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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형마트 영업제한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는 시민단체 관계자들.
 2012년 대형마트 영업제한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는 시민단체 관계자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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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서울고등법원 행정8부(부장판사 장석조)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법적으로 대형마트는 점원 도움이 없는 곳이므로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슈퍼는 대형마트가 아니다'라며 서울 성동구청과 동대문구청의 영업시간 제한처분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참여연대 등은 법원이 '상생'이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의 취지를 손상시켰고, 사회적 책임을 스스로 저버렸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판결문에는 사람들의 주목을 다소 덜 받은 문구가 있었다.

'이 사건 처분 중 원고 홈플러스 주식회사, 원고 홈플러스테스코 주식회사가 운영하는 대규모점포 등에 대한 부분은 GATS(서비스 교역에 관한 일반협정)를 위반한 것으로 위법하다. 나아가 이는 곧 GATS와 유사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 한-EU FTA(자유무역협정)에도 위배된다.'

통상법 전문가 송기호 변호사는 15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이 대목을 언급하며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현실이 되어버린 '공공정책 흔들기'

2010년 벨기엘 브뤼셀에서 한-EU FTA 공식 체결 서명 후 각 대표가 악수하는 모습을 이명박 대통령이 뒤에서 웃으며 바라보고 있다.
 2010년 벨기엘 브뤼셀에서 한-EU FTA 공식 체결 서명 후 각 대표가 악수하는 모습을 이명박 대통령이 뒤에서 웃으며 바라보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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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 쪽은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영업시간 제한이 GATS와 한-EU FTA를 어겼다'고 주장했다. 이 조약들은 서비스 공급자의 수나 사업의 범위 등을 한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시장접근 제한조치'를 금지하고 있다. 영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홈플러스는 GATS와 한-EU FTA 적용을 받기 때문에 내세울 수 있는 논리였다.

지자체는 영업제한 조치가 '대형마트 노동자들의 건강권 보호'를 추구하므로 두 협정이 정한 예외사유에 해당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사건 처분은 근로자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고, 오히려 경쟁제한을 위한 위장수단으로 볼 여지가 크다"며 홈플러스의 손을 들어줬다.

송기호 변호사는 "애초에 공공정책을 제한하는 FTA 등을 추진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며 "이번 판결로 그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FTA 체결을 비판해온 사람들은 상대국에서 시장접근 제한조치 금지조항 등을 근거로 얼마든지 정부 정책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걱정해왔다. '국내 법 위에 통상조약'이란 우려는 이번 판결로 현실이 됐다.

2005년 '우리 농산물을 사용한 급식업체를 지원한다'는 전라북도의회 조례가 GATS에 어긋나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긴 했다(☞ 대법원 판결 보기). 하지만, 당시 소송을 제기한 쪽은 전북교육청이었다. 이번 원고는 대형마트다. 외국 회사가 '공공정책 흔들기'에 최초로 성공한 것이다. 송 변호사는 "FTA를 근거로 반발하는 미국 탓에 도입이 늦춰지고 있는 저탄소차 지원금·부담금제도처럼 (이번 판결은) 국내 공공정책에 큰 제약이 될 것"이라며 우울하게 전망했다.

"대법 판례에 비춰봐도 이해할 수 없는 판결"

법리를 따져 봐도 논란의 불씨가 남아있다. 송기호 변호사는 "대법원 판례에 비춰봐도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2009년 대법원은 중국 타일업체 '상하이 아사 세라믹'이 기획재정부를 상대로 낸 덤핑방지관세부과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 판결 보기). 재판부는 '덤핑방지관세는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위반'이라는 상고이유가 부적법하다고 판단했다. 국제협정은 국가끼리 맺는 것이므로 상대국 개인 또는 회사가 한국 정부의 행정처분이 국제협정 위반이라고 취소소송을 제기할 수 없으며 취소사유도 아니라는 얘기였다. 

따라서 '대형마트 영업제한 위법' 판결은 대법원 판례에 명백히 어긋난다는 게 송 변호사 설명이다. 그는 "국제통상조약을 국내 재판에 직접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은 미국이나 일본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또 "나라마다 해석을 달리할 수 있기 때문에 GATS나 FTA는 고유한 분쟁해결 절차들을 마련해놨다"며 "이번 판결은 통상조약에도 맞지 않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 판결이 확정된다면? 대형마트 영업제한처럼 정부정책은 얼마든지 종이호랑이가 될 수 있다. '대형마트는 점원 도움이 없는 곳'이라며 홈플러스 등으로 상대로 한 지자체 처분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내용까지 확정될 경우 중소상인들의 시름은 더없이 깊어질 것이다. 참여연대와 전국유통상인연합회 등이 15일 기자회견을 열어 "대법원이 서울고법 행정8부의 잘못된 판결을 반드시 바로 잡아 달라"고 호소한 이유다.


태그:#대형마트 영업제한, #FTA, #송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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