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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빙애(지담)의 모습. 처음에는 배우 김유정이 아역 빙애를 연기했다.
 빙애(지담)의 모습. 처음에는 배우 김유정이 아역 빙애를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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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월화 드라마 <비밀의 문>에는 사도세자의 여인인 빙애가 등장한다. 모든 드라마가 다 그렇듯, 이 드라마도 두 사람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드라마 속의 빙애는 처음엔 서지담(김유정 연기)이란 이름으로 등장했다. 지담은 소설가인 동시에 세책방(인쇄소 겸 도서대여점) 딸이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살인 사건을 계기로 이루어졌다. 영조 임금과 보수파 노론당의 검은 커넥션을 인지한 화가 신흥복의 피살 사건을 계기로 이 만남은 이루어졌다. 그런데 두 사람이 보수파의 방해를 무릅쓰고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지담의 집안은 풍비박산됐다. 이런 상태에서 사도세자가 정치적 이익을 위해 자기를 배신했다는 판단이 들자 지담은 연락을 끊고 갑자기 사라졌다.

3년 뒤, 사도세자는 기생이 된 지담을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다. 이때 지담은 빙애(윤소희 연기)란 이름으로 살고 있었다. 이렇게 지담이 빙애로 등장하면서, 연기자도 아역에서 성인역으로 바뀌었다. 지난 10일 방영된 <비밀의 문> 15회에서는 사도세자가 빙애를 궁궐에 은밀히 데려가는 장면이 나왔다. 이로써 두 사람의 관계는 궁궐을 무대로 하는 제2라운드로 돌입했다. 이상은 드라마 속 이야기다.

역사 속 빙애, 처음엔 손으로 바느질했던 궁녀

박빙애와 사도세자에 관한 이야기는 혜경궁 홍씨의 회고록인 <한중록>에 자세히 나온다. 사도세자의 부인인 혜경궁은 '남편의 죽음에 대해 나의 친정은 책임이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목적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 그래서 이 책에 묘사된 사도세자의 정신병이나 스캔들이나 상당부분 과장된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 담긴 모든 기록이 다 거짓은 아니다. 열 살에 세자빈(세자의 부인)이 되어 약 70년간을 궁궐 생활을 한 사람이 자신의 일대기를 거짓으로만 기술할 수는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사는 궁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순전히 거짓으로만 채울 수는 없다.

따라서 <한중록>은 '과장은 많지만 상당부분은 진실인 기록'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한중록>의 내용을 부정할 만한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 한은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다. 박빙애와 사도세자의 사랑 역시 그런 시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성인으로 바뀐 빙애. 배우 윤소희가 빙애를 연기하고 있다.
 성인으로 바뀐 빙애. 배우 윤소희가 빙애를 연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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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록>에 따르면, 박빙애는 본래 인원왕후의 침방 궁녀였다. 옷을 바느질하는 궁녀였던 것이다. <비밀의 문>의 빙애는 처음엔 손으로 책을 쓰는 소설가였지만, 실제의 빙애는 처음엔 손으로 바느질을 하는 궁녀였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궁녀는 10세 이전에 궁에 들어갔다. 특히 침방 궁녀는 지밀 궁녀(시중드는 궁녀) 및 수방 궁녀(수놓는 궁녀)와 더불어 3대 엘리트 궁녀였으므로, 이들은 대개 다 10세 이전부터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박빙애도 그런 궁녀 출신이었다.

<한중록>에 따르면, 사도세자는 죽기 6년 전인 1756년부터 박빙애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때 세자는 스물두 살이었다. 하지만, 박빙애는 마음대로 사귈 수 있는 궁녀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인원왕후의 궁녀였기 때문이다.

인원왕후는 영조의 법적인 어머니였다. 따라서 영조의 아들인 사도세자에게는 할머니였다. 왕이나 세자가 윗사람의 궁녀를 사귀는 것은 궁중 법도에서 금하는 사항이었다. 윗사람을 모시는 궁녀를 사귀는 것은 윗사람을 범하는 짓이라는 게 궁궐의 전통적인 관념이었다.

그래서 사도세자는 멀찍이서 박빙애를 훔쳐볼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한 사도세자의 상사병은 매우 심각했다. 혜경궁 홍씨에 따르면, 거의 정신병 수준이었다고 한다. 물론 혜경궁의 시각은 과장된 것일 수도 있다. 아내의 입장에서 볼 때, 다른 여자에게 정신이 팔린 남편이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다.

박빙애를 유혹해 살림을 차린 사도세자

그러던 중에 인원왕후가 1757년 5월 13일(음력 3월 26일)에 71세 나이로 사망했다. 그러자 사도세자는 "이때다!" 하고 박빙애에게 접근했다. 박빙애를 유혹한 사도세자는 그를 동궁전(세자 처소)에 끌어들이고 살림을 차렸다.

이때는 인원왕후가 사망한 지 약 5개월 뒤인 음력 9월이었다. 양력으로는 1757년 10월 13일에서 11월 11일 사이였다. 범접할 수 없는 궁녀를 자기 방에 숨겨두었으니, 이들을 지켜보는 궁인들은 그야말로 박빙을 걷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 사건은 두 달 만에 영조의 귀에 들어간다. 안 그래도 아들과 사이가 나빴던 영조는 이 사실을 듣고 대노했다. 그는 세자를 불러놓고 호통을 쳤다. <한중록>에 따르면, 영조는 "네가 감히 그런 짓을 하느냐?"며 야단을 쳤다. 어떻게 할머니의 궁녀를 사귈 수 있느냐고 꾸짖은 것이다. 사도세자로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박빙애를 내놓으라고 명령했다. 아들은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단순한 아버지가 아니라 임금을 겸한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세자는 박빙애를 내놓았다. 이것으로 이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일단락된 게 아니라 일단락된 것처럼 보인 것이었다. 영조는 박빙애의 얼굴을 몰랐다. 그래서 사도세자가 내놓은 사람이 진짜 박빙애인 줄 알았다. 아버지가 아들한테 속았던 것이다.

진짜 박빙애는 여전히 사도세자의 방에 있었다. 사도세자는 다른 궁녀에게 "네가 빙애 행세 좀 해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그 뒤 박빙애는 존재를 숨기고 계속해서 동궁전에 살았다. 그는 거기서 자식들까지 낳았다. 이렇게 해서 낳은 아이들이 은전군 이찬과 청근옹주였다. 숨어 살면서 자식까지 낳았으니 그야말로 박빙을 걷는 삶이었다.

결국 비극적으로 종결된 두 사람의 사랑

 술집에서 재회한 빙애와 사도세자(이제훈 연기).
 술집에서 재회한 빙애와 사도세자(이제훈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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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나 아들 정조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탕평을 추구했던 정의로운 정치가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그의 이성관계는 상식을 벗어난 것이었다. 그는 세자의 위신을 스스로 떨어뜨렸을 뿐만 아니라, 아내인 혜경궁에 대해서도 예의를 지키지 않았다.

이 시기에 사도세자는 노론당은 물론이고 영조로부터 정치적 압박을 받고 있었다. 압박을 제대로 감내하지 못한 그는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스트레스를 제대로 해소하지 못한 그는 박빙애와의 아슬아슬한 사랑을 일종의 심리적 도피처로 활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의 사랑은 뜨거웠지만, 그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2년도 안 되어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한 것이다. 혜경궁은 '사도세자가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던 중에 자신도 모르게 박빙애를 죽였다'고 <한중록>에 기술했다. 이때가 1760년 연초였다. 이로써 두 사람의 사랑은 비극적으로 종결되고 말았다.

사도세자가 미친 상태에서 자기도 모르게 박빙애를 죽였다는 혜경궁의 진술은 어쩌면 과장된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은 '빙애가 그렇게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혜경궁의 평소 바람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빙애와 사도세자의 사랑이 비극적 원인에 종결되었다는 점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박빙애와의 사랑은 사도세자의 인생에서 거의 막판에 타오른 뜨거운 불길이었다. 빙애가 죽은 뒤 '의문의 평안도 여행'을 다녀온 사도세자는 역모죄 비슷한 혐의를 쓰고 1762년에 뒤주(쌀통) 속에서 숨을 거두었다.

사도세자는 죽은 지 137년 뒤인 1899년에 4대손인 고종 황제에 의해 장조 황제로 추존되었다. 이에 따라 박빙애는 후궁인 박경빈(경빈 박씨)으로 추증되었다. 물론 이렇게 한다고 해서, 비참하게 죽은 박빙애의 한이 풀리는 것은 아니지만, 고종시대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라도 두 사람의 사랑을 아름답게 기록하고자 했다. 이 점을 보면, 당시까지 전해지던 두 사람의 사랑이 <한중록>에 기록된 것처럼 그렇게 부정적인 모습으로 세상에 비쳐지지는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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