펄럭이는 것조차 불허됐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국민 제치고 주권자 된 박근혜 정부, 진보당 해산은 끝 아닌 시작

독일의 법학자 칼 슈미트는 <정치신학>의 서두에서 '주권자는 예외 상태를 결정하는 자'라고 했다. 주권자는 무엇이 예외적인 상태인가를 결정하기도 하고, 이를 벗어나기 위한 결정을 하기도 한다. 박근혜 정부는 지속적으로 예외 상태를 선포해 왔다.

국민들은 '국정원 대선개입'을 예외 상태라고 주장하며 촛불을 들었지만, 정부는 '이석기 의원 내란 음모'를 예외 상태라고 선포했다. 또 국민들이 '비선실세 국정 농단'이 예외 상태라고 하자 '통합진보당의 북한식 사회주의 추구'가 예외 상태라고 눌러버렸다.

더 참담한 것은 '늑대가 나타났다'는 이 정부의 예외 상태 선포가 정말이라며 사법부와 헌법재판소가 이를 승인했다는 사실이다. 이제 대한민국 헌법 1조는 소멸했다. 다만, 이 정권의 주권 행사와 이에 장단을 맞추는 역할을 하는, 분립되지 않은 3권이 존재할 뿐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박근혜 정부로부터 나온다'는 2014년판 유신 헌법을 헌법재판관 8명이 최종적으로 승인한 것이다. 종북몰이의 화수분인 진보당이 없으면 박근혜 정부는 이제 뭘 먹고 사느냐며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이번 판결은 박근혜 체제 수립의 화룡정점이며, 따라서 이제야 본격적인 시작인 셈이다.

민주노동당 당원증 민주노동당 당시 당원가입을 하면 당원증과 함께 기념품을 보내줬다. 보물상자 속에 아직도 보관하고 있는 이 물건들은 '선거를 통한 집권'이라는 새로운 노선에 동참하는 상징물이다.
▲ 민주노동당 당원증 민주노동당 당시 당원가입을 하면 당원증과 함께 기념품을 보내줬다. 보물상자 속에 아직도 보관하고 있는 이 물건들은 '선거를 통한 집권'이라는 새로운 노선에 동참하는 상징물이다.
ⓒ 조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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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먹고 사는 것도 문제, 그러나 우리는 돌아올 것이다

퇴직금이야 날아갔다 해도 당장 실업 급여는 받을 수 있는지, 지역의료보험은 비싸다는데 어떡하면 좋을지. 생활인으로서의 고민과 함께 향후 진보 정치의 전망에 대해 고민이 깊어지는 지금이다. 지금 우리는 패배했고 해산'당'했다. 얼마간 10만 당원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고발 등의 난잡한 종북몰이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돌아올 것이다. 저 대지를 적시는 농민들의 고된 땀방울이 존재하는 한. 저 기계와 책상 위를 스치며 닳아버린 노동자들의 소매가 그들의 신성함을 증명하는 한. 우리는 갑작스레 뿜어져 올라오는 분수의 물 구멍과 같이 이 잔혹한 한국 사회의 한가운데에서 보란듯이 다시 설 것이다.

오늘 우리는 정연하게 퇴각한다. 그러나 돌아올 때의 모습은 결단코 다를 것이다. 깊게 팬 농민들의 주름 위에, 고단한 노동자들의 어깨 위에, 궁상맞은 서민들의 머리 위에 따스한 햇볕처럼 또는 단비처럼, 사뿐히 내려앉을 것이다. 핍박받는 모든 이들과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곁으로, 너른 잔디밭 위의 의사당 한복판 위로 우리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끝으로, 부디. 이 민주공화국의 역사에서 강제로 소속 정당을 잃은 당직자의 역할은 우리가 마지막이길 바란다. 나는 돌아온다(I'll be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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