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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 언덕길에 있는 가회 민화 박물관은 아담한 한옥집이다.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 언덕길에 있는 가회 민화 박물관은 아담한 한옥집이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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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은 정다운 옛 한옥집 골목길을 산책하는 즐거움 외에도 매듭 박물관, 닭 문화관, 자수 공방, 금박 공방 등 작고 개성 있는 많은 박물관과 공방, 체험관들이 있어 하나씩 찾아가보는 재미가 좋다.

그중에서도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가회동 민화(民畵) 박물관이다. 박물관이라고 부르지만 북촌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북촌 5경 언덕길가에 자리한 아담한 한옥집이라 찾아가기 더욱 좋다.

가회 민화 박물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화 박물관으로 환갑이 넘은 나이 지긋한 관장님이 개인적으로 꾸준히 수집해 온 민화와 부적 관계 자료 등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보존하기 위해 2002년 처음 문을 연 곳이다.

2002년 개관 기념 특별전시를 시작으로 인간의 삶과 염원이 담겨 있는 다양한 조선시대 민화, 액막이 병풍, 부적 전시 등을 하고 있고, 정기적으로 현대 민화작가들의 특별전을 개최해 우리 민화의 우수성과 현대 민화의 작품성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살갑고 해학적인 호랑이라니

 병풍 화조도, 동물그림, 부적 등 다양한 민화를 볼 수 있는 공방 겸 전시관.
 병풍 화조도, 동물그림, 부적 등 다양한 민화를 볼 수 있는 공방 겸 전시관.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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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서운 호랑이를 친근하고 익살맞게 그려낸 우리의 민화.
 무서운 호랑이를 친근하고 익살맞게 그려낸 우리의 민화.
ⓒ 가회민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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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라는 용어는 일제 식민지 시대인 1937년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민속적 회화'란 의미로 만든 이름으로 그 이전부터 속화(俗畵)란 이름으로 대중과 함께 했다. 민화의 근원은 선사시대 암각화(巖刻畵)로 고구려, 신라 때 그려진 사신도(四神圖)와 처용도(處容圖)를 거쳐 조선시대에 다양한 소재로 변화했다.

조선 후기(19세기 말~20세기 초) 주로 서민들 사이에 크게 유행한 민화는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담은 그림으로 평가받는다. 서민들의 꿈과 희망, 애환을 솔직하게 화면에 표현한 데다 사대부 문인화와 달리 작가들의 자유분방한 상상력, 해학이 돋보인다. 어눌한 것 같으면서도 정감이 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쳐 1960~1970년대 근대화 과정에서 민화는 철저하게 소외됐다. 화가의 이름이 새겨진 낙관도 없는 서툰 '환쟁이'들의 그림 등으로 폄훼되며 학계에서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국내의 민화 전시관 혹은 박물관 또한 이곳과 강원도 영월 두 곳 뿐이다.

아담한 뜰 옆 공방의 역할을 함께 하고 있는 박물관 한옥 전시실에는 옛사람들의 진솔하고 살가운 정취가 담겨 있는 희귀한 민화 작품과 주술적 신앙이 반영된 전시물들을 감상할 수 있다.

민화의 특징을 잘 드러낸, 채색이 인상적인 병풍 모양의 화조도(花鳥圖)가 방문객을 맞이했다. 화조도에 나오는 원앙은 부부간 금실과 귀한 자식을, 학은 장수와 입신출세를 상징한다. 모란꽃은 부귀영화를, 소나무는 장수를 상징하는 등 저마다 고유의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다양한 새들이 꽃과 어울려 종이 병풍 위에서 날아다니고 지저귄다.

영수화(靈獸畵)라 하여 동물들이 주로 등장하는 민화는 특히 눈길을 끈다. 중국에 용이 있다면 우리나라엔 역시 호랑이인가 보다. 한국인에게 호랑이는 예로부터 특별한 존재였다. 호랑이는 한편으로는 공포와 외경의 대상이요, 용맹함의 상징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은혜를 입으면 갚을 줄 알고, 인간의 어려움을 보살펴 주며, 삿된 것들을 쫓아 주는 민중의 벗이었다.

민화에 단골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호랑이의 친근하고 개성 있는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웃음 짓게 된다. 민화 속에서 호랑이는 토끼가 받쳐 주는 장죽(長竹)을 빨거나, 왕방울만한 눈을 하고 까치들과 노니는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까마귀 울음소리에 놀라 눈이 동그래진 호랑이부터, 처진 눈으로 그림 밖을 향해 웃음띤 표정을 짓는 호랑이까지 다양하기도 하다. 위엄이 있어 보이면서도 무섭지 않고 늠름한 자태, 이것이 우리 호랑이의 모습이다.

이같이 익살맞고 정겨운 모습의 호랑이는 아마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중국과 일본 민화에 흔히 등장하는 무섭고 잔혹한 이미지의 호랑이와는 달리 한반도 호랑이는 귀엽고 친근하다. 두려운 존재인 호랑이마저 친구로 바꾼 우리 조상들의 여유와 유머 감각이 민화에서 묻어나온다. 무서운 호랑이를 이렇게 살갑고 해학적으로 그린 민화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한다.

민화 속 '세눈박이' 개

 공방에서 하는 민화 그리기, 부적 만들기 등의 체험 프로그램이 인기다.
 공방에서 하는 민화 그리기, 부적 만들기 등의 체험 프로그램이 인기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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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신을 잡는다는 세눈박이 개 그림, 천진난만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귀신을 잡는다는 세눈박이 개 그림, 천진난만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 가회민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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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의 수많은 동물 중 인간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오고 있는 동물, 개도 빠질 수 없다. 환생을 믿는 불교의 설화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죽은 후 저승의 삼목대왕(三目大王)으로부터 대우를 받았다는 이야기에서 세눈박이 개가 나타난다. 이 설화는 오늘날 불교 경전을 통해 전해지고 있으며, 이 때문에 불교에서는 개고기를 더욱 멀리한다고 한다. 세눈박이 개는 고려시대 삼목구(三目狗) 전설로 전해오며 민화에 등장한다.

세시 풍속에서도 개를 악귀를 막는 영험한 동물, 영수(靈獸)로 여겨 매년 정초에 대문에 개 그림을 그려 붙여 귀신이나 도둑을 막고자 하였다. 민화에 나오는 개는 삽살개, 검둥개 등 전형적인 한국 토종개의 모습에, 목에는 방울을 달고 있는 세눈박이 또는 네눈박이의 모습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더 잘 보고 더 잘 들어야 수문장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어서 그렇게 그려낸 것이라고 한다.

지금이야 흔한 물고기지만, 잉어는 등용문(登龍門)의 주인공이며 다복다산과 입신양명을 상징한다는 것을 잉어 민화 작품을 보고 새롭게 알게 되었다. 역동적인 움직임과 표정까지 그린 세밀한 잉어 그림은 물론 먹의 농담으로 굵게 또는 가늘게 이리저리 흐드러지게 표현된 포도덩굴 그림은 민화가 단순히 서민들의 서툰 그림이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을 단번에 무너뜨렸다.

이밖에 예부터 날카로운 가시가 잡귀의 침입을 막아준다는 엄나무, 사악한 기운과 병을 막아준다는 호랑이 뼈, 병을 물리치고 귀신을 쫓는 복숭아 나뭇가지, 소를 잡아먹은 표시로 걸어두고 잡귀가 놀라 도망가도록 한다는 쇠코뚜레 등도 이채로웠다.

흥미로운 전시물 가운데 하나가 부적이다. 흔히 알고 있는 형태의 종이 부적 외에 호랑이 이빨과 발톱, 수염을 조그맣게 세공한 부적, 조개 부적, 고가구의 열쇠로 쓰였다는 잉어 자물쇠 부적 등을 볼 수 있다. 모두 가족의 건강과 소망을 비는 것들이다. 통일신라시대의 기와인 인면와(人面瓦), 귀면와(鬼面瓦)등도 볼 수 있었는데 독특하게 생긴 기와들이 부적의 역할을 했다니 재미있다.

예술로 승화된 민간신앙

 민화가 들어간 각종 판매용품, 책들도 읽어볼 만하다.
 민화가 들어간 각종 판매용품, 책들도 읽어볼 만하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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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 든든한 소장품이 될 부적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은 이채로운 경험이었다.
 마음 든든한 소장품이 될 부적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은 이채로운 경험이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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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에 나타나는 동물, 새, 꽃들은 모두 벽사(僻邪)의 뜻을 지닌 그림이다. 벽사는 나쁜 잡귀, 질병, 재해 같은 사악한 기운을 막고 악귀를 쫓는 것이다. 벽사와 함께 건강과 장수, 부부 금실, 출세 등 현세의 복을 누리고자 하는 복락(福樂)주의는 옛 사람들의 의식 속에 강하게 자리해 왔고 민화에 단골소재로 등장하였다.

민화를 그린 일반 서민들은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자신이 담고 싶고 닮고 싶고 우러러 보는 것들을 그림에 담았다. 그런 순수함이 민화를 더 매력적으로 만든 듯했다. 작품마다 풍부한 상상력과 천진난만한 묘사 그리고 해학, 풍자가 가득하고 화려한 색채에 표현방식도 자유로워 마치 현대의 전위적인 미술작품을 연상하게 했다. 민간신앙이 예술로 승화된 것이다. 해외에서 호평을 받고 현대의 예술가들이 꾸준히 응용할 만했다.

민화는 가장 한국적이면서 가장 현대적인 예술로서 오래전부터 외국에서 한국적 특색이 뚜렷한 그림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세계적인 미술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전통문화가 아닌가 싶었다.

박물관 직원은 "민화는 한국 서민, 민중의 심성을 가장 쉽고 재미나고 솔직하게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전문가는 물론 비전문가들까지 민화를 '가장 한국적인 것'이라고 평가한다"며 "민화에 주목하는 이유는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전시에 나가보면 국내보다 오히려 반응이 더 뜨겁고 관심이나 호응도 더 높다고 한다.

전시관은 민화공방을 함께 운영하고 있어 다양한 민화 그리기 체험을 한 후 작품을 가져갈 수 있다. 체험 과정은 꽃, 새, 호랑이 등의 바탕 그림이 그려진 원목에 한국화 물감으로 채색하는 작업이다. 이때 한국화 물감의 특징을 살려 색채의 농담에 자연스러운 변화를 주어 더욱 멋진 민화를 그릴 수 있는 '바림 기법'을 배울 수 있다. 체험 내내 박물관 직원이 도와주고, 채색이 끝난 후에는 잘 말려 마감재를 뿌려준다. 박물관 마당에는 직접 부적을 찍고, 탁본해 가져갈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인기가 좋다. 흥미롭고 왠지 마음 든든해지는 소장품이 될 부적 만들기 체험을 꼭 해보길 추천한다.

덧붙이는 글 | - 지난 11월 21일에 다녀왔습니다.
- 박물관 위치 : 전철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 도보 15
- 누리집 : www.gahoemuseum.org
- 운영시간 : 매일 오후 6시까지 (월요일 휴관)
- 입장료 : 2천원 (학생 1천원)
- 관람 문의 : 02-741-0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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