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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초청특강 후 질의응답 중인 오연호 대표님.
▲ 오연호 대표 초청특강 구미편-2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초청특강 후 질의응답 중인 오연호 대표님.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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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얼음이 어는 곳이 있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고르고 고른 날이 하필 수능 다음 날이라니. 수능 한파는 올해도 한 치의 비켜감 없이 정면으로 전국을 돌파했다. 그리고 그 냉기가 채 가시기 전인 다음 날이 '그분'께서 오시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아침 찬바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까치는 반갑게 울어댔다.

오연호 대표 초청 특강은 협동조합 연구회의 프로그램 중 일부로 준비되었다. 우리끼리 책 읽고 토론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외부 연사를 초청하여 강의를 듣는 것으로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고자 하였다. 더구나, 협동조합의 천국이라는 덴마크의 행복을 주제로 하는 강연 내용은 연구회의 성격과 결이 맞아 떨어졌다.

10월 중에 계획한 강연이었으나, 일정이 여의치 않아 한 달이 미루어 졌다. 그리고, 한 순간 잊고 지냈다가, 강연 담당자의 전화를 받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두 달 넘게 전국을 다니느라 피곤하실 텐데,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바쁜 시간 쪼개어 강연을 허락해 주신 오연호 대표님을 생각하니 준비자로서 어깨가 무거웠다. 미리 책을 구매하여 밑줄 그어가며 읽고 기대에 가득 차 있는 협동조합 연구회의 회원들을 생각하면 또 대충 지나칠 일도 아니었다.

초청 특강을 동네 잔치로

그래서 당초 예상이었던 연구회 회원들만을 위한 강의에서 판을 좀 키워 지역의 주민들까지로 범위를 확장키로 했다. 그러다 보니 생각보다 준비할 것이 많았다. 어렵게 모시는 분이니 동네잔치로 한번 만들어보자 했다. 북 콘서트 형식을 빌리기 위해, 공연 팀을 섭외했다. 불과 2주 가량 남겨놓고 섭외하려니 마땅치 않았지만, 그래도 강의 직전에 몇 곡을 준비해 줄 분들을 모실 수 있었다. 오프라인 홍보를 위해 포스터도 제작했다. 아이들 손잡고 주말 저녁 내내 동네를 돌며 포스터를 붙였던 많은 회원들이 고생했다.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부분은 강연 후 이어질 뒤풀이였다. 통상적으로 인근 술집이나 식당 등을 빌려 강의 때 못 들은 이야기도 듣고, 사진 촬영도 하고, 이런저런 질문도 하는 그런 자리가 뒤풀이다. 뒤풀이 참가자들에게 일정 회비를 걷어 비용으로 처리하면 주최 측에서는 안내 정도 맡으면 되는 일이므로 부담은 없다.

하지만, 상당수 회원들의 생각이 달랐다. 강연을 듣기 위해 성당을 찾아주신 지역 주민들에게 어떻게 회비를 걷느냐, 우리가 준비하면 적은 비용으로 알차게 준비할 수 있다, 그것이 손님들에 대한 예의다, 날씨도 추운데 어디를 헤매고 돌아다니느냐, 등의 의견이었다.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시간이 부족한데 언제 준비하느냐, 성당에서 뒤풀이를 준비한 전례가 없다 등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결국, 오연호 대표의 스케줄상 장소를 옮겨서 뒤풀이를 진행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판단 하에 자체 준비로 결정했다. 협동조합의 정신에 입각한 열띤 토론은 그대로 동네잔치로 이어지게 된다.

행사 당일, 미리 조퇴를 하고, 오 대표 일행을 모시러 갔다. 저녁 식사를 하시는 동안, 강연회 준비를 하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급조된 밴드의 리허설과 강연장 입구 다과 준비, 그리고 뒤풀이 준비까지 연구회 회원들 모두가 바쁘게 움직였다. 안내용 형광봉이 사라지는 등의 소소한 문제점들이 나타나긴 했지만, 그럭저럭 시간에 맞추어 모든 준비를 마쳤다.

보컬, 기타, 건반으로 이루어진 매우 급조된 밴드였으나, 잔치의 서막을 알리기에는 충분했다. 보컬의 귀여운 율동이 인상적이다.
▲ 급조된 밴드의 공연 장면 보컬, 기타, 건반으로 이루어진 매우 급조된 밴드였으나, 잔치의 서막을 알리기에는 충분했다. 보컬의 귀여운 율동이 인상적이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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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옥계성당에서 개최된 오연호 대표 초청강연회의 장면.
▲ 오연호 대표 초청특강 구미편 구미 옥계성당에서 개최된 오연호 대표 초청강연회의 장면.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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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전 공연을 맡아주신 자매님의 노래와 깜찍한 율동 덕분에 비교적 어색하지 않게 행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오늘 잔치의 꽃인 오 대표의 강의는, 비록 온풍기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지만, 뜨거운 박수와 열기 속에서 시작되었다. 벌써 85번째 강연이며, 앞으로도 한 달 넘게 스케줄이 잡혀있다고 하신다.

앞으로 강연을 들으실 많은 분들을 위해, 강연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는 생략하기로 한다. 1분 듣기 정도의 맛만 보여준다면, 행복사회를 위한 여섯 가지의 키워드 중에 가장 공을 들이신 것이 '자유'라는 주제라는 것. 그리고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이 행복을 위한 삶인가, 내가 선택한 삶이었는가에 대해 개인적으로 많은 숙제가 남았다는 것이다.

사실, 작년에 같은 내용으로 대구에서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작년에 비해 훨씬 더 재미있고, 한층 깊어진 내용이었다. 또한, 전국 순회강연을 다니면서 일어난 에피소드들이 곁들여져 풍성함을 더했다. 예를 들자면, 충남 홍성의 모 대안학교 고등학생들이 한 명도 졸지 않고 강연을 다 듣자마자, 집으로 전화해서 부모들에게 꼭 들어보라고 권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이를 통해 창의적인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강연에 참석했던 지역의 한 애기 엄마가 밴드에 올린 글로 후기를 대신한다.

'강연 내내 덴마크로 이민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우리도 덴마크처럼 행복해질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가져봅니다. 아이의 자존감을 기르고, 아이들에게 더불어 함께 사는 의미를 가르쳐주자고 다짐하였습니다.'

손수 음식을 장만하느라 거의 오후내내 고생한 협동조합 회원님들과 성당의 자매님들 덕분에 잔칫집 분위기를 낼수 있었다.
▲ 초청강연 뒤풀이에 준비된 음식들 손수 음식을 장만하느라 거의 오후내내 고생한 협동조합 회원님들과 성당의 자매님들 덕분에 잔칫집 분위기를 낼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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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후 대부분의 청중들이 뒤풀이까지 참여하여 강의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드러냈다.
▲ 강연 후 뒤풀이 장면 강연 후 대부분의 청중들이 뒤풀이까지 참여하여 강의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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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진 사인회와 뒤풀이의 시간. 성당 지하에 마련된 뒤풀이 장소에서는 진작부터 홍합탕과 어묵탕이 끓고 있었고, 포항에서 당일 공수해 온 과메기와 잘 삶아진 오징어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강연을 들었던 많은 분들이 함께 어우러져 추운 몸을 녹이며 잔을 기울였고, 짧게나마 자리에 함께 하셨던 오연호 대표도 즐거운 표정이셨다. 낮부터 홍합을 씻고 음식 준비를 했던 협동조합 연구회 회원님들의 노고가 아깝지 않은 풍경이었다.

기차 시간 때문에 일찍 일어나신 오연호 대표를 아쉽게 보내고 난 후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 강의 내용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아이들 교육 이야기부터, 내가 사는 지역부터 바꾸어 보자는 희망의 씨앗들이 대화 속에 오고갔다. 두시간이 채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연호 대표가 남기고 간 메시지는 긴 여운이 되어 사람들의 가슴 속에 새겨졌던 것이다.

협동조합 연구회의 이름을 걸고 처음 주관한 행사였기에, 준비한 회원들의 마음속에도 뿌듯함과 더불어 협동의 힘으로 이루어 냈다는 자신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오연호 대표의 말씀처럼,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꿈틀거리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들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데서 오는 동지 의식과 미래에 대한 기대는 초청 강연회의 진정한 수확이었다.

인심은 나눔에서 나온다. 강연에 초대된 손님들에게 따뜻한 차 한 잔과 정성스런 음식을 대접하는 마음가짐이야말로 마을 공동체와 협동조합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기본 마음 자세 아닐까?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그럴 수 있다,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우리 이웃들의 심성이 여전히 따뜻하게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라고 감히 생각해본다.


태그:#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협동조합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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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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