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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 우리는 세월호 사고를 통해 한 사회의 문화가 생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음을 보았습니다. 무고한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을 우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새들마을학교'는 배우고 가르치는 일, 즉 교육이 이 사회의 문화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교육과 배움으로 바른 문화를 만들기 원하는 이들이 모여 '생명을 살리는 교육'을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열린도시연구소 새 들'과 산하 '새들마을학교'는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고뇌와 축제로 펼치는 교육문화연구학교'를 10월 9일부터 12월 25일까지 12회 진행합니다. - 기자말

"직장에서 함께 공동체를 이루려면 서로 솔직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런데 솔직하려고 하니까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솔직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요."

한 참석자의 나눔을 들으며 순간 고민에 빠졌다. 과거에는 자랑스러울 정도로 내가 솔직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솔직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길을 밝히는 교육 이념' 읽기로 모인 새들마을학교 교육문화연구학교 아홉 번째 시간, 나는 지난 나의 삶과 배움을 돌아보게 되었다.

솔직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요

교육문화연구학교 아홉 번째 시간은 '이 시대의 길을 밝히는 교육 이념' 읽고 나누는 시간으로 모였다.
 교육문화연구학교 아홉 번째 시간은 '이 시대의 길을 밝히는 교육 이념' 읽고 나누는 시간으로 모였다.
ⓒ 새들마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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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문화연구학교 참가자들은 오산학교, 풀무학교, 거창고등학교, 간디학교, 이우학교, 밝은누리움터 등 6개 학교의 교육 이념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활자이긴 했지만 각 학교들이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를 만났다. 이 학교들이 먼저 뜻 있고 힘 있게 걸음을 뗀 것에 감사했고, 뒤이어, 또 함께 걷고 있는 우리의 몫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학교라는 공간에 큰 의미를 둔 적이 없다. 기억하기 싫은 끔찍한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공부도 그럭저럭 했다. 나쁜 선생님도 있었지만 떠올리면 웃음 짓게 하는 좋은 선생님이 더 많았다. 친구들과도 재밌게 보냈다.

그런데 왜 의미가 없었을까. 배운 것이 없다. 선생님 그림자는 밟아서는 안 되고, 결석은 용납하지 않는 부모님 덕에 매일 학교에 갔는데 배운 게 없다. 돌이켜 보면 개개인의 관계 안에서는 분명 좋은 가르침도 있었지만 학교 전체를 둘러싸고 있던 배움은 온통 뜯어고쳐야 할 것뿐이다.

<도덕> <윤리> 과목은 정직하게 살라고 가르쳤다. 그 배움에 충실하게 정직하게 살려고 했다. 내 생각을 항상 솔직하게 말하고 내 상황을 정직하게 나눴다. 학교에서 사회에서 나는 솔직하고 쿨한 사람이었다.

그런 솔직함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대학교 때 한 친구가 절교를 선언했다. 솔직한 내 이야기를 듣고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당시에는 이해가 안 됐다. 왜 솔직하게 나눈 건데 그 이야기를 어려워하는 걸까. '왜 너는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지 않니'라고 묻고만 싶었다.  

더불어 함께 살자며 친구들과 마음을 모아  함께 집을 구하고 청소하고  안양으로 이사를 했다.
 더불어 함께 살자며 친구들과 마음을 모아 함께 집을 구하고 청소하고 안양으로 이사를 했다.
ⓒ 새들마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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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함께 살자며 친구들과 마음을 모아 안양으로 이사를 하고 공동체적 가치를 담은 대안학교인 새들마을학교를 시작했다. 함께 살며, 학교를 하며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의 상황, 진심을 묻는 질문이 부담스러워졌다.

몹시 아픈 때가 있었다. 이곳저곳 병원에 가도 왜 아픈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딱히 답을 찾을 수 없이 고통만 지속되는 순간이었다. 여기저기서 어떻게 아프냐고 물었다. 그런데 내 몸 상태에 대해 이리저리 묻는 질문이 싫었다. '왜 저렇게까지 묻지. 내가 어떻게 아프다고 하면 도와줄 수 있는 게 있나.' 나도 책임지지 못하는데 누가 나를 책임질 수 있을까 하는 불신이었다.

함께 살고 일하니 일터에서 잘못한 일이 일터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내 삶의 전반의 문제가 되었고 일 처리의 수정이 아니라 삶의 변화가 요청되었다. 그렇게 되니 내 삶 깊숙이 들어오는 질문이 싫었다. 회피하고 싶었다. 난 뭐든 정직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 많아졌다.   

나의 솔직함은 꾸며진 거짓이었다

믿음과 신뢰의 관계는 오가는 말 속에 진실을 담게 된다.
 믿음과 신뢰의 관계는 오가는 말 속에 진실을 담게 된다.
ⓒ 새들마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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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마음은 아이들을 정직하게 만나지 못하게 했다. 선생님인 내가 아픈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니 아이들도 그렇게 나를 만났다. 한 번은 체육시간에 한 친구가 공에 맞았는데 그 옆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죽는 거 아니야."

내가 나의 이야기를 숨기게 되자 자신의 이야기를 숨기는 아이들이 공감됐다. 문제가 있으면 드러내 해결해야 하는데 아이들에게 그것을 요청하기가 어려웠다. 문제 뒤로 숨는 아이, 입을 다물고 선생님과는 이야기할 수 없다는 아이, 그냥 자신을 놔두면 안 되겠냐는 아이를 만나며 내 모습을 보았다. '내가 그렇게 아이들을 만나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하니 끔찍해졌다. 공동체를 이야기했지만 아이들에게 철저히 개인주의를 가르치고 있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솔직함을 삶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여기며 살아온 나였는데. 왜 나의 솔직한 상황과 마음을 묻는 질문이 부담스러웠을까. 솔직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듣는 사람을 생각하며 이야기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이야기만 할 줄 알았지, 하고 들은 이야기에 대해 책임지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나의 솔직함은 솔직함을 위해 꾸며진 거짓이었다.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도, 정작 솔직해야 하는 부분에서는 솔직하지 못했다. 다른 이에게 나를 온전히 드러내고 의존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다.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하는 상황 앞에 내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비단 이것뿐이었을까. 옆에 있는 이는 경쟁자라고 배워 온 지난 삶은 함께하는 선생님을 무의식적으로 경쟁하게 했다. 내가 놓친 부분을 다른 선생님이 챙겨 주면 고마워야 하는데 불편했다.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면 누가 맞고 틀리고는 중요하지 않아야 하는데, 내가 내는 답이 정답일 때 더 기뻤다. 함께 칭찬 받으면 정말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면 칭찬받는 건 나고 혼나는 건 상대일 때 마음이 놓였다.

관계의 전환... 나도 아이들도 변했다

나를 발견하는 데는 함께하는 선생님들과 아이들의 만남의 힘이 컸다. 사진은 간디학교 양희창 선생님과 새들마을학교 선생님들.
 나를 발견하는 데는 함께하는 선생님들과 아이들의 만남의 힘이 컸다. 사진은 간디학교 양희창 선생님과 새들마을학교 선생님들.
ⓒ 새들마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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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를 발견하는 데는 선생님, 아이들과의 만남이 큰 힘이 됐다. 자신의 이기나 이익이 아닌 사랑으로 점철된 관계 앞에 서게 되었을 때 나를 둘러싼 껍질을 깰 수 있었다. 옆 선생님이 나의 잘못을 지적한다면 일을 더 잘하기 위한 지적이 아니라 그 근본에는 그 일에 정성을 다하지 못하는 내가 변화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로의 일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챙겼다. 지극히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를 대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명확하게 아는 순간 아이처럼 기뻐했던 한 선생님의 얼굴이 내 마음 깊이 자리 잡았다.

아이들을 만날 때 아이들도 진심을 알아주었다. 자신을 감싸고 열지 않던 아이들도 사랑의 관계 앞에 서면서 기꺼이 자신을 변화시켰다. 혼나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히 알기 위해 긴 시간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였다. 스스로를 성찰하고 서로를 깨우는 도움의 말을 기꺼이 듣고 전했다. 옆 친구가 잘하면 자기 일처럼 기뻐했고, 못하면 잘하기를 온맘 다해 응원했다.

아픈 것을 동료 선생님들과 나눈 후 선생님들과 이웃에 살던 친구들 중 몇이 같이 단식을 하고 45일간 생채식을 했다. 여기저기 방사능을 맞으며 하던 무의미한 검사를 중단했다. 잠시 동안 고통을 면제해 주던 진통제도 먹지 않았다. 잘 먹고 잘 잤다. 그 후로도 가끔씩 아프기도 했지만 통증의 농도와 횟수가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그 시간을 지나며 먹을거리를 대하는 내 삶의 태도와 밤늦게까지 놀기 좋아하던 습관이 바뀌었다.

학창시절에 만난 학교는 그렇지 않았지만 교사가 되어 만난 학교라는 공간은 나에게 가르침과 배움이 살아 있는 공간이었다. 신뢰와 사랑의 관계로 관계의 전환이 이루어지자 그 가르침과 배움은 나를 변화시켰고 아이들을 변화시켰다.

채소를 먹기 어려워하던 아이들은 가르침의 본질을 만나며 채소도 조금씩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채소를 먹기 어려워하던 아이들은 가르침의 본질을 만나며 채소도 조금씩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 윤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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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 올 때 대안학교에 오며 기존 교육 질서에서 멀어질 것을 두려워하던 아이들이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지금의 배움을 즐기게 되었다. 근처에 어울려 사는 동네 이모삼촌들을 보며 다른 사람과 경쟁하지 않아도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번듯한 직장에 다니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하고 부족함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자신도 모르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이긴다.

수학을 너무 싫어했던 아이는 수학 자체의 기쁨을 알고 수학 수업을 기다린다. 누군가의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어려웠던 아이는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기꺼이 나눈다. 채소가 먹기 싫어 쌀알보다 더 작게 조각을 냈던 아이는 시금치가 맛있다며 두세 번 더 떠서 먹는다. 자신이 제일 잘 해야 맘이 놓이던 아이는 자기보다 더 잘하는 친구를 마음으로 축하한다.

나와 직접적으로 만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하던 아이들이 TV 속에서만 만나는 연예인이라고 하더라도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야기한다. 개그만 유재석은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 유재석이 아니라 유재석 아저씨다. 아이들의 세세한 변화를 기록하기에 이 지면이 너무 적다.  

새들마을학교의 행사는 마을 모두의 행사다. 동네 삼촌들이 아이들의 일 년 갈무리를 축하하며 축하 공연을 하고 있다.
 새들마을학교의 행사는 마을 모두의 행사다. 동네 삼촌들이 아이들의 일 년 갈무리를 축하하며 축하 공연을 하고 있다.
ⓒ 새들마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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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마을학교 아이들은 동네 이모삼촌들을 보며 삶이 지금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것을 배운다. 사진은 어울림잔치.
 새들마을학교 아이들은 동네 이모삼촌들을 보며 삶이 지금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것을 배운다. 사진은 어울림잔치.
ⓒ 새들마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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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변화를 경험하며 우리 학교나 다른 대안학교뿐 아니라 지금 이 시대 아이들이 다니는 모든 학교가 그렇게 자신을 변화시키고, 서로를 변화시키고 이 시대의 문화를 생명을 살리는 문화로 변화시키는 공간으로 거듭나길 더욱 바라게 된다.

그리고 그런 변화가 교육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마음으로 몸으로 삶으로 믿는다. 그 마음을 여섯 번째 시간에 읽었던 책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의 한 구절로 표현해 본다.

"우리가 어떻게 그 모두를 구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만약 누군가 한 명의 아이를 진실로 구원한다면 그때는 이 세상을 구원했다 할 만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새들마을학교 홈페이지(club.cyworld.com/saedeulmaeul)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새들마을학교, #대안교육, #교육문화연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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