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프로야구 FA 시장의 몸값 폭등은 뜨거운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에 이어 FA 역대 최고액 기록이 잇달아 경신됐다. 이번 FA 시장에서 80억 원 이상의 대박 계약을 한 선수만 SK 최정(86억 원)과 두산 장원준(84억 원) 삼성 윤성환(80억 원) 등 3명이나 됐다. 일부에서는 국내 시장 규모나 선수들의 실제 기량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몸값을 지불했다는 거품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FA시장 나온 장원준의 선택은? 자유계약선수(FA) 자격으로 롯데 자이언츠로부터 4년간 88억원을 제시받고도 이를 거부, FA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긴 투수 장원준에게 프로야구 각 구단 및 팬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1년 10월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4차전 SK 와이번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에서 역투하는 장원준.

84억 원을 받고 두산으로 이적한 장원준. ⓒ 연합뉴스


하지만 모든 FA 선수들이 흥청망청 돈 잔치에 희희낙락한 것은 아니다. 대박은커녕 불러주는 팀이 없어서 이번 FA 시장에서 철저히 찬밥 신세로 전락한 선수들에게 거품 논란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나주환(SK), 이재영(SK), 이성열(넥센), 차일목(KIA) 등 4명은 이번 FA 시장에서 아직까지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 원소속팀과의 우선 협상이 결렬되며 FA 시장에 나왔지만, 어느 팀으로부터도 러브콜을 받지 못했다. 기존 소속팀과의 재협상 여부도 아직까지 불투명하다. 오는 2015년 1월 15일까지 모든 팀과 협상할 수 있기 때문에 아직 시간적 여유는 있지만, 상황이 그리 좋지 못한 건 사실이다. 설사 계약을 맺더라도 좋은 대우는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FA 제도가 일부 선택받은 선수들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돼버린 것은 제도의 원래 취지와 모순된다. 류현진이나 이대호, 오승환처럼 국내 초일류의 실력을 자랑하는 스타 선수들은 FA 자격을 얻으면 이제 국내보다는 해외로 먼저 눈을 돌린다. 결국 이들보다는 한수 아래로 꼽히면서, 해외에서 부름을 받을 정도의 실력은 안 되는 선수들이 국내에서 초특급 계약을 맺으며 FA 대박을 누리게 된다. 현재 국내의 FA 상위 계약 규모는 한국보다 시장이 큰 일본의 FA 선수들의 몸값을 뛰어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FA 미아, 왜 생기나

이 과정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나이가 많은 노장이나 준척급 FA들이다. 실력이 검증된 선수들은 구단이 막대한 비용을 감수하면서도 어떻게든 영입을 추진하지만, 상대적으로 어중간한 선수들, 투자 대비 기회 비용이 많이 드는 선수의 경우에는 계산이 복잡해진다.

가장 큰 걸림돌은 보상규정이다. 사실 올해 FA 미계약자들도 비록 주가는 대어급이 아니지만 실력적인 면에서 충분히 검증된 선수들이다. 그러나 다른 팀에서 이들을 데려오려면 원소속팀에서 막대한 보상을 지불해야 한다. FA를 데려오는 팀은 그 선수의 올해 연봉 3배 또는 연봉 2배와 보호선수 20명 외 한 명을 그 선수의 전 소속 팀에 줘야하는 규정 때문이다. 냉정히 말해 그 정도의 비용을 감수하며 영입을 추진하기에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2006년 차명주(한화)와 노장진(롯데), 2010년 이도형(한화) 등은 결국 소속팀을 찾지 못해 'FA 미아'로 전락하며 강제 은퇴까지 내몰린 대표적인 사례다. 안타까운 것은 이들 모두 충분히 더 현역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기량이 있음에도 FA 시장의 피해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최영필(KIA)처럼 일본 독립구단에서 뛰다가 이듬해 국내로 복귀해 극적으로 재기한 케이스도 있지만, 대부분의 노장 선수들에게는 1년 공백은 치명적이다.

올해 FA 시장은 오히려 평소보다 사정이 좋았던 편이다. FA 계약 시한이 늘어난 소위 '이도형 법'으로 FA 미아들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가 생겼기 때문이다. 한화와 KT같이 전력 보강이 절실한 몇몇 구단들의 적극적인 투자로 기회도 넓어졌다.

한화는 송은범, 권혁, 배영수 등 투수 FA만 3명을 영입했는데 이들은 한화의 막판 반전이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원 소속팀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음 시즌부터 1군에 데뷔하는 KT도 박기혁, 김사율, 박경수를 영입해 전력을 끌어올렸다. 이 중 소위 대어급으로 불릴 만한 선수들은 없었다. 한화와 KT가 아니었다면 이들도 지금의 FA 미계약자들과 같은 운명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FA 과열-소외 현상,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런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못한다면 장기적으로 선수들과 구단 모두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노장과 준척급 FA들은 구단의 눈치를 보느라 마음대로 FA를 신청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구단은 구단대로 전력을 보강하고 싶어도 까다로운 보상규정과 지나치게 폭등한 선수들의 몸값에 발목이 잡힌다. 그 피해는 부실한 전력 보강과 선수 이동, 궁극적으로는 경기력 저하로 이어지며 결국 팬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대안은 크게 세 가지로 꼽힌다. FA 자격 개선, 보상규정 완화. 외국인 선수제도 확대 등이다. FA 자격 개선은 선수들의 FA 취득 연한을 좀 더 줄이거나 혹은 연봉에 따른 등급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현재 9년(대졸 선수 8년)을 뛰어야 취득할 수 있는 FA 연한은 선수들에게는 너무 긴 기간인 데다, 구단 입장에서는 상당수의 선수가 성기가 지난 상황에서 고액의 장기 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위험 부담이 크다.

취득 연한을 줄이면 선수들이 차후에 FA를 다시 노려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고, 장기 계약에 대한 부담도 줄어든다. 젊고 유능한 선수들의 수요가 많아지면 몸값 인플레이션도 그만큼 줄어들 수 있다. FA 등급제는 일본의 FA 제도처럼 연봉에 따라 1, 2, 3등급식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저연봉자나 베테랑의 경우에 보상규정 적용없이 자유롭게 이적을 보장하는 것이 핵심이다. 예를 들어 올해의 차일목처럼 연봉이 높지 않지만 포수라는 특수 포지션에다가 경험을 갖춘 선수를 보상없이 영입할 수 있는 조건이라면, 충분히 매력을 느낄 만한 구단들이 있을 것이다.

보호선수 제도를 확대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현재 프로야구 FA 보상규정상 한 구단에 20명의 보호선수 지명으로는 베테랑과 유망주를 모두 보호할 수 없다. 이는 직업선택의 자유라는 FA제도의 원래 취지와도 맞지 않는 모순이다. 25명 내지 30명 정도가 적당해 보인다. 외국인 선수 확대 역시 긍정적으로 검토할 만하다. 선수협에서는 국내 선수들의 보호라는 명분으로 반대하고 있지만, 경쟁의 세계에서 외국인 선수들에게 돌아가는 자리 한두 개를 줄인다고 해서 실력이 모자라는 국내 선수들의 자리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1군 경기 출전 등록만 4명 이하(투수와 야수 2+2, 혹은 3+1)로 제한하더라도, 경기에 나서지 않는 선수들의 보유는 6~7명 이상, 혹은 무제한으로 두는 것도 방법이다. 무조건 메이저리거나 이름값이 높은 거물급 선수들만 비싸게 영입하는 게 아니라, 젊고 괜찮은 잠재력의 유망주들을 일찍 영입해 국내에서 '외국인 선수를 육성하는' 발상의 전환도 필요한 부분이다.

양질의 선수들이 최대한 많이 뛸 수 있어야 리그가 활성화된다. 몸값이 비싼 고액 스타도 필요하지만, 꼭 스타가 아니더라도 팀에 필요한 선수들은 많다. 그런 선수들을 보호하고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 지금 야구계 발전을 위하여 가장 필요한 현안이다. 선수들의 실력은 떨어지는데 공급은 부족하고 몸값만 지나치게 폭등하는 최근 한국 야구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좀 더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제도적 대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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