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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 사단에 배치된 걸 알고 착잡했습니다. 신병 교육을 마치고 부대로 오는데 너무 시골인 데다가 민가가 아예 보이지 않아 두려웠습니다. GOP 연대에 배치되었을 때는 엄마 얼굴이 그렇게 보고 싶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배속이 되자 하루라도 빨리 GOP 근무를 시작해서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숙제가 밀려 있는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GOP를 지키는 장병들의 하루하루 일과는 민통선 바깥에서 온 예비역에게는 보기에도 안쓰럽고 눈물겹다. 모자라는 수면시간과 낮과 밤이 수시로 바뀌는 불규칙한 생활, 토요일과 일요일과 휴일이 전혀 없는 똑같은 일상, 비바람과 눈보라를 적이 아니라 친구로 삼아야 하는 올빼미의 삶이 이들의 일과다. 너무 추워서 발가락을 잘라내고 싶었다는 병사도 만났고, 누구든 하루에도 몇 번씩 수천 개의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무릎의 인대가 남아나지 않는다는 예비역도 만났다. 젊음이 아니고는 감당할 수 없는 이런 생활을 오늘도 묵묵히 이겨내고 있는 GOP 부대의 장병들이야말로 이번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이다. - 본문 중에서

지난 2013년은 정전 60주년이 되는 해였다. <평화와 생명의 땅 DMZ를 가다>는 정전과 함께 생겨난 DMZ(비무장지대)의 시작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아들의 입대로 관심 가지게 된 지역

<평화와 생명의 땅 DMZ를 가다>(김환기 지음 / 백철, 손민석, 최태성 사진 / 플래닛미디어 펴냄 / 2014.07. / 2만8000원)
 <평화와 생명의 땅 DMZ를 가다>(김환기 지음 / 백철, 손민석, 최태성 사진 / 플래닛미디어 펴냄 / 2014.07. / 2만8000원)
ⓒ 플래닛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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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아들이 전역했다. 아들이 입대하기 전까지 DMZ는 막연히 궁금한 곳이었다. 일반인들이 쉽게 갈 수 없는 곳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통제된 덕분에 자연생태가 살아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전쟁의 비극으로 형성된 장소, 여전히 북한과 살벌한 대치를 하고 있는 긴장과 공포의 지역임에도 호기심이 더 앞선 이유이다.

이런 DMZ가 아들의 입대 후 이전과는 다른 존재로 다가왔다. 누군가는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곳이지만, 내 아들만큼은 제발 배치되지 않기를 바랐다. 막연하게 두려웠다. 그래서 DMZ의 역사와 환경에 대해 알아보게 됐다. 북한과의 대치로 인한 긴장, 그곳을 지키는 장병들의 고충 등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DMZ라는 공간을 바라보게 됐다.

DMZ를 지키는 아들들에게, 그리고 그 부모들에게 공연히 미안해졌다. 특히 요즘처럼 춥거나 눈이 올 때, 강원도 최전방은 영하 40도까지도 내려간다는 소문이 돈다. "손발 동상은 기본으로 걸린다" "눈만 뜨면 눈을 쓸어야 한다" 등 여기저기서 들었던 믿기 힘든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DMZ를 지키는 병사들이 막연히 안쓰럽고 걱정됐다.

철책 겨계근무에는 휴일도 없고 휴식시간도 없다.6.25전쟁은 일요일 새벽에 시작되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남방한계선 철책에서 병사들이 근무지로 이동하며 철책의 이상여부를 꼼꼼하게 살피고 있다.(책속 사진 설명)
 철책 겨계근무에는 휴일도 없고 휴식시간도 없다.6.25전쟁은 일요일 새벽에 시작되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남방한계선 철책에서 병사들이 근무지로 이동하며 철책의 이상여부를 꼼꼼하게 살피고 있다.(책속 사진 설명)
ⓒ 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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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화기로 무장한 GOP부대의 병사들이 척책을 따라 수색을 벌이고 있다.실탄을 장전한 총을 메고 이들은 365일 24시간을 이 철책과 더불어 생활한다.(책속 사진 설명)
 개인화기로 무장한 GOP부대의 병사들이 척책을 따라 수색을 벌이고 있다.실탄을 장전한 총을 메고 이들은 365일 24시간을 이 철책과 더불어 생활한다.(책속 사진 설명)
ⓒ 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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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보호대뿐만이 아니다. 영하 20도 이하가 되어야만 지급되는 발열제, 소위 '핫 팩'도 문제다. 수은주가 영하 20도면 체감기온은 영하 30도 언저리다. 이런 날씨에만 발열제가 지급되는 곳이 우리의 군대다. 영하 10도만 되어도 야외활동을 자제하라는 일기예보가 나오는데 바람이 몰아치는 산간지역에서 밤을 새워 근무를 서는 그들의 고통은 어떠할까? 손발이 꽁꽁 얼어붙는다는 말이 전방에서는 비유가 아니라 실제다. 심지어 너무 추워서 손발을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라는 말까지 들린다. 이에 대한 우리 군대의 해결책이 없는 것이 아니다. 바로 PX에서 핫 팩을 파는 것이다. 병사들은 10여만 원의 월급을 받아 그 일부를 쪼개어 개인적으로 핫 팩을 사서 이용한다. 인내와 고통을 요구하는 것까지는 이해한다 하더라도, 이처럼 군인으로서의 활동을 위해 필요한 물품까지 개인이 책임지도록 한다는 것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인 우리나라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 본문 중에서

이 책 <평화와 생명의 DMZ를 가다>는 비운과 긴장의 지역 DMZ 곳곳과 그곳을 지키는 병사들, 그리고 여기에 깃들어 살아가는 동·식물 등을 보여준다. 170여 장의 사진들과 그리 길지 않은 글을 통해 일반인들이 가기 어려운 DMZ의 실상을 들려준다.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를 잘 담아낸 책

책을 통해 만나는 DMZ 곳곳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그래서 자꾸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만감이 교차한다. 전쟁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통제된 폐허, 하지만 덕분에 한반도의 생태계 보고가 됐다. 그와 함께 생각이 분분해진다. 몇 년 전부터 심심찮게 들려오는 DMZ 개발 및 관광화 관련 소식들이 떠오른다.

천왕봉 OP와 철책:철원에서부터 동쪽으로는 산들이 높고 많아진다. 고지마다 초소들이 세워져 있고 철책은 가파른 산을 타고 오르내린다. 사진의 좌측이 철책선 안쪽의 DMZ다.(책속 사진 설명)
 천왕봉 OP와 철책:철원에서부터 동쪽으로는 산들이 높고 많아진다. 고지마다 초소들이 세워져 있고 철책은 가파른 산을 타고 오르내린다. 사진의 좌측이 철책선 안쪽의 DMZ다.(책속 사진 설명)
ⓒ 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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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DMZ 겨울.
 화천 DMZ 겨울.
ⓒ 최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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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풍경보다 한 번 더 보게 되고, 한 번 더 읽게 되는 것은 그곳을 지키는 병사들 모습과 그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동부전선 최전방에 배치됐다가, 손발이 동상에 걸린 채 전역했던 사촌동생의 오래전 이야기까지 떠올랐다.

덧붙이면, 아이가 입대하기 전까지 까마득하게 몰랐다. 아이를 군대에 보낸 부모들 중 많은 이들이 군인 아들에게 몇 만 원씩이나마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 아들의 고생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면 겨울에 핫팩이라도 사서 보내야만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냥 입대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달랐고, 때문에 한동안 쓰렸다. 

세계유일의 분단국가에서 나라를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그렇다면 병사들이 기본적인 생활은 할 수 있을 정도로 처우해주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 왜 걸핏하면 예산부족을 얘기할까. 나라의 심장을 지키는 예산보다 앞서는 예산이 무엇이 있을까.

아들을 군대에 보내보지 않은 부모들은 결코 모른다. 부모들이 부담해야만 하는 정신적인 고통 등을 말이다. 이 책의 서문을 쓸 즈음 총기사고 뉴스를 보며 썼다는 저자의 말이 솔깃하게 와 닿는다.

군사분계선(MDL)표지판:서해안에서 동해안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허리에는 이런 간판 1292개가 설치되었다. 남과 북의 군사적 경계선이며, 이 선으로부터 남쪽과 북쪽으로 2킬로미터씩 떨어져 설치된 또 하나의 선이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이다. 이로써 탄생한 폭 4킬로미터, 길이 248킬로미터의 구역이 바로 DMZ다. 사진은 고성 DMZ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군시분계선 표지판이다(책에서)
 군사분계선(MDL)표지판:서해안에서 동해안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허리에는 이런 간판 1292개가 설치되었다. 남과 북의 군사적 경계선이며, 이 선으로부터 남쪽과 북쪽으로 2킬로미터씩 떨어져 설치된 또 하나의 선이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이다. 이로써 탄생한 폭 4킬로미터, 길이 248킬로미터의 구역이 바로 DMZ다. 사진은 고성 DMZ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군시분계선 표지판이다(책에서)
ⓒ 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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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고지 전투란 6·25전쟁 당시 우리 국군 9사단이 철원평야 북단의 요충지인 395고지에서 중공군과 벌인 전투를 말한다. 이 전투가 벌어진 것은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였다. 국군 9사단과 중공군 3개 사단이 이 열흘 동안 열두 차례 전투를 벌였고, 그 사이 고지의 주인이 24회나 바뀌었다. 10차 전투에서 강승우 소위를 비롯한 아군 육탄 용사 세 사람은 산 정상에 있는 적의 고지로 돌진해 수류탄으로 기관총 진지를 파괴하고 장렬히 산화했다. 이 전투를 치르는 동안 적군 1만4000여 명이 사살되고 아군도 3500여 명이 사상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이처럼 치열한 전투 끝에 우리 군은 백마고지를 차지했고, 김일성은 백마고지 오른쪽 뒤편의 고암산에서 사흘을 통곡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고암산을 김일성 고지라고도 부른다. - 본문 중에서

친정아버지께 많이 들었던 백마고지 이야기라 특히 반갑게 읽었다. 나의 친정아버지는 북한에서 태어나 전쟁 전까지 북에서 게릴라로 활동했다. 1·4후퇴 때 삼척으로 와 한국전쟁 휴전 그 후 몇 년까지 군에 있었다. 아마도 나처럼 부모로부터 한번쯤 백마고지 혹은 백마고지전투라는 용어는 들어본 사람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는 이들이 꽤 되지 않을까.

덧붙이면, 백마고지라는 이름은 눈 쌓인 이 고지의 모양이 위에서 보면 흰말과 같다고 미군들이 지었단다. 또, 당시 9사단이 백마고지를 지켜내면서 백마부대란 별칭이 붙었고, 오늘날까지 그대로 불린다고 한다. 설마리 전투 이야기도 매우 인상 깊게 읽은 이야기 중 하나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정보가 가득, 흥미로운 책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 내부.가운데 가로로 길게 놓인 탁자의 중앙이 군사분계선이다. 따라서 정면으로 보이는 병사는 지금 엄밀한 의미에서 보자면 북한 쪽 땅에 들어가 있는 셈이다. 막사 안에서는 군사분계선을 넘을 수 있다.(책속 사진 설명)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 내부.가운데 가로로 길게 놓인 탁자의 중앙이 군사분계선이다. 따라서 정면으로 보이는 병사는 지금 엄밀한 의미에서 보자면 북한 쪽 땅에 들어가 있는 셈이다. 막사 안에서는 군사분계선을 넘을 수 있다.(책속 사진 설명)
ⓒ 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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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이처럼 전쟁 당시 관련 이야기뿐만 아니라 1951년 당시와 최근의 판문점 모습과 상황, 대성동 마을을 비롯한 DMZ 안의 마을들 이야기 등을 풍성하게 들려준다. 이 책에 참여한 사진작가는 모두 3명이다. 사진과 사진 설명만으로 한 권의 책이 될 정도로 DMZ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진들이 많다.

참고로 최근 백마고지 지역을 복원, 3량짜리 기차가 다닌다고 한다. 인근에 백마전적지를 조성하여 일반인들도 갈 수 있다고 하니 관심 있는 사람들은 가보는 것도 좋을 테다. 1990년대 초에 발견된 허준 묘 인근의 해마루촌은 일반인들이 하룻밤 자면서 농촌체험을 할 수 있는 DMZ 안 유일한 마을이다. 개인적으로 꼭 가보고 싶은 곳이다.

사실 DMZ는 여전히 전쟁의 연장으로 긴장이 흐르는 지역이다. 이런 장소가 주제인 책이라 읽기 전 막연한 무게감과 비장함이 없지 않았다.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된 지역이란 흥미도 있었지만, 누군가에게 소개할 필요가 있는 주제의 책이라 선택했다. 많은 정보가 담겨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읽을 수 있으리라.

덧붙이는 글 | <평화와 생명의 땅 DMZ를 가다>(김환기 지음 / 백철, 손민석, 최태성 사진 / 플래닛미디어 펴냄 / 2014.07. / 2만8000원)



평화와 생명의 땅 DMZ를 가다

손민석 지음, 김환기.최태성.백철 사진, 플래닛미디어(2014)


태그:#DMZ, #해마루촌, #비무장지대, #백마고지전투, #백마고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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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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