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과 양현종, 꿈의 무대 메이저리그를 갈망하던 두 동갑내기 좌완투수의 진로가 엇갈렸다. 올 시즌 후 나란히 구단 동의하에 해외 진출 자격을 얻은 두 선수는 포스팅 시스템을 통하여 미국행을 타진했다.

김광현은 샌디에이고로부터 제시받은 200만 달러(한화 약 22억)의 포스팅 금액을 SK 구단이 수용하면서 미국 진출의 문이 열렸다. 김광현은 현재 샌디에이고와 오는 12일(아래 한국시간)까지 계약 성사 여부를 놓고 협상 중이다.

반면 양현종은 아쉽게 해외 진출의 꿈이 일단 보류됐다. 양현종의 원소속팀 KIA는 포스팅에서 제시받은 액수가 기대보다 낮다는 이유로 고심 끝에 제의를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양현종의 포스팅 액수와 영입 구단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현지 언론에서는 150만 달러 내외로 전망하고 있다. 일각에서 대안으로 일본행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KIA 구단은 지난 7일 공식 홈페이지와 보도자료를 통하여 "양현종이 2015시즌에도 KIA 유니폼을 입는다"고 발표했다.

김광현, 몸값보다 보직-메이저리그 보장이 관건

포즈 취하는 김광현 SK와이번스 김광현이 29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스탠포드호텔에서 열린 본인의 메이저리그 진출 추진 기자회견에서 야구공을 들어보이고 있다.

▲ 포즈 취하는 김광현 SK와이번스 김광현이 10월 29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스탠포드호텔에서 열린 본인의 메이저리그 진출 추진 기자회견에서 야구공을 들어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두 선수의 해외 진출 시도를 둘러싼 해프닝들은 한국야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2년 전 류현진이 포스팅 시스템을 통하여 미국 진출을 타진했을 때 무려 2573만 달러라는 엄청난 입찰액을 제시 받으며 국내 야구의 눈높이가 크게 올라간 감이 있다.

그러나 불과 2년 만에 또 다른 국내 최고의 투수로 꼽히던 김광현과 양현종은 그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저조한 평가를 받았다. SK와 KIA 구단은 입찰액으로 최소한 500만 달러 이상을 기대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니 현실과 이상의 격차는 꽤 컸던 셈이다.

이는 한국프로야구의 수준을 바라보는 메이저리그의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를 냉정하게 보여준 장면이다. 한편으로 현지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나 분석 없이 확인되지 않은 일부의 루머에만 의지해 장밋빛 전망을 남발했던 국내 야구계의 무지를 돌아보게 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김광현-양현종의 향후 행보도 전망이 엇갈린다. 김광현은 일단 구단의 허락을 받아내며 해외 진출의 가능성이 열렸지만 아직 메이저리그행이 결론난 것은 아니다. 포스팅을 통한 메이저리그 협상의 특성상, 여러 구단과 자유롭게 협상할 수 있는 FA와 달리 단일 구단과 협상하는 선수가 다소 불리한 위치에 있다.

아무래도 낮은 포스팅 입찰액을 감수하며 미국 진출을 받아들인 만큼 협상에서의 제약은 극복해야 할 핸디캡이다. 최악의 상황이지만 12일까지 샌디에이고와의 협상이 원만하지 않을 경우, 김광현도 국내 무대로 유턴할 가능성도 있다.

김광현이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싶은 의지가 확고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나친 헐값이나 불리한 대우를 감수하며 메이저리그를 고집할 이유는 없다. 스몰마켓 구단인 샌디에이고 구단으로서는 김광현에 들이는 포스팅 금액이 결코 적은 비용이라고는 할 수 없다.

관건은 몸값보다 보직 문제와 메이저리그 보장 여부다. 김광현에게 제시된 포스팅 액수를 봤을 때 샌디에이고가 김광현을 선발보다는 불펜 투수로 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샌디에이고가 올 겨울 대대적인 팀 개편을 준비하고 있는 데다 이안 케네디, 타이슨 로스, 앤드루 케시너 외에 4~5선발이 약한 팀 마운드 사정상 향후 로스터 안에만 진입하면 주전 경쟁을 노려볼 여지는 충분히 남아 있다.

첫해부터 마이너리그 거부권 등을 계약 조건에 넣을 수 있다면 첫해 현지 적응에 대한 부담감을 덜고 빠른 연착륙을 기대할 수 있다. 류현진도 LA 다저스와 계약 당시 마이너리그 거부권 추가 여부를 놓고 협상 종료 시점까지 구단과 벼랑 끝 협상 전략을 펼친 바 있다.

양현종, 윤석민의 시행착오 되풀이하지 말아야

KIA, 양현종 MLB 포스팅 응찰액 수용 거부 KIA 타이거즈가 왼손 에이스 양현종(26)의 미국 프로야구 진출을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KIA는 26일 "메이저리그(MLB) 구단이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양현종을 영입하겠다고 적어낸 최고 응찰액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지난 7월에 열린 2014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공을 던지는 양현종.

지난 7월에 열린 2014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공을 던지는 양현종. ⓒ 연합뉴스


일단 국내 잔류를 결정한 양현종은 2년 뒤 완전 FA를 통하여 다시 해외 진출을 노려야 한다. 그토록 꿈꾸던 미국 도전이 불발된 데 대한 정신적 박탈감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 관건이다.

김광현처럼 해외 진출의 적기를 놓쳤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시장의 냉정한 평가는 양현종이 감수해야 할 몫이다. 주변 상황이 모두 양현종에게 불리했다. 국내에서 김광현보다도 평균 이닝이나 자책점에서 더 나은 성적을 보여주지 못한 양현종이 포스팅에서 김광현 이상의 대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포스팅 입찰액이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지며 일본 무대로 방향을 선회하더라도 그 이상의 몸값을 보장받기는 어려운 처지였다.

양현종이 아직 해외 진출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팀 선배인 윤석민(볼티모어)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2011년 최고의 시즌을 보냈던 윤석민은 당시 해외 진출 자격을 채웠으나 구단의 강력한 반대로 결국 2년을 더 잔류하고 완전 FA자격을 얻은 뒤에야 팀을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KIA에서 머무른 마지막 두 시즌간 윤석민은 동기부여 상실과 잦은 부상으로 고전했고 결국 2년 전보다 주가가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FA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윤석민에게도 소속팀에게도 서로 마이너스만 된 선택이었다.

양현종은 앞으로 그에게 주어진 2년 동안 투수로서 이제까지보다 더 월등한 기량을 증명해야 한다. KIA 역시 해외 진출을 원하는 선수의 앞길을 또 막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보상이 있어야 한다. 메이저리그를 향한 첫 관문을 사이에 두고 일단 두 선수의 길은 엇갈렸지만 2년 뒤 서로의 운명이 또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는 아직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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