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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6일 오전 '윤일병 사망사건' 재판이 열리는 경기도 용인시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에서 가해 병사들이 피고인 석에 앉아 있다.
▲ 고개숙인 '윤일병 사망사건' 가해 병사들 9월 16일 오전 '윤일병 사망사건' 재판이 열리는 경기도 용인시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에서 가해 병사들이 피고인 석에 앉아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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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8사단 집단구타·사망사건 가해자들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살인죄가 입증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던 군 재판부가 증거 능력을 의심받는 국방부 조사본부 국방과학수사연구소(아래 국과수) 부검의(법의관)의 부검 감정서와 법정 진술을 토대로 이 같은 결론을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 사건 공판과정에서 군 검찰은 피해자 윤아무개 일병의 사인을 당초 '기도 폐색에 의한 질식사'에서 '속발성 쇼크 및 좌멸증후군'으로 변경했기 때문에, 이미 폐기된 질식사의 근거로 제시되었던 의학적 소견을 재판부가 인용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더군다나 윤 일병의 유가족들은 지난 9월 "(군 법원이) 사실상 수사와 부검, 기소 등 전 과정에서의 축소, 은폐 사실을 인정한 만큼 엄정한 수사와 그에 합당한 처벌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국과수 부검의와 헌병 수사관 등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한 상태다.

앞서 지난달 30일 선고 공판에서 가해자들에게 상해치사를 적용, 징역 45년~15년 형을 선고했던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은 살인죄를 무죄로 판단한 이유에 대해선 전혀 설명하지 않았다.

국과수 부검의가 작성한 감정서와 법정증언, 신빙성 의심

제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증거 능력을 의심받고 있는 국과수 부검의의 감정서를 대부분 인용해 판결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판결문 52쪽)
▲ 윤 일병 사건 1심 재판부가 인용한 부검의 소견 제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증거 능력을 의심받고 있는 국과수 부검의의 감정서를 대부분 인용해 판결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판결문 52쪽)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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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일병 사건 가해자들에 대한 1심 판결을 내린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국방부 조사본부 부검의의 부검감정서와 법정 증언을 인용해 가해자들에게 살인죄 적용이 어렵다고 봤다.
▲ 윤 일병 사건 1심재판부가 인용한 부검의 소견 윤 일병 사건 가해자들에 대한 1심 판결을 내린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국방부 조사본부 부검의의 부검감정서와 법정 증언을 인용해 가해자들에게 살인죄 적용이 어렵다고 봤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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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17일 입수한 제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군 재판부는 부검의의 부검 감정서와 공판 조서를 토대로 "당시 피고인들이 주먹이나 손바닥으로 얼굴이나 머리부위를 수차례 때리고 배와 복부 부위를 발로 차서 폭행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뇌나 장기 등 중요 부위에 대한 치명적인 가격으로 인정하기 어렵고, 피고인들이 범행 시점에 살인의 고의를 가지고 신체의 중요부위를 사망에 이를 정도로 가격했다고 볼 만한 다른 증거도 없다"고 결론 내렸다. 

군 재판부는 또 공격부위의 반복성에 대해서도 "피해자에게 속발성 쇼크가 온 것은 이전부터 가해진 폭행의 누적된 결과라고 보여지며, 특별히 2014. 4. 6 16:07경부터 시작된 폭행만이 속발성 쇼크의 원인이 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과다출혈에 의한 속발성 쇼크 및 좌멸증후군'으로 사망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이 사실만으로 2014. 4. 6 16:07경 이후의 피고인들의 반복된 폭행에 살인의 고의가 있다고 추단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군 재판부는 지난 5월 12일 국과수 부검의가 작성한 (부검) 감정서와 이 부검의가 7월 10일 28사단 보통군사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한 내용을 근거로 이 같은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과수 부검의가 작성한 감정서와 법정 증언의 신빙성에 대해서는 가해자측 변호인과 윤 일병 유족측이 공판과정 내내 의혹을 제기해 왔다.

일례로 부검의는 감정서에서 "민간병원 의사에 의하면 최초 사망자(윤 일병) 기도에 음식물이 차 있었다는 점" "민간병원 의사에 의하면 '기도폐쇄에 의한 뇌손상으로 사망했다'는 소견인 점" 등을 들어 "기도폐색성 질식사로 추정된다"는 소견을 밝혔다. 하지만 윤 일병이 사망한 의정부성모병원이 발급한 사망진단서에는 "직접사인 미상"으로 되어 있을 뿐 부검의가 말한 민간병원 의사의 언급은 어디에서도 확인되지 않는다.

또 부검의는 28사단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해 "부검시 장기 손상은 비장이 살짝 찢어진 부분밖에 없어서 장기손상 자체만으로 인해 사망한 소견은 없다"고 진술했는데, 군 재판부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비장에 열상이 있는 부분 그 자체만으로 사망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하지만, 몸 속 깊숙이 자리 잡은 비장은 교통사고 수준의 큰 충격을 받았을 때나 파열될 수 있고, 혈액량이 많아 과다출혈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다수 법의학자들의 주장이다. 또한 윤 일병의 사망 전 진료기록부 등에 의하면 피해자는 다발성 장기손상으로 인한 염증 반응, 과다출혈로 집중치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나 있어, 장기들의 상태 역시 심각한 손상을 입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기도폐색에 의한 질식사'의 근거로 부검의가 제시했던 증거들은 군 검찰의 사인 변경과 함께 이미 증거 능력이 없어졌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재판부, 군 검찰이 폐기한 부검의 소견 인용

고 윤일병, 오대위 유가족들이 5일 국회 정론관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여성가족위원회, 야당 법제사법위원회 의원들과 함께 김흥석 육군법무실장 엄중 문책 및 고등군사법원장 내정철회를 촉구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눈물 훔치는 윤일병-오대위 유가족 고 윤일병, 오대위 유가족들이 5일 국회 정론관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여성가족위원회, 야당 법제사법위원회 의원들과 함께 김흥석 육군법무실장 엄중 문책 및 고등군사법원장 내정철회를 촉구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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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일 3군사령부 보통검찰부는 군 법원에 공소장 변경신청서를 제출해 윤 일병의 사인을 '과다출혈에 의한 속발성 쇼크 및 좌멸증후군 등'으로 변경한 바 있다. 이는 '과다출혈이 없었다'는 부검의의 진술과는 명백히 배치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군 재판부는 윤 일병 신체 중요 부위의 가격여부, 공격부위의 반복성 등을 판단하는 근거로 군 검찰이 폐기한 국과수 부검의의 의학적 소견을 인용했다. 사인은 번복했지만, 사인 판단의 의학적 근거는 그대로 가져온 셈이다.

가해자 하아무개 병장의 변호인 김정민 변호사는 <오마이뉴스>와 만나 "공판과정에서 부검의에 대한 재신문 요청이 번번이 기각되면서 이런 결과를 예상했다"며 "군 검찰은 사인을 과다출혈로 변경하고 피고인 4명을 살인죄로 기소했지만, 사인변경에 관한 수사서류는 일체 제출하지 않았고, 살인죄로 판단한 근거도 제시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김 변호사는 28사단에서 진행된 공판 내내 폭행의 주범격인 이 아무개 병장에게는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군 검찰이 윤 일병의 사인을 번복한 배경에도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려는 김 변호사의 노력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김 변호사는 "군 검찰도 이미 폐기한 부검의의 소견을 재판부가 인용했다는 점에서 전혀 납득되지 않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태그:#윤 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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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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