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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삼성그룹이 화학 부문 등 계열사 4곳을 전격 매각했다. 사진은 2013년 신년하례식 모습.
 26일 삼성그룹이 화학 부문 등 계열사 4곳을 전격 매각했다. 사진은 2013년 신년하례식 모습.
ⓒ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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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예상 못했다. 26일 오전 재계와 금융시장은 술렁였다. 말 그대로 초대형 빅딜이다. 국내 최대 재벌인 삼성그룹이 화학 부문 등 계열사 4곳을 전격적으로 매각했다. 이곳을 사들인 곳은 또 다른 재벌인 한화였다. 재벌 사이의 이 같은 빅딜은 거의 17년 만이다.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때 정부 주도의 재벌 간 사업 조정 이후 처음이다.

이번 빅딜로 삼성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3세 중심 경영체제로 한 발 더 나아갔다. 일부에선 이재용 부회장이 빅딜을 주도했다는 시각도 나온다. 한화는 자신들의 주력사업을 더욱 확장시켰고, 재계순위도 9위로 크게 뛰어올랐다. 물론 김승연 회장의 복귀설도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갑자기 삼성맨에서 한화맨으로 뒤바뀌게 된 직원들은 어리둥절하다. 일부에선 '뒤통수 맞았다'며 분개하기도 했고, 또 한편에선 '어차피 미운 오리새끼였다'는 자조 섞인 반응도 있다. 17년 전 대규모 빅딜과 사업조정에 따른 대량 해고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번에도 구조조정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래서 여전히 직원들은 두렵다.

"어차피 삼성엔 전자와 후자, 그리고 서자만 있었을 뿐"

"어차피 우리는 서자(庶子) 신세였으니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그의 목소리는 자포자기하는 듯했다. 이날 오전 갑작스런 회사 매각 발표에 김아무개 과장도 혼란스러웠다. 그가 말하는 '서자(庶子)'라는 표현은 삼성맨들은 익히 알고 있는 단어다. 삼성그룹 내에서도 주력계열사인 삼성전자 직원을 '전자'로 일컫고, 나머지 계열사를 대개 '후자'라고 말한다. 여기서 일부 비주력 회사들의 경우 '서자'라는 말까지 쓴다.

그는 "오전에 직원들 사이에서 회사 매각소식이 SNS을 통해 퍼졌다"면서 "회사 간부들도 이야기를 듣고 놀라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그는 "일부 직원은 '뒤통수 맞았다'고 하더라"면서 "나중에 (삼성) 3세들끼리 계열사 나눌 때 그래도 우리 자리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라고 전했다.

삼성테크윈의 또 다른 직원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길 꺼렸다. 창업사업장에서 일하는 과장급 직원이라고만 했다. 이어 짧게 한마디만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삼성맨으로 나름 자부심을 갖고 주말도 마다하지 않고 일만 했다"면서 "사실 오늘 소식을 듣고 회사에 큰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번에 매각되는 4개 계열사는 삼성테크윈과 삼성토탈, 삼성종합화학, 삼성탈레스이다. 이 가운데 삼성테크윈 직원 수가 국내외 사업장을 합해 6000명이 넘어 가장 많다. 이밖에 삼성토탈(1500여 명), 삼성탈레스(1000여 명), 삼성종합화학(300여 명)까지 합하면 7300여 명 정도다.

2013년 10월 23일 삼성코닝정밀소재의 지분 42.6%를 보유한 삼성디스플레이가 지분 전량을 코닝 본사에 전량 매각하기로 협의를 맺었다.
 2013년 10월 23일 삼성코닝정밀소재의 지분 42.6%를 보유한 삼성디스플레이가 지분 전량을 코닝 본사에 전량 매각하기로 협의를 맺었다.
ⓒ 삼성코닝정밀소재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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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모두가 '한화맨'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한화 쪽에선 고용을 승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일부 직원들은 삼성의 다른 계열사로 잔류하기를 희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삼성은 지난해 11월 삼성코닝정밀소재를 미국 코닝사에 매각하면서, 희망 직원 300여 명에 대해 삼성전자 등 다른 계열사로 전환배치하기도 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매각대상 계열사 직원들의 전환배치 등에 대해선 결정된 사안이 아직 없다"면서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삼성 주변에선 지난 코닝 사례처럼 전환배치와 위로금 지급 등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건희 회장 부재 6개월... 3세경영 체제로 한 발 더 가나

이번 빅딜로 삼성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중심의 3세경영 체제에 속도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화학부문 계열사를 정리함으로써, 이재용·이부진·이서현 등 삼성 3세들의 사업 영역도 보다 분명해졌다.

그동안 시장에선 이재용 부회장이 전자와 금융, 건설 등을 맡고, 이부진 사장이 호텔과 상사, 중화학 부문을, 이서현 사장이 패션과 미디어 부문을 맡을 것으로 예상했다. 중화학 부문에선 이부진 사장이 삼성종합화학 지분 4.95%을 갖고 있었고, 이건희 회장이 종합화학 지분 0.97%를 소유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만큼 화학부문의 이씨 오너 일가 지분이 거의 없었던 셈이다. 이번에 화학부문 4개 계열사를 한화에 넘김으로써, 중화학 부문 승계는 사실상 없던 일로 됐다. 따라서 향후 이재용 부회장이 전자와 금융, 건설 등 주력을 맡고, 이부진 사장이 호텔과 상사 부문 맡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 쪽에선 이번 빅딜이 그룹의 선택과 집중, 사업의 경쟁력 강화에 있다고 설명했다. 오너 일가의 지배구조 개편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실제 삼성은 이번 빅딜로 그룹 사업을 전자와 금융, 중공업, 서비스 등으로 좀 더 단순화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이번 빅딜로 인해 양 그룹 간의 선택과 집중에 따른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3세경영의 지배구조 개편과 연결짓는 것은 해석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화그룹 관계자 역시 "그동안 국내서 화학과 방산 분야의 리딩기업 역할을 해왔다"면서 "이번 기회에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것과 함께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태그:#삼성, #이건희, #이재용, #한화, #김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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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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