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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는 모토가 몇 가지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젖은 낙엽이 되지 말자'다.

환자복을 입고 병원에 있으니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내 꼴이 가여워 보이나 보다. 그래서 그런지 가족들은 나를 아이 취급한다. 싫다.

입원실로 옮기고 이틀째 되는 날부터 수발드는 사람에게 물수건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부자유스러운 팔을 움직여 얼굴과 손을 닦고 발까지 닦았다. 내 하는 양이 불편해 보이고 안 돼 보였는지 도와주려고 한다. 단호하게 거절을 하고 스스로 했다. 머리를 단정하게 빗고 최대한 밝은 표정을 지으려고 애를 썼다. 할 수만 있다면 곱게 화장이라도 하고 싶었다. 환자복이지만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앉을 때는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의타심이 생길 것 같기도 했고, 어설프지만 나 스스로 하는 것만큼 남이 해 주는 게 개운치가 않아서이기도 하다.

일부러 묵언수행도 하는데 이참에...

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수양을 하고 있었다. 다른 때 같으면 누가 얘기하면 내 주장을 어필 시키느라고 남의 말을 덜 듣고 내 말하느라고 바빴을 텐데 목소리가 안 나오니 듣기만 하는 수련이 된다. 거, 참 괜찮다. 일부러 묵언수행도 하는데 이참에 몸의 병도 고치고 인품도 한 차원 높일 수 있다면 그야말로 일거양득이다. 혹자에게는 이 상황에 이 표현이 거슬릴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 스스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데는 꽤 괜찮다는 생각이다.

자존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에게 부담이나 폐를 안 끼치려고 가족이 아닌 외부 사람에게는 세 사람한테만 아픈 사실을 알렸었다. 12월에 모임이 좀 많은가! 거짓말을 할 수가 없어서 중요한 모임 세 곳의 총무에게만 알리고 신신당부했다.

유방암 검사 장면.
 유방암 검사 장면.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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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갑상선 수술만 하니 병문안 같은 것은 오지 않아도 된다고. 그런데 부득부득 우기며 꼭 면회를 와야겠다는 사람이 몇 있단다. 나는 간호사에게 부탁해서 좀 큰 환자복 상의를 하나 더 받았다. 속에는 원래의 환자복을 입고 유방으로 연결된 줄과 이물질 주머니를 숨겼다. 그리고 겉에 입은 좀 큰 환자복 밖으로 목에 연결된 호스와 이물질주머니를 나오게 했다. 두 가지를 수술한 줄 모르는 사람은 누가 봐도 갑상선 수술만 한 것처럼 감쪽같다.

사람들 중에는 눈치가 너무 없어서 답답한 사람도 있지만, 눈치가 100단이라서 무서운 사람도 있다. 하필이면 눈치 100단인 사람이 면회를 왔다. 나를 유심히 관찰하더니, "갑상선만 수술했어?"라고 물어본다.

뜨끔했다. 어쩌면 그 사람이 의심을 하도록 내가 원인 제공을 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수술 후에 후각이 예민해 져서 온갖 냄새를 다 맡다 보니 골이 지끈거리고 아프기 일쑤다. 그런데 이번에는 고약한 고무 냄새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나는 구역질을 하면서 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며 말했다.

"킁킁, 어디서 고무 냄새가 이렇게 지독하게 나지?"
"고무 냄새?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
"누가 새 신 신고 왔어? 신발 바닥에 붙은 고무 냄새가 나는데."

그것은 면회 온 사람이 신고 온 털장화에서 나는 냄새였다. 그 사람이 새 신을 신고 왔는데 기어이 신발을 벗어서 밖에 내놓고 슬리퍼를 신었다. 그는 눈을 반짝이며 더욱 세밀하게 나를 관찰했다.

"내가 갑상선 수술한 사람 여럿 봤는데 코가 저렇게 예민하지 않던데, 이상하네. 혹시 갑상선 수술하면서 다른 데도 건드린 거 아니야?"

나는 혹시라도 유방 쪽을 들킬까봐 조마조마했다. 하필 그때 간호사가 이물질 주머니를 체크하러 왔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라며 밖으로 자리를 비켜 준 언니가 허겁지겁 간호사를 따라 들어와서 간호사의 팔짱을 끼고 중요한 얘기가 있는 것처럼 병실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위기를 겨우 모면했다.

면회 온 사람들이 돌아가고 난 뒤에 언니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할 거야? 불편하고 불안하지 않아?"

괜찮다고, 자신 있다고 대답하고 싶은데 오랫동안 앉아 있어서 피곤하기도 했지만 갑자기 몰려오는 통증에 목소리까지 안 나와서 나는 못 들은 체하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서럽고 서글퍼서 눈물이 마구 쏟아진다.

울다가 마음과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일어났다. 복도를 걸었다. 위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갔다. 걸으면서 이방 저방 기웃거려 보니 나보다 경미한 환자도 있고 육안으로 보기에도 나보다 심한 환자도 있어 보였다.

더 심한 환자를 보며 '그래도 난 이만하니까 다행이야'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부끄러웠다. 남의 불행을 보고 위로를 받는다는 말을 듣고, '설마' 했는데 내가 그런 못난 사람이 돼 있었다. 그렇게 병실 복도를 걷는데 한 순간에 천장이 거꾸로 서더니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돈다. 복도의 지지대를 잡고 얼른 주저앉았다. 눈을 감고 한참을 진정한 뒤에 그 층의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병실로 돌아왔다. 빈혈이었다.

그 일이 있고난 뒤에는 가족이나 간호사들이 "가만히 안정을 취하고 있어라. 아직 운동은 무리다"라며 자꾸 주의를 준다. 그런 소리를 들을수록 나는 표정은 더 밝게, 명랑하게, 운동은 병실이 있는 층에서 간호사들 눈에 잘 뜨이는 곳에서 주로 수술한 쪽 팔 운동을 위주로 했다. 시키는 대로 안정을 취한 답시고 가만히 있으면 정말 환자가 되어 버릴 것만 같아서.

수술한 지 사흘째 되는 날 드디어 간호사와 언니에게 칭찬을 받았다. 팔 운동을 열심히 잘 해서 움직임이 많이 유연해졌다며 의지가 대단하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내 의지로 내 손으로 나를 건사

낙엽.
 낙엽.
ⓒ http://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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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소한 젖은 낙엽은 되기 싫습니다."

빨갛고 노란 나뭇잎이 나무에 붙어 있을 때는 단풍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기쁨을 준다. 낙엽이 되었을 때도 어느 기간 동안은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기도하고 책갈피에 고이 간직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지만, 비 온 뒤에 듬뿍 젖어서 아스팔트에 달라붙어 비질에도 쓸리지 않는 젖은 낙엽은 그렇지가 않다. 고왔던 시절의 영화는 간 곳 없고 청소하는 사람들의 빗자루 끝에서 마치 쓸리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처럼 바닥에 붙어 있는 젖은 낙엽!

사람도 그럴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차피 생긴 병이야 어쩔 도리가 없겠지만, 치료하는 과정이나 치료가 끝난 후에라도 가족이나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귀찮은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내 의지로 내 손으로 나를 건사하고, 가족에게 아름다운 낙엽이 되지는 못할망정 젖은 낙엽은 되지 말아야겠기에 나는 계속 운동하고 나를 쓰다듬을 것이다.


태그:#젖은 낙엽, #자존심, #눈치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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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시원한 청량제,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쓴 책 : 김경내 산문집<덧칠하지 말자> 김경내 동시집<난리 날 만하더라고> 김경내 단편 동화집<별이 된 까치밥> e-mail : ok_0926@daum.net 글을 써야 숨을 쉬는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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