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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토종종자
 일본의 토종종자
ⓒ 피스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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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은 베고 죽는다'는 말 뜻은 당장에 배가 고프다고 씨앗을 남겨두지 않으면 미래에 큰 배고픔을 겪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씨앗을 남기지 않는다. 남겨도 쓸모가 없는 불임씨앗이 많기 때문이다.

과거 전통적인 농업에서는 해마다 종자(種子)로 쓸 씨앗을 남기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씨앗의 유전자를 조작하고 육종하는 농업기술이 발달하면서 씨앗은 기업의 소유가 되고, 특허상품이 되었다. 농민들이 해마다 돈을 주고 씨앗을 구입해야 현실은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농민들도 마찬가지다.

몬산토, 신젠타 등 다국적 종자기업의 횡포에 맞서 재래종 토종씨앗을 보존하고 보급하는 운동도 각 나라마다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한국도 전국여성농민회와 '씨드림' 단체를 중심으로 토종씨앗 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19일, 한국을 방문한 일본의 토종종자 지킴이 민간단체 '피스씨드(peace seed)'의 하마쿠지 마리코 공동대표를 인터뷰했다.

'지구를 구하는 것은 씨앗'

20여년 전 아프리카의 기아구호 활동을 하던 마리코씨는 일본의 자연농업의 대부로 불리는 후쿠오카 마사노부를 만나게 되고, '지구를 구하는 것은 씨앗'이라는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한다. 그 후로 호주에서 토종을 보존하고 농사짓는 지역을 찾아가서 공부하며 씨앗교류를 시작했다. 당시에 일본에서는 토종에 대한 공부와 정보를 배울 곳이 없었다고 한다.

도시에 살던 그녀는 농촌지역인 카토리로 이사를 하고, 2000년에 남편과 함께 단체를 만들었다.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토종씨앗을 채종하는 농사를 하며, 여러 지역의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통해서 씨앗을 나눔했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많은 사람들이 토종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그것이 꼭 좋은 현상은 아니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만 진정한 씨앗지킴이를 하겠다는 사람은 아직 없는 것 같다.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 장사를 하는 사람들, 어떤 지역의 커뮤니티에서도 씨앗을 원하고 있지만, 농사를 짓거나 지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유행을 따르는 것이다. 처음 단체를 만들고 나서도 엄청난 문의가 왔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지만 그 뒤에 돌아온 것은 없었고, 큰 실망을 했었다."

진심으로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활동가를 키우고 싶다는 마리코씨는 현재는 농사를 하러 찾아오는 사람들과 농사지을 땅을 찾고 있으며, 새로운 공동체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단체운영에 필요한 비용은 워크숍을 하거나 농산물을 판매한다.

씨앗을 채종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있는것을 알기에 공짜로 얻지 않고, 직접 밭을 찾아가서 함께 일을 하고 씨앗에 담긴 이야기를 들으면서 토종씨앗을 얻어온다고 한다. 그녀의 씨앗나눔도 찾아와서 농사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만 나눠준다.

"토종은 국가의 전체 지역을 다 포함하는 것이 아니다. 한 지역을 중심으로 멀지 않은 거리안에서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경작하면서 물려받은 씨앗을 토종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씨앗만 찾으면 안된다. 그 씨앗이 누구로부터 보존되고 대물림되어 왔는지 알아야 한다. 먼저 사람을 보고, 그 다음에 씨앗을 봐야 한다."

씨앗이라는 것은 기억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누구로부터 왔는지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는지, 그것을 기록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한다. 한국의 토종씨앗 몇 종류를 건넸을 때, 그녀는 지역의 이름과 누가 키웠는지를 묻고 기록하였다.

토종종자 지킴이 민간단체 '피스씨드'   하마쿠지 마리코 공동대표
 토종종자 지킴이 민간단체 '피스씨드' 하마쿠지 마리코 공동대표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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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농사 늘고 있지만 소비자 인식은 아직...

- 일본에서 토종농산물의 생산과 판매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조금씩 토종농사를 짓는 농부가 늘고 있지만 많지는 않다. 새로운 토종작물이 늘어나고 정부에서도 지원하고 있지만, 지역의 농산물을 홍보할 수 있는 브랜드 개발과 인지도 부족등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있어서 아직은 토종 농산물의 유통체계가 자리를 잡지는 못했다. 지금은 소비자와 직거래로 판매하고 있으며, 공급이 부족할 정도로 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고 토종이 가진 고유의 특성이 있는데 그것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아직 부족해서 반품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토종작물이 가진 가치보다는 겉모양과 판매하는 기업이나 마켓의 브랜드에 대한 영향 때문에 개량종 농산물과 토종농산물의 다른 부분들을 이해시키는 것이 아직은 어렵다고 한다. 크고 때깔 고운 농산물을 선호하는 인식은 한국과 비슷한 것 같다.

일본은 씨앗을 받는 채종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아직까지 처벌을 받은 경우는 없는것 같다고 말했다. 불임씨앗을 채종하여 10년이상 경작하면서 본래의 성질을 찾아주려는 농민도 있다고 한다. 일본은 지역별로 작은 종자회사들이 남아 있지만 많지는 않으며, 씨앗 자급률은 10%정도로, 대부분 외국의 종자회사로부터 수입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농업현황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에 농산물의 안전성 논란에 대해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했다.

- 일본의 농업정책과 식량자급률은 어느 정도인가
"일본정부는 한국처럼 쌀시장 개방을 적극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여론도 쌀개방을 반대하고 있다. 식량자급률은 공식발표로 40%다. 정부에서는 식량자급률을 높이려고 예산을 쓰고는 있지만 원래 가야할 곳에 가지 못하고 있다. 작은 규모의 소농과 가족농에 지원을 해야 하는데, 정부정책은 바이오테크 농업과 기업농에 집중되어 있다."

- 농민과 귀농인에 대한 지원정책은 어떤가
"전체적인 상황은 모르겠지만 젊은 청년들중에는 농사에 전혀 관심이 없기도 하다. 최근에는 귀농을 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정부의 농민에 대한 지원정책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많은 편이다."

- 일본은 학교에서 농업의 중요성을 교육하는가
"과거에 노인세대들은 농학(재배기술)에 대해서 배웠다. 지금은 자연적인 농사가 아닌 유전자,품질향상등의 자원에 대한것을 대학에서 가르친다. 초중고등학교에서는 농업체험 과목이 있으며, 작물재배에 대한 것을 정규수업으로 하고 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에도 농사수업이 있었고, 농업의 중요성에 대해서 배웠다."

여러나라의 토종종자 지킴이들
▲ Seed Saver 여러나라의 토종종자 지킴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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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사람들과 남아 있는 사람들

-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에 농산물에 대한 불안감은 어느 정도인가
"천차만별 다양하다. 호주에서도 같은 질문으로 원고 청탁이 들어와서 쓰고 있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 답을 할 수 밖에 없다. (사고 이후에) 너무도 많은 것들이 변했다. 아기를 가진 엄마들이 아주 많이 걱정하고 조심스러워 한다."

- 후쿠시마와 관련된 질문을 받으면 불편하지 않는가
"나는 괜찮다. 그러나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후쿠시마와 170km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는데, 어느곳에 얼마만큼 (방사능) 오염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 후쿠시마와 거리가 가깝거나 멀리 떨어졌다의 문제가 아니다. 산이 높거나 낮은것의 영향과 바람과 비에 의한 오염의 차이가 많아서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내 밭에서도 어떤 곳은 심하게 오염된 땅도 있고, 깨끗한 땅도 있다. 지붕에서 빗물이 떨어진 부분만 오염이 되기도 한다. 우리집은 얼마만큼 오염이 되었다고 말하면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비난받고 무시당하기도 한다. 우리지역에서 피난갈 사람들은 다 떠났다."

마리코씨는 인터뷰가 길어지면서 잦은 기침을 했고, 약을 먹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목이 좋지 않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별 거 아니며 나의 '생각'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한다. 버섯을 먹지 말라는 정도의 처방만 해준다. 정부와 방송에서도 도쿄쪽은 안전하다고 말하지만 지역에 상관없이 오염이 혼재되어 있는 상황이다.

재배한 농산물의 방사능을 측정하고 기록을 했었다. 판매를 할 때에도 방사능 오염수치를 공개했었는데, 그것이 기억을 되살리게 하니까 사람들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방사능 검사하는데 돈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소비자로 부터 신뢰 받는것도 아니라서 지금은 하지 않는다.

매우 민감한 사람들은 우리지역의 물건을 사지도 않고, 들어오지도 않는다. 지금 일본은 후쿠시마와 가까운 지역과 먼 지역으로 분리되어 있는 상황이다."

- 일본정부에서는 진실을 감추고 은폐하는 것 같다.
"정부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고 인정도 안했다. 올림픽을 하겠다는데 바보같은 짓이다. 처음에는 원폭피해를 당한 히로시마에서 후쿠시마에 많은 정보를 주고 교류를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후쿠시마에서 괜찮다며 교류를 중단했다.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떠날 사람은 다 떠났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더 알고 싶어하지도 않으며 체념하고 사는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인터뷰는 하자센터에서 작업장학교 양상 선생님의 통역으로 진행했습니다.



태그:#피스씨드, #씨드 세이버, #토종종자, #하마쿠지 마리코, #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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