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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꿈은 아주 어릴 적부터 한결같았던 것 같다.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그는 별명조차 '검사'였다.
 그의 꿈은 아주 어릴 적부터 한결같았던 것 같다.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그는 별명조차 '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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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 드디어 사법고시 합격했어요."

늦은 저녁 시간, 수화기 너머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얼추 10년 만이다. 그동안 뭐하며 지냈는지는 들어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그와 이렇게 직접 통화를 한 건 그렇듯 오랜만이다. 통화하기 전부터 그의 합격 소식은 알고 있었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지는 모르지만, 학교는 이미 부산을 떨고 있었고, 일찌감치 교문에는 '경축' 현수막이 내걸린 터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법관을 꿈꿨다. 다른 진로는 아예 곁눈질조차 하지 않았다. 오로지 법대 진학만을 목표로 공부했고, 적어도 그에게 대학 '간판'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가 담임이었던 것도 아닌데 그를 또렷이 기억하는 건 그래서다. 당시 아이들에게 중요한 건 '간판'이지, 전공이나 적성, 흥미 따위가 아니었다. 지금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지만.

초·중·고등학교의 적성 검사 결과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꿈은 아주 어릴 적부터 한결같았던 것 같다.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그는 별명조차 '검사'였다. 고등학교가 법대로 진학하기 위한 과정인 것처럼, 그에게 대학이란 오직 법관이 되기 위한 코스이자, 거칠게 말해서 사법고시를 대비하는 학원일 뿐이었다.

학급 임원조차 손사래 칠 만큼 오직 '한 우물'만...

고등학교 시절, 그는 묵묵히 공부만 했다. 무슨 일이든 빈틈없고 야무지게 해낼 수 있는 더없이 착실한 아이였지만, 실장은커녕 남들 다 하는 그 흔한 학급 임원조차 손사래 칠 만큼 오직 '한 우물'만 팠다. 다분히 마초적인 기질이 있어, 응당 그 또래 친구들 앞에서 리더십을 충분히 발휘할 법도 하건만, 마치 수도승처럼 도 닦듯 학교생활을 했다.

이내 그는 대학생이 되었고,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굳이 다른 점이 있다면 여느 아이들은 옛 추억이 그리워서 한두 번쯤 고등학교를 찾지만, 그는 졸업하자마자 '잠적'해 버렸다는 점이다. 그래도 그의 대학생활을 수소문하거나 궁금해하는 이는 별로 없었다. 모두 일찌감치 '신림동'에 터 잡았을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따금 졸업한 또래들로부터 그의 소식을 전해 듣곤 했다. 해가 가도, 누구에게 들어도 똑같은 이야기였다. '신림동'에서 여전히 시험공부를 하고 있다는. 전하는 아이들이나, 듣는 나나 새로울 것 하나 없는 그 소식을 매번 그저 시큰둥하게 나눴을 뿐이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어느새 삼십 대 중반인 그는 십수 년 동안의 '청춘'을 사법고시 합격과 맞바꾼 셈이다.

"축하하기는 한다만…"

제자의 합격 소식에 함께 들떠 기뻐해야 마땅하지만, 나도 모르게 대답을 얼버무리고 말았다. 순간 더없이 대견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그가 한없이 가여웠다. '고작' 법관 하나 되자고 20~30대의 피 끓는 청춘을 들어 바친다는 게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초중고 학창시절을 빼도, 사법고시 공부에 자기 인생의 절반을 할애한 셈이 된다.

바로 다음날 그는 직접 모교를 찾아왔다. 교문의 큼지막한 '경축' 현수막이 맨 먼저 그를 환영했다. 그간 못 찾아뵌 은사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지만, 기실 그를 향한 축하와 격려를 나누고 기뻐하는 자리다. 그의 고등학교 시절 또래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 그를 가르쳤던 교사들조차 그의 성에 '별명'을 붙여 불렀다.

1, 2,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일일이 찾아뵌 후, 이윽고 내 '순서'가 왔다. 그의 모습을 단박에 알아봤다. 십 년도 훨씬 더 지났지만, 몸이 나고 얼굴에 주름이 약간 팬 것말고는 외모가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지난했을 그의 오랜 고시 공부를 증명해주는 건 단지 두꺼운 검은 뿔테 안경뿐이었다. 반가움에 와락 끌어안았다.

서로 마주 앉았지만, 그간 잘 계셨느냐, 축하한다, 고생 많았다는 말 외에 딱히 나눌 이야기가 없었다. 일면식도 없는 부모님의 안부를 묻는 것도 그렇고, 갓 합격한 마당에 미래의 진로에 대해 말 꺼내는 것도 무척 생뚱맞은 일이다. 대개 졸업 앨범 꺼내보듯 고등학교 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대화를 이어가는 게 보통일 텐데, 그와 내겐 딱히 그럴 만한 꺼리가 없는 탓이다.

"그간 연락 못 드려 죄송해요. 성공해서 당당히 찾아뵈려고 했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슬펐다. 하긴 명문대가 아니면, 이렇듯 고시에 합격하거나 대기업에 취직한 게 아니라면 모교를 제 발로 찾아오는 경우는 드물긴 하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제자들이 재수나 삼수를 해야 더 얼굴을 보기 쉽다는 우스갯소리도 한다. 어쨌든 수능 철이면 입시 원서를 들고 학교를 찾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교문의 '경축' 현수막 보며 그도 다시금 깨달았을 것

연락하고 싶어도 스스로 움츠러들어 저어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교문의 '경축' 현수막을 보며 그도 다시금 깨달았을 것이다. 무수한 졸업생 중에 모교는 성공한 이들만 기억해 준다는 사실을.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 하자는 취지의 그 현수막이 되레 장삼이사 다른 졸업생들이 모교를 찾는 데 장벽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게 된다.

무엇보다 '성공'이라는 말이 불편했다. 과연 사법고시 합격만으로 성공이라고 단언할 수 있나. 굳이 성공을 말하려면, 후에 사람들에게 '어떤 법관'으로 기억되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말하자면, '법관'이 아니라 '어떤'에 방점에 찍혀야 된다는 의미다. 헤어질 즈음 그의 손을 꼭 잡고, 부디 '좋은' 법관이 돼달라며 연신 부탁을 한 이유다.

내가 아는 그의 성품으로 미루어 보건대, 그는 틀림없이 올곧은 법조인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벼슬'에 호들갑스러운 우리 사회와 학교를 보노라면 조금은 두렵다. 무엇보다 이삼십 대 '청춘'을 고스란히 희생한 대가라는 생각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검사로서 어떤 죄를 묻고, 판사로서 어떤 판결을 내리게 될까.

그가 검정 법복을 입고 법정의 한가운데 앉아있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 앞에는 그와 비슷한 또래의 피고인이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다. 그의 외마디 선고에 피고인의 생사가 달렸다. 법조문에 명시된 대로, 그는 '양심'에 따라 판결할 것이다. 그러나 때론 '양심'도 오랜 시간 각인된 자신의 '경험'과 '편견'을 넘어서지 못한다. 바로 그 점이 두려운 것이다

오버랩되는 장면이 있다. 얼마 전 까마득한 후배 교사가 술자리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사범대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해 남 부러워할 만한 학점을 받았고, 수차례의 낙방을 거듭한 끝에 임용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으니 '최고'의 교사라며 내심 자처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그는 최고는커녕 교사의 자질이 있는지 자문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고 푸념했다.

그러면서 사범대의 커리큘럼과 임용시험이라는 제도가 제대로 된 교사를 선발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시험 성적과 교사로서의 자질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그날도 그의 부모를 모셔다 놓고 가출한 한 아이와 상담을 했는데, 도무지 납득이 안 돼 정말이지 죽을 만큼 힘들더란다. 나름 부유한 가정환경에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범생이'였던 그다.

서울 관악구 대학동(옛 신림9동) 고시촌. (자료사진)
 서울 관악구 대학동(옛 신림9동) 고시촌. (자료사진)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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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고시 폐인'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로또 대박을 꿈꾸듯 오매불망 고시 합격을 되뇌이며 '신림동'을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들이 오랜 세월 흘린 피와 땀을 무시할 순 없겠지만, 그 신산했던 경험이 되레 타인에 대한 공감을 방해하고 왜곡된 판단으로 이끌 가능성도 충분하다. 주지하다시피, 여전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와 헤어진 직후 수업시간, 아이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다짜고짜 20~30대 '청춘'의 시간과 사법고시 합격 중 하나를 고르라면 어떤 걸 선택하겠느냐고 물었다. 느닷없는 그 질문에 아이들의 답변은 뜻밖이었다. 놀랍게도 대부분 후자를 택했다. 다들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표정이었고, 개중에는 '법관이 된다면야 그깟 10~20년이 문제냐'며 반문하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청춘'이란 그다지 가슴을 뛰게 하는 말이 아닌 듯 싶었다. 하긴 얼마 전 '청년'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뭐냐는 질문에, 열이면 열 '백수'와 '실업'이라고 답했던 아이들이다. 말하자면, 말만 들어도 가슴 설렜던 '청춘'의 가치는 법관 자리 하나보다 못한 셈이다. 적어도 이 땅의 아이들에게는. 부디 법관이 된 그의 건투를 빈다.


태그:#사법고시,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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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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