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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꼭 필요하지만, 살기 위해 사야 하는 것 중 가장 비싸다. 그래서 우리는 매달 월세만으로도 생활고를 겪고, 전세 대출금을 생각하며 직장에서의 모욕을 견딘다. 그러나 지금보다 십년 뒤가 더 불안하다. 이렇게 뼈 빠지게 일해 유지하는 집은 나쁘거나, 썩 좋지도 않으면서 계속 탈이 난다.

대부분의 집주인은 그걸 모른 척 한다. 그래서 '세입자라 쓰고 비적정주거 생존자'라 읽는다. 복지예산은 점점 늘고 있는데 이상하게 여전히 가족 말고는 비빌 언덕이 없어 보이는 2014년의 한국.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복지팀에서 비빌 언덕이 없는 비혼여성 10명을 만나 비적정주거 생존자로 살아왔던 집 역사를 인터뷰했다. - 기자 말

가난한 세입자들은 생활비의 절반 가까이를 월세로 내면서도, 동파, 누수, 해충, 곰팡이, 추위, 더위, 침입 걱정을 달고 산다. 집수리를 요청해 보지만 성공 여부는 집주인의 선심 정도에 달려 있음을 실감하게 될 뿐이다. 거기다 비혼 여성 세입자는 나이 어린 여성으로 치부되니 이런 상황에서는 협상력을 확보하기가 더 어렵다.

세입자들의 고충과 필요한 대안들을 모았더니 칠판 하나가 가득찼다. 액션단은 이 칠판을 '분노의 칠판'이라고 이름 붙였다.
▲ 세입자 주거권 액션단 첫 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들 세입자들의 고충과 필요한 대안들을 모았더니 칠판 하나가 가득찼다. 액션단은 이 칠판을 '분노의 칠판'이라고 이름 붙였다.
ⓒ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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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민우회는 지난 8월부터 '세입자라 쓰고 비적정주거 생존자라 읽는다'라는 특별기획으로 10명의 비혼여성 세입자의 '집 이야기'를 다루었다. 가족의 지원 없이 주거 독립을 결심하자 삶이 어떻게 파란만장해졌는지, 월 소득의 절반 이상을 주거비로 써야 하는 가계부가 얼마나 허탈한지, 기본적인 주거 조건조차 갖추지 못한 집에서 사는 일상이 얼마나 서글픈지, 세입자라고, 나이가 어린 여성이라고, 결혼을 안 했다고 무시당할 때 자기 존재감이 어떻게 흔들리는지에 대한 절절한 목소리들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인터뷰를 통해 발견한 것은 그들의 '고생담'만은 아니었다. 인터뷰이들은 세입자로 살아오는 과정에서 체득한 생존전략을 나눠주기도 했고, 제도적 대안을 강력히 요청하기도 했다. 사실 원하는 것은 하나, 세입자로 살아도 괜찮은 사회이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2014년 한 해 동안 대안 모색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이번 마지막 기사에서는 일련의 활동 과정을 통해 정리한 '세입자로 살아도 괜찮기 위해 필요한 것 세 가지'를 전하려고 한다.

한국여성민우회는 또 이같은 활동 결과를 담은 세입자 주거권 안내서 <새록세록>을 제작했다. <새록세록>은 집을 구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집구하기, 계약, 집주인과의 집수리 분쟁, 계약을 끝내고 다음 집을 구하기까지의 전 과정에 걸쳐 세입자가 자신의 주거권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정보들을 모은 안내서이다.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세입자로 살아도 괜찮기 위해 필요한 것 세 가지' 정도로 소개할 수 있다.

세입자 안내서 <새록세록>에 담긴 세 가지 정보

비싼 월세가 답답하고 고장 난 집이 서글픈 세입자들의 기록으로 만든 안내서 '새록세록'
▲ 세입자 주거권 안내서 [새록세록] 비싼 월세가 답답하고 고장 난 집이 서글픈 세입자들의 기록으로 만든 안내서 '새록세록'
ⓒ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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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노하우다. '집 보는 눈 체크리스트'나, '집수리 비법' 같은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한 노하우, '세입자 손자병법 부동산 편과 집주인편' 같은 협상 노하우가 세입자에겐 필요하다. 노하우란 경험 속에서 터득한 비법을 의미하는 말이다. 노하우를 모으려면 경험자들의 연대, 즉 세입자들의 연대가 필수이다. 세입자들의 경험을 드러냈던 인터뷰들 그리고 매번 성토와 공감 속에 진행되었던 액션단 모임이 바로 그 연대의 장이 되었다.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은 정보다. 안전한 계약서를 쓰기 위해, 집수리 책임 소재로 분쟁을 겪거나 보증금을 떼일지도 모르는 위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주택임대차보호법 이해는 필수다. 하지만 법이 있어도 말이 어려워 세입자들이 접근하기가 어려운 게 지금의 현실. 그리하여 세입자 주거권 액션단은 관련 전문가들을 만나 정보를 얻고 접근하기 쉬운 말로 이 정보들을 풀이하는 작업도 함께 <새록세록>에 담았다.

인터뷰에서 발굴한 집주인과의 분쟁 사례와 대응 노하우를 모은 손자병법
▲ 세입자 손자병법 [집주인편] 인터뷰에서 발굴한 집주인과의 분쟁 사례와 대응 노하우를 모은 손자병법
ⓒ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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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주택임대차보호법 정보들을 쉽게 풀어 정리한 사전
▲ 임대차 용어사전 세입자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주택임대차보호법 정보들을 쉽게 풀어 정리한 사전
ⓒ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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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노하우나 정보가 없어도 괜찮게 살 수 있는 국가 안전망, 바로 주거복지제도이다. 공공임대주택과 주거급여는 대표적인 주거복지제도이다. 하지만 두 제도 모두 특정한 자격을 만족시키는 이들만 이용할 수 있다.

그럼 자격 밖의 사람들은? 결국 돈을 벌어 내 집을 사야만 세입자의 설움을 벗어날 수 있다는 걸까? 사실 현행 제도는 이런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설계되어 있다. 박근혜 정부 주거정책의 주된 목적은 '매매활성화'이고, 대표적인 주거복지제도는 '주거급여 확대'였다. 다른 시나리오는 어떻게 가능할까.

'세입자 말하기대회 - 내가 사는 그 집' 행사장에는 인터뷰이들이 그린 '나의 최악의 집' 단면도와 함께 인터뷰이들의 이야기도 전시되었다. 그 중 한 문장이 의미심장했다.

'세입자는 삶의 안정감 같은 감각을 경험할 수가 없다. 마치 비정규직 같은 느낌.'

비정규직 노동자가 겪는 삶의 불안은 단지 고용 기간만의 문제가 아니다. 고용에 대한 결정권이 사용자에게 있고 그 결정권을 너무 자주 행사할 수 있으니 자연히 사용자에게 유리한 힘의 역학이 생긴다. 그 역학 관계 안에서 노동 조건은 나빠질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이 불안정한 이유다.

세입자도 같다. 집주인은 2년마다 집세 인상을 요구할 수 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재계약은 어렵다. 이 결정권이 집주인에게 있고,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협상들은 모두 이 그늘 아래서 벌어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세입자는 약자가 된다.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은 우리 모두의 일

결국 주거복지의 시작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일 수밖에 없다. 세입자인 우리가 임대차등록제,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도입 같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노력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는 임대료를 5% 이상은 올릴 수 없다고 정해져 있다. 하지만 판례에서 5% 인상 제한을 계약 기간 중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재계약 시 인상 요구에는 이 제한이 해당되지 않는다. 결국 인상률 제한은 세입자에게는 있으나마나한 조항인 셈이다.

반면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월세에 한해서는 계약을 갱신할 때도 임대료를 9% 이상 올리지 못하게 하는 월세상한제, 계약 후 5년 동안은 세입자가 계약 갱신을 요구하면 건물주가 거부하지 못하는 계약갱신청구권이 포함되어 있다. 주택임대차보호법도 달라지지 못할 이유가 없다.

현행 주거복지 제도의 차별적 요소도 개선해야 한다. 1인 가구가 늘고 있는 만큼 1인 가구 전용 공공임대주택을 짓는 등 제도적 대응도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1인 가구여도 현실적으로는 1인 가구가 아닌 사람들도 있다. 혼인과 혈연만을 가족 구성의 조건으로 인정하는 현행 법 안에서는 그 외의 계기로 가족을 구성한 공동체 가족은 각각의 구성원이 1인 가구로 집계될 뿐, 가족인 상황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행 공공임대주택 제도 역시 이런 사각지대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데, 공동체 가구에도 공공임대주택 신청 자격을 부여하는 등의 개선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더욱이 우리는 저출산 대책으로 싱글세를 운운하는 정부를 가진 국민이기에 이 부분을 더욱 주시해야 한다.

이런 제도적 변화는 결국 성평등복지라는 새로운 의제를 주거복지 영역에도 적극 반영해야 가능한 일들이다. 이제까지 '복지'는 사회 약자들을 돕는 제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앞으로의 '복지'는 사회약자를 만들어내는 구조에 대해 질문하고, 누군가를 약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 무엇이 기본권이 되어야 하는지를 합의해 가는 과정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 그 과정은 성평등의 관점으로 진행되어야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복지'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 지면의 한계로 다 담지 못한 구체적인 정보와 노하우들, 제도적 개선안들은 <새록세록>에 실려 있습니다. 책자를 받아보고 싶으신 분은 이 링크를 클릭하시면 안내문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사는 그집, 집주인 한번 살아보길"

'내가 사는 그 집'처럼 꾸며진 무대에서 비혼여성 세입자들의 세입자말하기대회를 열었다
▲ 세입자말하기대회 - 내가 사는 그집 '내가 사는 그 집'처럼 꾸며진 무대에서 비혼여성 세입자들의 세입자말하기대회를 열었다
ⓒ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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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민우회는 6월~11월까지 세입자 주거권에 관심있는 시민들과 함께 '세입자 주거권 액션단 HOUSE & PEACE'를 만들어 활동했다. 액션단은 열악한 주거환경에 대한 성토를 모아 '세입자들의 적정주거 선언-우리는 이런 집을 원한다'를 만들어 지난 10월 6일 세계주거의 날에 발표했다.

세입자들의 적정주거 선언 '우리는 이런 집을 원한다' 보러가기

그리고 지난 4일에는 할 말 많은 세입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세입자말하기대회 - 내가 사는 그 집'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세입자를 때려치우고 집을 사고 싶게 만드는 세상에 대해, 결혼은 하지 않더라도 독립은 하고 싶지만 주거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인 현실 등에 대해 성토하는 자리였다.

참가자들은 '미스김' 운운하며 나이 어린 여자 세입자를 대하는 나이 많은 남자 집주인들에 대해서도 분노했다. 또 절대 해주지 않는 집수리에 대해 모른 척하는 집주인에 대해서도. 일부는 춥고 덥고 냄새나고 시끄러운 집에서 생존하기 위해 필요했던 라디에이터와 제습기 그리고 베이킹소다와 귀마개에 대해 이야기하며 분노했다. 현장에선 이들의 분노에 맞장구치며 웃음소리와 박수가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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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회는 1987년 태어나 세상의 색깔들이 다채롭다는 것, 사람들의 생각들이 다양하다는 것, 그 사실이 만들어내는 두근두근한 가능성을 안고, 차별 없이! 평등하게! 공존하는! 세상을 향해 걸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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