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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을 앞두고 있는 토종 의성배추
 수확을 앞두고 있는 토종 의성배추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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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 잘 자랐네요"
"무처럼 생겼지만 토종배추입니다."
"배추라고요? 이렇게 생긴 것은 처음 봅니다."

토종 의성배추를 한 번에 알아본 사람은 없었다. 배춧잎의 생김새가 무잎을 닮았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겉잎이 두껍고 넓으며 노랑 속잎의 개량종 배추김치를 많이 먹는다. 조선배추로 불렸던 토종배추는 잎이 60~80cm 정도로 크고 지역에 따라 생김새와 맛도 다르다.

지역 이름을 붙여서 평안도 개성배추, 경북 의성배추, 제주 구억배추가 현재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도 고유의 맛을 간직한 토종배추가 있을 것이다. 김장철에 돼지수육(보쌈)을 김치와 같이 먹는 풍습은 개성배추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농부의 손에서 손으로 이어져 온 '토종'

지난 여름, 경북 의성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에게 의성배추 씨앗을 나눔받았다. 의성에서 서울로 시집을 온 씨앗, 같은 한반도 안에서도 날씨와 토질이 다른 지리적 조건 때문에 토종 본래의 성질이 바뀔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의성'이라는 토종 이름은 바뀌지 않는다. 옛날에 의성에서 살던 처녀가 다른 지역으로 시집을 가면 '의성댁'이라고 불렸던 것처럼 말이다.

모종으로 키우고 있는 의성배추(왼쪽)와 다 자란 의성배추
 모종으로 키우고 있는 의성배추(왼쪽)와 다 자란 의성배추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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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배추와 개량배추를 재배해 보면, 그 차이점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토종배추는 비료를 적게 주거나 안 줘도 잘 자라는 반면에, 개량배추는 비료가 부족하면 본래의 형태를 제대로 만들어 내지 못한다. 노랑 속잎을 꽉 채우지 못하거나 크기가 작다. 땅심(地力)보다는 인위적으로 주는 비료에 의존하여 자라도록 개량되었기 때문이다.

토종배추는 병충해에 맞서는 저항력도 강하다. 오랫동안 기후와 토질에 적응한 유전자를 다음 세대의 씨앗으로 남겨서 환경변화에 대처하는 능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반면에, 개량배추는 많은 비료를 필요로 하는 만큼, 병충해를 불러오게 되어있다. 씨앗을 맺더라도 유전자를 남기지 못하는 불임이거나 F1(1세대 씨앗)으로 일회용이다. 즉, 토종처럼 계속해서 후손을 이어가는 지속가능한 것이 아니라, 한 번밖에 쓸 수 없는 몹쓸 씨앗이다.(관련기사: 터미네이터' 씨앗, 들어보셨나요?)

잃어버린 토종의 고유한 '맛'

의성배추 씨앗의 싹을 틔워 모종을 만들어 밭으로 옮겨 심었다. 퇴비와 비료를 전혀 주지 않고, 처음에만 물을 몇 번 줬는데도 잘 자랐다. 배춧잎은 뻣뻣하게 나풀거리듯이 크다가 수확할 쯤에는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개량배추처럼 속이 꽉 차는 결구는 안 되고 잎 전체는 녹색이다. 굵은 뿌리의 밑둥을 잘라내면 한 손에 움켜쥘 수 있을 정도로 잎줄기의 포기가 많지는 않다.

토종 배추김치의 맛은 어떨까? 그동안 먹어온 아삭하고 부드러운 개량배추와는 맛이 다르다. 익숙치 않은 독특한 그 맛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특히, 개량배추와는 달리 토종배추는 오래 묵힐 수록 김치맛이 더 깊게 배어 나온다.

'굵은 잎줄기가 조금 질긴 듯하지만, 씹을수록 쌉쓰레한 맛이 느껴지고 구수하다.'

토종배추는 배춧(된장)국에 넣어도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내년 봄에 씨앗을 받는 채종을 위해서 몇 포기의 배추는 밭에 남겨뒀다. 경북 의성 농부처럼, 손에서 손으로 토종배추 씨앗이 널리 퍼져서 잃어버린 토종의 맛을 찾고 지키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토종 의성 배추김치, 오래 묵힐수록 깊은 맛이 배어나온다.
 토종 의성 배추김치, 오래 묵힐수록 깊은 맛이 배어나온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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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배추는 국에 넣어도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토종배추는 국에 넣어도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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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토종, #의성배추, #개성배추, #보쌈김치,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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