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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인 2011년 3월 14일 촬영해 공개한 후쿠시마 제1원전 위성사진
 미국의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인 2011년 3월 14일 촬영해 공개한 후쿠시마 제1원전 위성사진
ⓒ 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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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후쿠시마와 230㎞ 떨어진 도쿄의 주거지역 토양에서 평당 9만 베크렐을 넘어서는 방사능이 검출됐다. 이는 핵 참사가 일어난 체르노빌 4호기 주변 토양에서 검출된 방사능과 맞먹는 수치다.

둘, 사고 후 3년도 넘게 지났지만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는 지금도 하루 300톤 이상의 방사능 오염수가 태평양으로 흘러들고 있다. 독일 해양연구소는 태평양 오염 시뮬레이션을 보이며 2017년 태평양 전역이 치명적으로 오염될 것이라고 했다.

셋, 후쿠시마 사고 이후 지난 6월까지 우리나라에 수입된 일본산 수산물의 양은 10만 톤이 넘는다. 이중 '기준치 이하'라는 이유로 수입이 통과된 일본산 수산물이 학교급식 재료로 꾸준히 공급되어 왔다. 방사능은 기준치가 무의미하다.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암 발생과 비례하기 때문이다. 음식섭취를 통한 내부피폭은 특히 청소년과 영·유아들에게 20배 이상 더 치명적이다.

넷, 일본 영토의 70% 이상이 세슘에 오염됐고, 열도의 절반은 이미 고농도 방사능으로 오염됐다. 또 도쿄 어시장의 생선에서는 강한 방사선이 뿜어져 나온다. 하지만 폐기하지 않는다. 일본 정부가 판매금지 수치를 저준위 방사성 폐기물과 같은 수준으로 높게 정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릴 예정이다.

<탈바꿈-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에 나온 내용이다. 후쿠시마 사고는 끝나지 않았다. 현재진행형이다. 3년 넘게 매일매일 7등급의 사고가 계속되고 있다. 남의 사정이라고 생각하는가? 안타깝게도 남의 이야기가 아니게 됐다.

지난 2일, 시민방사능감시센터는 국내 유통 수산물 150개를 조사해봤더니, 10개에서 세슘-137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명태, 다시마, 고등어, 대구에서 많이 검출됐다. 일본산이 아니어도 그랬다. <탈바꿈>에도 "우리나라로서는 미량의 방사능에 오염된 식품이 식탁에 올라오는 일을 피할 수 없게 됐다"고 쓰여 있다.   

세슘-137이 우리 몸에 들어와 모두 사라지기까지 2년 정도가 걸린다. 우리 몸에서 2년 동안 작은 핵폭발이 일어나는 셈이다. 조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방사성물질인 스트론튬이나 플루토늄은 몸에 한 번 들어오면 아예 사라지지 않는다. 그 시간 동안 우리 몸에서는 DNA 염기서열이 끊어지거나 훼손되어 이윽고 암세포가 생겨나게 된다.

사고위험에 폐로비용까지... 누가 이 비싼 대가를

<탈바꿈: 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탈바꿈프로젝트 지음 / 오마이북 펴냄 / 2014.11. / 1만 6000원)
▲ <탈바꿈: 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 <탈바꿈: 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탈바꿈프로젝트 지음 / 오마이북 펴냄 / 2014.11. / 1만 6000원)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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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일본은 다시 일어서기 어렵다고 했지만, 방사능은 국경이 없었다. 이미 우리는 오염된 식탁을 마주하고, 태안 기름유출 사고 당시 30만 자원봉사자가 기름을 닦을 정도로 아낀 바다도 오염돼가는 중이었다.

결국 우리 자리도 재난의 한가운데 있었다. 음식 섭취를 통한 방사능의 영향은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축적되어 변화가 포착되기까지는 수 년에서 길게는 30년이 걸리기도 한단다. 그래서 모른 척하고 싶은 것일까? 하지만 그 상태가 언제까지 유효할까? 시한부 희망일 뿐이다.
 
한국의 핵발전소는 지진 발생지대 위에 세워져 있다. 또 신기하게도 대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대, 경주-영덕 일대에 핵발전소가 집중 건설되고 있다. 영덕은 신규 핵발전소 부지로 지정·고시됐고, 그 아래로 경주, 울산, 부산 해안을 따라가면서 총 16기의 원자로가 늘어서 있다.

1999년 이후 우리나라의 연평균 지진발생 횟수는, 이전 21년간의 지진발생 횟수의 배가 넘는다. 특히 2013년에는 또 그 수치의 배에 달하는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 발생은 확실히 증가하고 있다고 책은 말한다. 8일 새벽에도 전남 보성군에 규모 3.3의 지진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이 나라는 신규 원전 건설에 열을 올리고 있다. 또 노후원전의 수명연장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이미 10년 수명연장을 한 고리1호기에 대해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은 최근 수명 재연장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언론은 재연장을 위한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고리1호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고가 난 원전이다. 또 월성1호기는 수명 만료를 앞두고 미리 7천억 원을 투자해 부품을 교체해놓고, 수명연장 심사를 받는다. 벌써 많은 비용을 투자했으니 연장하는 게 경제적이라는 이유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모든 기계에는 수명이 있다. 무한정 쓸 수 있는 기계란 없다. 후쿠시마 때 폭발한 원전은 모두 노후원전이었다. 데자뷰다. 우리 모두가 탄 배에 물이 차고 있다. 언제 가라앉아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 중 한 사람은 차라리 지금껏 사고가 안 난 게 천운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당국은 국민들을 향해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고 있다.

국민들에게는 핵발전소 신규건설이 필요치 않다

사고가 아니더라도 핵발전소는 우리 국민들의 주머니를 완벽히 털어간다. 핵발전소는 건설보다 이후가 더 문제다. 폐쇄나 폐로에 관한 기술이 없는 것이다. 10만 년 이상 격리되어야 하는 사용후핵연료에, 300년 동안 보관해야 하는 중저준위 핵폐기물까지 지금의 과학기술이 담보하지 못하는 지점이다.

14년 후인 2028년, 우리나라에서 가동 중인 23기의 핵발전소 중 12기가 수명이 만료된다. 핵발전소 폐로에는 1기당 1조 원에 가까운 비용과 수십 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했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 폐로다. 그런데 그 비용은 누가 감당할까? 아마도 늘 그랬듯이 '호갱'이 되어버린 국민들이 다 감당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사고 없이 잘 치울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다. 경주에 중저준위 방사능폐기물을 저장할 예정인 방폐장이 12월 완공을 앞두고 있다. 놀랍게도 암반이 약하고 지하수가 많이 흐르는 곳을 부지로 선정했다. 지하수 유입으로 방사능이 새어나갈 가능성이 있지만 당국은 아무 대책이 없다. 독일에서는 겨우 30년 운영한 방폐장을 폐쇄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지반균열로 지하수가 스며들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핵폐기물을 방폐장으로 옮기는 과정 또한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영광, 울진, 부산, 울산, 대전에서 발생하는 핵폐기물이 이제 육로와 해로를 통해 경주로 옮겨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고라도 난다면 어떻게 될까? 이제 '고속도로를 달리는 핵폐기물'을 보게 되겠다. 내 차 앞을 달리는 핵폐기물 운반차량이라, 기분이 어떨 것인가? 

세계는 이미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이후 핵발전소의 가동과 건설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건설과 가동, 폐쇄까지 핵발전 에너지가 고비용이라는 게 증명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거꾸로 달리는 중이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는 '원전 르네상스'를 말했다. 왜 그랬을까?

우리나라의 핵발전소는 국민의 세금으로 대형 건설기업이 참여해 짓고, 또 저렴한 산업용 전기요금으로 혜택의 대부분을 대기업이 가져가는 것이다. 사실 국민들은 전기를 많이 쓰지 않았다. 놀랍게도 우리나라 1인당 주택용 전력소비량은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이라고 했다. 핵발전소 신규건설은 재벌과 그 떡고물을 먹는 기득권의 필요이지, 국민의 필요가 아닌 것이다.

'핵없는 삼척을 후손에게'. 삼척시 도로변에 내걸린 삼척원전 유치 반대 리본들.
 '핵없는 삼척을 후손에게'. 삼척시 도로변에 내걸린 삼척원전 유치 반대 리본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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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분산형 재생에너지 시스템'이라는 빛나는 희망의 말

<탈바꿈>은 핵발전이라는 '전문적인 듯한' 이야기를 아주 쉽게 풀어놓았다. 게다가 인포그래픽으로 내용이 한눈에 들어오게 한 친절한 책이다. 핵발전의 위험, 핵폐기물 문제, 거기에 방사능의 영향과 먹거리 안전까지, 궁금한 것들을 총망라해놓았다. 앉은 자리에서 한 번 쭉 읽으면 얼추 다 보인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은 3부다. 3부에서는 그래서 우리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적어놓았다. 거기가 희망의 페이지다. 독일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탈핵을 선언했다. 6만여 명의 시민이 핵발전소를 포위하고, 25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탈핵'을 외친 덕분이었다.

독일에 '에너지 독립운동'이 있었다. 주민들이 전력회사를 직접 설립, 재생에너지 이용을 확대하고 전력망까지 구입하더니 마침내 핵발전을 하는 대형 전력회사로부터 독립했단다. 그와 함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투자하는 에너지 협동조합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고 했다.

또 독일은 이미 재생에너지가 핵발전 비중을 넘어섰다고 한다. 게다가 재생에너지 산업은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이런 게 흐름이고 대세다. 부러울 따름이다.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비율은 0.7%, OECD 국가 중 꼴찌라고 했다.

핵발전소의 진실을 알게 되고, 그에 관한 책을 읽을 때마다 오래 우울하다. 이 구조적인 악을 해결할 길이 요원해보이기 때문이다. 또 내 아이의 미래를 부모된 자가 챙겨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데, 또 죽어가는 순간에 중요한 것은 자존감과 자기 긍지다. 살면서 적어도 옳은 것을 위해 살았다는 확신, 거기에 최선을 다했다는 긍지, 그런 게 중요하다. 죽음은 만인에게 평등해 누가 성공했고 실패했는지를 구분치 않는다. 다만 스스로 최선을 다했는가 하는 질문 앞에 설 뿐이다.

그러니 이 도저한 허무 위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마을을, 우리의 지역을 정의로운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에너지 독립운동! 에너지공동체! 듣기만 해도 좋다. 책 속에 '지역분산형 재생에너지 시스템'이라는 말이 있었다. 이 긴 단어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참이다. 또 엄마들이 나서야 한다는 용기의 말도 발견한다. 아울러 85%가 '원전 유치 반대'에 투표한 삼척시민들의 주민투표 결과가 얼마나 빛나는 지표인지도 확인한다.

새로운 독립운동이 필요한 시대다. 한수원으로부터 독립한 마을, 에너지 독립을 이룬 도시, 그런 아름다운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할 일이 많다.

덧붙이는 글 | <탈바꿈-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 탈바꿈프로젝트 씀, 오마이북 펴냄, 2014년 11월 20일, 240쪽, 1만6000원



탈바꿈 - 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

탈바꿈프로젝트 엮음, 히로세 다카시 외 지음, 오마이북(2014)


태그:#핵발전소, #원전, #방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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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강사, 전 안성신문 기자, 전 이규민 국회의원 보좌관, 현)안성시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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