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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부터의 귀환>
 <우주로부터의 귀환>
ⓒ 청어람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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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어른들에게 많이 들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를 떠나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견문을 넓히라고 말이다. 여행하면서 보고 들은 것들이 살아 가는 동안 삶을 지탱해 주는 재산이 될 거라고. '그렇다면 우주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어떻게 되는 거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가 개봉됐다는 뉴스를 접하자마자 내가 떠올린 책은 <우주로부터의 귀환>이었다. 1981년부터 일본 작가 다치바나 다카시가 NASA의 도움을 받아 우주여행을 체험한 이른바 '우주인'들과의 인터뷰 내용을 모아 만든 책이다.

30여 년 전의 기록이지만 오늘날 읽으면서도 최첨단 과학의 총아인 우주여행 프로젝트는 여전히 새롭고 흥미롭다. 우주에 대한 인류의 관심을 모으기에 여전히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이다. 우주인이라고 내가 사용하고 있는 단어는 우주를 비행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미국의 '애스트로넛(Astronaut)'과 소련의 '코스모넛(Cosmonaut)'을 번역한 말이다. 이 우주인들을 모두 합치면 백 명을 좀 넘는 정도였다고 작가는 적고 있는데 30년 전 기록이니, 현재 이들의 숫자는 몇 배로 불었을 것이다.

저자 다치바나 다카시는 우선 인간이 지구의 대기권 밖으로 나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설명한다. 산소가 없고, 중력이 지구의 1/6밖에 되지 않는 달에 가서 잠시라도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오줌 한 방울도 꼼꼼히 관리할 수 있을 만큼 섬세하고도 강력한 우주선과 우주복을 설계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까다로운 요원들의 선발과 몇 년간의 혹독한 훈련과정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지구

지구를 지구 밖에서 보고 돌아온 우주인들이 한결 같이 하는 말은 "지구는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이다. 이들 중엔 대기권을 도는 것으로 우주체험의 시작 단계만을 경험한 사람들도 있고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디뎠던 암스트롱과 같은 체험을 한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푸른 빛이 도는 지구, 그리고 무(無)를 연상시키는 지구 주위의 암흑과도 같은 검은 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지구 밖에서 지구가 아름답다는 사실을 전해 들으면서 나는 현재의 지구를 생각한다. 축구장 수십 개에 해당하는 만큼의 넓이가 매년 사라지고 있는 지구의 허파 아마존이나 점점 줄어들어 곧 사라질 남극의 얼음 등을 생각하면 지구의 일부이면서도 지구를 대하는 인간의 행동은 어찌 이리도 아름답지 못한가 하는 결론에 이른다.

저자는 지구에 기생하는 인류는 마치 인간의 몸 속에 기생하는 미생물과 같은 존재가 아닌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 미생물인 인류가 지구라는 몸의 환경을 좀먹고 있으며 결국 거대한 유기체인 지구가 미생물인 인류를 자신의 몸에서 없애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잉태한 섬짓한 의문이다.

30년 전 예측한 미래의 우주시대

"눈 아래로 지구를 보고 있으면 지금 현재 어딘가에서 인간과 인간이 영토와 이데올로기를 위해 피를 흘리고 있다는 사실이 거의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바보 같은 짓처럼 생각된다. 아니, 정말 바보다. 소리를 내서 웃고 싶을 정도로 그것은 바보 짓이다."(p.238)

아폴로 7호 비행을 마쳤던 돈 아이즐리가 한 말이다. 그는 미소 냉전체제와 민족국가 개념이 삼십 년 안에 구시대 유물이 될 거라고 예견했는데 지금으로서는 반쪽은 맞는 말이 됐다.

우주에서 태양열과 태양과 행성간의 자장(磁場)을 이용하면 우주가 인간이 살 수 있는 자족적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지구인이 진정한 우주인이 될 수도 있다. 우주에서 태어나 우주가 고향인 인간이 탄생하게 되면 중력과 대기의 조건이 다르니 우주에서 태어나는 인간의 외모와 사고체계도 파격적으로 현재의 인류와 다를 것으로 예견한다.

미국의 패권주의는 여전하고 중국의 팽창도 위협적이다. 전세계가 지구촌화되면서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이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바람에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격차가 삼십 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심화됐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국제화 되고 말았다는 데에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주를 삶의 터전으로 확보하기도 전에 인류가 지구에서 종말을 맞이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다. 우주마저도 있는 사람들의 놀이터로 전락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의 아니 전세계의 관객들에게 <인터스텔라>를 보는 세 시간 동안의 우주체험이 인류애를 고양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미국의 재난영화에 등장하는 가족애가 제발 인류애로 진화되기를 소망한다. 여행과 체험의 목적이 인류의 1퍼센트만 잘 사는 것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우주로부터의 귀환>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전현희 옮김, 1판1쇄 2002년 1월, 12쇄 2014년 10월 24일



우주로부터의 귀환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전현희 옮김, 청어람미디어(2002)


태그:#우주, #인류, #다치바나다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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