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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등에 업힐 때마다 언제나 활짝 웃는 이서는 우리 가족의 행복이다.
▲ 엄마등에 업혀있는 딸 이서 엄마의 등에 업힐 때마다 언제나 활짝 웃는 이서는 우리 가족의 행복이다.
ⓒ 연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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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이서가 태어난 지 어느덧 4개월이다. 앞서 기사 <12시간 진통, 실신 직전... 이 아이를 만났습니다>에서 태명 '드림이'로 소개했던 아이가 어느덧 온 가족의 기쁨이 되어주고 있다.

이서의 출생으로 우리 가족에게는 세 가지 변화가 생겼다. 우선 부부에서 세 명의 가족이 되었다. 다음으로 내가 퇴근을 빨리하게 됐다. 마지막으로 아내가 육아를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넉넉한 월급은 아니지만 우리는 돈보다 아이에게 줄 사랑을 택했다. 부모가 되면서 처음으로 한 희생이라면 희생이다.

뱃속의 드림이가 4개월 된 이서로

사실 남편인 나에게 느껴지는 변화의 폭이 아내보다 크지 않음을 절감하게 된 것은 얼마 전 일이다. 나는 고작 퇴근 후와 주말에만 아이를 돌보기에 삶의 변화가 어떤 면에서 크지 않다.

하지만 아내는 출산으로 인한 신체의 변화, 모유 수유로 인해 아이와 한시도 떨어지기 힘든 환경이고, 회사를 사직하며 서서히 느껴지는 사회와의 단절 등 변화의 폭이 넓다. 그런 아내도 슈퍼맨은 아닌지라 4개월이 지나자 육체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서서히 지쳐가는 것이 보였다.

내가 아이를 돌볼 테니 잠깐 영화라도 보고 오라 해도 모유 수유 때문에 혹여 아이가 배고플까 외출을 삼가던 아내다. 그렇기에 때로 주말에 회사 동기 모임이나 지인들과 약속이 잡힐 때면 미안한 마음에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나가곤 했다.

여자에서 엄마가 되는 차이는 어디서 오는걸까? 이서의 엄마면서 내 아내이기도 한 그녀는 오늘도 육아와 가사일에 분주하다.
▲ 아이를 업고 가사일 하는 아내 여자에서 엄마가 되는 차이는 어디서 오는걸까? 이서의 엄마면서 내 아내이기도 한 그녀는 오늘도 육아와 가사일에 분주하다.
ⓒ 연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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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러한 아내에게도 꼭 나가고 싶은 모임이 생겼다. 그 모임은 여대 시절 절친한 동기 10명과의 연말 파자마 파티였다. 아내는 다른 동기처럼 1박은 못하더라도 2~3시간만이라도 같이 수다를 떨다 오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내는 2주 전부터 아이를 데리고라도 모임에 가야 할지 망설였다. 그러나 추운 날씨에 온수에서 사당까지의 거리를 아이까지 데리고 가는 게 만만치 않았다. 또 동기들끼리의 편한 모임에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게 마음에 걸렸다. 아이를 집에 두고 가지 못하는 것은 모유 아니면 젖병을 물지 않는 아이의 습관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아이가 젖병을 무는 것이 제일 현실적인 답이었다. 우리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미리 얼려둔 모유를 젖병에 담아 이서에게 먹여 보기로 했다. 디데이 아침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나와 아내는 아이가 배고픈 틈을 타 10ml 정도 가볍게 젖병을 물려 보았다. 처음에는 가볍게 거부하더니 이내 맛을 보고 '쪽쪽' 빠는 것이 아닌가!

아내는 그때부터 싱글벙글 기분이 좋아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준비하는 내내 웃음이 가시지 않는 아내의 얼굴을 보니 괜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서와 단둘만의 시간 240분

드디어 때가 왔다. 이서와 단둘이 이렇게 오래 있어본 적이 없어 두려움 반, 설렘 반이었다. 중점사항은 두 가지. 먼저 설사하는 이서의 엉덩이를 아프지 않게 닦으면서 크림을 제때 잘 발라주기. 다음으로 제일 중요한 이서에게 젖병 물리기다. 간만에 예쁘게 단장한 엄마는 눈시울을 붉히며 이서와 작별인사를 했다.

나는 이서를 안으며 멍 때리기 싫어 영화 몇 편을 준비했다. 첫 십여 분 이서는 엄마의 외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평소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뿌지직' 소리를 내며 이내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기저귀를 열어 아프지 않게 엉덩이를 닦고 크림을 바른 후 다시 기저귀를 봉했다.

그리고 십여 분 후 다시 '뿌지직...찍'. 설사는 왜 이리 엉덩이 닦기가 힘든지 땀을 뻘뻘 흘리며 물티슈 10여 장을 소모했다. 정비하고 가만히 안고 있는데 이 녀석 슬슬 짜증 내기 시작한다. 몸을 뒤로 젖히고 짜증 섞인 울음으로 무언가를 요구한다. 기저귀(?)는 아니다. 그렇다면 졸리거나 배고프거나 둘 중 하나다.

마침 아내가 나가면서 '젖을 먹다 마네'라고 한 소리가 기억났다. 나는 얼린 모유를 온수에 녹여 얼른 젖병을 물려보았다. 어라? 이서가 안 먹는다. 큰일이다. 오전에는 분명히 먹었는데 우리 딸 갑자기 심통을 부리기 시작한다. 비상이다.

이서 엄마에게 전화해볼까 순간 고민하다가 고개를 젓는다. 분명 나가서도 이서 걱정일 텐데 혼자 해결해 보기로 한다. 짜증이 난 상태라 안 먹는 것 같아 일단 안아서 얼러본다. 내가 아는 아동 노래를 총동원하며 이서가 반응하는 노래를 무한 반복 부르기 시작했다. 그 노래는 다름 아닌 '포켓몬스터 엔딩곡'. '피카 피카 피카츄~ 피카 피카 피카츄~' 반복되는 멜로디에 아이의 표정이 밝아진다.

아이가 짜증 낼 수 있다는 리스크와 젖병을 물 때의 위험대비 투자수익률을 순간 가늠해본다. 결정했다. 젖병을 다시 물려보자. 순간 아이가 거부하며 고개를 돌리지만 다시 포켓몬스터 노래를 부르며 젖병을 아이 입에 따라 끝까지 물렸다. 아! 드디어 아이가 물었다. 그리고 이내 '쪽쪽' 빨기 시작한다. 난 혹여 입에서 뗄까 봐 끝까지 입으로는 노래를 부른다.

30ml를 먹더니 이내 젖병을 뺀다. 다시 짜증을 낸다. 이번엔 뭘까. 이서 엉덩이에 뭔가가 느껴진다. 다시 설사를 했구나. 기저귀를 바삐 갈고 짜증 내는 아이 덕에 양말도 못 신겨주고 안아 들었다. 배도 부르고 기저귀도 갈았으면 이제 졸린 것 하나 남았다. 계속 안아주고 토닥이니 이내 자기 손을 빨며 잠이 든다. 할렐루야다.

아이를 안은 채 한 손으로 휴대폰을 보니 아내의 부재중 통화가 세 통이나 떠 있다. 평일에 아내가 왜 전화를 못 받았는지 이제 이해가 된다. 아내에게 '이상 무'라고 문자를 넣고 아이를 앉은 채 의자에 앉았다. 아내가 모임에 오후 6시 15분 출발했으니 오후 10시 넘어서야 돌아올 텐데…. 지금이 오후 7시니, 앞으로 버텨야 할 시간을 가늠해봤다. 이대로 2시간만 자주면 오후 9시가 되니 1시간만 어떻게든 버티면 이서와의 240분은 이렇게 끝이 날 터였다.

바닥에 내려놓으면 혹시 깰까 봐 처음 잠든 자세 그대로 앉고 있기로 했다. 영화 볼륨은 '1'로 맞춰놓고 부동 자세로 2시간을 버티기 시작했다. 팔이 꽤 저려 마비가 되었지만, 정말 그렇게 2시간 가량을 버텼다. 중간중간 깰 때마다 얼른 일어나 토닥이며 다시 재우기를 여러 번, 이제 끝이 보였다.

240분 끝이 보인다

오후 9시쯤 되어 이내 이서가 깼고, 비몽사몽한 틈을 타 먹다만 젖병을 다시 물렸다. 깔끔하게 '클리어'. 이내 또 '뿌지직' 설사를 했지만, 기저귀를 갈고 나자 실컷 자고 배부르며 아랫도리도 깔끔한 기분 좋은 '완전체' 이서로 변신했다. 남은 1시간은 아빠와 딸의 기분 좋고 유쾌한 향연이었다.

얼마 후 아내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고, 문을 열고 들어온 그녀를 부녀가 문 앞에서 맞이했다. 내 머릿속엔 영화 <나홀로 집에>의 엔딩곡이 흘렀다. 이서와 셋이 부둥켜 안으며 다시 세 가족이 모인 것을 자축했다.

240분의 효과일까? 왠지 더 친해진 우리 사이다.
▲ 아빠와 딸, 서로 마주보는 순간 240분의 효과일까? 왠지 더 친해진 우리 사이다.
ⓒ 연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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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240분은 우리 가족에게 또 하나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친구들과 신 나게 수다를 떨며 비워진 마음 한 켠을 채우고 돌아온 아내는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진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자신이 행복하니 아이가 더 사랑스러워졌다고 한다.

또한 이번 일로 남편인 나에게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 말이 공포로 들리지 않은 것은 240분 동안 쩔쩔매며 아내의 고충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가 돌아오는 시간을 기점으로 버티면 그만이지만, 아내는 끝이 없는 무한대의 육아시간을 홀로 보내고 있었다.

겨울철 추운 집 안에서 홀로 아이와 종일 시간을 보내는 것은 무기력하고 지치는 일이다. 내가 퇴근 후 돌아오면 정서적으로 힘이 된다고 말하던 아내의 말이 같은 입장에 서 보니 깊이 공감이 됐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나의 육아는 이게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알았다. 앞으로 딸 이서가 자라나는 순간순간을 아빠가 줄 수 있는 좋은 영향력으로 한없이 채우고 싶어졌다. 이날 우리가 보낸 좌충우돌의 시간처럼, 여러 일들이 많겠지만 늘 아이의 마음을 살피고 버팀목이 되어주는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


태그:#육아, #엄마, #딸바보, #모유수유,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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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한국 사회에 평범한 신입아빠, 직장인인 연응찬이라고 합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바라보는 사회가 정말로 대한민국 국민이 느끼고 공감하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평범한 눈과 자세로 세상과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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