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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경기도의 모 중학교에서 급식조리원으로 근무하는 이윤화(47, 가명)씨는 오전 7시 30분에 출근해 쉴새없이 음식을 만들고, 불 앞에서 진땀을 흘린다. 급식이 끝나면 어마어마한 양의 설거지와 청소가 기다리고 있다.

학교 급식실은 위생이 철저해 바닥과 벽, 심지어 천장까지 닦아야 한다. 잠시 은행에 갈 시간도 없이 일하고, 오후 4시 30분쯤 퇴근한다. 매일 8~9시간 일하며 130명분의 음식을 만드는 이씨는 이번 달 월급으로 133만 3430원을 받았다. 연봉제로 매달 비슷한 금액을 받는다. 그녀는 이 일을 9년 동안 했다. 물론 2012년 11월 이전에는 월급이 8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급여가 나아진 것은 당시 학교 비정규직들의 파업 덕분이었다.

급식실 조리노동자들 파업이 "기득권의 주장"이라고?

급식 조리원들의 파업을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의 아래에는, 임금 노동자 파업에 대한 잘못된 오해가 깔려있다.
 급식 조리원들의 파업을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의 아래에는, 임금 노동자 파업에 대한 잘못된 오해가 깔려있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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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급식실 조리원의 90% 이상이 근골격계 질환을 호소한다. 이씨는 노동 강도가 어지간한 중공업 사업장 못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이들은 병가를 내기도 어렵다. 병가를 내려면 스스로 대체 인력을 구해놓고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조리원에게 일이 몰린다.

보건증이 있는 사람만 근무할 수 있어 대신 일해 줄 사람을 구하기도 힘들다. 이씨도 9년 동안 장염으로 입원하는 동안 딱 사흘 병가를 내본 게 전부였다. 이처럼 조리원들은 아파도 일하는 경우가 많다. 병가를 내면 그날 일당은 없다. '무노동 무임금'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이씨가 받는 월급 130여만 원에 이 모든 게 다 포함되어 있는 셈이다.

전국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 20일과 21일 총파업을 시작했다. 이들은 2012년부터 임금 및 단체 교섭을 진행했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해소해달라는 요구였다. 하지만 교섭이 거의 진척이 되지 않자 고민 끝에 이틀간의 총파업을 결정했다.

이에 교육부는 지난 21일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총파업 관련 교육부 입장'이라는 자료를 통해 이들의 처우개선 요구에 대해 "자신들만의 기득권을 주장하는 무리한 요구"라고 주장했다. 세상에나, 130만 원 받는 비정규직이, 그것도 근속 인정 상한제가 있어 1년을 일하나, 10년 넘게 일하나 똑같은 급여를 받는 이들이 무슨 '기득권'이 있다는 말일까?

게다가 이들은 급식실에서 밥을 하면서도 자기 돈을 내고 급식을 먹어야 한다. 급식 수당을 달라는 요구가 어떻게 기득권의 무리한 요구일 수 있는가? 언어도단이다. 아울러 이는 학교 비정규직들에게 몰상식하고 이기적인 집단의 이미지를 씌워 '불평등한 사회를 정당화' 하려는 '진짜' 기득권층의 꼼수일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파업에 대해서 일부 언론은 '급식 대란'을 운운하며 교사와 학부모의 부정적인 반응을 보도했다. '아이들 식사를 정치 논리로 해석하지 말라', '교사가 되기 위해 사범 대학에, 임용고시에 10년의 시간을 들였는데 노조원들은 이런 노력 없이 교사들과 동등한 처우를 요구하고 있다'는 식이었다.

관련 뉴스의 댓글에서도 비슷한 말들이 떠돌며 추천을 받았다. '억울하면 공무원 시험 보라'는 이야기, '비정규직인 거 모르고 들어갔냐'는 이야기, '염치없다'는 평들이 이어졌다. 이러한 반응은 어딘가 이상하다. 이는 올바른 판단일까? 어딘가 심히 꼬여 있는 게 아닐까?

우선 밝힐 것은 위와 같은 말들은 모두 잘못된 기초 위에 서 있다는 것이다. 학교 비정규직이 교사나 공무원과 동등한 대우를 요구한 일이 없다. 전국 학교 비정규직연대회의가 요구하는 것은 정규직과 같은 급식 수당 13만 원 지급, 정규직의 50% 수준인 3만 원 호봉제 실현, 명절 상여금 인상, 근속 인정 상한제 폐지 등이었다. 현재 학교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57%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다. 동등한 대우를 요구하는 게 아니다.

또 '교육 재정이 어렵다고 난리인 마당에 자기들의 요구만 무리하게 주장한다'는 비난도 설득력이 없다. 지방 교육 재정이 어려운 것은 정부와 여당이 무리하게 누리 과정 예산을 시·도교육청에 떠넘기려한 탓이지, 학교 비정규직이 '무리한 요구'를 했기 때문이 아니다. 게다가 학교 비정규직들의 요구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자리한 잘못된 관념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조합과 노조의 파업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가 들씌워졌다. 심지어 같은 임금 노동자인 일반인들도 파업에 대해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귀족 노조라는 희한한 말도 이런 상황에서 기생한 것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의 정도가 임금을 결정한다

전국학교비정규직 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20일 오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처우개선을 촉구하며 총파업을 실시하고 있다.
▲ '총파업은 식판과 함께' 전국학교비정규직 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20일 오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처우개선을 촉구하며 총파업을 실시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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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임금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보통 우리는 임금이 흔히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 원리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노동이 상품이고, 시장이 노동의 가격을 결정하며, 생산성에 따라 임금 수준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세계적 석학들의 연구 결과는 그게 아니라고 말한다.

2010년 프랑스 경제학자 제롬 고키와 미국의 경제학자 존 슈미트는 '선진국의 저임금 노동'에서 임금을 결정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나 제도'라고 했다. 즉 노조 조직률과 단체 협약 적용 수준, 법정 최저 임금의 존재와 수준, 직업 훈련 정도, 사회 임금 유무, 고용 보호법의 유무 같은 것들이 임금 수준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임금은 사실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의 정도, 교섭의 힘 그리고 사회 제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다.

같은 일을 해도 나라마다 임금 수준이 다른 이유도 거기에 있다. 노동 인구의 90%가 노조에 가입된 덴마크에서는 벽돌공이 의사와 비슷한 수입을 올린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덴마크에 벽돌공 할 사람이 적거나 벽돌공에 의사만큼의 자격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벽돌공에게도 그만큼의 수입을 보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고 그걸 실현할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10여 년간 우리 사회의 임금 총량은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대기업과 재벌이 사상 최대의 수익을 낼 때도 그것이 서민과 노동자의 주머니로 흘러드는 일은 없었다. 왜 그러한가? 내 월급은 왜 매일 이 모양인가? 그것은 노사 관계에서의 힘의 균형이 깨지고 재벌과 대기업의 지배력이 커진 탓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를 고용한 이들과 싸워야지, 나보다 월급을 좀 더 받거나 더 받기 위해 투쟁하는 같은 임금 노동자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도마 위에서 내 손을 자르는 것과 다름없다. 댓글의 표현대로 비정규직인 것을 모르고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들어갔는가?

지금 이 사회에 그런 일자리만 허락되기 때문이다. 또 공무원이 되면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을 거란 것도 다 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비난은 자기 계발을 하지 못하는 이들은 입도 뻥긋하지 말란 것과 같다. 처우에 만족하라는 뜻이 된다. 그런 논리라면 만약 교사들이 임금 투쟁을 하면 '억울하면 너도 판사, 변호사, 의사 되지 그랬니'라는 말도 가능하다.

불합리한 사회 제도 때문에 생기는 문제를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돌리는 것은 사회 구성원을 파편화하고, 지독한 자기계발이라는 늪으로 빠뜨릴 뿐이다. 생각해보자. 만약 급식 조리원이 교사와 비슷한 대우를 받는 사회였다면 공무원이 되기 위해 수년의 희생을 감내할 이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20일, 21일 이틀간의 총파업으로 이들이 얻어낸 결과물은 급식비 8만 원 지급이었다. 그것도 일부 교육청(강원, 경기, 대전, 광주, 세종시)이지만. 어쨌든 노조가 조직되어 함께 싸웠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어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는 24일부터 무기한 밤샘농성에 돌입했다. 연대회의는 오는 12월 2일부터 지역별로 교육청과 함께 교섭을 진행할 계획이며, 교섭 결과에 따라 2차 파업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급식실 조리 노동자들의 싸움을 비난해선 안 되는 이유

세상에 홀로인 것은 없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남으로써 저것이 일어난다. 마찬가지로 학교 비정규직들의 파업과 투쟁은 우리 모두와 연결되어 있다. 급식 조리원들이 만족스럽고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우리 아이들이 맛있고 건강한 급식을 먹을 수 있다.

이것은 절대 법칙이다. 또한 그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져야 우리 동네 학원이며, 식당이며, 미용실이며, 자영업자들도 좀 더 나은 소득을 올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학교 비정규직들의 임금상승은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 요인이 될 것이다.

급식실 조리원들 대부분이 40~50대 여성이다. 구호도 한 번 외쳐보지 않았던 이 아줌마들이 처음으로 집회에 나선 그날은 마치 소풍 가는 분위기 같았다. 찰밥에, 옥수수에 먹을 것을 싸와 함께 나누며 이들은 수줍게 '차별을 시정하라'고 외쳤다. 그 모습이 보기에 아름다웠다. 왜? 우리 모두를 위한 정당한 투쟁이기 때문이다.

이 아줌마들이 싸워야 나와 내 이웃이 더 잘 살게 된다. 이 아줌마들을 비난할 때 얼씨구나 좋아할 이들은 기득권층과 재벌뿐이다. 화살의 각도를 정확히 맞추자. 당신이 재벌이나 기득권층이 아니라면 저들이 수줍게 들어 올리는 주먹에 지지를 보내야 마땅하다.


태그:#비정규직, #임금,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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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강사, 전 안성신문 기자, 전 이규민 국회의원 보좌관, 현)안성시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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