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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은 가지고 있던 거고, 또 한 권은 선물 받았어요."

6박7일 일정으로 제주여행을 다녀왔다. 여행기간 내내 구좌읍 행원리에 있는 '어떤날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다. 이 게스트하우스에 딸린 카페는 햇빛이 아주 잘 드는 따사로운 공간으로 책을 읽으면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기 아주 좋다.

기형도 시집
 기형도 시집
ⓒ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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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벽면은 책이 가득한 책장이 있는데 다양한 책들이 꽂혀 있다. 여행 관련 책이 주류를 이루지만, 김영갑의 사진집도 있고, 쥔장의 전직을 떠올릴 수 있는 건축 관련 책도 많다. 그리고 몇 권의 시집이 있는데, 그 가운데 기형도 시집이 2권이나 있었다.

서른 살의 나이에 짧은 삶을 마감한 기형도 시인의 시집이 출간된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였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간된 기형도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이 바로 그것이다. 게스트하우스 카페 책장에 이 책이 2권이나 꽂혀 있었다.

그 이유가 궁금해서 물었더니 쥔장은 나처럼 물은 이가 또 있었다고 말했다. 기형도 시집을 눈여겨 본 이가 나 말고도 또 있었다는 사실에 그가 잊힌 사람이 아닌,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에 존재하는 시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곳 뿐만 아니다. 군포시 산본중심상가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으로 내려가는 계단 벽에서도 기형도 시인을 만날 수 있다. 황석영, 신경숙 등 문인의 얼굴과 함께 시인의 얼굴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건 그가 한국의 대표적인 문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풀이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지? 너무 과장이 심했나?

덕분에 기형도 시집은 제주에서 머무는 동안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 내 침대 머리맡에 계속해서 놓일 수 있었다. 잠들기 전, 시인의 시를 한두 편 읽을 수 있었던 것을 그 때문이었다.

초판발행 1989년 5월 30일
24쇄 발행 2007년 12월 20일
재판 발행 2006년 2월 20일
39쇄 발행 2007년 5월 8일

기형도 시집에는 시집 발행 이력이 이렇게 인쇄되어 있었다. 기형도 시인이 세상을 떠난 것은 1989년 3월 7일. 그의 사후에 출간된 시집은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50쇄를 찍었으며, 26만5천 부가 팔린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기형도 시인을 기리는 문화공원이 광명시에 조성되어 있다. 아직은 공사가 완전히 끝나지 않아 시비 몇 개만이 기형도 시인을 기리고 있지만, 광명시는 문화공원 입구에 기형도문학관을 건립할 예정이다. 준공예정은 2017년이다.

기형도 시인
 기형도 시인
ⓒ 광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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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시는 기형도 시인을 광명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선정하고, 지난 9월 18일, 시인과 함께 활동했던 언론·문화계 인사들과 광명시 지역 문화 관련 인사들을 기형도문학관 건립준비위원으로 위촉하고 본격적으로 문학관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양기대 광명시장이 의욕적으로 문학관 설립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

왜 기형도 시인을 광명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선정하고, 문화공원을 조성하며, 문학관을 건립하려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1960년생인 기형도 시인이 태어난 곳은 연평도이지만 다섯 살 이후부터 그가 사망할 때까지 줄곧 광명시 소하동에서 살았다.

비록 그가 살았던 집은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그나마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이 바로 광명시이다. 그의 길지 않은 삶의 흔적이 광명시 여기저기에 보이지 않게 남아 있어 광명시가 그를 '광명의 시인'으로 점찍은 것이다.

광명에서는 오래전부터 그를 기리고 연구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기형도 문화공원'을 조성하고, '기형도 문학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기형도 문화공원
 기형도 문화공원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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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광명문화원에서 펴낸 <기형도 시세계로 만나는 광명>의 저자 조성일 작가는 이 책에서 기형도가 광명의 시인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기형도는 어느덧 지역사회를 대표할 만큼 상징성을 가진 시인이 되었다. 전국의 독자들은 이미 그를 마음 한켠에 간직하고 틈틈이 불러내 만나는 가운데 광명 역시 시비를 세운다든가, 시 밟기 행사를 한다든가, 중앙동서관에 기형도 특별 코너를 만든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다양하게 기형도를 추억해 왔다.

사실 기형도는 광명이라는 지역사회에 머물러 있는 시인은 아니다. 흔한 말로 전국구 시인이라는 게 맞을 것 같다. 하지만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 기형도 시인의 삶에서 광명을 빼놓고 얘기하기 어렵다. 비록 연평도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광명으로 이사와 탯줄을 묻지는 않았더라도 이후 학교를 다니고 신문기자를 하다 삶을 마감할 때까지 그의 삶의 터전이 광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기형도는 광명을 상징하는 시인으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다. 오히려 앞으로는 광명을 대표하는 인물이 될 것이 틀림없다. - <기형도 시세계로 만나는 광명>에서

기형도 시인을 기리는 작업은 광명시에서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쉬운 점은 많다. 그가 살던 집은 그가 사망한 뒤 가족이 떠나 철공소가 되었다가 이제는 그것마저 사라져 버렸다. 그 자리에 창고가 들어섰다는 게 양철원 광명시 학예연구사의 설명이다.

광명의 향토사학자이기도 한 양 학예연구사는 기형도 시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진 것을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제라도 문화공원을 조성하고 문학관을 설립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기형도 문화공원에 세워진 기형도 시비
 기형도 문화공원에 세워진 기형도 시비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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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학예연구사는 "2003년부터 기형도기념사업회가 만들어져 기형도 시인의 시 낭독회를 열고 시인의 집을 기행하고 있다"며 "문학관이 설립되면 기형도 시인에 대한 연구가 보다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기형도 문학관에는 기형도 시인의 육필 원고와 영상 자료를 전시될 예정이며, 시민을 위한 문학 체험공간으로도 활용될 계획이다. 양 학예연구사는 기형도 문학관이 광명의 문화 중심으로서 역할을 단단히 해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1960년 3월 13일, 연평도에서 태어난 기형도 시인은 다섯 살 무렵 가족과 함께 광명시 소하리로 이주한다. 당시는 시흥군 일직면이었다. 그의 가족은 처음에는 방 두 칸짜리 기와집에서 살았으나, 그가 아홉 살 무렵 지금은 창고가 지어진 자리로 새집을 짓고 이주했다.

기형도 시인이 살던 집. 광명시 소하동. 지금은 없어졌다.
 기형도 시인이 살던 집. 광명시 소하동. 지금은 없어졌다.
ⓒ 광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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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에서 기형도 시인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았다. 시흥초등학교를 졸업했고, 신림중학교,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한 시인은 연세대에 입학했다. 그는 신림중학교와 중앙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시인의 감성을 지닌 시인 수재였나 보다.

198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그는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안개>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중앙일보 기자로 재직하면서 작품활동을 벌여왔던 시인은 1989년 3월 7일 새벽, 종로의 파고다 극장에서 사망했다. 사인은 뇌졸중이었다.

고작 서른이라는 푸르디 푸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시인의 삶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안겨준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기형도 시인을 더 많이 기리고 기억하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만일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그는 어떤 시인이 되었을까?

그와 함께 안양 지역에서 '수리시동인' 활동을 했던 홍순창 시인은 12월 초,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그의 때이른 죽음을 아쉬워하면서 그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홍 시인은 "세월이 참으로 빨리 흘렀다"며 젊은 날의 추억을 더듬었다.

기형도 문화공원
 기형도 문화공원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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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남긴 시에는 그가 살았던 광명시의 흔적과 그의 유년시절, 청년시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때문에 광명의 문인이나 문화인사들, 광명시민들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독자들이 그를 소중하게 여기면서 오래도록 기리고 싶어 할 것이 분명하다.

그가 남긴 시 한 편을 소개한다. 그가 살았던 옛 광명시의 흔적이 시 안에 남아 있다.

388번 종점

구겨진 불빛을 펴며
막차는 떠났다.

寂寞으로 무성해진 가슴 한켠 空地에서
캄캄하게 울고 있는 몇 점 불씨
가만히
그 스위치를 끄고 있는 한 사내의 쓸쓸한 손놀림


태그:#광명기행, #기형도, #광명시, #시인, #양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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