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기사 수정 : 25일 오전 10시 53분]

그때 A씨는 열세 살이었다.

2003년 10월, 베트남 북서쪽의 라오까이(Lao Cai) 지방에 살던 '타이족' 출신인 그는 친구를 만나러 이웃마을에 놀러갔다. 갑자기 타악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마을사람 10여명이 A씨를 에워싼 뒤 그를 들어 한 타이족 남성 집으로 옮겼다. 그날 A씨는 성폭력 피해를 입었고 강제로 결혼까지 해야 했다. 약 8개월 뒤 A씨는 만삭의 몸으로 친정에 돌아왔다. 그는 아이를 시댁에 뺏긴 뒤 고향을 떠났다.

그때 A씨는 스물두 살이었다.

집을 나온 뒤 공장 등에서 일하던 그는 2012년 7월 결혼중개업소 소개로 B씨와 만나기 위해 한국에 왔다. 남편은 나이가 많고 의사소통에 불편함이 있었지만 괜찮았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결혼한 지 6개월쯤 됐을 때 시아버지 C씨가 그를 성폭행했다. 친구의 도움으로 A씨는 C씨를 경찰에 신고했고, 법원은 2013년 5월 C씨에게 징역 7년형과 10년간 신상공개 등에 처했고, 11월 그의 항소를 기각, 판결을 확정했다. C씨는 현재 교도소에 있다.

ⓒ sxc

관련사진보기


성폭력 피해 입은 아내에게 등 돌린 남편

그런데 1심 판결 뒤 남편 B씨는 두 사람의 혼인을 취소해 달라며 그해 8월 법원에 소장을 냈다. A씨가 예전에 결혼과 출산한 사실을 숨겼다는 이유였다. A씨는 결혼중개업자에게 이미 말했던 만큼 남편이 알고 있으리라 여겼을 뿐이며 일부러 속이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B씨는 A씨의 말은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고 했다. 1심 재판부(전주지방법원 가사단독1부·재판장 이유진 판사)는 남편의 주장을 받아들여 2014년 6월 24일 두 사람의 결혼을 취소했다. 재판부는 A씨의 결혼과 출산 전력은 혼인 의사를 정할 때 매우 중요한 요소라며 B씨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결혼하지 않았을 테니, 이 일은 혼인취소사유(민법 816조 3호 '사기로 인하여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때')에 해당한다고 봤다. 또 A씨가 책임이 있는 만큼 B씨에게 위자료로 8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A씨는 곧바로 항소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동천, 법무법인 민 등이 참여하는 공동변호인단은 A씨가 어린 시절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며, 시아버지의 성폭력으로 결혼생활이 깨지는 피해를 입었다며 이혼과 위자료 청구소송도 제기했다. A씨는 1심 중반까지는 혼인관계가 유지되길 원했지만, 후반에 포기했다.

이들은 재판부에 낸 서면에서 A씨가 시아버지의 형사재판에서 출산·결혼 전력을 숨겨 위증죄로 처벌받기도 했지만 원치 않았던 임신·결혼를 강제로 밝히게 했다면, 2차 피해를 가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의 강제결혼은 ▲ UN여성차별철폐협약에 어긋나는 심각한 인권침해이며 ▲ 한국 형법이 정한 미성년자 약취죄와 감금죄, ▲ 베트남법상 무효인 결혼관계라고 했다. 설령 A씨가 결혼 전력 등을 속였다 해도 시아버지가 저지른 성폭력이 더 불법성이 크고, 반인륜적이라고 덧붙였다.

"법원, 형식논리로 피해자를 나쁜 사람 만들어"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역시 16일 보도자료를 내 "형식적인 법 논리를 중심으로 판단한 법원 때문에 A씨는 피해자가 아닌 거짓으로 혼인한 나쁜 사람이 됐다"며 1심 재판부를 비판했다.

이들은 "혼인 취소 판결은 A씨에게 가혹한 처벌을 내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해 결혼관계가 끝장나버린 여성에게 13세 때의 납치와 성폭력, 그로 인한 출산경험을 따져 물고 있을 뿐 아니라 이 일은 사회통념에 맞지 않고, 법의 정신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또 혼인이 취소되면 '시아버지의 성폭력'이란 반인륜적 범죄는 일반 성폭력범죄가 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2심 재판부(전주지법 가사합의2부·부장판사 김양희)는 지난 9월 29일부터 심리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1심 판결 뒤 이 사건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탄원서에 서명한 사람이 2500명에 이른다"며 "이러한 상식과 기대를 2심 재판부가 엄중하게 고려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11월 17일 오후 2시 20분 세 번째 변론기일을 연다.


태그:#이주여성, #성폭력
댓글1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